Friday, May 13, 2011

나는 어떻게 통일을 흥정했나

나는 어떻게 통일을 흥정했나.

볼프강 쇼이불레

협상의 주역 쇼이블레가 증언한 독일 통합 18개월의 대 드라마 한우창 역 동아일보사 간행

한국 독자를 위한 저자 서문

존경하는 한국의 독자 여러분 !

수십 년간의 고통스러운 독일분단 이후에, 역사적 운명은 독일국민에게 다시 절호의 기희를 주었고, 헬무트 콜총리가 이끄는 서독정부는 그 역사적 기희를 잘 포착하여 독일통일을 완수하였읍니다 통일조약협상에서 나는 맡은 바 임무를 완수하였으며, 자유스러운 독일통일 과정을 이 책에 상세히 기술 하였읍니다.

바로 그러한 책이 한국어로 출판되어, 한국의 독자들에게 소개된디니 무척 기쁨니다. 한국의 분단 역시 제 2차세계대전의 결과로서, 한국은 아무런 잘못 없이 전쟁의 희생자가 되었으니 분단의 고통은 더욱 심하리라 생각합니다. 독일 통일의 역사가 보여주는 것처럼, 민족통일의 의지와 희망을 절대로 포기하여서는 안 된다고 생각합니다.

1945년 이후 강요된 분단을 독일국민들은 절대로 인정하지 않았읍니다. 따라서 역대 서독정부와, 아데나워총리로 부터 콜총리에 이르기까지 모든 총리들은 독일통일의 과업을 잠시도 포기한 적이 없습니다. 이러한 생각은 40년 이상 지속되어온 우리들의 헌법 前文에 가장 잘 나타나있읍니다 :

전독일 국민은 자유로운 의사결정으로 독일통일과 자유국가 독일을 완수 할 책임이 있다.”

옛 동독의 공산주의 정부는 처음부터 국민의뜻에 따라 지지를 받은 것이 아니고, 전체주의적인 권력층과 소련에 의해 유지되었던 것입니다. 그러나 소련의 민주화 물결은 동독인들에게,스스로 궐기 힐 수 있는 자각과 더불어 공산주의의 압제에서 해방하기 위하여 평화적인 혁명을 일으키도록 용기를 주었읍니다.

독일통일은 다음과 같은 이유 때문에 조속하게 완수될 수 있었읍니다.:

첫째 : 전독일 국민들이 통일을 즉시 완수하려는 강한 의지가 있었고,

둘째 : 서독정부와, 자유로운 민주적 선거로 새로 구성된 동독정부도 통일을 즉시 아룩하려고 하였으며.

셋째 : 세계 강대국과 유럽의 모든 이웃국가들이 독일통일에 동의하여 주었기 때문이었고,

넷째 서독 정부가 산속하게 그리고 단호하게 대처하였기 때문임니다.

통일에 대한 강한 열망이 인간의 가슴속에 살아있는 한, 어떤 민족도 정치적이거나 군사적인 권력 때문에 장기간 분단되어 살 수는 없습니다. 통일에 대한 열망을 항상 주의깊게 인식하는 것이 민주주의 국가의 책임있는 정치가의 의무이기도 합니다.

하자만 통일의 목적을 위해 자유, 민주주의 그리고 인간의 기본권리를 무시하여서는 절대로 안됩니다. 통일이라는 공동목표의 실현은 고통받는 인간을 위해 추구해야 할 가치가 충분히 있기 때문입니다. 또한 아러한 열망의 완수를 위해서는 단지 평화적인 수단만이 이용되어야 하며, 폭력적방법은 단연히 배제되어야 합니다.

나는 한국 국민들이 통일을 민주주의적 방식에 의해 꼭 완수하리라 굳게 믿고 있으며, 그 방법은 한국 국민이 스스로 발견하여야 할 것입니다.

마지막으로 나는 한국의 통일이 독일처럼 긍정적으로 잘 진행되기를 기원합니다.

볼프강 쇼이불레

역자서문

1989년 여름 휴가철부터 유럽에서는 이상한 민족이동 현상이 나타나기 시작하였다. 헝가리, 첵코에서 휴가를 보내던 동독국민들이 귀국하지않고 항거리에서 불법으로 장기간 체류하며 오스트리아를 경유하여 서독으로 망명을 시도하였고, 또한 프라하와 비르샤바주재 서독 대사관에는 동독인들이 정치적 망명을 요구하며 집단으로 체류하였다.

이러한 상황이 연일 언론을 통해 보도되자 서독은 외교적으로 이 문제를 해결하기위해 바쁘게 움직였다. 먼저 헝가리가 오스트리아 국경을 개방하여 동독인들의 이동을 도와주었다. 이어 연일 동독인들이 동구의 국가들을 통하여 서독으로 이동하자 동독의 체재는 서서히 무너질 기미가 보였고, 서독은 이내 독일통일을 준비 하였다.

드디어 1989 119, 베르린 장벽이 무너지자 독일인들은 통일을 피부로 느꼈다. 서독전역에서는 동독인을 환영하는 캠패인과, 동독인들이 가득찬 시장바구니를 들고 서독 거리를 활보하는 것을 연일 전국에 보도되었다. 영국 정부는 통일의 과업을 실질적으로 협상하기 시작하였다.

이 책은 볼프강 쇼이불레( Wolfgang Scha”uble)가 기술한 《Der Vertrag---Wie ich u”ber die deutsche Einheit verhandelte (Deutsche Verlags-Anstalt, Stutgart, 1991년 발행)을 완역한 것이다. 볼프강 쇼불레이는 당시 서독 내무장관으로서 동독과의 통일협상의 주인공이었으며, 또한 여당인 기민당(CDU)의 차기 총리 후보자로 각광받을 정치가이다.

그는 통일협상 과정에ㅔ서 항상 자신감과 박력으로 노령한 정치적 수완을 유감없이 발휘, 40년의 벽을 허물고 단기간내에 독일통일을 이룩하였다. 그는 독일 통일이 완수된 뒤 1991 1012, 통일의회의 첫 총리선거에서 여당의 승리를 위하여 자기 고향의 한 마을에서 선거유세를 하는 도중, 정신질한자의 권총 저격을 받았다.

그로부터 5일 동안 그는 혼수상태에 빠져있었으나 기적적으로 소생하였고, 저격사건으로 인해 세 번째 척추 아래가 모두 마비되어 횔체어에 의지하는 신체 장애자가 되고 말았지만, 저격사건 3주 후부터 병상에서 녹음기로 구술하여 이 책을 시작하는 집념을 보여주었다.

물론 독일통일의 원동력은 빌리 브란트9Willy Brandt)에 의해 추진된 동방정책Ostpolitik)에 들 수있다. 브란트 수상은 집권즉시 소련과 접촉하여 1970 8월에 `蘇條約 (모스코바 조약), 12월에는 독`폴란드 조약(바르샤바조약)을 체결하여, 1972 1221일 동서독 기본조약을 체결할 기틀을 마련하였다.

또한 동서독은 1973 9월에 유엔에 동시 가입함으로써 적대관계가 아니라, 서독 동독을 사실상(de facto) 하나의 독립국가로 인정하여 서로 고존하는 관걔를 유지하여 홨다. 이러한 독일의 통일정책 역사를 보면 현재 우리 한국의 상황과 유사함을 발견할 수있다.

남북한은 1991 9, 유엔에 동시가입하였고, 1992 2월에는 남북 사이의 화해의 불가침 및 교류-협력에 관한 합의서”(약칭 기본 합의서)를 조인하였다. 현재 많은 학습단체에서 남북관계와 통일문제를 테마로 열띤 토론을 벌인, 현상은, 통일문제가 이제는 희망사항이 아니라 현실적 문제로 선큼 다가왔기 때문일 것이다.

하지만 통일은 제3자가 한국인에게 선물하는 것이 아니기 때문에, 우리는 지금부터라도 차근차근 순서 있는 통일 방안을 연구하여야 한다. 쇼불레이도 파악하였듯이, 통일이 되면 두 강물이 천천히 순서있게 섞이지 않고 한꺼번에 큰 소용돌이치면서 섞이게 되기 때문에, 예측 가능한 문제점은 사전에 충분히 검토하고 대비해야만 혼란을 방지할 수 있을 것이다.

쇼이불레가 1989년 가을부터 1990 103일 독일 통일 완수까지 직접 동독과의 통일협상 과정에서 나타난 문제점과 고충을 상세하게 기록한 이책이, 한국의 통일정책에 조금이라도 도움이 되었으면 하는 것이 역자의 바람이다.

마지막으로 이 책의 출판에 격려와 도움을 아끼지 않은 동아일보사 출판국 여러분께 감사를 드리고, 모든 원고를 컴퓨터로 입력시켜준 나의 아내와, 귀국후 한번도 주말 나들이를 못 시켜준 나의 두 아이들에게 미안한 말을 전한다. 1992년 여름 역자 한우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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