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uesday, April 26, 2011

저 구름 흘러가는곳

2道 나는 나의 길을 간다.

진 인 사 대 천 명 盡 人 事 待 天 命

팔십옹 이당 안병욱 八十翁 怡堂 安秉煜

도道

생즉도生卽道, 생즉행生卽行 산다는 것은 길을 가는 것이다.

나는 나의 길을 가고 너는 너의 길을 가야한다. 오행오도吾行吾道요, 여행여도汝行汝道다,

사람은 저마다 자기에게 주어진 길이 있다. 인생은 going my way.

도道자는 사람의 머리 모양 수首을 상형한 것이다( ).

길을 간다(쉬엄쉬엄 갈 책바침)는 뜻이요,

행行자는 사람이 많이 다니는 네거리( )를 그린 것이다.만물유조萬物有道,

이세상의 모든존제는 다 자기가 가야 할 길이 있다. 길 에는 두 가지가 있다.

하나는 형이하학적形而下學的인 길이요, 또 하나는 형이상학적形而上學的인 길이다.

전자는 눈으로 볼 수 있고, 우리가 발로 걸어다니는 물리적物理的인 길이다.

서울로 가는 길, 부산으로 가는 길, 고향으로 가는 길이다. 정도행正道行,

우리는 길을 가되 바른 길을 가야한다. 사람은 인도로 가야하고,

차는 차도로 가야하고, 기차는 철도로 가야한다. 사람이 차도로 가고,

자동차와 기차가 인도로 가면 교통사고가 발생하여 여러명의 사상자가 나오고,

비참한 사태가 발생한다. 한국은 세계에서 자동차 사고가 제알 많이 나는 부끄러운 나라다. 일년에 1만여명 이 죽고 수십만명의 부상자가 생긴다. 해방 직후에는 자동차가 생활의 사치품이었다. 오늘날에는 생활의 필수품이 되었다. 자동차가 천만대를 돌파한 한국. 자동차는 현대인의 신발과 같다. 자동차는 문명의 고마운 이기利器인 동시에 문명의 무서운 흉기凶器다.전쟁으로 죽는 사람보다도 자동차 사고로 죽는 사람이 훨신 더 많다.

1톤짜라의 무거운 쇳덩어리가 시간당 70킬로미터 내지 100킬로미터의 빠른 속도로 질주하는 거리를 우리는 걷고 있다. 참으로 위험천만 한 일이다.생각하면 끔찍한 일이다. 의식주衣食住는 생활의 3대 요소다. 문명의 발달과 더불어 생활의 제 4의 요소가 생겼다. 바로 교통이다. 도道와 행이다. 우리는 매일 걸어야 하고, 자동차를 타야하고, 비행기를 타야 한다. 보행步行과 차행車行과 비행飛行은 우리 생활에서 필수불가결의 요소가 되었다.

교통 도덕을 바로 지키고 교통 문화룰 옳게 확립하는 일은 우리 생명과 직결되는 가장 중요한 과제다. 교통 질서를 안 지키면 비명횡사非命橫死한다. 발로 걸어 다니는 길만 있는 것은 아니다. 사람에게는 눈길, 손길, 발길, 말길言路, 마음 길 심노心勞이 있다. 그리고 또 하나의 더 중요한 길이 있다. 눈에 보이지 않는 형이상학적 길이다. 이 길이 가장 중요하다.

이 길은 실천하기가 어려운 길이다. 평화의 길, 행복의 길, 자유의 길, 승리의 길, 정의定義의 길, 구원救援의 길, 해탈解脫의 길, 통일統一의 길, 영생永生의 길, 영광의 길, 사람답게 사는 길 등이다. 몰락의 길, 죽음의 길, 타락의 길, 파멸의 길, 이것은 불행한 길이다.

학교의 선생님에게는 사도師道가 있고, 어머니 에게는 부도婦道가 있다. 신사에게는 신사도紳士道가 있고, 무사에게는 무사도武士道가 있고, 선비에게는 선비도 사도士道가 있고, 관공리에게는 이도吏道가 있다. 한 나리의 제왕에게는 제왕도帝王道가 있고, 군자에게는 군자君子道가 있다. 장사에는 상도商道가 있고, 농사에는 농도農道가 있다. 예술에는 예도藝道가 있고, 무술에는 무도武道가 있고 술에는 주도酒道가 있다.

도道란 무엇이냐. 우리가 가야 할 길이요, 우리가 마땅히 마음으로 道를 배우고 學道, 道를 닦고 修道, 道를 구하고 求道, 道를 세상에 전하고 傳道, 道의 경지에 도달해야 한다. 득도得道. 道에 통달하는 것이 도통道通이여, 道에서 생기는 큰 힘이 도력道力이여, 道를 닦고 갈구하는 마음이 道心이요,道를 수련하는 사람이 도사道士요, 道의 경지에 도달한 사람이 도인道人이요, 道를 담는 그릇이 도기道器다.

석가釋迦가 왜 왕궁을 탈출하여 설산雪山의 보리수 밑에서 6년동안 고행苦行과 난행難行을 하였는가. 道를 깨닫기 위해서 였다. 달마達磨대사는 왜 숭산嵩山의 소림사小林寺에서 면벽구년面壁九年, 벽을 향하여 9년 동안 일심불란一心不亂으로 참선參禪에 몰입하였던가. 道를 깨닫기 위해서 였다. 그리스도가 왜 광야에서 40일동안 금식 기도를 하면서 온갖 시련을 이기고 고난과 싸웠던가. 道를 깨치기 위해서 였다.

공자가 왜 발분망식發憤忘食하면서 학문과 수양에 일심전심一心專念하였던가. 소크라데스가 왜 40세가 될 때까지 철학적 사색에 깊이 골몰하였던가, 道를 깨닫기 위해서였다.

천추만대千秋萬代에 빛나는 인류의 영원한 스승인 4대 성인聖人이 우리에게 가르치신 것이 무엇이냐, 道다. 인생을 바로사는 대도大道와 정도正道를 우리에게 보여 주었다.

소크라데스

기원전 399년 봄 아테테의 시민들은 「국가가 인정하는 神들을 믿지 않고 청년을 부패 타락 시킨다.」는 죄목으로 소크라데스를 사형에 처했다. 70세의 노老철학자 소크라데스는 사형 선고를 받고 아테네의 법정을 떠나면서 아테네 시민들에게 이렇게 외쳤다. 여러분들은 나에게 사형을 선고했다. 그러나 얼마 안가서 여러분들은 나를 살해한 것을 반드시 후회할 날이 올것이다. 나와 같은 사람이 다시는 나타나지 않을 것이다.

, 이재 떠날 때는 왔다. 우리는 우리의 길을 가야한다. 나는 죽으러가고, 여러분들은 살러간다. 누가 더 행복할 것이냐, 오직 신神만이 안다.나에게는 죽음의 공포가 없다. 한달후에 소크라데스는 태연자약泰然自若하게 독배를 마시고 감옥에서 70년의 생애의 막을 내렸다. 그는 죽으면서 사랑하는 제자 클리톤에게 이렇게 말했다.『사는 것이 중요한 문제가 아니다. 바로 사는 것이 중요하다.』 바로 산다는 것은 어떻게 사는 것이냐.

진실하게 사는 것이요, 아름답게 사는 것이요, 보람있게 사는 것이다. 누가 소크라데스를 죽였는가. 5백 명의 어리석은 아테네의 시민들이다. 소크라데스를 죽였다는 것은 진리眞理와 정의正義를 죽인 것이다. 진리와 정의를 죽인 국민은 조만간 멸망하고 만다. 소크라데스를 죽이고 얼마 후에 그리스는 이웃 나라인 미케도니아에게 멸망하고 말았다. 그들은 역사의 준엄한 심판을 받은 것이다.

나는 1962년 여름과 1981년 겨울에 소크라데스가 독배를 마시고 죽은 아테네의 유명한 감옥소의 유적을 찾아갔다. 지금부터 1300여 년 전에 철인哲人 소크라데스가 바로 이 자라에서 독배를 마시고 죽었는가. 나는 감개무량한 심정으로 그 유적지 주변을 한참동안 배희徘徊하였다. 소크라데스가 우리에게 가르친 것이 무엇이냐. 인생을 바로 살라는 진리의 메시지다

孔子

공자는 73세에 세상을 떠났다. 공자는 세상을 떠나기 12년전에 70여 년의 긴 생애를 회고하고, 그의 정신발전사精神發展史를 여섯 단계로 나누어서 간결명쾌하게 요약했다. 세계에서 가장 짧은 자서전 이라고 볼 수 있다.

『나는 열다섯 살 때 성인聖人의 학문을 공부 하기로 뜻을 세웠다 吾十有五而志干學』그러므로 15세를 지학志學이라고 한다.

『나는 30세가 되었을 때 정신적으로나 사회적으로나 경제적으로나 독립하게 되었다. 三十而立』그러므로 30세를 이립而立이라고 한다.

사람은 40세가되면 여러가지로 인생의 유혹이 많은 때지만,『나는 40이 되었을 때 정신적으로 흔들리지 않는 부동不動의 경지에 도달했다 사십이불혹四十而不惑.』그러므로 40세를 불혹不惑이라고 한다.

『나는 50세가 되었을 때 천명을 깨달았다.오십이지천명五十而知天命.』그러므로 50세를 지명知命아라고 한다. 천명이란 두가지로 해석된다. 인간의 힘으로 어떻게 할 수 없는 운명적 한계를 깨달았다는 소극적 의미와, 하늘이 나에게 맡긴 커다란 사명使命을 자각했다는 적극적 의미다. 공자는 50세를 계기로 수양의 단계에서 벗어나 실사회實社會에 나아가 구국제민救國濟民의 활동을 시작했다. 이것으로 미루어 知天命을 하늘이 부과한 사명을 자각했다는 뜻으로 해석 하는 것이 옳을 것 같다. 천명의 자각처럼 인생에서 중요한 것이 없다.

60세가 되어 귀에 거슬리는 것이 없게 되었다 육십이이순六十而耳順.』이순이란 말은 60이되어 인생의 견문과 경험이 많이 쌓였기 때문에 모든 문제를 너그러운 마음으로 관용寬容하고 이해할 수 있게 되었다는 것이다. 이순의 반대는 이역耳逆이다. 이역은 귀에 거슬리는 것이요, 이순은 귀에 거슬리지 않는 것이다. 그러므로 60세를 이순耳順이라고 한다.

70세가 되었을 때, 내가 하고 싶은대로 행동 하여도 결코 도덕의 울타리에서 벗어나지 않게 되었다 칠십이종심소욕불유구七十而從心所慾不踰矩.』 이것은 인간 수양의 최고의 극치다. 그러므로 70세를 종심從心이라고 한다.. 공자의 70년의 생애는 인간 완성을 향한 부단한 향상向上과 전진前進의 일생이었다.

『조문도 석사가의 朝聞道 夕死可矣』 논어, 이인편里人篇 아침에 진리의 말씀을 들어 道를 터득한다면 저녘에 죽어도 아무한이 없겠다. 백년을 산다고 하더라도 道와 진리를 깨닫지 못한다면무슨 의미와 가치가 있으랴, 우리는 공자의 이 말에서 그의 구도적求道的 정신이 얼마나 강열했던가를 알 수 있다.공자는 또 이렇게 말했다.

『오도일이관지吾道一以貫之』 이인편 나의 길은 하나의 길, 하나의 원리로 일관되어 있다. 일생동안 시종일관 변치않고 한 가지 길을 추구해 왔다. 공자가 평생 동안 추구한 한 가지 길이 무엇이냐, 그것은 인仁이다.仁을 배우고 仁을 실천하고 仁의 경지에 도달하는 것이다. 《논어》에는 仁이라는 글자가 백 번 니온다. 학學, 예禮,도道, 덕德, 신信,의義등 여러 가지의 중요한 말이 나오지만 그중에서 仁이라는 단어의 빈도수頻度數가 제일 많다. 그만큼 중요하기 때문이다. 한문의 일관一 貫이란 말은 공자의 일이관지一以貫之란 말애서 생겼다. 공자는 참으로 놀라운 구도자였다.

석가釋迦

세계의 4대 성인 중에서 가장 유복하고 가장 장수를 누린 것은 석가다. 그는 80세에 세상을 떠났다. 가비라성의 왕자의 몸으로 태어난 석가는 온갖 자유와 부귀와 영광과 권력과 향락을 누릴 수 있었지만, 생노병사生老病死의 고뇌의 바다 속에서 신음하는 많은 중생을 보고 어떻게 하면 그들을 제도할 수 있을 까. 고민하게 되었다. 그는 중생제도衆生濟度의 대원大願을 품고, 왕궁을 탈출하여 구도의 길에 나섰다.

그가 6년간의 고심참담한 구도 끝에 얻은 결론은 이러했다. 《진리를 추구하는 사람이 피해야 할 두가지의 잘못된 극단이 있다. 하나는 향락에 몰두하는 것이요, 또 하나는 고행苦行에 전념하는 것이다. 외도外道를 가지말고 중도中道를 가라. 중도中道가 정도正道 이니라.》 그는 고행苦行의 무의미함을 깨닫고, 부다가야의 보리수 밑에 정좌靜坐하여 깊은 사색과 명상으로 대각득도大覺得道했다. 크게 깨달아 위대한 경지에 들어갔다.

이 경지를 불타佛陀라고 하고, 부처라고 한다. 산스크리트어로 붓다(Buddha). 붓다는 대각자大覺者, 정각자正覺者라는 뜻이다. 크게 깨닫고 바로 깨달은 자다. 불교는 신信의 종교라기보다는 각覺의 종교다. 바로 깨달으면 해탈解脫 할 수 있다. 해탈이 무엇이냐. 고苦와 번뇌煩惱에서 풀리고 해解 벗어나서 탈脫 안심입명安心立命의 경지에 도달하는 것이다.

생즉고生卽苦, 인생은 고해苦海요, 산다는 것은 고뇌다. 왜 苦가 생기는냐, 苦는 무명無明과 탐욕貪慾과 집착執着에서 온다. 탐진치貪嗔痴의 삼독三毒에서 苦가 생긴다. 탐은 탐욕貪慾이요, 진은 진에嗔恚요, 분노憤怒요, 성내는 것이다. 치痴는 무명無明이요, 미련하고 우둔하여 미친듯한 짓을 하는 것이다.

탐욕貪慾과 분노憤怒와 무명無明이 인내忍耐의 苦를 낳는다. 탐심貪心을 버려라, 嗔心을 버려라, 치심痴心을 버려라 그러면 안심입명安心立命의 해탈을 얻어 自由自在의 경지에 도달할 수 있다. 平和와 自由와 解脫의 경지를 열반涅槃이라고 한다. 산스크리트어의 니르바나(nirvana). 석가가 강조한 中道란 무엇이냐, 중간의 길이라는 뜻이 아니다. 中道는 外道가 아니고 正道다, 外道는 바른길에서 벗어난 길이요, 外道는 잘못된 길이요, 사도邪道다.

중도는 불편부당不偏不黨한 길이며, 극단에서 벗어나 한편에 치우치지 않는 것이다. 中은 두가지 뜻을 갖는다. 中은 가운데 中자인 동시에 맞힐 中자다. 목적물에 맞히는 것이 적중的中이요 명중命中이다. 활을 백 번 쏘아 백 번 다 맞히는 것이백발백중百發百中이다. 우리 몸의 반신半身이나 전신이 마비되는 것을 중풍中風이라고 한다.

풍에 맞아 風에 걸렸다는 것이다. 독이 있는 음식물을 먹는 것을 중독中毒이라고 한다. 음식의 독이 있는 부분에 맞는 것이다. 그때 그 자리 그 경우 꼭 맞는 행동을 시중時中이라고 한다. 中은 형용사로 쓸일 때는 가운데라는 뜻이요, 동사로 쓰일 때는 맞다, 맞힌다는 뜻이다. 中은 사물의 적정適正상태다. 꼭 알맞는 상태를 말한다. 영어의 propriety .

불교의 중도란 말은 가운데 길이라는 뜻이 아니고 꼭 맞는 길이란 뜻이요, 정도正道란 뜻이다. 中은 中正을 의미한다. 中道는 正道요, 中正의 길이다. 人生의 中道를 가라, 中道는 正道다. 석가釋迦는 인간의 팔정도八正道, 여덟 가지의 올바른 길을 강조했다.

바로 보고 정견正見, 바로 생각하고 정상正想, 바로 말하고 정어正語, 바로 행하고 정행正行, 바로 생활 하고 정명正命, 바로 노력 하고 정정진正精進, 바른 신념을 갖고 정념正念. 바로 마음을 잡아라 정정正定, 팔정도를 행하면 고뇌에서 벗어나 행복과 安心立命의 경지에 도달할 수 있다.

그리스도

『나는ㄴ 길이요 진리요 생명이다 (I am the way, and the truth ,and the life).

Via, veritas, vita,

요한복음 14 6절에 나오는 그리스도의 힘찬 말씀이다. 그리스도는 자기를 길이라고 하였고, 진리라고 하였고. 생명이라고 하였다. 그는 위대한 길의 전파자요, 깊은 진리의 구현자具現者요, 영원한 생명의 상징이었다. 그리스도는 우리에게 인간의 생명이 거듭나고 다시 태어나는 신생新生의 길을 제시했고, 영원히 사는 영생의 메세지를 전했고, 원수까지도 사랑하라는 사랑의 복음을 외쳤다.

그는 정의의 길을 가르쳤고, 평화의 길을 역설했고, 자유의 길을 선포했고, 행복의 복음을 전했고, 사랑과 의義의 길을 제시 했다. 그리스도는 우리에게 『나를 말미암지 않고는 아버지께로 올자가 없는니라.』라고 외쳤다.천지만물을 창조한 하나님 아버지에 도달하려면 나를 거쳐야 한다. 나를 거치지 않고는 하늘나라에 갈 수 없다. 그리스도는 하나님에게로 가는 진리의 문이요, 생명의 문이다.

『나는 생명의 양식이니 내게로 오는 사람은 배고프지 아니할터요. 나를 믿는 사람은 결코 목마르지 아니하리라.(요한복음) 그리스도를 믿고 그리스도를 따르는 자는 진리에 도달하고, 하늘나라에 갈 수 있고, 영생의 세계에 이를 수 있다고 하였다. 인류의 4대 성인 중에서 그리스도의 메시지가 가장 뜨겁고, 가장 강하다. 그리스도의 말씀에는 정열이 약동하고, 신념이 충만하고, 생기가 넘친다.

기독교는 종교 중에서 가장 뜨거운 종교다.불교는 조용히 설득하고, 기독교는 힘차게 외친다. 불교는 깊이 깨닫는 종교요, 기독교는 굳게 믿는 종교다. 불교는 정적靜的이고, 기독교는 동적動的이다.그리스도는 탄생에서 죽음과 부활에 이르기 까지 많은 신비와 초이성적超理性的인 기적에 싸여있다. 세계의 사성四聖중에서 그리스도의 활동 기간이 가장 짧았다. 그리스도의 공적公的활동은 30세에서 33세까지 겨우 3년 밖에 안 된다.

그는 요절夭折했다. 예수와 예수의 말씀을 듣고 그를 따라간 열두 제자, 모두 열세사람에서 시작된 진리운동, 종교운동 신앙운동이 온 인류에 널리 퍼지어 세계적인 고등 종교가 되었다는 것은 참으로 놀라운 일이다. 세상에 진리의 전파처럼 놀랍고 강한 것은 없다. 이것은 기독교의 뜨거운 정열과 힘찬 다이너미즘에서 온다. 하편으로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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