Saturday, September 1, 2012

광우병과 나침판

광우병과 나침판--- 현각
얼마전 나는 영국의 유력 일간지 가운데 하나인 <인디펜던트>지에서 최근 유럽에서 번지고 있는 '광우병' 에 관한 기사를 읽은 적이 있었다.
광우병은 바이러스에 감염된 고기를 인간이 먹었을 때 걸리는 병이다. 이 병에 걸린 대부분의 사람들은 상상할 수 없을 만큼 끔찍한 고통에 시달리다가 죽는다. 그들의 뇌는 말 그대로 병원균에게 '먹혀' 정상적인 기능을 잃게 될 뿐 아니라 모든 신체 기능도 급속히 저하되어 마침내 용변도 가라지 못하는 식물인간의 상태가 되고 만다. 아직까지 치료방법은 전혀 없는 상태이나, 비교적 소수의 사람만이 이 병으로 인해 사망한 것으로 확인되고 있다. 하지만 영국과 미국의 많은 권위있는 과학자들과 보건부 관리들의 말에 따르면, 이 병의 잠복기간은 40년이 넘을 수도 있다고 한다. 따라서 현재로서는 얼마나 많은 사람들이 실제로 병에걸렸는지 알 수 없는 일이다. 과학자들은 앞으로 수년 이내에 광우병으로 13만 5천 명 정도의 사람이 목숨을 잃을것으로 예상하고 있다.
물론 이 뉴스를 접하고 많은 사람들이 충격을 받았다. 하지만 이 이야기에는 더욱더 충격적인 부분이 있었다. 시끄럽고 자극적인 서울을 떠나 소박한 아름다움을 지닌 경북 영주로 향하는 버스 안에서 이 기사를 읽으면서 나는 더욱 우려할 만한 사실을 발견했다. 우리 인간이 얼마나 많이 진실되고 자연스러운 길에서 벗어나 있는가 생각하며 나는 억누를 수 없는 두려움과 슬픔, 그리고 분노에 사로잡히지 않을 수 없었다.
여러분도 알고 있겟지만 광우병은 우리가 먹는 소에서 자연적으로 발생한 것이 아니다. 이것은 전적으로 인간의 잔꾀로 인해 발병된 것이다. 좀더 정확히 말하자면, 관우병은 실제로 인간의 어리석음과 욕망으로 인해 생긴 것이다. 1950년대에 유럽에서 쇠고기에 대한 수요가 높아지자 영국의 축산업자들은 시장에 내다 팔 소의 무게를 늘리기 위해 비용이 적게드는 새로운 방법을 생각해냈다. 그들은 이미 도살된 소들의 가공하고 남은 부분들을 소에게 먹이기 시작했다. 보통 소들이 먹는 곡물이나 풀 등에 죽은 소의 뼛조각과 내장 지방등을 섞어 만든 사료에는 그야말로 고기가 들어있기 때문에 단백질이 상당히 풍부하다. 따라서 '썩은 고기'라고 할 수 있는 이 사료는 소의 체중을 급격히 증가시켰고, 그 결과 우리는 모다 짧은 시간에, 보다 싼 가격으로 고기를 먹을 수 있게 되었던 것이다.
허지만 이 원료들은 냉장보관되지 않았으므로 썩기 시작했고 도살된 소가 걸린 병의 병원균 또한 들어 있었다. 이런 더럽고 썪은 고기에 곡물을 섞어 만든 썩은 사료를 매일매일 소들이 먹었던 것이다.
소는 원래 고기를 먹지 않는다 .소는 풀과 같은 식물만 먹도록 태어났다. 따라서 소가 이 썩은 고기 찌꺼기를 먹는다면, 즉 다른소의 몸을 먹는다면, 소는 같은 종족, 심지어 자기 가족의 몸을 먹는 것과 다를바 없으므로 병에 걸리는 것이다. 그것도 아주 심각한 병 말이다. 소는 이상한 행동을 하고, '미쳐서' 날뛰다가 끔찍한 죽음을 맞는다. 유럽과 미국의 보건부 관리들은 이 전대미문의 끔찍한 병의 원인이 이 배합사료에 있다고 결론지었다. 따라서 이 병의 원인은 인간이 맛있는 먹거리를 탐하고 빠른 시간에 돈을 벌려는 욕망에 있었다. 한 종[種]동물에게 자연 상태에서는 먹고 '싶어하지' 않는 것을 먹인 데 있다고 하겠다.
더욱 염려스러운 점은 소들이 자기와 같은 종을, 다시말해 자기 자신을 먹어야 한다는 것이다. <인디펜던트>지에서 한 과학자는 그점을 이렇게 지적했다. "본질적으로 우리인간은 초식동물인 소를 육식동물로 변하게 했다. 아니, 그보다 한술 더 떠 우리는 소들을 '동족을 잡아먹는 동물'로 만들었다." 게다가 이것이 소에 국한되지 않는다는 데 더 큰 문제가 있다. 그 과학자는 이런 말로 덧붙였다. "이 썩은 고기는 시장에서 거래되어 양어장이나 돼지 목장, 양 목장으로도 팔려 나갔다. 그 결과 인간은 다른 초식 동물들도 육식동물로 변하게 했다.".
이것은 지구상에 있는 한 생물이 자신의 막강한 지적능력을 오용하여 다른 생물로 하여금 자신의 본성을 거스르도록 한 것이다. 어린아이라도 이것은 잘못이라는 점을 알 수 있을 것이다. 잠시 이 문제를 생각해 보기 바란다.
이런 문제로 인해 전 세계의 많은 종교 지도자들은 "인류는 길을 잃어버렸다"라고 말한다. 인류는 방향을 상실했고, 자신의 혀와 지갑을 만족시키기 위해 자연의 질서를 자의적으로 파괴하고 있다. 광우병은 최근의 한 예에 불과하다. 이것은 심각한 비극이다.
우리는 인테넷을 발명한 것을 자랑스러워 한다. 인터넷 덕분에 우리는 집안에 앉아서 쇼핑을 할 수 있고, 매일 서로 이메일을 주고받을 수도 있다. 하지만 그와동시에 우리는 다른 동물들로 하여금 자기자신을 먹도록 만들고 있다. 인류는 이제 깨어나야 한다.
지금 여러분이 손에들고 있는 책에는 매우 혁신적인 기르침이 담겨있다. 이 책은 '깨어나는' 방법으로 어러분을 인도하는 나침판이다. 현재 서울에 있는 화계사의 국제선원과 계룡산의 무상사 국제선원에서 수행중인 외국인 비구와 비구니는 50여 명이 넘는다.
숭산 대선사님의 가르침의 궁극적인 목적은 우리를 깨워 이 세상에 도움이 되라는 것이었다. 이렇게 하려면 우리는 매일매일 수행을 통해 우리자신의 본성을 들여다 보아야 한다. 숭산 대선사께서는 제자들에게 반드시 매일 일찍 일어나 108배를 드리고, 불경을 외고, 특히 참선을 해야한다고 강조한다. 이 일에는 휴일이없다.
한번은 큰스님이 보스턴에서 가르침을 펴기 위해 프로비던스 선원을 며칠 비운적이 있다. 큰스님께서 일요일 아침에 돌아와 보니 미국인 제자들이 아직도 자고 있었다. 그날은 아무도 일어나지 않은 것이다!
"무슨 일인가? 어째서 모두들 지금까지 자고 있는 거지?"
제자중의 한 사람인 부라운 대학교수가 대답했다.
"선사님, 미국에서 일요일은 쉬는 날입니다. 우리는 매일 열심히 수행했으니 하루정도는 쉬어야 하지 않을 까요? 어제 우리는 모두 일주일에 하루는 쉬기로 결정했읍니다. 그게 미국 스타일입니다."
숭산 대선사께서는 손가락으로 창밖을 가르켰다.
"저 하늘에 떠 있는 태양이 보이는가?"
제자가 대답했다.
"네, 보입니다."
"태양은 쉬는 날이 없네. 밖에 바람부는 소리가 들리는가?"
"네, 선사님, 들립니다."
바람 역시 쉬는 날이 없네, 태양도, 바람도, 새도, 나무도, 꽃도, 그리고 모든 식물들도 쉬는 날이 없다네. 자네들은 선을 수행 중이네, 다시말해서 보살이 되고자 하는 거지. 보살의 마음은 쉬는 날이 없어. 그건 한국 스타일도, 미국 스타일도 이나야. 다만 대자대비[大慈大悲]일 뿐이네. 자네들은 그 경지에 도달해야 하네."
이 '선의 나침판' 은 대단히 혁신적이며 역사적인 책이다. 이 책의 저자는 한국인이지만, 원본은 영어로 출간되었다. " The Compass of Zen"(선의 나침판) 이라는 제목으로 1997년에 출간되자마자 당시 급속히 확장되던 미국과 동유럽 불교계에서 베스트셀러가 되었다. 이 책에는 숭산 대선사께서 서양의 독자들에게 영어로 직접가르쳤다는 점 때문에 이 책에 들어있는 가르침은 한국인들에게 새롭게 받아들여질 수 있을 지도 모른다.
대부분 불교 지도자들은 이보다 훨씬 형식을 갖추어 법문을 전한다. 또한 대개의 경우 지니치게 한문에 의존하며, 고대 중국 불교의 전통과 그것의 수많은 해석을 따르는 철학적 가설들에 의존하고 있다. 많은 한국인들은 오랫동안 한문을 공부한 독실한 불교 신자들만이 부처님의 가르침을 이해할 수 있다고 생각한다. 하지만 모든 사람들이 예전처럼 한문 공부를 할 수는 없다. 따라서 동양의 불교 신자들 역시 부처님의 가르침은 일반적으로 어렵고, 추상적이고, 끝까지 매우기가 힘들다고 생각한다. 이로인해 많은 동양인들이 부처님의 가르침을 '지나치게 어렵거나' 일상생활에서 부딪치는 문제와 동 떨어져 있다고 믿게 되었다. 이것은 잘못이다.
다시말하지만 이 책은 지적인 성찰을 위한 책이 이니다. 그러므로 여러분은 이 책의 말씀을 접하며 때로는 색다른 가르침을 받기를 바란다. 이것은 다른 책에서는 접할 수 없는 것들이므로 설명이 조금 필요하다. 숭산 대선사께서는 가르침을 줄 때 우리가 실체와 실상, 그리고 실용ㅇ에 도달해야 한다고 강조한다. '실상'은 진리에 도달하는 것을 의미한다. 우리가 볼 때, 들을 때, 냄새맡을 때, 맛볼 때, 만질 때 모든 것들은 진리이다. '실용'은 매 순간 물질과 진실의 본래 기능에 도달하는 것이다. 이것은 보살의 행동이고 모든 것에 대한 크나큰 사랑이다. '실체' 즉 우리의 본성은 글이나 말을 초월하여 존재한다. 어떤종류의 생각이나 해설도 그것을 설명하거나 표현할 수 없다. 그것을 설명하기 위해 입을 연다면, 그 순간 당신은 실수한 것이다. 우리의 본성은 말이나 글 이전에, 생각 이전에 존재하기 때문이다.
모든 지적인 활동은 생각의 산물이며, 그것의 반대되는 영역에 속 한다. 따라서 어떤 종류의 생각도 우리의 본성을 표현할 수 없다. 옛날 고승들은 이렇게 가르쳤다.
"할!"
또 어떤 고승들은 제자가 입을 열거나 글을 쓰려고 하면 손가락을 치켜들어 제지하거나 제자를 때렸다. 그들은 우리 실체의 이런 특성을 표현하기 위해 어떤 행동을 했다. 실체는 글이나 생각으로 표현되지 않기 때문이다.
부처님의 가르침만 그런 것은 아니다.. 성경을 보면 히브리인들은 '야훼'의 이름을 말하거나 글로 쓸 수 없었다. '야훼'라는 말을 입 밖으로 내는 순간, 하느님께 불경을 범하는 것이 되기 때문이다. 어떻게 무한한 하느님의 실체를 글로, 심지어 이름으로 표현할 수 있단 말인가? "가만히 있어라. 그러면 내가 주님이라는 것을 알게 될 것이다." 이슬람교에서도 신을 나타내는 그림을 그리거나 어떤 종류의 묘사도 하지 못하도록 금지되어있다. 이것은 모두 동일한 가르침을 담고 있다. 우리의 마음과 우주 삼라만상의 본성은 글이나 말, 그밖에 생각에서 나오는 어떤 것으로도 표현할 수가 없다.
숭산 대선사 께서는 말씀중에 탁자를 치면서 그 점을 표현했다. "탕!"
이것은 아주 중요한 점이다. 이것은 우리의 본성을 설명하는 완벽한 스타일이다. 그러므로 여러분도 책을 읽다가 "탕!"이라는 단어와 마주치면 그 단어를 읽으며 탁자를 두드리는 것이 좋다. 손으로 탁자를 치기만하면 된다. 이 책을 읽는 장소에 탁자가 없다면 손바닥으로 다리를 쳐도 좋다. 그렇게 한다면 이 가르침과 우주 삼라만상의 실체가 여러분에게 좀더 명활해질 것이다.
처음에는 이렇게 하는 게 어색할 수도 있고, 이해하기 어려울 수도 있다. 하지만 불교는 개념을 '이해'하는 것이 아니다. 불교와 모든 종교적인 실행에서 여러분은 뭔가에 '도달'해야 한다. 이것은 아주 중요하다. 그러므로 이 "탕!"이라는 단어를 보면 절대 아무생각도 하지말고 즉시 탁자를 쳐야한다. 100퍼센트 이렇게 하면, 100퍼센트 이것에 대해 생각하지 말고 마음이나 생각, 의견을 돌아보지 않는다면, 이것을 파악할 수 있고, 바로 그 순간 당신은 우주 삼라만상과 완벽하게 하나가 된다. 그리고 당신은 당신의 본성과 모든것들의 본성을 파악하게 되며, 진실에 도달하고(실체) 그것의 올바른작용을 발견할(실용)수 있게 된다
마지막으로 왜 이 "선의 나침판"이 필요한가? 현대사회와 마찬가지로 한국의 역사에서도 그 답을 찾을 수 있다. 지금으로부터 437년전인 1564년 서산 대사께서는 "선가귀감"이라는 책을 쓰셨다. 이 책은 오늘날에도 한국의 많은 '강원[講院]'에서 여러 비구와 비구니들이 교습서로 사용하고 있다. 서산 대사께서는 이 책에 불경의 주요 문구를 고르고 그것에 주를 달아 놓았다. 대사께서는 이렇게 한 이유를 다음과 같이 밝혔다.
"내가 비록 불초하나, 예날의 배움에 뜻을 두어 경 가운데 신령한 글월로서 보배를 삼거니와, 그러나 그 글이 너무 번다하고 '장경[藏經]'의 바다가 아득히 광대하여서 훗날 뜻을 같이하는 이들이 가지를 헤쳐가면서 잎을 따는 수고를 면치못할 것이므로, 이에 글월 가운데 요긴하고 간결한 말씀 몇백을 추려 적노니, 가히 글은 간단하지만 뜻은 두루깊다 할 수 있다."
1972년 숭산 대선사는 처음으로 서양에서 가르침을 펼 때 이미 많은 불교 종파가 미국과 유럽에서 활발히 활동하고 있는 것을 보았다. 티베트 불겨화 중국 불교, 일본 불교, 베트남 불교, 비피사나는 1960년대 초부터 서양에서 대중화 되었다. 서양에는 이미 많은 스승들과 종파들이 활동하고 있었다.
하지만 활동중인 종파들이 너무도 많아서 서양 불제자들은 혼란스러웠다. "무엇이 진정한 불교인가?" "불경은 무슨 뜻인가?" 그리고 무엇보다도 "불교의 가르침들이 나의 일상생활에 어떤 실용성을 지니는가?" 등등. 그러나 새로운 불교 공동체는 매우 활동적이었다. 때로는 한 도시에서도 몇개의 다른 공동체들이 활동하기도 했고, 불교의 가르침을 따르는 이들은 어떤 종파가 부처의 가르침을 가장 잘 표현하고 있는지 확신하지 못한 채 여러명의 스승과 종파 사이를 방황하기도 했다.
그러다가 숭산 대선사께서 이 나침판을 고안해낸 것이다. 이것은 원래 새로 입문한 서양 불제자들을 올바른 가르침으로 인도하기 위한 안내서 였다. 서산 대사께서 조선시대에 했던 것처럼 숭산 큰스님께서도 서양인들이 불경을 이해하는 데 도움을 주고자 했던 것이다. 물론 큰스님께서는 참선을 매우 중시하며, 오늘날에도 가장 강조하는 수행방법중 하나이다. 그러나 서양 불제자들 역시 불경과 글로 쓰여진 가르침을 알아야 하며, 그래야 그들의 수행에 도움이 되고, 다른 사람들을 고통에서 구해줄 수 있을 것이다. 하지만 서산 대사께서 말씀하셨던 것처럼 "그 글이 너무 번다하고 '장경의 바다가 아득히 광대하여서 훗날 뜻을 같아하는 이들이 가지를 헤쳐가면서 잎을 따는 수고를 면치 못할 것이다." 그래서 서산 대사께서 조선시대의 스님들을 위해 했던 일을 숭산 대선사께서 그들을 위해 한 것이다. 그는 불경의 중요한 가르침을 뽑아 그것에 대해 간단한 주를 달아놓았다.
아기가 어릴 때 엄마는 음식을 잘게 잘라서 먹이곤 한다. 이기들은 작은 조각의 음식을 잘 씹어서 소화시킬 수 있다. 그러면 아기들은 무럭무럭 자라 튼튼해지고, 나중에는 스스로 음식을 잘라 씹어먹을수도 있게 되는 것이다. 그러므로 나는 독자 여러분이 이 책에 있는 글을 읽으며 그 뜻에 얽매이지 말고, 여러분의 참된 길을 찾기 위해 늘 수행 정진하는 데 이글을 이용하기 바란다.
덕분에 나와 많은 서양인들은 불교에 접할 수 있었고, 우리 자신을 찾고 이 세상을 구하고자 노력하기 시작했다. 많은 스님들이 미국에가서 서양제자들을 가르치고자 하지만 그들은 숭산 대선사처럼 성공하지 못하고 많은 제자들이 따르지 못한다. 그것은 위에서 말한 그런이유 때문일 것이다.
이 책을 번역, 출간하는데 많은 사람들이 도움을 주었다. 나는 그분들에게 일일이 다 감사를 표현할 수 없을 정도이다. 특히 변역자인 허문명 씨에게 깊은 감사를 드리고 싶다. 허문명씨는 기자로서 많은 취재를 하고 기사를 쓰면서 이 긴 책을 변역하는 데 노고를 아끼지 않았다. 그와 함께 작업할 수 있었다는 것은 나로서도 큰 영광이었다.
또한 화계사 주지스님이신 성광 스님, 선덕 스님,(견향 스님), 대봉 스님, 무심 스님, 도관 스님, 대선행 신도회장님, 그리고 화계사의 서울 국제선원과 무상사의 계룡산 국제선원에 계신 모든 비구와 비구니 스님들, 서울 성북구 길상사 모든 스님들, 정윤화(광명장) 보살님에게도 감사드린다. 그리고 누구보다 숭산 스님께 늘 감사드린다. 그의 가르침과 그가 서양에 오신것 모든 중생을 고통에서 구해주신 것에 대해 나는 무한히 감사드린다.
2001년 3월 1일 경북영주시 부석면 남대리 현정사에서 ---현각합장---
광우병과 나침판--- 현각
얼마전 나는 영국의 유력 일간지 가운데 하나인 <인디펜던트>지에서 최근 유럽에서 번지고 있는 '광우병' 에 관한 기사를 읽은 적이 있었다.
광우병은 바이러스에 감염된 고기를 인간이 먹었을 때 걸리는 병이다. 이 병에 걸린 대부분의 사람들은 상상할 수 없을 만큼 끔찍한 고통에 시달리다가 죽는다. 그들의 뇌는 말 그대로 병원균에게 '먹혀' 정상적인 기능을 잃게 될 뿐 아니라 모든 신체 기능도 급속히 저하되어 마침내 용변도 가라지 못하는 식물인간의 상태가 되고 만다. 아직까지 치료방법은 전혀 없는 상태이나, 비교적 소수의 사람만이 이 병으로 인해 사망한 것으로 확인되고 있다. 하지만 영국과 미국의 많은 권위있는 과학자들과 보건부 관리들의 말에 따르면, 이 병의 잠복기간은 40년이 넘을 수도 있다고 한다. 따라서 현재로서는 얼마나 많은 사람들이 실제로 병에걸렸는지 알 수 없는 일이다. 과학자들은 앞으로 수년 이내에 광우병으로 13만 5천 명 정도의 사람이 목숨을 잃을것으로 예상하고 있다.
물론 이 뉴스를 접하고 많은 사람들이 충격을 받았다. 하지만 이 이야기에는 더욱더 충격적인 부분이 있었다. 시끄럽고 자극적인 서울을 떠나 소박한 아름다움을 지닌 경북 영주로 향하는 버스 안에서 이 기사를 읽으면서 나는 더욱 우려할 만한 사실을 발견했다. 우리 인간이 얼마나 많이 진실되고 자연스러운 길에서 벗어나 있는가 생각하며 나는 억누를 수 없는 두려움과 슬픔, 그리고 분노에 사로잡히지 않을 수 없었다.
여러분도 알고 있겟지만 광우병은 우리가 먹는 소에서 자연적으로 발생한 것이 아니다. 이것은 전적으로 인간의 잔꾀로 인해 발병된 것이다. 좀더 정확히 말하자면, 관우병은 실제로 인간의 어리석음과 욕망으로 인해 생긴 것이다. 1950년대에 유럽에서 쇠고기에 대한 수요가 높아지자 영국의 축산업자들은 시장에 내다 팔 소의 무게를 늘리기 위해 비용이 적게드는 새로운 방법을 생각해냈다. 그들은 이미 도살된 소들의 가공하고 남은 부분들을 소에게 먹이기 시작했다. 보통 소들이 먹는 곡물이나 풀 등에 죽은 소의 뼛조각과 내장 지방등을 섞어 만든 사료에는 그야말로 고기가 들어있기 때문에 단백질이 상당히 풍부하다. 따라서 '썩은 고기'라고 할 수 있는 이 사료는 소의 체중을 급격히 증가시켰고, 그 결과 우리는 모다 짧은 시간에, 보다 싼 가격으로 고기를 먹을 수 있게 되었던 것이다.
허지만 이 원료들은 냉장보관되지 않았으므로 썩기 시작했고 도살된 소가 걸린 병의 병원균 또한 들어 있었다. 이런 더럽고 썪은 고기에 곡물을 섞어 만든 썩은 사료를 매일매일 소들이 먹었던 것이다.
소는 원래 고기를 먹지 않는다 .소는 풀과 같은 식물만 먹도록 태어났다. 따라서 소가 이 썩은 고기 찌꺼기를 먹는다면, 즉 다른소의 몸을 먹는다면, 소는 같은 종족, 심지어 자기 가족의 몸을 먹는 것과 다를바 없으므로 병에 걸리는 것이다. 그것도 아주 심각한 병 말이다. 소는 이상한 행동을 하고, '미쳐서' 날뛰다가 끔찍한 죽음을 맞는다. 유럽과 미국의 보건부 관리들은 이 전대미문의 끔찍한 병의 원인이 이 배합사료에 있다고 결론지었다. 따라서 이 병의 원인은 인간이 맛있는 먹거리를 탐하고 빠른 시간에 돈을 벌려는 욕망에 있었다. 한 종[種]동물에게 자연 상태에서는 먹고 '싶어하지' 않는 것을 먹인 데 있다고 하겠다.
더욱 염려스러운 점은 소들이 자기와 같은 종을, 다시말해 자기 자신을 먹어야 한다는 것이다. <인디펜던트>지에서 한 과학자는 그점을 이렇게 지적했다. "본질적으로 우리인간은 초식동물인 소를 육식동물로 변하게 했다. 아니, 그보다 한술 더 떠 우리는 소들을 '동족을 잡아먹는 동물'로 만들었다." 게다가 이것이 소에 국한되지 않는다는 데 더 큰 문제가 있다. 그 과학자는 이런 말로 덧붙였다. "이 썩은 고기는 시장에서 거래되어 양어장이나 돼지 목장, 양 목장으로도 팔려 나갔다. 그 결과 인간은 다른 초식 동물들도 육식동물로 변하게 했다.".
이것은 지구상에 있는 한 생물이 자신의 막강한 지적능력을 오용하여 다른 생물로 하여금 자신의 본성을 거스르도록 한 것이다. 어린아이라도 이것은 잘못이라는 점을 알 수 있을 것이다. 잠시 이 문제를 생각해 보기 바란다.
이런 문제로 인해 전 세계의 많은 종교 지도자들은 "인류는 길을 잃어버렸다"라고 말한다. 인류는 방향을 상실했고, 자신의 혀와 지갑을 만족시키기 위해 자연의 질서를 자의적으로 파괴하고 있다. 광우병은 최근의 한 예에 불과하다. 이것은 심각한 비극이다.
우리는 인테넷을 발명한 것을 자랑스러워 한다. 인터넷 덕분에 우리는 집안에 앉아서 쇼핑을 할 수 있고, 매일 서로 이메일을 주고받을 수도 있다. 하지만 그와동시에 우리는 다른 동물들로 하여금 자기자신을 먹도록 만들고 있다. 인류는 이제 깨어나야 한다.
지금 여러분이 손에들고 있는 책에는 매우 혁신적인 기르침이 담겨있다. 이 책은 '깨어나는' 방법으로 어러분을 인도하는 나침판이다. 현재 서울에 있는 화계사의 국제선원과 계룡산의 무상사 국제선원에서 수행중인 외국인 비구와 비구니는 50여 명이 넘는다.
숭산 대선사님의 가르침의 궁극적인 목적은 우리를 깨워 이 세상에 도움이 되라는 것이었다. 이렇게 하려면 우리는 매일매일 수행을 통해 우리자신의 본성을 들여다 보아야 한다. 숭산 대선사께서는 제자들에게 반드시 매일 일찍 일어나 108배를 드리고, 불경을 외고, 특히 참선을 해야한다고 강조한다. 이 일에는 휴일이없다.
한번은 큰스님이 보스턴에서 가르침을 펴기 위해 프로비던스 선원을 며칠 비운적이 있다. 큰스님께서 일요일 아침에 돌아와 보니 미국인 제자들이 아직도 자고 있었다. 그날은 아무도 일어나지 않은 것이다!
"무슨 일인가? 어째서 모두들 지금까지 자고 있는 거지?"
제자중의 한 사람인 부라운 대학교수가 대답했다.
"선사님, 미국에서 일요일은 쉬는 날입니다. 우리는 매일 열심히 수행했으니 하루정도는 쉬어야 하지 않을 까요? 어제 우리는 모두 일주일에 하루는 쉬기로 결정했읍니다. 그게 미국 스타일입니다."
숭산 대선사께서는 손가락으로 창밖을 가르켰다.
"저 하늘에 떠 있는 태양이 보이는가?"
제자가 대답했다.
"네, 보입니다."
"태양은 쉬는 날이 없네. 밖에 바람부는 소리가 들리는가?"
"네, 선사님, 들립니다."
바람 역시 쉬는 날이 없네, 태양도, 바람도, 새도, 나무도, 꽃도, 그리고 모든 식물들도 쉬는 날이 없다네. 자네들은 선을 수행 중이네, 다시말해서 보살이 되고자 하는 거지. 보살의 마음은 쉬는 날이 없어. 그건 한국 스타일도, 미국 스타일도 이나야. 다만 대자대비[大慈大悲]일 뿐이네. 자네들은 그 경지에 도달해야 하네."
이 '선의 나침판' 은 대단히 혁신적이며 역사적인 책이다. 이 책의 저자는 한국인이지만, 원본은 영어로 출간되었다. " The Compass of Zen"(선의 나침판) 이라는 제목으로 1997년에 출간되자마자 당시 급속히 확장되던 미국과 동유럽 불교계에서 베스트셀러가 되었다. 이 책에는 숭산 대선사께서 서양의 독자들에게 영어로 직접가르쳤다는 점 때문에 이 책에 들어있는 가르침은 한국인들에게 새롭게 받아들여질 수 있을 지도 모른다.
대부분 불교 지도자들은 이보다 훨씬 형식을 갖추어 법문을 전한다. 또한 대개의 경우 지니치게 한문에 의존하며, 고대 중국 불교의 전통과 그것의 수많은 해석을 따르는 철학적 가설들에 의존하고 있다. 많은 한국인들은 오랫동안 한문을 공부한 독실한 불교 신자들만이 부처님의 가르침을 이해할 수 있다고 생각한다. 하지만 모든 사람들이 예전처럼 한문 공부를 할 수는 없다. 따라서 동양의 불교 신자들 역시 부처님의 가르침은 일반적으로 어렵고, 추상적이고, 끝까지 매우기가 힘들다고 생각한다. 이로인해 많은 동양인들이 부처님의 가르침을 '지나치게 어렵거나' 일상생활에서 부딪치는 문제와 동 떨어져 있다고 믿게 되었다. 이것은 잘못이다.
다시말하지만 이 책은 지적인 성찰을 위한 책이 이니다. 그러므로 여러분은 이 책의 말씀을 접하며 때로는 색다른 가르침을 받기를 바란다. 이것은 다른 책에서는 접할 수 없는 것들이므로 설명이 조금 필요하다. 숭산 대선사께서는 가르침을 줄 때 우리가 실체와 실상, 그리고 실용ㅇ에 도달해야 한다고 강조한다. '실상'은 진리에 도달하는 것을 의미한다. 우리가 볼 때, 들을 때, 냄새맡을 때, 맛볼 때, 만질 때 모든 것들은 진리이다. '실용'은 매 순간 물질과 진실의 본래 기능에 도달하는 것이다. 이것은 보살의 행동이고 모든 것에 대한 크나큰 사랑이다. '실체' 즉 우리의 본성은 글이나 말을 초월하여 존재한다. 어떤종류의 생각이나 해설도 그것을 설명하거나 표현할 수 없다. 그것을 설명하기 위해 입을 연다면, 그 순간 당신은 실수한 것이다. 우리의 본성은 말이나 글 이전에, 생각 이전에 존재하기 때문이다.
모든 지적인 활동은 생각의 산물이며, 그것의 반대되는 영역에 속 한다. 따라서 어떤 종류의 생각도 우리의 본성을 표현할 수 없다. 옛날 고승들은 이렇게 가르쳤다.
"할!"
또 어떤 고승들은 제자가 입을 열거나 글을 쓰려고 하면 손가락을 치켜들어 제지하거나 제자를 때렸다. 그들은 우리 실체의 이런 특성을 표현하기 위해 어떤 행동을 했다. 실체는 글이나 생각으로 표현되지 않기 때문이다.
부처님의 가르침만 그런 것은 아니다.. 성경을 보면 히브리인들은 '야훼'의 이름을 말하거나 글로 쓸 수 없었다. '야훼'라는 말을 입 밖으로 내는 순간, 하느님께 불경을 범하는 것이 되기 때문이다. 어떻게 무한한 하느님의 실체를 글로, 심지어 이름으로 표현할 수 있단 말인가? "가만히 있어라. 그러면 내가 주님이라는 것을 알게 될 것이다." 이슬람교에서도 신을 나타내는 그림을 그리거나 어떤 종류의 묘사도 하지 못하도록 금지되어있다. 이것은 모두 동일한 가르침을 담고 있다. 우리의 마음과 우주 삼라만상의 본성은 글이나 말, 그밖에 생각에서 나오는 어떤 것으로도 표현할 수가 없다.
숭산 대선사 께서는 말씀중에 탁자를 치면서 그 점을 표현했다. "탕!"
이것은 아주 중요한 점이다. 이것은 우리의 본성을 설명하는 완벽한 스타일이다. 그러므로 여러분도 책을 읽다가 "탕!"이라는 단어와 마주치면 그 단어를 읽으며 탁자를 두드리는 것이 좋다. 손으로 탁자를 치기만하면 된다. 이 책을 읽는 장소에 탁자가 없다면 손바닥으로 다리를 쳐도 좋다. 그렇게 한다면 이 가르침과 우주 삼라만상의 실체가 여러분에게 좀더 명활해질 것이다.
처음에는 이렇게 하는 게 어색할 수도 있고, 이해하기 어려울 수도 있다. 하지만 불교는 개념을 '이해'하는 것이 아니다. 불교와 모든 종교적인 실행에서 여러분은 뭔가에 '도달'해야 한다. 이것은 아주 중요하다. 그러므로 이 "탕!"이라는 단어를 보면 절대 아무생각도 하지말고 즉시 탁자를 쳐야한다. 100퍼센트 이렇게 하면, 100퍼센트 이것에 대해 생각하지 말고 마음이나 생각, 의견을 돌아보지 않는다면, 이것을 파악할 수 있고, 바로 그 순간 당신은 우주 삼라만상과 완벽하게 하나가 된다. 그리고 당신은 당신의 본성과 모든것들의 본성을 파악하게 되며, 진실에 도달하고(실체) 그것의 올바른작용을 발견할(실용)수 있게 된다
마지막으로 왜 이 "선의 나침판"이 필요한가? 현대사회와 마찬가지로 한국의 역사에서도 그 답을 찾을 수 있다. 지금으로부터 437년전인 1564년 서산 대사께서는 "선가귀감"이라는 책을 쓰셨다. 이 책은 오늘날에도 한국의 많은 '강원[講院]'에서 여러 비구와 비구니들이 교습서로 사용하고 있다. 서산 대사께서는 이 책에 불경의 주요 문구를 고르고 그것에 주를 달아 놓았다. 대사께서는 이렇게 한 이유를 다음과 같이 밝혔다.
"내가 비록 불초하나, 예날의 배움에 뜻을 두어 경 가운데 신령한 글월로서 보배를 삼거니와, 그러나 그 글이 너무 번다하고 '장경[藏經]'의 바다가 아득히 광대하여서 훗날 뜻을 같이하는 이들이 가지를 헤쳐가면서 잎을 따는 수고를 면치못할 것이므로, 이에 글월 가운데 요긴하고 간결한 말씀 몇백을 추려 적노니, 가히 글은 간단하지만 뜻은 두루깊다 할 수 있다."
1972년 숭산 대선사는 처음으로 서양에서 가르침을 펼 때 이미 많은 불교 종파가 미국과 유럽에서 활발히 활동하고 있는 것을 보았다. 티베트 불겨화 중국 불교, 일본 불교, 베트남 불교, 비피사나는 1960년대 초부터 서양에서 대중화 되었다. 서양에는 이미 많은 스승들과 종파들이 활동하고 있었다.
하지만 활동중인 종파들이 너무도 많아서 서양 불제자들은 혼란스러웠다. "무엇이 진정한 불교인가?" "불경은 무슨 뜻인가?" 그리고 무엇보다도 "불교의 가르침들이 나의 일상생활에 어떤 실용성을 지니는가?" 등등. 그러나 새로운 불교 공동체는 매우 활동적이었다. 때로는 한 도시에서도 몇개의 다른 공동체들이 활동하기도 했고, 불교의 가르침을 따르는 이들은 어떤 종파가 부처의 가르침을 가장 잘 표현하고 있는지 확신하지 못한 채 여러명의 스승과 종파 사이를 방황하기도 했다.
그러다가 숭산 대선사께서 이 나침판을 고안해낸 것이다. 이것은 원래 새로 입문한 서양 불제자들을 올바른 가르침으로 인도하기 위한 안내서 였다. 서산 대사께서 조선시대에 했던 것처럼 숭산 큰스님께서도 서양인들이 불경을 이해하는 데 도움을 주고자 했던 것이다. 물론 큰스님께서는 참선을 매우 중시하며, 오늘날에도 가장 강조하는 수행방법중 하나이다. 그러나 서양 불제자들 역시 불경과 글로 쓰여진 가르침을 알아야 하며, 그래야 그들의 수행에 도움이 되고, 다른 사람들을 고통에서 구해줄 수 있을 것이다. 하지만 서산 대사께서 말씀하셨던 것처럼 "그 글이 너무 번다하고 '장경의 바다가 아득히 광대하여서 훗날 뜻을 같아하는 이들이 가지를 헤쳐가면서 잎을 따는 수고를 면치 못할 것이다." 그래서 서산 대사께서 조선시대의 스님들을 위해 했던 일을 숭산 대선사께서 그들을 위해 한 것이다. 그는 불경의 중요한 가르침을 뽑아 그것에 대해 간단한 주를 달아놓았다.
아기가 어릴 때 엄마는 음식을 잘게 잘라서 먹이곤 한다. 이기들은 작은 조각의 음식을 잘 씹어서 소화시킬 수 있다. 그러면 아기들은 무럭무럭 자라 튼튼해지고, 나중에는 스스로 음식을 잘라 씹어먹을수도 있게 되는 것이다. 그러므로 나는 독자 여러분이 이 책에 있는 글을 읽으며 그 뜻에 얽매이지 말고, 여러분의 참된 길을 찾기 위해 늘 수행 정진하는 데 이글을 이용하기 바란다.
덕분에 나와 많은 서양인들은 불교에 접할 수 있었고, 우리 자신을 찾고 이 세상을 구하고자 노력하기 시작했다. 많은 스님들이 미국에가서 서양제자들을 가르치고자 하지만 그들은 숭산 대선사처럼 성공하지 못하고 많은 제자들이 따르지 못한다. 그것은 위에서 말한 그런이유 때문일 것이다.
이 책을 번역, 출간하는데 많은 사람들이 도움을 주었다. 나는 그분들에게 일일이 다 감사를 표현할 수 없을 정도이다. 특히 변역자인 허문명 씨에게 깊은 감사를 드리고 싶다. 허문명씨는 기자로서 많은 취재를 하고 기사를 쓰면서 이 긴 책을 변역하는 데 노고를 아끼지 않았다. 그와 함께 작업할 수 있었다는 것은 나로서도 큰 영광이었다.
또한 화계사 주지스님이신 성광 스님, 선덕 스님,(견향 스님), 대봉 스님, 무심 스님, 도관 스님, 대선행 신도회장님, 그리고 화계사의 서울 국제선원과 무상사의 계룡산 국제선원에 계신 모든 비구와 비구니 스님들, 서울 성북구 길상사 모든 스님들, 정윤화(광명장) 보살님에게도 감사드린다. 그리고 누구보다 숭산 스님께 늘 감사드린다. 그의 가르침과 그가 서양에 오신것 모든 중생을 고통에서 구해주신 것에 대해 나는 무한히 감사드린다.
2001년 3월 1일 경북영주시 부석면 남대리 현정사에서 ---현각합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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