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ursday, July 7, 2011

신파람나는 쥬신족

기똥차고 위대한 쥬신족

전자공학 박사가 본 氣 이야기 서울대학교수 이충웅지음

위대한 주신족(朝鮮族)

동이족東夷族인 우리는 쥬신족(조선朝鮮)이다. 쥬신족은 지금부터 약 6,000년 전에는 바이칼 호부터 님쪽의 양자강까지의 남북 5만 리, 서쪽 몽골사막부터 동쪽의 황헤까지 2만 리의 광활한 영토를 지배하였던 위대한 민족이다. 동이족의 대표적인 위대한 인불로는 동양철학인 주역周易을 창시한 복희伏羲, 농사법과 한의학, 경제, 음악 등을 창시한 신농神農, 유교의 개조開祖 공자孔子, 중국 역사상 가장 태평성대를 이루었던 요堯, 순舜 임금, 유명한 병서 『 육도삼략 』을 저술한 강태공姜太公 등을 들 수 있다.

대다수의 한국 사람은 식민지 사관에젖어 우리 조선족은 한때 부여,고구려를 거쳐 만주를 지배했다가 지금은 한반도에서 두 쪽으로 갈라져 살고 있는 약소민족이라고 잘못 생각하고 있다.

다시 말해서 쥬신족의 氣가 쥬신족 사상 절정기에 있었던 부여 이전의 역사는 전혀 모르고 있다.

이것은 중국이 고구려가 패망한 후에 우리의 상고 때의 찬란했던 역사적 사건들을 기록한 사료를 인멸은폐 하였으며, 일본도 1910년에 한반도의 성공적인 식민지통치를 위하여 20여만 권의 쥬신족의 고대古代 사서史書를 소각했기 때문이다. 말할 것도 없이, 이 때 소각된 사서들은 우리가 읽어보면 프라이드와 힘을 느끼게 되는 것들이었다.

우리가 알고 있는 조선족사朝鮮族史는 일제가 의도적으로 남겨놓은 사대주의 사상에 절어있던 김부식, 일연이 쓴 『 삼국사기』『 삼국유사』등에 근거한 식민지 사관이다.

즉 식민지사관에 의한 조선족사는 :조선족은 양같이 양순하며 한 번도 남의 나라를 침법한 일이 없고 패기가 없으며, 강대국에게 눌려만 살아 왔으며, 남을 헐뜯고 단결을 전혀 하지 못하는 약소민족이다.”라는 사상을 바탕으로 하여 쓴 신라를 중심으로 한 쥬신족의 일종의 지방사地方史이다.

신라는 자신들의 생존을 위하여 중화족인 당나라를 집안싸움에 끌어들여 동족인 백제를 멸망시킨 후, 중국식을 따르고 모방하며 스스로 소중화小中華로 행세하였다. 漢族의 적을 자신들의 적으로 삼아 한족과 맞서 싸운 만주지방의 우리 동이족 金,淸을 모두 오랑캐라고 칭하며 우리 쥬신족으로부터 분리시켜 놓았다.

우리 쥬신족은 파미르 고원에서 발상하여 바이칼 호를 거쳐 백두산 쪽으로 이동 정착하였다.

쥬신족의 氣의 발원지인 백두산에 도착한 우리조상들은, 백두산을 중심으로 집단 정착하여 문화를 발전시킴으로써 史上 쥬신족의 氣의 절정기에 있었던 기원전 6,000년경에는 홓산문명鴻山文明을 일으키고 이어 남쪽으로 내려와 황화 문명을 일으켰다.

우리 조상들은 이미 서기전 4,000년경에 배달나라를 세우고 농경민족인 중화족을 제압하여 대제국을 세웠다.

氣의 상승기에 있던 우리 조상들인 동이족은,이미 치우천황蚩尤天皇이 기마민족인 쥬신족을 총동원하여 대장정을 감행함으로써 활동 무대를 만주에서 황해 연안을 따라 상동반도, 하북성 일대로 진출하였다. 쥬신족은 이어 남쪽으로 양자강 이남까지, 서북쪽으로 몽골, 동북 동남쪽으로 시베리아, 全만주, 한반도 및 일본열도까지 지배하였다.

쥬신족은 새를 숭상했으며, 특히 봉황鳳凰을 상서祥瑞로운 새로 받들었다. 한편 중화족은 용을 길하게 여겨 받들었다. 따라서 동양의 고대역사는 봉황의 쥬신족과 용의 중화족과의 다툼의 역사로 볼 수 있다.

쥬신족은 본래 기마민족으로 민족이동이 빠르고 용이하여 발해연안으로 황해안을 성정하여, 중화족을 내륙 쪽으로 몰아붙여 봉쇄했으며, 중화족은 華山을 중심으로 내륙 산악지역에 갇혀 바다를 볼 수가 없었다.

우리 동이족은 백두산을 중심으로 한 만주 벌판이 주 활동무대였던 관계로 철광과 양질의 유연탄을 손쉽게 얻을 수 있었다. 인류역사상 최초로 철의 제련법을 개발하여 철제무기로 무장한 우리 동이족(쥬신족)은 기병을 주력으로 하여, 석제와 목제 무기로 무장한 중화족을 어렵지 않게 제압할 수 있었다.

이것은 鐵의 古字가 쇠금변에 동이족의 夷자를 쓴 銕이라는 글자였던 것을 보더라도 용이하게 알 수 있다. 즉 銕이라는 글자는 동이족인 쥬신족이 세계에서 최초로 금속을 사용하기 시작한 것을 의미한다. 이후 고구려가 당에 패망한 후에 중화족이 銕자를 鐵자로 바꾸었던 것이다.

그리고 중화족은 쥬신족을 보고 동이족이라고 불렀다. 夷자는 옥편에 오랑캐 이라고 적혀있는데 이것은 잘못된 설명이다. 다시 말해서 夷자는 크다는 뜻의 큰대 大 자를 활 궁 弓 자에 덮어씌워 만든 글자로서 큰 활을 잘 쏜다는 뜻이다.

중화족이 보기에는 쥬신족이 상고 때 동쪽에 살면서 말 잘 타고 큰 활로 맹수사냥을 잘 하는 민족이었으므로 동이족이라고 불렀다. 이런 연유에서 오늘날 올림픽 양궁경기에서 금메달을 종목별로 다 따는 것은 지극히 당연지사라고 아니 할 수 없다.

그러나 농경을 주업으로 하던 중화족은 의심이 많고 왕래가 없어 발전속도가 늦고, 순장殉葬 풍습 때문에 백성을 병사로 쓰기가 쉽지 않았다. 그러나 이동이 적은 중화족은 문자를 발달시키고 인구도 빠른 속도로 증가하여 연나라 때 이르러 그 숫자가 동이족의 10배 정도로 팽창하여 동이족은 서서히 中原에서 밀려나기 시작하였다.

서기전 3898년에 개국한 환웅시대 桓雄時代는 그 나라 세력이 강대하여 영토는 전술한 바와 같이 바이칼호 부터 남쪽으로는 양자강까지 동서 2만 리, 이 광대한 땅이 모두 우리의 것이었으며 환웅의 나라는 1565년간 지속되었다.

서기전 2333년에 환웅왕조 桓雄王朝를 마감하고 도읍을 백두산 아사달로 옮겼다. 이 때 나라 이름을 단군쥬신 檀君朝鮮이라 하고 이 해를 단기원년 檀紀元年으로 하였다.

단군쥬신은 만주벌판 및 시베리아를 강한 힘으로 다스렸으며 그 통치기간이 2006이나 되었다. 그 후 북 만주에 예로부터 자리잡고 살던 가우리 高句麗사람, 몽골족을 비롯한 주변 종족을 제압하고 북부여 나라를 세웠다. 부여 이후는 고구려, 백제, 신라, 고려, 조선 등을 거쳐 쥬신족의 氣가 서서히 하강하다가 1950년을 기점으로 대한민국의 氣는 상승기인 6,000년의 대주기와 360년의 소주기가 다 같이 가시 오르기 사작하였다. 그리하여 불과 40여 년 만에 세계의 170여 개국의 하위권에서 일약 UN의 이사국, 세계 10위의 경제대국을 건설하였다.

한반도의 비전 한반도에 氣가 모이고 있다.

우리나라가 한국동란 이후 상상하지 못할 정도로 급속도의 발전을 하여 한강의 기적을 이룬 것은 분명히 눈에 보이지 않는 무엇이 있기 때문이다. 그렇지 않다면 이 발전상을 단지 時運이라고만 할 수 있겠는가? 이것의 근본적인 원인은 한반도에 氣가 모이고 있기 때문이라 생각한다. 나는 한반도로 밀려오는 氣의 제현상을 전기현상론적 아날로지 관점에서 분석하면서 그 해답을 찾아보았고, 21세기야말로 세계적으로 우리 민족의 사대가 되리라는 강한 신념을 얻었다.

그러면 백두산의 氣의 변화주기, 즉 한반도에 발생한 氣의 변화주기를 생각해보자 최근 한반도의 氣가 최저상태였던 때가 6. 25동란이 발발했던 1950년 이라고 볼 수 있다. 여기서 다시 과거로 올라가면 1592년 임진왜란이 나던 때이며, 더 거슬러 올라가면 몰골의 1차 침략이 있었던 1231년이었고, 더 과거로 가면 고구려와 백제

여기서 주목할 점은 氣의 최고상태와 최저상태와의 시간간격小週期 이 약 360년인데, 그 중 180년은 氣가 상승하고 나머지 180년은 氣가 하강한다.

최근에 한국의 氣는 1950년부터 올라기기 시작하여 이미 47년이 지났다. 따라서 앞으로 약 130년은 氣가 상승하게 되어 있으므로 21세기는 한국의 氣가 주도하는 세기가 되는 것이 명백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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