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uesday, January 1, 2013

마음고향 찾아가는길-금오 태전 대종사


 마음고향 찾아가는길 *금오 태전 대종사 (金烏 太田 大宗師)

金烏스님의 행장[行狀)
 금오스님은 1895년 2월 9일 충남 예산군 덕산면에서 출생하고, 1912년 3월 15일 강원도 오대산 월정사에서 입산하여 도암화상[道岩和尙]을 은사로 득도하였다. 속명은 정태선이며 법명은 태전, 법호는 금오이다. 1929년 2월 15일 충남 예산 수덕상에서 경허스님의 삼세손 보월스님에게 수법하여 건당建幢하였다.

 1936년 3월 3일 김천 직지사 성원에서 처음 조실을 역임한 이후 석왕사, 망월사, 쌍계사 칠불선원, 동화사 등에서 조실로 계시였다. 1954년 전국 비구승 대회 추진위원회 위원장으로 선출되어 정화불사에 앞장섰고 1955년 7월 20일 부종정으로 추대 되었다.

1961년 11월 24일 캄보디아에서 열린 제 5차 세계불교도대회에 한국대표로 참석하시고, 1968년 10월 8일 19시 향년 73세, 법랍 56세에 속리산의 고요속에 입적하셨다. 제자는 현재 불국사조실로 계시는 월산스님을 비롯하여 조계종단에서 가장많은 문도가 있다.

 마음고향 찾아가는 길
 묘하고 묘하다. 마음이요! 사람마음! 짐승마음, 새의 마음, 만경창파에 노니는 고기의 마음, 봄이면 꽃피고 가을이면 낙옆지는 나무의 마음.

 묘하고 묘하다 만물의 마음이여! 너의 마음이나 나의 마음이나 틀림없이 똑같구나. 사람은 세상땅위에 집을 지어놓고, 새는 수풀속에 살고 고기는 바다에 살며 짐승은 산에 살고 있는데 마음아! 마음아! 너는 어데 살기에 나의 눈에 보이지 않느냐. 동서 사방을 두루 찾아보아도  일 수 없구나. 또한 머리를 우러러 하늘을 쳐다보아도 그 얼굴을 볼 수 없고,

머리를 굽혀 땅을 내려다 보아도 그 모습을 볼 수 없으며 , 돌을 깨뜨려 보아도 돌에 있지않고, 나무를 불살라 태워서 잿속을 헤쳐보아도 보아지 않는다. 또한 물속을  깊이깊이 찾아보아도 보이질않고 짐승이라도 죽일적에 머리속과 오장육부를 다 들춰보아도 찾을 수 없다. 땅속에 깊이 깊이 숨어있는가, 하늘위에 높이높이 솟아 있는가, 행방을 알 수 없고 막연하여 의심된다.

마음아! 마음아! 너를 알고자 하는 의심이 한 두 가지가 아니다. 너의 성은 무엇이며 이름은 무엇이냐, 알고싶다. 마음아!네가 어느때에 생겼느냐, 천지가 열린 이후에 생겼느냐, 년대갑자를 알 수 없다. 마음아!마음아! 너의 사는 고향이 어데메냐. 산이냐 들이냐 동쪽이냐 서쪽이냐 어데가 너의 사는 고향이냐. 또한 너의 모습은 무엇같이 생겼느냐.

남자같으냐 여자같으냐. 텅 비어 만질 수 없는 허공같으냐 울긋불긋 꽃빛과 같으냐 고요하고 밝은달을 봄면 밝은줄 알고 아름다운 꽃을보면 사랑할 줄도 알고 밥도 먹고  옷도 입을 줄 아는놈이  마음의 모습이 아니냐.

 마음아!마음아! 천상천하를 찾아보아도 자취가 없으나 홀연히 깨치면 보지못한 한 물건을 가히 볼 수 있을 것이다. 삼천대천세계에 마음의 모습이 가득히 나투었다 하였거늘 너와 나의 지척간에 있으면서 너의 모습을 어찌 볼 수 없느냐. 꽃속에 단꿀이 결정코 있으나 단꿀이 있는 줄 알지 못하여 볼 수 없다.  김서방 박서방 하고부르면 대답은 분명히 하나, 대답하는 너의 모습은 알 수 없고 볼 수 없다.

 볼 수 없으나 가까히보면 사람 몸 가운데 있는줄을 짐작하겠다. 짐작하자, 분명히 짐작하자. 소 잃어버린 뒤에 소 발자욱얻어 본거와 같이, 그 소 발자욱따라가면 반드시 소를 찾을 수 있는 것과같이 사람소리있는 곳에 마음이 있으리니 찾아보자.  사람의 뱃속에 있는가, 사람의 머릿속에 있는가,

귀와 눈과 코에있는가, 볼 수 없고 알 수 없으냐 입을 열어 말할 때에는 말하는 곳에 있는 듯하고, 발을들어 걸어가고 손을 들어 일할 때를 보더라도 분명히 움직이는 곳에 있는 듯 하다. 걸어간 소 발자욱과 같이 분명히 자취를 잃지않고 이 자취를 찾아보자. 말할 때 말하는 자취, 눈으로보고 귀로듣고 코로냄새맡고 일체처 일체시에 자취가 분명하고 분명하다.

 어느때는 눈에있어 일체세상을 보고, 어느때는 귀에있어 소소하게 좋고 언잖은 말소리와 새소리 물소리 온갖소리 소리를 분별하여듣고, 어느때는 입을벌려 시비장단을 말하며, 어느때는 발을들어 몸을끌고 동서사방으로 행보하니 그 소소영영[昭昭靈靈]하여(알아 깨닫는 심성) 보지못함으로서 볼 수 있고 알지못함은 알지 못함으로서 알 수 있다.

 맑고 신령스렁운 마음이여! 앉는 것도 마음이요, 가는 것도 마음이 가고, 듣고보는 것도 마음이 듣고본다. 시비장단하는 것도 마음이요, 밥 먹고 옷 입는 것도 마음이요, 욕하고 칭찬하는 것도 마음이다. 이 마음이 밥을 먹고, 이 마음이 옷을 입고, 이마음이 가고오고, 이마음이 잠도자고 일도하고, 이 마음이 농사도짓고 장사도 한다. 이와같은 마음을 깨치면 마음이 아니라 마음이 法이된다. 이 법이 앉고 서고 가고 온다.

 마음은 가고 오는 것이 아니다, 法이 가고 오는 것이다. 다시 말하자면 道가 가고오는 것이다. 또 다시 말하면 眞理가 가고 온 것이다. 일체행동하는 것이 法이며 道이며 眞理이다.  그 眞理는 나타난 것도 아니고 숨은 것도 아니다. 그 眞理는 우주 생기기전  本然的 眞理이다. 이 眞理로 비롯하고 이 眞理를 통해서 성현도 되고 범부도 된다. 이 마음은 名相을 떠난 마음이다.( 모든사물에 名과 相이있다.귀에들리는 것은 名, 눈에보이는 것은 相이라한다.)

명상을 여의고는 말을 못하므로 거짓 이름으로 마음이라 말한다. 선을 닦는 마음은 선한 마음이되고, 악을 짓는 마음은 악한 마음이되고, 도를 구하는 사람은 성현이되고, 도가 없는 사람은 범부가 된다. 가지가지 일이나 법이 모두가 이치로 짓는 것이다. 그 이치가 묘하고 묘하다. 묘한 이치여! 그 이치가 변하여 사람되고 성현되고 범부되고 소나 개 말이나 만물이되고 가지각색의 근본이 된다.

그런고로 마음에 진리는  만법의 근본이라고 하였다. 나올 때에는 이 두마음을 의지하여 나왔고 이 세상에 사는 것도 미 마음을 의지하여 살아왔다. 마음아! 한량없는 겁劫으로 죽는 죄를 면치 못함이 마음을 만나보지 못한 탓이다. 마음아! 너의 도술이 기묘하여 너를 만나보아 벗하면 죽고사는 것도 상관없고 오래살고 곧 죽는 것도 마음대로 만법에 탕탕하여 걸림이 없는 것은 사람사람의 마음에 도술이다.

그러므로 내가 일찍 마음의 도술을 욕심내서 마음의 도술을 알아볼려고 부모형제 부귀영화 세상만사를 헌신짝같이 던져버리고 마음을 만나서 일체 고통근심이 하낟도 없는 마음고향에 돌아가서 휴 ---하교 크게 한숨쉬고 삼계 화택과 고해세계를 돌아다 보고 말하기를 "날마다 몸과 마음이 불차 오르는 징그럽고 뜨거운 삼계화택세계를 뛰어났구나.

날마다 만사가 뜻대로 되지않고 고통스러운 경계가 부딪쳐서 오장육부가 썩어지는 무서운 고해를 건너왔구나"하고 거침없이 두 활개를 떡 벌리고 두 다리를 쭉 뻗고 편안히 잠 잘 수 있는 마음을 만나려고 이렇게 애를쓴다.

 이 마음을 만나보지 못한다면 염라사자가 불러내서 염라국으로 가자고 할 때에는 누구의 명이라고 아니가며 무슨 도력[道力]이 있어 안잡혀 갈 것이냐. 천하에 영웅호걸이라도 염라사자에게는 도덕이 아니고서는 할 수없이 항복하고 우주만민이 모조리 잡혀간다. 이 무슨 방법으로 죽는일을 막아내겠는가. 천하가 떨고 있는 무서운 수소탄이나 원자탄도 쓸데없고 죽는일을 막아내는 방법은 아무것도 없지만 꼭 한 법이 있으니 가르쳐 주리라.

나의 생명이 그렇게 막연히 죽어가니 어찌 원통하지 않은가. 머리를 기둥에다 부딪치면서 생각해도 이보다 더 분하고 슬픈일은 없을 것이다. 분한 생각으로 분발심을 내어서 마음을 찾아내면 어찌 무서운 것이 있겠는가. 아무것에도 방해가 되지않고 생사에걸림이 없는 道를 욕심내어 분한마음으로 용맹정진하라. 그리고 마음낯이 어떻게 생겼는가 친견하라. 이 마음속에는 온갖 신비한 도와 비밀된 부사의법不思議法이 감추어져 있다.

 우리가 사는 것은 무엇을 목적하고 살고 있는가? 세상만사는 무상하여 항상함이  없음을 깨달아 발심하여 도를 구하는 사람은 만법에 근본되는 마음과 모든법에 머리되는 마음과 삼계에 주인되는 마음과  그 마음 찾기를 길들이고 배워서 부처가 되는데 나는 어찌 뒤떨어진 지옥찌거기가 되었는가. 언제든지 나의 본래마음을 얻어보지 못한다면 삼악도[三惡道]의 지옥고를 면할 수 없을 것이다. 변함이없는 것은 마음이다.

 마음을 찾아내서 잘 깨치면 억천겁이 지날지라도  변함이없고 썩지않는 것이지만 그 마음을 알지 못한다면 자주 변하는 것이 마음이다. 착한 마음이 악한 마음으로 변하고 악한 마음이 성한 마음으로도 변한다. 이와같이 변통스러운 마음을 쓰는 사람은 자주자주 변하는 마음이 마치 도깨비불과 같다.

그러므로 본래는 변함이 없는 마음이나 이 마음이 변하여 악독스러운 마음을쓰면 지옥도되고  잘 쓰면 천당이 된다. 천당 지옥은 내가 만들어내며 부귀와 영화도 내가 만들어 낸다.  무서운 원자, 수소폭탄도 내가 만들었고 비행기 등 일체의 과학기구도 나의 마음이 아니면 누가 만들어내겠는가. 그러므로 천지도 마음으로 더불어 한 뿌리를 이루었고 천하만물들도 나로 더불어 한 몸이 되었다.

누구나 만법을 성취하고자 하면 자기의 心性을 찾아 알면 만사를 다 아룰 수 있다. 마음이 사람되었으니 코와 눈과 사람의 모양에는 의지하자말라. 우리가 마음을 의지하여 마음을 깨쳐서 자유자재로 마음을 사용한다면 만사에 무슨 걸림이 있겠는가. 마음은 여의주와 같아서 생각하는대로 자재스러운 것이다. 마음씨를 뿌려서 하늘을 만들고 땅을 만들고, 마음광명으로 해와 달을 만들고, 마음뼈로 허공을 만들고,

 우주건곤[宇宙乾坤]세계를 만들어 그 가운데 삼라만상의 온갖 것을 만들었으니 어찌 자재스러운 마음이 아니냐. 그러므로 이런 마음만 정화하면 근심걱정과 일체고통을 여일 수 있다. 배고픈데 먹지않고 어찌 배가부르며 깨치지 않고 어찌 슬픈 고통을 면하고 편안할 수 있느냐.
 우리가 부처님과 같이 영원한 행복속에 살고자하면 멀지도않고 가깝지도 않으며 날마다 시간시간 여읠 수없이 쓰는 자기 마음을 깨쳐야 만사에 거침없이 자유하다.

 만약 내가 나의 마음을 깨치지 못한다면 만법을 거꾸로 보는 눈 어두운 사람이다. 나비가 불을 보고 꽃인줄 불 속으로 날아들어 타 죽는 것과 같이 일체만사를 거꾸로보고 걸어간다.
 허망한 꿈을 보고 생시인 줄 알며, 어스름한 달밤에 바위돌을보고 호랑이로 착각하여 놀래자빠지며, 새끼줄을 잘못보고 뱀인줄 알고 깜짝 놀라며 오이 꼭지를 밟으면서 개구리를 밟아죽여 살생을 하였다고 태산같은 걱정을 한다.

 이와같이 거짓경계를 참다운 경계로 삼아서 보고 듣고 행동하는 마음이 중생의 마음이다. 꺼구러지고 매한 행동은 다만 성현의 뜻에 합하지 못한 것이다. 옛 성현이 말씀하시기를 "어떤 사람이 욕을 하더라도 참고 인욕하면 복이된다" 하였다. 서로 상대하여 욕을하면 모두 악한 사람이 됨으로 이것이 독사되고 호랑이되는 원인이다. 불자야! 곡식도 씨없는 곡식이 없으며 지옥도 근본없는 지옥이 어디있느냐.

콩은 콩씨에서 나고 팥은 팥씨에서 나는 것과같이 원수없는  싸움이 어디 있겠는가. 손바닥도 마주쳐야 소리가 난다. 지옥은 중생의 죄짓는 마음씨가 떨어져서 지옥이 되었다.  우리가 어두운 방에 불을 번쩍 켜면 어두운 방이 일시에 밝아짐과 같이 한생각 한마음을 돌이켜 깨치면 만겁에 지은 죄가 일시에 녹아지는 것이 이와같다. 마음을 항상 돌이켜보면 善惡이 모두 나에게서 일어나며 萬法이 다 나에게서 출발한다.

 참선하는 수좌나 불법을 배우는 신도에게 묻는다 죽을 때에 업식業識이 망막하여 무엇을 가져 생사를 대적하려느냐? 다만 몸에 묶인  몸도 내 몸이 아니며 마음에 묶인 마음도 내 마음이 아니다.  業力으로 얼켜있는 몸과 마음을 떠나서 내가없는 나를 찾아내자. 내가없는 나를 상봉하는 진리를 얻어본 다음에야 삼계화택[三界火宅]을 뛰어 날 수 있을 것이다.

 만일 이와같은 법문을 듣고 뼈골이 사무치는 마음이 있다면 마음이 아파서 칼로 살을 베인 것 같을 것이며 음식을 먹어도 편안치 못할 것이다. 우리 다행히 불법을 만났지만 이 기회를 놓치면 영원히 한이될 것이다.  법이 높은 선지식 앞에 나아가서 묻기를 "어떻게 불법을 참구해야 견성을 하며, 고해를 건너 가겠읍니까?"하니 대답하기를 "고해바다를 거너가자면 먼저 배레 올라야 한다.

그리고 견성을 할려면 마음을 관해야 한다."고  말씀했다. 마음을 관하는자는 구경에 생사를 해탈한 것이며, 마음을 관하지 않은자는 필경에 생사를 면하지 못할 것이니  저 선지식 앞에 나아가서 불법을 배우라

 선지식은 법안法眼이 명철하니 중생의 근기를 잘 알아 大道의 뜻을 마음속 깊이 계합契合케 하며 활연대오豁然大悟의 길로 인도한다. 그러므로 법안이 명철하지 못한이에게 묻지 말라. 한 글자라도 잘못 대답하면 "여우의 몸을 받는다" 하였으며 또한 경전을 잘못배우고 지옥에 들어갔으니 잘배워야 할 것이다.

도적질을 배운자는 도적이되고, 진심嗔心을 일으킴을 배운자는 독사가되고, 탐심貪心을 일으킴을 배운자는 출생이 되며, 보시를 베운자는 부자가되고, 인과因果를 배운자는 죄업을 짓지아니하며, 도를 배우는 이는 道를 통달할 것이다.

 이와같이 배워 익힌대로 성취하여 눈으로 보는 것이나 귀로듣는 것이나 자기 배우는 마음을 비추어 행하면 산을보는 자는 다만 산만보고 부처님만 보는자는 다만 부처님만 모이는 것이다.  산을 대함에 산을 보지않고 다만 부처님만 보는 까닭에 화화華華 초초草草와 두두頭頭 물물物物이 다 부처님이 나타난다.

 마음에 뿌리를 바로 돌이켜 보아라. 만약 마음 뿌리를 돌이켜 본다면 모든 물상에 부처가 나타나리라 萬花芳草 봄 동산에 벙실벙실 웃고 피어있는 붉은 꽃은 나의 마음낯에 벌겋게 물들었다. 뚜렸한 나의 마음 이  가운데 나투어 있음을 누가 알까?  아는자는 알고 모르는자는 모르리라.

자료출처:고승법어집 달마가 서쪽에서 온 까닭은? 홓법원  1992년 3월 15일

       부처님이 세상에 출현하여 마음밝혀 도를 통달함을 가르쳤다.
모든 부처님이 마음을 쫓아서 해탈을 얻으셨으니 생사바다에 빠진 중생들도 해탈을 얻으려고 하면 오직 마음을 깨쳐야 할 것이다.

인생이 미혹에 거꾸러져서 죽을 때까지 마음을 알지못한다면 이 마음이 나그네와 같아서 항상 머물지않고 四生六道에 돌아다닐 것이다.

 그러므로 우리는 범부를 고쳐서 부처되는 법을 배워야한다. 만물 가운데 홀로 들어나는 한 물건이 있으니 그 한 물건이 우주 삼라만상과 또한 허공까지 들어 삼켜서 물건도 허공도 한 물건이 없으면 없는 것 까지도 없으니 이것이 무슨 도리인고?

 한 물건도 없는 것이 네가아니고 누구냐, 필경은 나의 분별로 있다 없다 망상 한 것이다.
 한 물건도 없다는 이 물건을 마음이라고 이름지어 부를진대 시방세계十方世界에 충만하여 어떠한 두두물물頭頭物物이나 또는 허공까지도 다른 물건이 없을 것이다.

 그러므로 경전에도 말씀하시기를
 선남자야 깨친 성품이 법계에 두루 가득하므로 두두물물이 다 불성이며, 육근六根이 법계에 가득하므로 청황적백靑黃赤白이 청정한 마음이며, 법이 법계로 두루 가득한 까닭에 법법法法이 다른법이 아니다.

 비로소 알 것이다. 중생이 본래 성불이라고 하신뜻을.
  이와같이 참으로 깨쳐왔다면 모든경계가 깨친경계 아님이 없을 것이다.
 마음을 밖으로 구하지 말고 다만 마음을 향하여 찾아가라.
 자기 불성을 보고자 하면 오직 안을 비춰보라. 만법萬法이 밖으로 오지 않는다.

 일만一萬이치가 마음을 비롯해서 우주와 인생이 창조된 것이다. 모든 불 보살이 진리를 설하신 천경만론千經萬論도 결국 마음을 설명한 것이다.
 대도大道가 심히 쉬움이 밥 먹고 옷 입는 것과 같으며, 大道가 심히 어려움이 능히 엿보기 어렵다  엿보기 여려움으로 있는것도 같고 없는것도 같으며 숨은것도 같고 들어난것도 같다.

 그러나 도인이 말씀하시기를
 사대와 허공이 법을 설하고 법을 들을 줄 모르며 이 눈앞에 역역히 마무데도 의지할 곳 없는 놈이 능히 법을 설하고 법을 들을 줄 안다고 하였으니 눈 앞에 형단形單이없는 놈을 보면 있을 때에 있는 것이 아니라 거짓 있을 것이며 없을 때에 없는 것이 아니라 거짓없을 것이다.

그러므로 있는 것을 볼 때나 없는것을 볼 때에 있다는 말이나 없다는 말과 그 경계에 끌리지 말고 자세히 살펴보면 그 속에 여여히 부동한 내 마음을 찾아 낼 것이다.

        마음을 비춰서 살펴보라.
보는 마음이 미치지 못한 곳에
우주삼라 만상이 나의 눈에 가득하였으니
이곳에서 살펴보고 살펴보라.
좋고좋다. 이곳이여!

       범부되고 성현됨이  또한 이곳이로다.
깨치고 못 깨친 것도 또한 이곳이구나.
이러한 시절인연時節因緣을 놓치지 말라.
마음달이 백천강수百千江水에 떨어지고
마음앞에는 문득 만상이 들어났다.

그 가운데 사람이 있으니 사람의 낯은 아니로다
대중아! 알겠느냐 모르겠느냐?
범부는 경계를 취하고 도인은 마음을 취하나니
그 이치가 이미 나타났으니 깨치고 못 깨침은
그대들에 맡기노라, 난들 어찌 하리요.

법문이 거듭된것은 긴 허공에 구름이 뭉게뭉게 일어남과 같은이 허물말고 거듭 살펴서 천하에 둘도없는 나의 보물되 마음을 깨쳐가고 깨칠려고 힘을 써야한다.

원숭이가 물밑에 밝은 달을 건지려고 하는 것 같이 하고, 어린애가 그림자 사람을 붙들려고 하는 것 같이 힘써라.

마음이라는 것이 어떻게 생겼는지 모든 사람에게 물어도 한 사람도 대답을 못한다.
 헤아려 생각하건데 마음이 어디있으며 마음의 얼굴이 어떻게 생겼느냐, 뽀죽한 것이냐, 노랗고 빨간것이냐, 텅비어 허공과 같은 것이냐, 귀로들을 수없고 코로 냄새맡을 수 없고 손으로 만질 수도 없어서 붓으로 그릴 수 없고 모방할 수도없다. 아마 마음의 모양은 형용도 아니고 모양도 아닐 것이며, 텅비어버린 허공 같지도 않을 것이다.

 벍기는 일월과 같고 검기는 칠과같다. 있는 것도 같고 없는 것도 같으나 있고 없는것을 초월한 것이다. 또한 묘하고 묘해서 알 수 없고 볼 수 없으니 이 무슨 도리일까?

 우주간에 不思議 법도 이 마음속에 있을 것이며 자유를 통달한 법도 이 마음속에 있을 것이다.
 마음을 깨치고 보면 사는법도 없고 죽는법도 없고 가고 오는 거래법去來法도 없는 것이다.
 불속에 들어가도 타지않고 칼로베어도 베어지지 않는 것은 마음의 힘이다.

 이러한 마음의 미묘한 법체法體를 알지못하고 부자유한 육신을 의지하여 사는 까닭에 우리는 고통의 쇠사슬을 풀지 못하는 것이다.

 내가 가지고 있는 마음은 가장 가까운데 있다. 멀리 찾지말고 마음에서 찾아야한다.
 시시때때로 밥 먹고 옷 입고 "행-주-좌-와"하는데 있는 것이다.(行住坐臥 가고 머물고 앉고 눕고  이 네가지 동작을 불교에서는 사위의라하여 각각 지켜야할 규약이나 제약)

 마음의 도술은 비밀법을 감추어 놓은 비밀장과 같아서 연구하는대로 비밀법이 발견된다.
 폭탄을 연구하면 폭탄을 만들 수있고 비행기를 연구하면 비행기를 만들 수 있다. 무엇이든지 연구하는 데로 만들어 내는것은 알 수없는 나의 마음의 도술이며 나의 상품의 부사의법不思議法이다. 그러므로 기술을 통하는 과학기구라든지 만법을 통하는 大道의 비밀을 모두 마음으로 지어내는 것이다.

 깨친 마음은 일체중생을 살려주고 어두운 마음은 일체중생을 죽이는 것이다.  우리를 살려줄 수 있는 道 높으신 선지식을 찾아가서 죽지않는 도를 하루빨리 배워야한다.

 달이가고 해가가는 것은 도살장으로  짐승을 끌고가는거와 같이 죽는 날이 점점 가까워진다. 우리가 천 만년 살기를 원하고있지만 사람의 목슴은 무상해서 번갯불과 같이 허망한 것이다. 세상사람들이 농사짓고 장사해서 생명을 사는것은 다만 육신의 생명을 살기위한 생업이요 영원히 사는도리를 위하는 것은 아니다.

 영원히 안심되는 마음고향에 찾아가는 길을 물어서 마음고향에 돌아가면 생사고生死苦가 끊어지고 몸과 마음이 안락하니 이것이 대장부 지혜로 죽지않는 길을 걸어가는 것이며 이것이 죽는사람을 희생시키는 大道이다.

大道를 배우는자는 우리에게 깨치는 삶을 보여줄 수 있는 선지식의 가르침을 받아라.
 사람되어 억겁에 만나기 어려운 바른법을 만났을 때 기희를 잃어버리지 말고 용맹심을 내어 만물가운데 주인되는 주인공을 찾기바란다.

 불법佛法은 눈이멀어 마음고향길을 잃어버리고 타향에서 헤메는 중생을 비춰주는 지혜의 등불이며, 불법은 죽은 중생을 살려주는 위대한 의사이며 생명이다.
 우리는 물질세계를 떠나서 정진세계를 관찰하고 정신적 생활을 참구하여야 할 것이다. 이것을 모르는 사람은 마치 초목과 같은 사람이다.

 눈 앞에 부처님이 살고 계심을 보지못하니 무명업식無明業識 눈먼 사람이며 부처님이 항상 설하신 설법을 듣지 못하니 이것이 귀먹은 사람이며 설법하되 부처님 진리를 알지못하고 설법하니 이것이 샷된 설법이다.

 우리의 본래몸은 남자의 몸도 아니요 여자몸도 아니다. 이 몸은 가히 생각으로 알아 볼 수 없는 묘한 법으로 되어 있는 몸이다.  물위에 거품이 일어나듯   잠깐 일어났다가 잠깐 없어지는 허망한 몸은 나의 진실한 몸이 아니다.

 나의 육신은  생노병사生老病死로 근본이 되어있는 몸이며 모든 고苦가 얽혀있는 몸이다.
 삼악도三惡途 지옥고가 무섭다고 하지만 마음을 등지고 미迷한 세계에 사는것이 가장 큰 苦가 된다.

 발고 밝은 견문각지見聞覺知 소소영영昭昭靈靈한 마음은  불생불멸不生不滅하여 옛도 없고 이제도 없으며 간것도 없고 온것도 없다.

 설사 천지는  무너져 없어직지라도 이 신령스러운 묘한 마음은 설사 천지는 무너져 없어질지라도 이 신령스러운 묘한 마음은 항상 머물러 없어지지 아니한다.

 모든 부처와 보살이 이러한 법과 마음을 깨쳐서 수용受用함으로 생사에 자재自在하시고 중생은 나의 신령스러운 마음이 미迷한 까닭으로 생사에 윤희한다.

 우리는 마음이 미迷하고는 영원히 살아갈 수 없으니 마음고향 찾아가는 길을 잘 묻고 잘 보아서 미음을 찾아내자.

 고기는 물속에 있고 토끼는 산에 있으니 허공은 없는 곳 없어 다 있는 것과 같이 마음도 또한 허공과 같이서 처소處所가 없이 다 있다.

 마음이 어두운 사람은 천갈래 만 갈래로 마음이 흩어져서 그 이치를 알지 못함으로 그들을 위해 세세한 조목을 들어 어느 곳이든지 마음이 있다는 것을 가르쳐주는 것이다.

 마음 향하는 곳을 향해서 마음을 붙들라. 어떤 곳이 마음향하는 곳이냐? 밥 먹고 옷 입는 곳이 마음 향하는 곳이니 밥 먹고 옷 입는 곳에서 마음을 붙들어 내라. 가고오는 곳이 마음 향하는 곳이니 가고오는 곳에서 마음을 잡아내라. 보고 듣는 곳에서 마음을 발견하라. 시비是非하는 곳이 마음을 향하는 곳이니 시비하는 곳에서 마음을 만나보라.

 악한 생각이 알어날 때나 선한 생각이 일어날 때 이것이 마음 향하는 곳이며 슬픈생각과 즐거운생각이 모두가 마음 향하는 곳이며 있다는 마음이 없다는 마음이 또한 마음 향하는 곳이니 아와같이 마음 향하는 곳에서 마음을 깨쳐내라.

 일용처日用處에 있으며 행주좌와行住坐臥에 있다. 그러므로 밖에서 구하지 말라.
 생각 생각과 일체행동이 마음으로부터 일어나는 것이니 마음향하는 바를 따라서 구비구비 샅샅이 찾아보라. 멀리있지않고 직하直下에 있다.

 독 안에 있는 자라는 달아날 수 없다. 일을 당한 바로 그 자리인 당처當處를 여의지 말고 자세히 찾아보라. 이것은 너의 마음이 어느 곳에 있던지 다 있다는 뜻이다.
 산이 다하고 물이 다한곳에 홀연히 마음이 들어나서 마음을 문득보면 마음이 우주에 가득차고 하늘을 보면 하늘에, 땅을 보면 땅에, 산과 물을 보면 거기에 마음이 있다.

 이와같은 뜻으로 옛 도인이 말씀하시기를
"밝은 달이 허공에 뜨니 옛사람이 왔도다."하였으니, 옛 사람을 이곳에서 만나보겠는가?
 다시 자세히 말하리라.

< 밝은 달이 허공에 뜨니 옛사람이 왔다>하였으니, 밝은 달 가운데서 옛사람을 진실로 만나 보았다면 밝은 달 가운데서 나의 자성[自性]을 만나 보았을 것이다.

 산하대지[山河大地]가 옛 부처님 마음이라 하였으니 산하대지경계만 보지말고 산하대지에서 옛 부처님을 만나 볼려고 애를 써야한다.

알려고 하는 마음에서 옛 부처님 마음을 알 수 있는 것이다.
 만화방초[萬花芳草] 꽃다운 들과 일난풍화[日暖風和] 봅 동산에  봉실봉실 웃음짓고 만발하게 피어있는 오색꽃은 너의 얼굴이며 꾀꼬리 노래함도  또한 너의 뜻이다

 그 얼굴과 그 뜻을 알겠느냐? 이 이치를 통해서 마음고향에 돌아가는 자여!  일난풍화[日暖風和]하고 춘광을 자랑하는 춘삼월[春三月]좋은 때에 녹음방초[綠陰芳草]도 좋거니와 화화초초[花花草草] 깊은 뜻을 누구로 더불어 의논 하겠는가?

 마음을 찾는 사람아! 돌이켜 보라.   일체 제불[諸佛]이 가히 헤아릴 수 없는 법에 숨어살고 있음으로 능히 엿 볼 수 없다.
 중생들 앞에 부처님이 나타났으나 만나지 못하며 보지못함은 무슨까닭이냐?
도반[道伴]아!

 토끼똥으로 눈동자를 바꾸어 넣고
산하대지 두두 물물 물상을 보면
얼굴없는 사람도 그대앞에 나타나리라.
도[道]를 얻어 본 자야! 일겠느냐.
마음 머리 돌아켜 비치는 곳애 마음이 나타나리라.
함부로 마음을 보았다고 말하지 말라.
밝은 지혜의 눈이 아니면 능히 마음을 엿보지 못한 것이다.

우리의 근본 마음은 일체 망상으로 더불어 합하지 못하며, 뜻으로 가히 보기 어려우며, 말로 표현할 수 없는 것이다.

이말은 근본을 돌이켜서 근원에 들어가는 말이다.
 위에 설한 설법이 모두가 진리의 근원을 돌이켜서 보여주는 설법이 됨으로 거듭거듭 설한 말이 있을 것이다. 그러나 자세히 살펴보면 거듭한 말이아니라 밝은 날 햇살과 같이서 그 햇살 광명이 줄기 줄기가 다 만물을 비추어 주는 햇살과 같다.

 이러한 진리에 의지하여 살펴간다면 산을 보고 물을볼 때 자기마음을 볼것이며 혹은 빨갛게 피어있는 봉숭아 꽃을 보고 마음을 보기도 한다.
 그러므로 가는 곳마다 나의마음 고향이요 물건마다 나의 물건 아닌 것이 없다.

 이 마음을 통달하면 사방세계[十方世界]와 산하대지[山河大地]와 유정무정[有情無情]과 삼라만상[森羅萬象]과 두두물물[頭頭物物]이 디 나의 물건이며 여기가 나의 마음 고향이다.
 만약에 내가 나를 알아볼 수 없는 나를 볼려고 하면 핏주머니를 던져버려야 한다. 너의 몸은 <한 물건 없는 것이 나의 몸>이다

 그대는 형체가 있는 물건이 아닌 허공신[虛空身]이 너의 눈앞에 번듯이 나타났으니 눈을 크게뜨고 자세히 살펴보라.

 남녀도 아니고 장단長短도 아니며 파랗고 빨간것도 아니며 가까운 것도 모나고 둥근것도 , 있고 없는 것도 아니며 없는 것까지도 없으면서 다시 만상을 나투어 티끌 티끌과 세계 세계를 이룩 하였으니 깨친다는 그 경계물상이 부처님으로 보일 것이요 미한 중생은 한갖 화택세계이다.

 불자여! 부처님이 사시는 적멸궁은 토끼풀로 기둥과 서까래와 들보를 하고, 거북이 털로 지붕을 덥어서 집을 지었다. 그 적멸궁에 들어가서 부처님을 친견하라.
 또 다시 보여 주노라.

 삼경초야 달밝은 밤에 서로만나보고 서로알지못한다고 이상하게 여기지말라. 알 수없고 기묘하다. 어떤때는 시방세계를 찾아보아도 자취가없고 어떤때는 백초두상[百草頭上]에 역역히 볼 수 있다.

 참으로 보았느냐. 또한 불 수 있다고 말하지 말라.
 원래 알지 못한다. 참으로 알지 못하였느냐, 다만 알지못할 줄 알면 이것이 곧 견성이다.
 묘하고 묘하다. 나에게 있는 한 물건이요! 어떻게 되어있느냐. 알 수없다. 일편은 空하고 일편은 寂寂하며, 일편은 신령[神靈]스럽고, 일편은 역역[歷歷]히 잘 아는 것이다. 이것을 이름해 공적영지[空寂靈知]라고 말한다.

 이도리는 누구를 위한 것이냐?
낯은 남쪽을 향하고  북쪽을 살펴보라
처처處處에 서로만날 것이다.

 모든 부처와 조사가 이 법을 배워서 뜨거운 삼계화택[三界火宅]을 뛰어나섰고 이 법으로 고해중생을 제도하시고 생사해生死海에 빠진 우리들도 이 법이 살려 줄 것이다.
 도道를 구하고 마음을 찾는자여! 마음은 형상形相을 의지하여 나툰것이며, 마음은 空하지 아니하였으나 공을 의지하여 나투는 것이다.

 이 마음이 만상萬相에 들어가 相의 얼굴을 이루었으며 마음이 없는 것에 감추었으나 온전히 홀로 드러난 줄 알며, 마음이 공적空寂한 줄 알면 삼계만법三界萬法이 다 마음으로 쫓아 일어난 줄 알며, 두두물물頭頭物物이 다른물건이 아닌 줄 알며, 가을 달과 봄 꽃이 무한한 뜻인줄 알 것이다.

 지혜의 눈으로 명철하게 법신法身을 보면 흔적을 볼 수없다는 것을 알 것이며, 처처에 자기 부처를 본다면 하늘을 보나 땅을 보나 일체만물을 볼 때에 모든 색상이 오직 마음인줄 알 것이다.
비유하면 물이 곧 파도요 파도가 곧 물인것과 같다.

 물이 파도를 여의지 못함이요 파도가 또한 물을 여의지 못하는 까닭이다.
 물속에 짠맛이 숨어 있으나 짠 모습은 볼 수 없는 것과 같이 만물가운데 나의 마음이 숨어있으나 볼 수는 없는 것이다.

 그러나 볼 수 없다고 하면 먼저 볼 수 없는 것을 본 것이다. 볼 수 없는 법은 볼 수 없는 법으로서 보아 갈 것이요 볼 수 있는 물건은 볼 수 있음으로서 보아 갈 것이요 볼수 없는 물건은 볼수 없음으로서 보아가라. 볼 수가 있다면 보지못함이 있을 것이요, 보지 못함을 본다면 보지 못한 바가 없을 것이다.
 이렇게 진리를 본다면 마음이 봄 동산에 들어가 붉은 꽃을 보듯이 자기의 진면목眞面目을 알아 볼 것이다.

이 법을 여의고는 살아가는 법이없다.
 말세중생末世衆生은 이 법을 의지하여 수행하라.

 이 기이하고 묘한 법을 참구하여 깊고 넓은 고해苦海바다를 건너가서 피안에 이르기를 빈다.
자료출처: 달마가 서쪽에서 온 까닭은? 고승법어집 홍법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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