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aturday, February 12, 2011

25 영원한 자유 2장 자유로 가는 길

25 영원한 자유 2장 자유로 가는 길

1 큰 신심

그러면 자기개발, 우리가 가지고 있는 무한한 능력의 개발이라는 큰 과제를 두고서, 우리는 어떠한 결심을 해야 되는가? 우리가 어떤 결심을 해야만 자기능력을 완전히 개발하여 불보살이 되고 조사가 되고 그리고 선지식이 되어 미래겁이 다하도록 일체 중생을 위해서 살 수 있는가? 법을 위해서 몸을 잊어버려야만 위법망구爲法忘軀 대고를 성취할 수 있읍니다. 모든 행동의 근본이 되는 몸까지도 잊어야만 비로서 대도를 성취할 수 있읍니다.

가장 좋은 보기로 부처님을 들 수 있읍니다. 대도를 위해서 왕자를 버리고 천추만세에 일체중생을 위해서 얼마나 큰 공을 이루웠읍니다까? 근대에 와서는 오직 진리를 위해서 모든 것을 다 버린 사람, 법을 위해서 몸을 버린 사람으로 청나라 태종 순치황제를 보기로 들 수 있읍니다. 만주족이 만주에서 일어나 십팔년동안을 싸워 중국을 통일하여 대청제국을 건설하였는데, 그 세력 판도는 남 , 북만주 , 내 외몽고 서장, 안남에 이르러서 중국역사에서는 말할 것도 없고 세계 역사에서 가장 큰 제국을 건설했읍니다. 그런 순치 황제가 대천제국 창업주의 영광을 버리고 출가를 했읍니다. 본디부터 불교에 관심이 있었던 그는 부귀영화란 일시적인 것이며, 또 대청제국의 황제 노릇도 영원에서 영원으로 계속되는 무한한 사간에 비하면 눈깜짝할 사이의 일이며 아이들의 장난일 뿐이라고 깊이 통찰했읍니다. 그래서 황제는 굳은 각오로 곤룡포를 벗어던지고 야반도주를 했읍니다. 그리하여 자기모습을 감추고 금산사에 가서 나뭇군이 되어 머슴살이로 스님을 시봉하면서 공부를 했읍니다.

그때 출가시를 썼읍니다.

나는 본래 인도의 수도승인데 我本西方一衲子 아본서방일납자

무슨 인연으로 타락해서 제왕이 되였는가. 緣何流落帝王家 연하류낙제왕가

천자 되는 것을 타락 중에섣도 가장 큰 타락이라고 보니 이것이야말로 참되게 수도하는 근본 태도가 되는 것입니다.

요즘 보면 동네 이장만 되어도 만금천자라도 된 것 같이 행세하는 사람들이 많습니다. 부처님을 믿고 부처님을 따른다면 부처님의 각오와 결심을 가져야 하는데, 그 반대로 가는 사람이 많습니다. 참으로 자기를 잊고 무상대도를 성취해서 일체중생을 위해 이 대도를 위하서 큰 결심을 하는 사람은 거의 없읍니다.

불교를 믿는다고 하는 사람들이 장사꾼이나 날품팔이하는 사람과도 같읍니다. 일반 학생들에게 공부하는 목적이 어디 있느냐고 물으면 어느 회사의 직원이 되는 것이라는 식으로 답하곤 하는데, 이런 장사꾼 같은 싱리를 가지고는 절대로 무상대도를 성취할 수 없읍니다. 혹 사람의 마음도 모르는 체 넘겨짚거나 너무 무시한다고 항의할 사람이 있을지도 모르겠읍니다. 그러나 진실로 그런 사람이 있으면 내가 그 사람 보고 뼈가 부서지도록 절하렵니다. 그런 사람은 참으로 귀하기 때문입니다.불교를 믿는데는 만승천자도, 곤용포도 내버리는 그런 큰 선심이 있어야 합니다.

2 큰 의심

지금까지 아야기했듯이 불교의 근본은 자기개발에 있읍니다. 초월적인 신은 부정합니다. 부처도 믿지 말고 조사도 믿지 말며, 석가도 필요없고 조사도 필요없다는 말은 불교의 근본을 나타내는 말이라고 할 수 있읍니다. 오직 자기 자신이 부처님이고 절대자임을 알아야합니다. 곧 자기 자신이 부처님이고 절대자임을 알아야합니다. 곧 자기자신이 영원한 생명과 무한한 능력을 가진 사람임을 알아야 합니다.

그러면 어떻게 해야만 자기개발을 완전히 할 수 있는가? 부처님께서 설하신 팔만대장경이 있으니 그 문자만 많이 독송하면 무심삼매無心三昧를 얻을 수 있는가? 아닙니다.

널리 배워서 아는 것이 많으면 마음이 점점 어두워진다.

廣學多知광학다지 神識轉暗신식전암고 부처님께서 말씀하셨읍니다.

옛 사람들도 말하기를 도의 길은 날로 멀어가고 학문의 길은 날로 더해간다.

爲道日損 위도일손 學爲日益 학위일익

고 했읍니다 참으로 깨치는 길은 한 생각 덜어서 자꾸자꾸 덜어 나아가야 하고 학문을 하려면 자꾸자꾸 배워 나아가야 됩니다. 道와 학學은 정반대의 처지에 서 있읍니다.

듣고 보고 하는 것은 무심삼매를 성취하는 데에서는 설비상雪砒霜 과 같은 극약이나 마찬가지입니다. 우리의 근본 목표인 대도大道를 성취하여 성불하는데에서 이론과 문자는 장애이 되지 이로움을 주지 못합니다. “모든 지식과 언설을 다 버리고 오직 마음을 한 곳에 모으라고 부처님께서 말씀하셨읍니다. 부처님은 보리수 아래에서 깨달음으로써 성불하였지 이론과 문자를 배워서 성불하였다는 소리는 없읍니다

부처님이 무엇을 깨달았느냐 하면 중도中道를 깨달았읍니다.깨달음을 얻을려면 선정禪定을 닦아서, , 참선을 해서 무심삼매를 성취해야 됩니다. 무심삼매를 거쳐 진여삼매에 들어가야 하는데, 하물며 망상이 죽 끓듯하는 데에서 어떻게 진여삼매를 성취하여 중도를 중득한 부처님의 경계를 상상 이라도 할 수 있겠읍니까? 그럼 교敎라는 팔만대장경은 무엇인가? 그것은 약방문입니다. 약처방이란 말입니다. 그것에 의지해서 그대로 약을 지어 먹어야 병이 낫습니다. 밥 이야기를 천날이고 만날이고 해봐야 배부르지 않듯이, 약처방만을 천날 만날 외워봐야 병은 낫지 않습니다. 약을 직접 먹는 것이 실천하는 것이므로 선정을 닦는 좌선을 해야 됩니다. 부처님께서 평생 가르친 것이 이 좌선입니다. 지금도 저렇게 좌선을 하시며 앉아 있지 않습니까.

1 아난존자

옛날 스님네는 어떻게 공부해서 어떻게 무심삼매를 성취하여 道를 이루웠는가를 알아볼 필요가 있읍니다.

부처님께서 돌아가신 뒤 그 제자들이 부처님이 법문하신 것을 모아놓은 것이 경經입니다. 그 무렵에는 녹음기도 없고 속기速記하는 사람도 없었지만, 부처님을 삼십여 년 동안 모시고 다니며 시봉했던 아난 존자는 부처님 말씀을 잘 기억하고 있었읍니다. 그 총명함은 고금을 막론하고 견줄 데가 없으니 한번 들으면 영원토록 잊지 않았읍니다. 그래서 부처님 법문法門을 결집結集하는데, 대중 모두가 아난이 주동이 되어야 한다고 했읍니다. 그런데 가장 웃사람인 상수제자上首弟子인 가섭 존자가 소집 단계에 가서 그에 반대하였읍니다.

아난은 부처님 말씀은 잘 기억하고 있지만 살제 진리는 께치지 못했으므로 참석할 자격아 없다.”

가섭존자는 아난 존자가 아무리 부처님 말씀을 잘 기억하지만, 다시말하여, 팔만대장경이 모두 자기 뱃속에 있지만 아직 자기 마음을 깨치지 못한 봉사이므로 이 결정에 참여할 자격이 없으니 아주 나가라고 하였읍니다. 이에 아난 존자가 애걸복걸하며 말했읍니다. 부처님께서 돌아가시면서 나의 대법大法을 가섭에게 전했으니 그를 의지해서 공부하라고 하셨는데 이제 가섭 사형이 나를 쫓아내면 누구를 의지해서 공부하겠느냐는 것입니다. 그러나 가섭존자는 절대 안 된다고 했읍니다. 여기는 불법을 깨친 사자獅子만 사는 사자굴인데 깨치지 못한 여우가 어떻게 살 수 있느냐고 하면서 쫓아내 버렸읍니다

할 수 없이 울며 쫓겨난 아난존자는 비야라성城으로 갔읍니다. 그곳에 가니 국왕이며 대신등을 바롯한 많은 신도들이 큰스님 오셨다고 오체투지五體投地를 하고 법문을 청하므로, 아난 존자는 가섭 존자에게서 쫓겨난 것은 다 잊어버리고 잘난체하며 법문을 했읍니다. 이때 그 부근에 발기라고 하는 비구가 있었는데 아난이 그곳에 온 뒤로 많은 산도들이 모여 법석을 떠니 시끄러워 도저히 공부가 안 되었읍니다. 그래서 발기 비구-출가하여 구족계를 받은 남자중 비구승, 비구니 여승 -가 게송을 하나 지었읍니다.

좌선하고 방일하지 말아라 坐禪莫放逸 좌선막방일

아무리 지껄인들 무슨 소용있는가. 多設何所利 다설하소리

입 디물고 참선하라는 말입니다. 아난 존자가 그 계송을 듣고 정신이 번쩍 났읍니다. 이제 참으로 공부해야 겠다고 참회하고는 다른 곳으로 가서 불철주야로 앉아서 정진했읍니다. 졸릴 듯하면 일어나 다니고 다리가 아프면 앉았다 하면서 자꾸 선정을 익혔읍니다. 며칠이 되었는지도 모르게 그렇게 여러 날 공부했읍니다. 그러다가 나중에는 어찌나 고달픈지 도저히 참을 수 없어서 잠깐 누워 쉬어야 겠다고 생각하고 목침木枕을 베려고 턱 드러눕다가 확철히 깨달았읍니다. 참으로 무심삼매無心三昧를 성취한 것입니다. 목침을 집어던지고 밤새도록 걸어서 가섭 존자에게 갔읍니다. 가섭 존자가 몇가지 시험을 해보니 확철히 깨친 것이 확실하므로 결집하는 사자굴에 참가할 자격을 주었읍니다.

경에보면 여시아문如是我聞 - 나는 이와 같이 들었다는 뜻. 부처님의 가르침에 따라 제자 아난阿難이 불경을 편찬할 때 모든 경전의 첫머리에 붙인 말-”이라는 말이 있는데 이것은 아난의 말입니다.

결국 부처님의 십대 제자 가운데 다문제일多聞第一은 아난 존자이지만, 근본 법은 부처님께서 가섭에게 전했고 가섭은 다시 아난에게 전했읍니다. 곧 부처님은 시조始祖이시고, 아난 존자밑으로 상나화수 존자로 이어지고, 이렇게 해서 정법正法은 二十八代 달마대사가 중국에 옴으로써 동토凍土에 전해졌읍니다. 이 선종이 중국에 소개되어 육조스님 뒤로는 천하를 풍미해서 모든 불교를 지배하게 되었는데, 육조스님은 오조 홍인 대사밑의 제일 큰제자로서 일자무식이었읍니다. 당시 홍인스님의 제자로 신수神秀 라는, 불교뿐만 아니라 유교와 도교 등에서도 아무도 따라갈 수 없을 정도의 대지식가가 있엇지만 이 신수스님은 도를 바로 깨치지 못했으므로, 법은 일자무식인 육조스님에게 가고 말았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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