Friday, November 18, 2016

그림으로 풀어낸 삶과 죽음의 안내서 The Tibetan Book of the DeaD 파트마삼바바 장훙스 풀어씀 장순용 옮김

 제1장 생명을 마칠 때 변화의 상태

임종 중음에서 직면하는 청정한 빛으로 인도하는 방법을 서술한다

법(法 : 진리)을 듣기는 했지만 아직 깨닫지 못한 자들이나, 

이미 깨달았지만 성숙하지 못한 자등이 있을 것이다

그러나 살아있을 때 수행의 차제(단계)를 배우고 다시 근본법에 들었다면,

단박에 근본의 청정한 빛을 직면할 것이다.

그리고 어떤 중음도 거치지 않고 이 위대한 수직으로 오르는 길을 통해서 

 즉각 無生의 法身(법신은 쉽게 말해서 진리의 몸이다. 이 법신은생겨난

적도 없고 소멸한 적도 없이 항상 그대로다)을 증득 하리라

망자가 살아있을 때 관정灌頂(물을 정수리에 붓는 의식)을 한 구루가

직접염송 한다면 가장 좋다. 그렇지 않으면 같은 수행을 하는 도반이나 

같은 종교의 가르침을 배운 뛰어난 大德(고승)이 염송하고,

이마저 불가능 하다면 분명하면서도 정확하게 암송할 수 있는 자가 몇번이나

반복해서 읽어야 한다. 이렇게 하면 망자는 예전에 들었던 기르침을 기억해서

단박에 근본의 청정한 빛에 깨달아 들어가는 동시에 생사의 속박에서 해탈한다.


망자가 내쉬는 숨이 멎었을 때 몸의 영열(靈熱: 생명의 기운)은 반드시 지혜가

머무는 중맥(中脈:중추신경)속으로 가라앉는다(肉團心).


 그때 능지(能知 :능히 아는 지혜)의 識은 즉각본래 갖추어져 있는 청정한 빛을

증험한다. 이때 이미 가라앉은 영열이 필연적으로 오른쪽과 왼쪽의 맥脈으로 

흘러 들어가자 마자 중음의 상태가 곧 현전한다.

이 가르침은 영열이 배꼽의 중맥을 지나 왼쪽의 맥으로 돌입하기 전에

시행되어야 한다. 영열이 유동하는 기간은 망자의 들숨이 잠시 머물러 

있을 동안이며 일반적으로는 밥한끼 먹는 시간이다.

숨이 멋으려 할 때 신식神識이 옮겨가는 게 가장 좋다.

 그러나 그렇게 하지 못했다면 망자를 향해 다음과 같이 훈시 해야 한다.


“존귀한 붓다의 후예여(,망자이름을 부른다) 이제 그대가 진실의 大道를 찾을 때가 왔다. 그대의 숨이 멎으려 하고 있으며, 구루는 그대에게 청정한 빛을 대면 시키려고 한다. 중음세계에서 그대가 직접 청정한 빛의 실상(다르마타)를 체험하도록 하는 것이다. 

일체의 모든 것은 완전히 虛空이다.만리에 구름한점없는 푸른하늘과 같다. 티 하나 없고 아무것도 걸치지 않은 그대의 神識은 마치 진짜 허공 같아서 전체가 투명하여 중심도 없고 변두리도 없다. 이 순간 그대는 청정한 빛을 이식해서 그 속에 머물러야 한다. 나도 동시에 그대를 도와 인도 하리라.”


망자가 내쉬는 숨이 아직 멎지 않았을 때 그의 귀에다 대고 몇 번이나 반복해서 암송한다. 망자의 마음에 깊이 새기기 위한 것이다. 내쉬는 숨이 멎으려 할 때는 임종하는 자를 오른쪽으로 눕게한다. 이 자세를 ‘사자가 누워서 잠자는 모습’이라고 한다. 그리고 목구멍 오른쪽과 왼쪽 동맥의 脈動을 눌러서 뛰지 않게한다. 혹시 임종하는 자가 잠에 빠지려 하거나 깊은 수면 상태에 들어가려하면 이를 막아야 한다. 그리고 목구멍 부위의 동맥은 가볍지만 확실하게 눌러준다.이렇게 하므로서 靈熱은 다시는 아래로 가라앉지 않고 중맥에 머물러 있다가 반드시 브라흐마의 구멍 

(범혈梵穴: 죽은자의 의식이 몸을 빠져나올 때 아홉구멍으로 나아는데, 그중에서 최상의 구멍이다. 겨기로 빠져나온 의식은 무색계에 태어나거나, 천식법에 의해 법신을 성취하거나 정토에 태어난다.) 을 통해 나간다.


청정한 빛을 대면하는 것도 이때부터 시작된다 이때 有情 중생은 法身의 無垢한 實相, 본성인 청정한 빛의 최초 섬광을중음에서 본다. 내쉬는 숨은 이미 끊어졌지만 들이쉬는 숨은 아직 끊어지지 않은 이 시간이 일반 사람에게는 識心이 이미 멸한 것으로 여겨지지만 실제로는 靈熱이 중맥에 머무는 시간이다.

머무는 시간이 오래갈지 잠시일지는 확실하지 않다. 그것은 망자가 선한가 악한가, 맥과 靈熱이 장한가 악한가에 달려있다. 망자가 생전에 신정의상태를 조금이라도 익혔다면, 강한 맥을 갖추고 영열도 머물러서 시간이 오래갈 것이다.

청정한 빛을 대면하기 시작할 때 앞서말한 훈시를 계속해서 염송해야한다. 망자 몸의 각 구멍에서 누르스름한 액체가 흘어나와 멈출 때 까지 계속해야 한다.

 생전에 악한 짓을 한 사람은 강한 맥이없고, 영열에 머물러 있는 시간은 손가라 한 번 튕길 사이일 때도 있고 밥 한끼 먹는 시간일 때도 있다. 밀교의 수행법에서 보편적으로 서술하는 바에 의하면, 이 머물러 있는 시간은 3일 반이고, 다른 密法에서는 대체로 4일 동안 이라고 서술하고 있다.

 그리고 이 기간 내내 청정한 빛의 인도는 중단되지 않아야 한다. 임종하는 자가 죽음의 징후를 스스로 살필 수 있을 때는 다름 사람의 도움 없이도 청정한 빛에 깨달아 갈 수있다. 그러나 임종하는 자가 그렇게 할 수 없을 때는 구루나 동문의 도반이 곁에 앉아서 장차 나타나는 죽음의 현상들을 차례로 상세히 말해주어야 한다.

 망자의 識에 활발히 각인시키기 위해서는 먼저 다음과 같은 비밀의 말을 거듭 당부해야 한다.


“지금 흙이 물로 변하는 징후가 이미 나타났다.” 

( 죽음의 징후는 주로 세가지다. ‘흙이 물로변한다’는 무거운 압력으로 누루는 몸의 느낌이다. ‘불이 불로변한다’는차갑고 축축한 느낌이 마치 물속으로 빠지는 것 같지만, 그러다가 갑자기 차갑고 축축함은 소실되면서 뜨거운 열의 느낌으로 변하는 것이다. ‘불이 바람으로 변한다’는 몸의 느낌이 마치 바람에 불려서 티끌이 되어버리는 것 같다. 매번 변화의 징후는 몸의 외부에도 똑같이 나타난다.

 예컨데 안면의 피부근육이 풀어진다거나, 귀가 들리지 않는 다거나,눈이보이지 않는다거나, 숨을 헐떡거린다거나, 지각을 잃는 것이다. 그래서 법을 염송하는 라마는 실제의 상황을 숙지하여 중음신에서 신체의 껍질을 이탈하면서 나타난 현상 하나하나를 스스로 능히 인식하여 착오가 없게 한다.)


그리고 사망의 징후가 끝나갈무렵 그의 귀에 대고 미세하고 은밀한 목소리로 망자가 한마음으로 결정 짓도록 촉구해야 한다.


“존귀한 붓다의 후예여(승려일 경우는 大德이라 칭한다.) 그대 마음을 흐트려 뜨리지 말아야 하다. 망자가 동문의 신도이거나 혹은 일반 사람인 경우에는 그의 이름을 부르면서 다음과 같이 은밀히 말한다.


“존귀한 붓다의 후예여,이른바 죽음이란 것이 이미 그대에게 다가왔으니, 마음속으로 응당 이렇게 결정해야 한다, ‘이제 과보가 다하여 목숨이 끝날 때이니, 나는 이 기회를 빌어 이렇게 결정해야 하리라. 한량없는 세계의 모든 有情 중생을 사랑하고 불쌍히 여기고 널리 이롭게 하기 위해 나태함 없이정진해서 기필고 유일 하면서도 원만한 佛道를 얻으리라.’

그리고 임종 직후에는 중음에서 청정한 빛의 법신이 중생을 두루이롭게 함을 실증해야 한다. 또 마음속으로 이미 그렇게 사유해서 청정한 빛의 법신을 깨달아 증명했다면 결정코 大手印 경지의 더할 나위없는 은혜를 얻으려고 다음과 같이 결심해야 한다.



‘설사 내가 청정한 빛을 실증할 수 없다고 해도 마음으로는 분명히 중음을 인식하고 아울러 중음의 실상을 뚜렸이 깨달았으리라. 바라노니 앞으로는 갖가지 몸을 나타내서 세계의 갖가지 유정 중생을 이롭게 할 것이며, 유전중생이 다하지 않으면 나의 염원도 다하지않으리라.’


이 염원을 마음에 지닌 채 떼어 놓지 말아야 하나니, 생전에 일상속에서 닦아 지닌 예불 수행 하나 하나도 반드시 잊지말고 기억해야 한다.”


이 경문을 염송할 때는 망자의 귀에 가까이 대고 분명하면서도 정확하게 하나 하나 깊이 망자의 識에 세김으로서 한 찰라도 염원을 여의지 않도록 해야한다. 내쉬는 숨이 끊어진 뒤에는 망자의 수면의 脈을 단단히 눌러주어야 한다. 

그리고 망자가 교리를 깊이 연구해서 

그 경지가 비교적 높은 밀교의 고승이라면 다음과 같이 고해야한다.


“동문이신 대덕이여, 그대는 근본의 청정한 빛을 올바로 경험하고 있으니, 

즉각 그 청정한 빛 속에 안주 해야합니다.”


망자가 동문의 도반이아니면 이렇게 은밀히 말해야 한다.

“존귀한 붓다의 후예여, 그리고 망자의 이름을 부른다 귀 기울여 들어라. 지실한 바탕인 청정한 빛이 찬란히 발산하면서 그대 앞에 나타났느니, 그대는 반드시 인식해야한다. 붓다 후예여, 그대에게 갖춰진 지혜는 실제로는 본래 空이라서 形質인 듯 色인듯 해도 똑같이 空幻에 속해서 털끝만큼의 體도 갖추지 않았다. 이 지혜가 바로 청정한 빛의 실상인 普賢의 법게이다. 그대의 지혜가 비록 空이라도 결코 體없는 공이라고 보지말라. 실제로 이 지혜는 장애가 없어서 광채가 완연한 活潑發(생기가 활발하게 일어나는 모슴을 형용하는 말.)한 경지로서 쾌적하고 안락하며,  淸淨識과

( 최초의 청정한 빛은 바로 실상으로서 환하게 밝은 법신이다. 만약 업력 때문에 변별해 인식하지 못하면 빛의 색깔이 어둡게 변하지만 그래도 의지할 수 있다 ) 

보현의 불성은 광명의 眞空으로서 빛의 體를 여의지 않은 채 생기지도 않았고 멸하지도 않으니, 바로 아미타불, 즉 無量光佛이다. 지금까지 증명 했듯이, 그대 지혜의 진공이 佛心이 아님이 없으며, 또한 바로 스스로 淸淨本識이 있는 것이니, 스스로 응당 불심에 영원히 안주해야 하리라.”


이 경문을 정확히 세 번에서 일곱 번까지 염송해서 망자로하여금 생전에 스승이 비밀리에 전해준 깊고깊은 불법을 상기할 수 있게 해야 한다.그다음 청정한 본래의 빛깔이 곧청정한 빛임을 알게 해서 識과 빛이 융화한 법신을 망자가 영원히 계합하면, 생사의 속박에서 반드시 해탈할 수 있으리라. 


 임종 중음의 제 2단계에 나타나는 청정한 빛  

지금까지의 念誦을 다 끝내고나면 청정한 빛의 현현을 인식할 수 있어서 생사의 속박에서 해탈 할 수 있다.

설사 만자가 막막해서 변별해 인식하지 못할지라도 아직은 제 2단계 청정한 빛에 깨달아 들어갈수 있다. 이 빛이 출현할 때는 망자의 숨이 끊어지고 나서 밥 한 끼 먹을 시간이 자나서이다.  

사람의 업력이 선한가 악한가에 따라서 靈熱은 아래로 흐르면서 오른쪽 맥을거치기도하고 왼쪽 맥을 거치기도하며, 스스로 梵穴로 나가기도하고 다른 구멍으로 나가기도 하면서 신체를 이탈 한다. 그리고 나면 心地가 환연히 밝아진다.

심지 

 靈熱의 識體가 몸을 이탈할 때 망자는 즉시 昏沈 상태에 들어간다 이때는 이미 본 천정한 빛이 혼침으로 대충 소멸해서 그 청정한 빛의 색깔이 어둡게 변한다. 예컨데 공을 땅바각에 쳐서 튀어오르게 하면, 처음엔 아주 높이 튀어 오르지만 두 번째 세 번째에는 점점 낮게 튀닥 마지막엔 땅에 붙어서 다시는 튀어오르지 않는데, 

식체가 몸을 디탈하는 것도 이와 마찬가지이다. 처음 이탈했을 땐 상승 했다가 점점 아래로 가라앉으며, 마지막엔 업력 때문에 胎에 의탁해 거듭 태어난다. 식체가 몸을 이탈 하자마자 망자는 스스로 묻는다.

“지금 죽었는가 아니면 아직 죽지않았는가 ?

하지만 너무나 크게 알지를 못한다. 동시에 가족이나 벗들을 살아있을 때와 마찬가지로 볼 수 있고, 통곡하고 애도하는 소리도 들을 수 있다.

 이때는 자신의 업력이 환영으로 빚어내는 두려운 현상이 아직 나타나지 않았고, 地府의 주재자에게 속한 귀신, 도깨비 같은 공포스러운 경계도 아직 생기지 않고있다. 

바로 이시기에 잘 인도 해야 한다.

경건하고 성실한 망자는 이미 성취했고, 

아직 성취하지 못한 자는 겨우 像을 관찰 할 수 있다.

전자에 속한 사람에겐 그 이름을 세 번 부른 뒤 청정한 빛을 깨닫게 하는 앞서 말한 가르침을 반복해서 은밀히 암송한다.

후자에 속한 사람에겐 생전에 받들고 수호하는 존자를 觀想하는 儀軌를 크게 읽어주면서 다음과 같이 고해야 한다.


  “고귀한 아무개여, 그대의 본존 수호신 아담을 관상하기 바란다. 그대의 신심을 미혹시키지 말고 정신을 집중해서 그대의 수호신을 진지하게 관상하라. 그대는 마음속으로 반드시 실체적 형상이없는 본존수호신을 마치 물에 거꾸로 비친 달 그림자 처럼 구체적 형상이 없다고 상상 하라.”


이렇게 망자의 마음에 깊이깊이 새겨준다. 만약 일반사람이라면 觀自在보살의 상을 관상하게 하라. 이렇게 염송하면 설사 망자로 하여금 중음을 증험시키지는 못해도 결정코 인식해서 털끝만큼의 의심도 없다. 망자가 생전에 가르침을 들은 적이 있어서 청정한 빛을 대면했어도 아직 익숙하지 못하기 때문에 자기 힘으로는 중음을 변별해 인식할 수 없다.


그렇다면 응당 스승이나 동문의 법다운 비밀의 말을 마음에 활발하게 새겨서 들어가도록 해야 한다. 어떤 망자는 업이 익숙하더라도 병으로 인한 갑작스런 죽음으로 心靈이 환영에 항거할 수 없기 때문에 이러한 훈계의 말이 지극히 필요하다. 또 생전에 익숙했을 지라도 宿願을 갚지 못하고 받은 은혜를 보답하지 못한 망자는 불쌍한 경계에 떨어지는데,


이들에게도 앞서말한 훈계가 적잖이 필요하다,

 첫번째 경지의 중음에서 시의에 맞게 깨달아 증명하는 것이 가장 上乘이다. 그러나 깨달아 마치지 못할 경우

반드시 두 번째 경지의 중음 기간 내에 명석한 염송에 의지할 수 있으면 망자는 근본 지혜를 회복하여 속박에서 해탈한다. 두 번째 경지의 중음에서 망자의 몸은 순수한 幻體이다

자신이 죽었는지 살았는지 알지 못하는데,

 심지(心地 :마음바탕) 는 이미 확연히 밝아진다. 앞서말한 훈계의 말을 암송하여 효과가 있으면 자식의 실상과 어머니의 실상이 즉시 화합해서 더 이상 업력의 지배를 받지않는다. 청정한 빛이 현현하자 업력이 흩어져 소멸하는데, 비유컨데 태양이 떠오르면 어둠이 단박에 없어지는 것과 같다

 禪定의 증명은 지식의 실상아고, 중음이 증명한 평형상태는 바로 어머니의 실상이다.


첫 번째 경지와 두 번째 경지의 중음에서 망자의 몸은 “의식으로 능히 아는 지혜” 아님이 없지만 , 그 미치고 있는 활동에는 오히려 법위가 있다. 이때 염송하여 효과가 있다면 소기의 목적에 도달할 수 있는데, 그 이유는 아직 업력이 현저하지 않아서 망자가 覺性을 여윈체 이리저리 표류하지 않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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