Friday, June 24, 2011

감자깍기

지혜의 향기

감자깍기

이원익 태고사를 돕는 사람들 대표

열매나 알뿌리 가운데는 씻어서 그냥 통째로 먹는것도 있지만 대개는 껍질을 손으로 벗기거나 칼로 깍아야 먹기에 좋다. 익어서 벌어지려는 방송이 같은 경우엔 가시에 찔리지 않고 그 속에서 고동색 알밤을 발라내자면 상당한 재간이 필요하다. 발라냈다고 다가 아니다. 반질반질한 알밤의 껍질에 칼을 대어서 잘 볏겨 내면 그 다음엔 떫은 맛을 내는 보늬가 보이고 그 속에 비로소 아그작 아그작 씹을 수 있는 맛 있는 밤톨의 맨살이 들어 있다.

고구마는 그냥 깍아서 먹기도 하지만 생감자는 먹을 수가 없다. 굽거나 삶아서 껍질을 벗겨야 한다. 미리 껍질을 벗겨서 삶기도 하는데 양이 많을 때는 이 감자 깍기가 여간 귀찮은 게 아니다. 날카롭게 닳은 놋숫가락 같은 것으로 껍질을 긁거나 작은 칼로 하나하나 깍아야 하는데 절에서 대중공양을 준비할 때는 아렇게 안 한다.큰 고무대야에 감자를 쏟아 넣고 물에 푹 불린다. 그러고선 맨발로 들어가 마구 짓밟는다. 그러면 감자끼리 문질러지면서 다함께 껍질이 벗겨지는 것이다. 이것이 승산 스님이 말씀하신 감자 깍기 비법이요 여기서 나온 게 감자 껍질 벗기기식 대중 수행 방법이다.

대부분의 사람들은 제 혼자의 힘만으로 스스로 자신의 껍질을 벗겨 내기가 어렵다. 근기가 출중한 큰스님 같은 분이 예리한 칼을 들고 다기앉아 정성스레 깍아 주면 아집과 편견으로 똘똘 둘러싸인 고집스런 보호막이 벗겨질 지도 모른다. 하지만 누구나 이런 행운을 바랄 수는 없다. 버리고 싶지만 버리기 어려운 우리들의 껍질! 아무리 누르고 갈고 닦아도 숨죽인 채 숨어 있다가 결정적인 순간에 불쑥 솟아올라 일을 망쳐버리는 나만의 괴벽, 어떻게 할 것인가?

가장 효과적인 방법은 혼자 숨어 있지만 말고 고무대야 속의 감자들처럼 정기적, 부정기적으로 도반들과 어울리고 대중과 만나 부대끼는 것이다. 배우고 듣고 고치고 달래는 그 모든 인간적인 사소한 부대낌들까지 나도 모르게 우리의 껍질을 동시에 대량으로 벗겨내는 생산성 높은 공정의 하나가 되는 것이다. 무엇 하나 귀중하지 않은 것이 없다.

그런ㄴ데 보처님 공부를 할수록, 시간이 흐를수록 더욱 안으로만 파고들어 사람들을 멀리하고 어울리지 않아서 껍질이 더 단단해지는 분들도 없지 않다. 모이는 것을 천시하며 함께 무엇을 한다는 생각이 없으시다. 비록 혼자서 가슴을 부등켜안고 죽을지언정 나의 당당한 울타리 안을 절대로 열어 보이지를 않는다. 남들이 이 울타리 안으로 들어오는 것도 용서할 수 없다. 그래야만 진정한 불교라고 자위하거나 정말 그렇게 잘못 알고 있기도 하다.

부처님의 가르침은 중생을 돕고 괴로움에서 건지기 위한 것이다.

그러자면 자신이 먼저 깨우쳐야 하므로 출가한 수행자들은 인정 기간 세속과 거리를 두고 고독 속에서 철저한 자기 성찰과 수행을 한다. 하지만 이러한 구도의 길에 있어서도 길을 함께 가는 길동무가 없고 이들을 외호하는 승가가 없다면 홀로 필생의 원을 이루기가 참으로 어렵다고 하신게 부처님 말씀이다. 하물며 세속에 몸담고 있는 재가 불자로서 언제까지나 골방에만 틀어박혀 외톨이로 해결할 수 있는 일이 얼마나 되겠는가!

, 이제 일어나서 선지식이 계신 곳, 스님과 불자들이 모인 곳을 찾아가자. 외따로 떨어져 썩는 감자가 되지말고 오울려 함께 몸을 비비고 껍질을 벗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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