Friday, March 18, 2011

일본대지진, 우리의 자화상

일본 대지진, 우리의 자화상

편집국 코디네이터 이원영

큰 재난에도 놀라운 절재력--- 극성으로 떼 쓰는 우리와 대조 새로운 우정 쌓는 계기 되길

일본이 최악의 지진 대참사로 말 못할 슬픔에 잠겨 있읍니다. 모든 것을 휩쓸어가는 쓰나미 영상은 보는 이들로 하여금 억장이 무너지는 공포와 아픔을 느끼게 합니다. 어디서 부터 위로를 해야할지, 참사에서 비껴 서있는 우리로 서는 그저 안타까움만 토할 뿐입니다.

국외자로서 기분이 이럴진대 직접 참사를 겪은 유가족, 이재민, 일본국민들의 마음이야 오죽 하겠습니까. 아마 우리가 느끼는 감정의 100 1000배 이상의 아픔이 가슴을 후벼파고 있지 않을까요.

이번 참사 현장에는 각국 언론들이 수많은 특파원들을 파견해 현지 사정을 생생하게 전하고 있읍니다. 그런 가운데 한국 언론은 물론이고 외국 언론들도 하나같이 놀라는 사실이 있읍니다. 바로 일본인들의 무서운 절제력 입니다. 생지옥이나 다름없는 현실을 보도한 이론인들이 보여주고 있는 뱅정한 위기 대처방식에 외신 기자들은 놀라움을 금치 못하고 있읍니다. 뉴욕타임스는 인류가 더 강해지고 있다는 것을 일본인들이 보여주고 있다고 썼읍니다.

먹을 것, 입을 것 없이 몸만 빠져나온 이재민들은 한 모금의 물을 얻기 위해 수백미터의 중울 섭니다. 먹을 것이 모자라면 자신의 배가 곯을지언정 다른 사람에게 주라고 양보합니다. 이재민들의 어려운 실상을 보도하는 어느 T V 화면에서도 누구를 원망하거나 울부짓는 모습은 보이자 않습니다. 그들은 한결같이 하루 속히 복구되기를 희망했습니다.

전기가 모자란다고 하니 전국민이 스스로 프러그를 먼저 뽑습니다. 납보다 더 큰 희생을 당한 사람도 있는데 혼자서 울부짓을 수 없다며 울음을 꾹꾹 참아냅니다. 자기에게 닥친 불행을 그저 하늘 뜻으로 돌리고 누구를 탓하지도 않습니다.

일본의 언론들도 자극적인 모습을 최대한 줄이고 재건을 위한 지혜를 모으는데 앞장서고 있읍니다. 형언할 수 없는 참사 속에서 보여주는 일본인들의 이런 보습니 세계인들에게 감동을 던져주고 있는 것입니다.

그들을 지켜보면서 거꾸로 한국인들의 자화상을 떠올려 봅니다.

폭설이 와서 비닐하우스가 무너져도, 구제역으로 소-돼지가 살처분 돼도 공무언과 정부를 욕하는 인터뷰가 꼭 나옵니다. 비가와서 피해를 입었으면 기상청 욕하고, 눈으로 도로가 막히면 교통당국을 바난합니다.

줄을 서서 기다릴 살황이면 어김없이 분통을 터뜨리는 장면이 T V 화면에 빠지지 않습니다.

큰 사건이 터지면 음모론이 횡행하고, 피해를 당한 사람들은 스스로 아픈마음을 삭이기 보다는 여러 목소리를 모아 더 크게 보상을 외침니다. 자연재해를 운명이려니 하기보다는 누군가 표적을 정해 그에게 책임을 물으려합니다. 재난 앞에 - 日은 이렇게 많이 다릅니다.

이번 재난을 계기로 우리가 미처 잘알지 못했던 그들의 내공을 읽을 수 있게 된 것 같읍니다. 일본인들이 보여준 침착과 절제 속에서 그들은 반드시 다시 일어설 수 있을 것이란 확신을 읽습니다. 그리고 그들은 혼란의 과정에서 자신의 욕심을 먼저 채우려 하기 보다 이웃을 배려하고 그 공동체를 위해 자신을 희생할 자세를 보일 것이라 믿어 집니다. 그래서 현실은 아무리 암울해도 그들은 절망을 희망으로 바꿀 것이란 믿음을 같게 합니다.

국제사회에서 친구가 없다는 일본은 이번 재난 때문에 우호와 동정을 보내는 친구들을 많이 갖게 될 것 같습니다. 고통 속에 있는 친구를 진심으로 위로할때 우정은 깊어질 것입니다.

한국과 일본이 존경심에 바탕을 둔 깊은 우정을 세우는 기회가 되기를 회망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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