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aturday, October 10, 2009

중국건국 60주년과 한중 관계

석동연 주홍콩 총영사 기고문 입니다.
1949년 10월1일 오휴3시 마오쩌둥은 장정기간 풍찬노숙을 함께한
노전사들과 함께 텬안먼성루에 올라 신중국 성립을 선포하였다.
중국 역사와 세계사의 흐름을 바꾸어 놓는 순간이였다.
며칠전 그 텬안먼 광장에서 건국 60주년 행사가 장엄하게 거행 되였다.
인민해방군의 열병과 분열에 이어 대륙간탄도탄을 비롯한 최첨단
무기를 선보이며 중국의 힘을 대내외에 과시한 퍼레이드에 중국인들은
환호하며 스스로 이른 성취에 감격하였다.
경제, 외교 대국으로 도약
아편전쟁 이후 중국이 걸어온 169년의 험난한 역정을 생긱할 때
중국인들의 벅찬 감회를 이해하는 섯은 어렵지 않다.
동아시아의 환자 취급을 받은 100여년 치옥과 통한의 역사였다.
신중국 건국 이후에도 20년동안 대약진 운동과 문화대혁명 등 숱한
고난과 좌절을 겪었다.
1978년에 비로서 개혁개방의 설계사 덩사오핑에 의해 중국은 시장경제
체재로의 성공적인 변화를 이루고 경이로운 발전을 거둡하였다.

자난 30년간 견제성장율은 평균 9.8%를 기록하였고 1978년 200억달러에
머물던 수출액은 연간 1조4,000 억달러를 넘어섰다.
농촌 빈곤인구눈 2.5억명에서 1,400만명으로 감소되였다.
지난해 베이징 올림픽과 선저우 7호 유인우주선 발사는
중국 경제와과학 기술의 발전을 전 세계에 과시 했다.
중국은 2조달러가 넘는 세계최대의 외환보유국,세계 3위의 경제규모와
무역액등 세계의 공장에서 세계의 시장으로 환골탈태하였다.
이러한 경제력은 국제지위의 상승으로 이어져외교 대국으로 우뚝섰다.
경제 안보 등 범세계적 문제 논의에 중국의 협조는 이제 불가결하다.
G-2( Pax Sinica) 팍스시나카 용어가 자연스러운 시기에 우리는 살고있다.
얼마전 중국에서 가장 작고 빈곤한 닝샤의 회족 자치구를 방문했다.
황토고원의 척박한 땅에 대규모 에너지 공업단지를 건설하고 있는것을
보며 우공이산의 고사를 떠올렸다.
올해초 아시아 협회 연설에서 하이페이 중국 외교부장은 1949년부터
30년간 외국을 방문한 중국인은 모두 20만명에불돠했으나 지금은 1년에
4,400만명에 이른다며 중국의 변화를 감조했다.
중국에대한 고정관념과 편견을 의식한 발언이였다.
중국은 더이상 과거의 낙후하고 빈곤한 나라가 아니다 변화와 발전을
거듭하고있는 중국을 우리는 어떻 게 인식하고 있는지 자문해보았다.
1962년 한 중 수교 이후 양국관계는 중국의 지속적인개혁개방 정책에
힘입어 놀라운 발전을 거둡했다.
한 중관계 증진이 중국 개혁개방의 좋은 성공사례라고해도 지나치지않다
지난해 한 중 무역규모는 1683억달러로 일본과 미국과의 무역량을 합친
것과 맞먹는다.
중국은 우리의 최대 투자 대상국이 되였고 양국 간 인적교류는
연간 500만명을 넘어섰다.
전략적 동반자관계 발전시켜야
외교 안보 분야에서도 괄목할 만한 관계증진이 이루어져왔다.
지난해 5월 이명박 대통령의 중국방문을 계기로 전략적 협력동반자
관계로 나라 관계가 격상되였고 북핵 문제 해결 등 외교 안보의
중요파트너가 되였다.
중국의 급속한 발전은 우리에게 기회이자 도전이다.
중국의 역사적 변화의 의미를 면밀히 살펴보고
중국과의 관계가 진정한 전략적 협력동반자 관계로
한 차원 높게 발전할 수 있도록
구체적인 실천과제를 찾아 힘을 기울여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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