Friday, November 18, 2016

Tibetan The Book of Dead

그림으로 풀어낸 삶과 죽음의 안내서 티베트 사자의 서

THE TIBETAN BOOK OF THE DEAD

파드마삼바바 장훙수 풀어씀 장순용 옮김


피안의 여행자를 위한 완전하고 자비로운 여행지도

8세기 티베트 불교의 대성인 파드마삼바바가

죽음과 환생의 중간 지대인 바르도를 여행하고 돌아와

죽음의 과정과 사후의 세계의 모습을 상세히 기록한 전설의 경전 !

1200년만에 발굴되어 서구의 기독교적 영혼관에 큰 충격을 안겨주고

정신 심리학자 카를 융에게 깊은 영향을 미친 인류 최고의 지혜 !

THE TIBETAN BOOK OF THE DEAD

"죽음의 순간, 生을 직시하라! 께달음이 온다 ! "



*세계에 대한 가장 체계적이고 상세한 설명서 !

사람이 죽으면 어디로 갈까? 죽음 이후의 세계는어떤 모습일까 ?

'죽음'의 모든 비밀을 파헤치는 티베트의 최고의 경전 !

[이집트 사자의 서]와 더불어 죽음을 직시하는 지적이고 영적인 단 한권의 책 !

생과 사의 경계에서 광대한 깨달음의 세계가 펼쳐진다 !


*삶의 마지막에 가장 필요한 책 !

티베트에서는 사람이 죽은 뒤 49일간

 눈부신 빛이나 무서운 형상의 붓다를 만나는 시험을 거쳐

해탈과 윤회의 갈림길에 선다고 믿는다.

이때 스승이나 가족이 [티베트 사자의 서] 법문을 읽어주면

망자의 영은 이를 듣기만해도 해탈할 수 있다.


* 살아있는 모든 것에 죽음은 차별없이 찾아온다!

죽음은 삶의 동반자이자 그림자이고, 우리는 항상 죽음을 벗하며 살아간다.

살면서 죽음준비하고 인지하는 것이야말로

 삶의 매순간을 더욱 반짝이게하는 비밀의 열쇠다 !

죽음은 삶의 끝이아니라 완성이며,

새로운 삶의 시작점이자 깨달음의 도약대이다 !


  1. 중음에서 가르침을 듣는 것만으로도 해탈의 얻는 위대한 법,(부록)

이책의 원고말미에 正文으로13페이지에 걸친 계송이 이어져있다.

목판본에는 없는 것이지만,

  법을 암송하는 라마가 입으로 귀에다 전해주면서 응용해야 할 때는

결국 암송할 수 있어야 한다. 다음과 같이 번역해서 싣는다.


모든 부처와 보살들에게 경건히 청하는 게송

( 즉 모든 부처와 보살들에게 가피를 정하는 기원의 게송 )


彌留미류(病이 오래 낮지 아니함) 즈음에

모든 부처와 보살들의 가피를 경건히 청하는 경문은 다음과 같다.

 자기자신이나 그 권속들이 극진히 마련한 것을 삼보에 공양하고,

마음은 다시 광대한 공양을 관하여 이루고

 손으로는 묘한 향을 든채 정성껏 공경하면서 게송을 다음과 같이 노래한다.


"대자대비하고,누진통漏盡通을 갖추고, 지혜의 눈으로 관조하고,

사랑으로 유정중생을 돕고,

비원悲願을 버리지 않으시면서 시방에 항상 머무는 모든 부처와 보살이여,

방편으로 바치는 공양과 마음으로 관하는 공양을받아서 누리소서.

자비의 존자들 께서는 一切智를 갖추고,비원悲願을 갖추고,

성스러운 행을 갖추워서 유정중생을 수호함이 한량없고 가이없어

 불가사의不可思議 합니다.

자비존자 들이여, 유정중생 아무개 가 생에서 벗어나 죽음으로 들어가면서

이 티끌세상을 끊고 험난함에 직면하고 있읍니다. 친구도 없이 홀로가느라고

 지극히 외롭고 고통스러우며, 돕거나 보호해줄 자도 없고 의자할 곳도 없읍니다.

고향을 떠난 뒤 해는 저물고 갈길은 아득해서 마치 겹겹의 안개속으로 들어간 듯하고,  

마치 낭떠러지에서 추락한 듯하고, 마치 숲속으로 달려들어가는 듯합니다.

업의 힘이 추격해서 큰 광야에서 낙오한 듯 하고, 큰 바다에 표류한 듯합니다.

업의 바람이 휩쓸고 가면 몸은 멈추질 못합니다.

때로는 원한에 집착하기도하고,

때로는 악귀나 염라대왕의 사자를 만나서 바라보기만 해도 두려워 합니다.

 업의 감응으로 생사의 순환이 그치질 않는데,

힘이 다하여 엎어지고 자빠지면서 연민을 자아냅니다.

자비 존자들이여, 유정중생 아무개는 보호도 받지못하고 의지할 곳도 없읍니다.

자비와 연민을 간절히 기원하오니, 구원의 손길을 내려 지켜주소서.

자비의 은혜와 깊 사랑스런 자식을 보호하듯이 하시고,

그를 도와서 중음의 근심과 고통을 없애주소서.

 업의 바람을 막아 그치게 하시고,

악귀를 막아 여의게 함으로서 중음의 험난한 경계에서 안전하게 구출해주소서.

자비 존자들이여, 자비와 연민을 버리지 마시고, 

광대한 서원誓願을 버리지 마옵소서. 

그리하여 온갖 고통을 쫓지 않도록 그를 보호하고 그로 하여금 알게하소서.

 모든 부처와 보살들의 보편적인 은혜의 가파인 빛의 갈고리로 

거두워 줌으로서 멋대로 업이 감응한 고통의 갈래로 빠져들게 하지 마옵소서.

 경건하고 간절한 삼보의 은혜로 가피를 드리워서

 중음의 다함없는 고통을 여의도록 수호하여 주소서.

"법을 주재하는 자가 선창하고그의 인도로 대중들은 

그에 따라 염송 하는데, 지극히 경건한 정성으로 세 번 반복한다.


 2. 중음의 험난함에서 보호해주길 기원하는 게송문


시방 삼세의 모든 부처와 보살들이여.

보현普賢 여래, 안락 존자들, 분노 존자들이여, 바다처럼 모인 훌륭한 대중들이여,

스승과 모든하늘, 공행천모空行天母여, 자비를 내려 이 기원을 들어주소서.

스승과 天母들에게 공경히 예배하오니, 연민의 마음으로 우리를 인도해 주소서

환영과 망상을 깨닫지못해서 생사에 빠져들어가니,

광명에 기대어 도를 듣고, 사유하고, 닦기를 원하나이다.

판정을 하신 스승 께서는 앞에서 인도하시고,

모든 天母들께서는 뒤에서돕고 수호하셔서

오직 중음의 험난함을 여의도록 구원해 주시길 원하옵고,

오직 원만한 불과를 중득하길 원하나이다.

분노가 원인이 되여서 생사에 빠져들어갈 때,

대원경지가 찬란히 빛을 비추니 금강살타는 앞에서 인도하시고,

감의불모藍衣佛母는 뒤에서 돕고 수호하셔서

오직 中陰의 험난함을 여의도록 구원해주시길 원하옵고,

오직 원만한 佛果를 중득하길 원하나이다.

교만驕慢이 원인이 되어서 생사에 빠져들 때

평등성지가 찬란히 빛을 비추니 보성여래께서는 아래에서 인도하시고

혜안불모慧眼佛母는 뒤에서 돕고 수호하셔서

오직 中陰의 험난함을 여의토록 구원해 주시길 원하옵고

오직 원만한 佛果를 중득하길 원하나이다.

탐욕貪慾이 원인 되어서 生死에 빠져들어갈 때,

묘관찰지妙觀察智가 찬란히 빛을 비추니

미타여래彌陀如來께서앞에서 인도하시고 白衣佛母께서 뒤에서 돕고 수호하셔서,

오직 중음의 험난함을 여의도록 구원해 주길 원하옵고

오직원만한 불과를 중득하길 원하나이다.

질투가 원인이 되어서 생사에 빠져들어갈 때,

  성소작지가 찬란히 빛을 비추니 불공여래 께서는 앞에서 인도 하시고,

  고통을 구원하는 도모度母께서 뒤에서 돕고 수호 하셔서

오직 중음의 험난함을 여의토록 구원해 주길 원하옵고,

오직 원만한 불과를 증득하길 원하나이다.

 무명이 원인이 되어 생사에 빠져들어갈 때,

법게의 지혜광명智慧光明이 찬란히 빛을 비추니 

大日如來께서 앞에서 인도하시고,

금강허공불교金剛虛空佛母께서 뒤에서 돕고 수호하셔서

오직 중음의 험난함을 여의토록 구원해 주길 원하옵고,

오작 원만한 불과를 중득하길 원하나이다.

 환영과 앙상의 깊은 집착으로 중음에 빠져들어갈 때,

  광명에 기대어 공포를 없애기를 원하나이다.

분노 존자들이 앞에서 인도 하시고,

大忿怒佛母의 어머니께서 뒤에서 돕고 수호하셔서

오직 중음의 험난함을 여의도록 구원해주시길 원 하옵고,

오직 원만한 불과를 중득하길 원하나이다.

축적된 習氣가 원인이 되어서 생사에 빠져들 때, 

함께 태어난 지혜 광명이 찬란히 빛을 비추니 

용감한 지명께서 앞에서 인도 하시고,

公行天母께서 뒤에서 돕고 수호하셔서

오직 중음의 험난함을 여의토록 구원해 주길 원하옵고,

오직 원만한 불과를 중득하길 원하나이다.

오직 바라노니 空大가 일어나도 적이되지 말기를,

하여 오직 바라노니, 푸른빛의 불국토를 직접보게 되기를,

오직바라노니, 水大가 일어나도 적이되지 말기를, 하여

오직 바라노니, 힌빛의 불국토를 직접보게 되기를 오직 바라노니,

地大가 일어나도 적이되지 말기를,

하여 오직바라노니, 노란빛의 불국토를 직접보게 되기를,

오직 바라노니, 火大가 일어나도 적이되지 말기를,

하여 오직 바라노니, 붉은 빛의 불국토를 직접보게 되기를,

오직바라노니, 風大가 일어나도, 적이되지 말기를,

하여 오직 바라노니,초록빛의 불국토를 직접보게 되기를,

오직 바라노니, 무지개 빛이 일어나도 적이되지 말기를. 하여

오직 바라노니, 일체의 불국토를 직접보게 되기를 

오직 바라노니,

중음의 모든 음성이 오로자 자신의 음성이란 걸 실답게 명료히 알기를 

오직 바라노니, 

중의 모든음성이 오로지 자신의 광염이란 실 답게 명료히 알기를 

오직 바라노니, 

중음의 모든 광염이 오로지 자신의 광염이란 걸 실답게 명료히 알기를, 

오직 바라노니,

삼신의 진실한 자성을 중음의 경계안에서 실답게 가려내 증명하기를 

 여섯가지


중음의 경책 게송문 (즉 여섯가지 중음 경계의 금보적인 경책게송) 


태에처한 중음 경계의 징후가 현전하니, 

정지하고 수행할 뿐 게으름은 버려야 한다.

마음은 실상에 머물고, 도를 듣고, 사유하고, 닦아서,

색과 마음의 자성을, 깨달아서 三身을 증명하고,

한 번 사람 몸을 받으면, 

찰라라도 게으르지말고 이번 생을 허비하지 말라.

꿈속 중음 경계의 징후가 현전하니,

 시체처럼 긴잠인 무명을 버려야하고 바라노니, 

본연의 경계에 식이 머무소서.

꿈의 사성은 신령스럽게 변화하는 청정한 빛이니,

나태하고 용렬한 축생의 종류를 본받지 말고 

꿈을 관하면서도 선정에 들어 있는 것,

이 둘을 쌍으로 닦는 것이야 말로 고귀하다.

선정 중음 경계의 징후가 현전하니,

집착과 애욕과 열등한 뜻을 버려야 하며 

오직 정각의 광명과 계합하길 염원하고,

오직 무생법인에 증명해 들어가길 원합니다.

피와 살로된 몸은 이때 반드시 버리면서,

이 몸이 아주 허망한 환영임을 명료히 알게 하소서.

  실상 중음 경계의 징후가 현전하니

일체현상의 공포를 반드시 없애야 하며

어떤 환영의 모습이든 스스로의 식이 변한 것이고

중음의 형상은 실답지않는 환영일 뿐이며,

위깅일발의 순간이 바로 이때이지만,

안락 존자든 분노 존자든 식의 환영인데 무얼 두려워하랴.

투생중음 경계의 징후가 현전하니,

한마음으로 염원을 갖추워 굳건히 지니면서 잃지 말라.

착한 업이 계속 이어져서 짬이없이 정진하고,

오직 태를 막아서 잘못을 깨달아 들어가지 않게하고

노력과 수희隨喜로 그때를 위하게 하고,

쌍신을 관상하여 애착과 미움을 끊게 하소서.


임종이 다가왔는데 어찌 아직도 망설이는가?

무익無益한 짓을 하면서 한갓 이번 생을 저버리고 있으니,

시기를 놓친다면 어찌 지혜롭다고 말하겠는가?

마치 보배산에 들어갔다가 헛되히 돌아와 탄식하는 것과 같으니,

이미 불법이 그대에게 필요하다는 걸 알았다면,

저 교법을 어찌 닦고 익히지 않을 수 있겠는가!

게송을 맺으면서 대성취하신 스승께서는 일찍이 가르쳐 보였으니,

스승께서 전해주신 교법을 잘기억해 지니지 않으면

스스로를 해치는 것과 다름없으니 배우는 자는 경계해야 하며

기본적인 게송이 경문은 중요하니 반드시 알아야 한다.


중음의 공포에서 벗어나도록 보호를 염원하는 게송


나는 이제 업보가 다한 시기에 이르렀다.

생전의 권속은 나에게 소용이 없으며, 

외로운 혼자 몸으로 중음을 배회 할 뿐이니, 

안락 존자와 분노 존자 들이여, 

불상히 여겨서, 무명의 어둠을 남김없이 없애주소서.

사랑하는 사람들과 헤어지고 홀로 된 몸으로 배회할때,

보이는 환영의 모습은 자신의 식이 변하여 나타난 것이니,

오직 바라노니, 모든 부처님이시여,

자비로운 은혜의 가파와 위엄의 힘으로 공포를 해결해 없애주소서

다섯가지 지혜의 빛이 찬란히 비출 때는 바라노니,

공포를 없애서 자신의 體를 깨닫게 하시고

안락 존자와 분노 존자들이 나타나실 때는,

중음의 환상을 깨달아 두려움이 없게 하소서.

악업의 힘이 무거워서 온갖 고통을 맛볼 때,

안락 존자와 분노 존자 들이여, 재난과 고통을 없애 주시고,

실상의 소리가 천 개의 천둥처럼 우르릉 거릴 때 바라노니,

모두 대승법의 소리로 바꾸워 지게 하소서.

업의 장애가 몸을 구속해서 믿고 의지할 곳이 없을 때,

안락 존자와 분노 존자들이여, 저를 돕고 수호하시고,

업의 장애로 맷힌 습기 때문에 온갖고통을 받을 때,

청정한 빛의 等持가 내 앞에 나타나 임하게 하소서.

투생 中陰에서 천식遷識으로 가서 태어날 때,

천마의 사악한 빛이 내 앞에 임하지 않도록 하시고,

어떤 즐거운국토든 염원대로 가서 태어났을 때 바라노니,

업에서 비롯한 환영의 공포를 주소서.

황야에서 사나운 짐승이 무섭게 으르렁 거릴 때

그 소리가 육자 대명의 진언으로 비뀌게 하시고,

비와 눈이 몰아치고 바람과 안개가 미친듯이 밀려올 때,

반드시 天眼에 의자한 智慧의 빛으로 홀로 비추게 하소서.

중음에서 공통의 업을 가진 모든 유정 중생들이,

저마다 시기함이 없이 훌룡한 국토에 가서 태어나게 하시고,

아귀의 배고픔과 목마름, 그리고 지옥의 추위와 더위, 바라노니,

이러한 苦楚를 벗어날 수 있게 하소서.

미래의 부모가 방안에 있는 환영의 모습을,

안락 존자와 분노존자의 쌍신과 똑같이 보게 하시고,

곳에 따라 전생할 때마다 유정 중생을 이롭게 해서,

온갖 相好를 갖춘 원만한 몸을 얻도록 하소서

오직 바라노니, 轉生 할 때는 남자 몸을 얻어서,

나를 보고 나에 대해 듣는 자마다 다 해탈케 하시고,

악엉을 차단하고 없애서 다시는 쫓겨다니지 않게하며,

어떤 복의 과보이든 그 복이 배로 늘어나게 하소서.

오직 바라노니,어느 곳에든지 전생 할 때 마다,

안락 존자와 분노 존자들을 만나게 하시고,

나면서부터 말할 수 있고 나면서 부터 걸을 수 있어서,

숙명통宿命通의 지혜로 전생을 잘 기억하게 하소서.

상근기이든 중근기이든 하근기이든 보리도菩提道의 단계를,

  보고,듣고,사유해서 그 정수까지 깊어지도록 하시고.

어느곳에 태어나든 크나큰 상서로움을 갖춤으로서,

일체유정 중생들이 골고루 이익과 즐거움을 얻도록 하소서.

안락 존자와 분노 존자와 분노 존자들의 장엄한 묘한 몸과妙身

권속들의 수명이 끝이없는 국토와 나아가

모든 존자와 성스러운 부처의 명호에 이르기 까지 ,

나와 중생들이 똑같이 중득하기를 기원하나이다.

안락 존자와 분노 존자, 그리고 보현 부처의 빛으로서,

원만하고 청정한 실상법신의 은혜로운 파동으로서

무릇 온갖 염원하는 바를 성취하지 않음이 없게 하소서.


 책을 쓰고난 뒤의 회항


이 책의 원고 끝머리에 편집자인 어느 라마가 회항한 게송이 있어서 소개한다.

 비밀의 뜻이라면 세상 사람은 스스로를 낮추고 경문만을 우뚝 높혀서

누구나 추앙 할 수 있도록 해야 하는 데, 이 라마도 그 뜻을 성실히 지켜서

자신의 이름을 싣지않았다.

"이제 나는 순수함이 충만한 의도로 교법을 편집하였다. 

 오직 바라노니,이 성인에 의해 어느 세상에서나 도움도 보호도 받지 못하고 

 태어나는몸들의 어머니도 똑같이 불도를 중득 하소서,

묘하고 상서로운 빛이 인도를 두루 비추고 아울러

이 책도 똑같이 상서로움을 이루기를 바라오며

복과 선을 갖추어서 나의 염원도 원만하길 바랍니다."


[옮긴이의 말]

젊은 시절, 윤회전생에 대해 의문을 품은 적이있다.

無我가 근본 진리라면, 도대체 '나' 가 없는데 무엇이 윤회전생한다는 말인가?

 또 절에서 49재를 지낸다는 말을 듣고 왜 49일인지 궁금하게 여겼던 적도 있었다.

도중에 그것이 죽음의 과정이란 말을 듣기는 했지만,

그 상세한 내용에 대해서는 알지 못했다. 

이렇게 상식적이지만 본질적인 의문을 품은

사람들은 이 책 [티베트 사자의 서]를 보면 의문이 풀릴 것이다.

[티베트 사자의 서]에서는 실체가 없는 우리의 식이 윤회의 주제이고,

 죽음의 과정은

그 식이 임종 순간부터 49일동안 체험하는 경계란 사실을 알려주고 있다.

 또 [티베트 사자의 서]는 죽음의 과정만 아니라

해탈의 길 까지 제시하고 있는데

그 내용은 대승불교의 근본 진리와 정확히 부합하고 있다.

죽음은 기피해야 할 그 무언가가 아니라 냉정히 이해하고 받아들여야 할 현상이다.

죽음에 대한 이해야 말로 오히려 

우리의 삶을 올바로 이끌어주는 길잡이가 될 수 있기 때문이다.

[티베트 사자의 서]를 보면 죽음의 과정 속에서

우리가 겪게되는 온갖 경계를 알 수 있는데,

  이것만으로도 생전의 삶에서 몸, 입, 뜻의 삼업이 청정해야하고

탐욕, 성냄, 어리석음의 삼독을 멀리해야 한다는 사실을 뼈져리게 깨달을 수 있다.

요즘 Well Being이란 말이 유행하면서 Well Dying에 대한 관심도 급격히 고조되고 있다. 특히 사회가 고령화되면서 죽음의 과정을 제대로 인도하는 문제는 더욱 중시되고 있다.  

불교계에서도 예로부터 망자에대한 제의 祭儀 를 집행하고 있다. 

하지만 개인적으로는 이 [티베트 사자의 서]의 가르침을 깨닫고 체득해서 

실제적으로 망자를 인도하는 법사가 나오기를 바란다. 

어느 종교를 막론하고 죽음의 과정을 이토록 상세하게 묘사하면서 

망자를 해탈로 인도하는 경전은 전후 무후하다고 할 수 있기 때문이다.

나아가 [티베트 사자의서]의 가르침대로 망자를 인도해서

엘다잉의 문화가 정착된다면,

불교의 사회적 공헌은 더 이상 클 수 없을 정도로 지대 할 것이다.

2008 11월 장순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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