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uesday, November 13, 2012


            묵은지로 남아있는 추억
                                              이 아침에 이기희 윈드 화랑 대표

가을이 떠나고 있다. 홀로 선책길에 올라 낙엽을 밟아보라. 낙엽은 아침이슬로 눈물을 감추고 제 몸이 밟힐 때마다 바스락 신음 소리내며 작별을 서두른다, 떠나가는 모든 것들은 모두 아름다운 추억이라고.


꽃들의 향연이 떠나간 뒤뜰엔 마른 풀잎들이 생명을 품고 내일을 기약한다, 계절은 등 돌리며 빛바랜 정원의 꽃씨 한 알 떨어트린다.

묵은 것들은 농익은 맛을 낸다. 상큼하진 않지만 감칠맛으로 다가온다. 겉절이는 풋풋하고 신성한 맛을 내지만 오래 두고 먹을 수 없다. 추억의 정원에는 오래되고 빛바랜, 쿨쿨한 냄새나는 해묵은 기억들이 켜켜이 쌓여있다.


묵은지는 오래된 김장 김치로 양념을 강하지 않게 해 담근다. 저온에서 6개월 이상 숫성시켜야 제 맛이 나는 데 오래 숙성 저장 할수록 맛있고 깊은 맛을 낸다. 추억의 창고에 묵은지가 많은 사람의 하루는 가을 햇살처럼 따스하다.

묵은지는 일반 김장김치보다 조금 짜게 담가야 긴 겨울을 버틴다. 인생의 짠맛, 신맛, 험한 맛을 많이 본 사람은 엄동설한을 버틸힘과 용기를얻는다.

너무 빨리 숫성된 김치는 금방 신맛이 나지만 묵은지는 서서히 오랜기간 발효되기 때문에 시어지지 않는게 특징이다. 짧은 시간 한 방에 날리는 성공은 쉽게 사그러들지만 오랜 시간 각고의 노력으로 일군 삶은 묵은지처럼 오래 지속된다.

묵은지 배추는 속이 덜차고 푸른잎이 많으며 단단한 것으로 골라야 한다.

사는 게 마음에 덜차고 적게 가져도 늘 푸른 마음으로 단단하게 살면 묵은지처럼 깊은 맛을 낼 수 있을까?

김장은 배추를 소금물에 담근다. 는 침장(沈藏)에서 나왔는데 김장으로 바뀌게 됐다. 김치는 침채(沈菜)에서 유래 됐는데 딤채~~김채~~김치로 변형을 거듭했다.

김치가 제 맛을 내려면 배추가 다섯 번 죽어야 한다고 한다. 땅에서 뽑힐 때 죽고, 통배추의 배가 갈라지면서 또 한번 죽고, 소금에 절여지며 다시 죽고, 매운 고추가루와 짠 젓갈에 범벅돼 죽고, 장독에 담겨 땅에 묻혀 마지막으로 죽는다.

김장 담그는 일은 다가올 험난한 엄동설한을 맞을 준비를 하는 의식이다. 익숙한 손 맛으로 오래된 정원에서 해묵은 추억의 불씨 하나 지피는 일이다.

난로가에서 톡 톡 튀는 밤톨 까먹던 그 유년의 시간으로 연어처럼 거슬러가는 일이다.

오늘이 허전한 그대여, 떠나는 게절의 끝자락 붙잡고 처우적거리는 그대여 사무치게 그리운 날은 마음 속 깇은 곳에 묵은지로 남아있는 추억의 항아리를 꺼내 보세요.

너무 자주 열어보면 그 아름답던 날들이 빨리 시어질지 몰라요. 추억의 항아리는 우거지로 단단히 덮어 땅속 깊이 묻어 두세요.

참쌀 풀 섞은 물에 고춧가루와 고추씨를 개고 열치액젓 다진마늘과 생강 소금을 넣듯 생의 모든 슬픔과 기쁨, 황홀한 추억을 모두 담아 꼭꼭봉해 당신 가슴깊이 묻어 두세요. 

당신이 와로울 때마다 은근하게 잘익은 추억의 묵은지가 오래된 정원에서 늘 당신과 함께 하길 바라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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