Friday, December 18, 2009

법정스님 삶의 종점에서 남는것

삶의 종점에서 남는 것

눈이 내린다. 오랜만이다. 아직은 이 산중에 눈다운 눈 은 내리지 않았다.
내가 산을 비운사이 두어 차레 눈이 다녀가면서 응달에 그 자취를 남기긴 했지만 많은
양은 아니다. 난로가에 앉아 모처럼 차를 마셨다. 초겨울 들어 내 몸에 세월의 무게를
느끼면서 하루도 거르지 않았던 차를 거의 마시지 못했다.
뭔가 속이 채워지지 않은 채 빽빽했고 내 속뜰에 겨울 숲이 들어선 느낌이었다.
오늘 마신 차로 인해 그 숲에 얼마쯤 울기가 감돌았다.
차의 향기와 맛 속에 맑은 평안이 깃들어 있었다. 한동안 표정을 잃은 체 다소곳이
놓여 있던 다기에 생기가 도는 것을 보고 그동안 돌보지 못했음을 미안해했다.

우리가 살 만큼 살다가 삶의 종점에 다다랐을 때 남는 것은 과연 무엇일까.
요즘 가끔 생각 하는 과제다. 지금 내가 가지고 있는 것은 원칙적으로 내 것이 아니다.
그것은 내가 한때 맡아 가지고 있는 것일 뿐이다. 재물이 됐건 명예가 됐건
그것은 본질적으로 내 차지일 수 없다. 내가 그곳에 잠시 머무는 동안 그림자처럼
따르는 부수적인 것들이다.
진정으로 내 것이 있다면 그것은 내가 그 곳을 떠난 뒤에도 그 전과 다름없이
그 속에 남아 있는 것이어야 한다.
그러나 내가 지금 가지고 있는 것은 내 것이 아님을 알아야 한다.
내가 평소 이웃에게 나눈 친절과 따뜻한 마음씨로 쌓아올린 덕행만이 시간과
장소의 벽을 넘어 오래도록 나를 이룰 것이다.
따라서 이웃에게 베푼 것만이 진정으로 내 것이 될 수 있다. 옛말에 '아무것도
가져가지 못하고 자신이 지은 업만 따를 뿐이다.'라는 뜻이 여기에 있다.

마하트마 간디는 일찍이 이와 같이 말했다.
"이 세상은 우리들의 필요를 위해서는 풍요롭지만 탐욕을 위해서는 궁핍한 곳이다."
날이 갈수록 사람이 살아가는 데 위험이 되고 있는 지구 생태계의 위기 앞에
섬광처럼 떠오르은 잠언이다.
우리가 살아가는 데 없어서는 안 될 기본적인 생활필수품 외에는 대개가
탐욕에서 기인한 사치요, 허영이다. 적어도 굶주린 이웃이 있는 현재의 상황에서는
이 사치와 허영이 세상을 궁핍하게 만들고 있다. 세계 전체 인구의 5퍼센트밖에
안 되는 미국인들이 전 세게자원의 3분의1 이상을 독점적으로 점유하고 소비하고있다.
이런 불합리하고 비인간적인 미국식 생활 방식이 세계 평화와 지구 생태계를 위협하는
커다란 재앙이다.

신자유주의를 표방한 미국의 새로운 패턴 전략인 '세계화' 경제는 무역자유화와
시장개방 으로 탐욕을 부채질하고 있다. 그 그늘 아래에서 자원이 고갈되고,
생태계가 파괴되고, 빈부의 격차가 날로 심화되고 있다.
날마다 세계 전역에서 3만 5천 명의 어린이들이 먹지 못해 굶어서 죽어간다.
세계 전역에서 10억 명의 사람들이 하루에 1달러로 목숨을 이어가고,
10억명 이상이 마실 물을 얻지 못해 병들어 간다. 이와 같은 상황인데도 미국에서
생산된 곡물의 80퍼센트가 사람들이 먹는 식량으로써가 아니라 가축들의 사료로
쓰이고 있다. 육식 위주의 식생활이 가져온 기이한 현상이다.
이렇게 만들어진 쇠고기를 우리나라에서도 어마어마하게 수입해 먹고 있다.

그리고 인류의 평화와 자유를 내세우고 있는 그들에 의해서 세계 무기 거래의
70퍼센트가 이루워지고 있는 현실이다. 이웃 나라와 번영을 나누지 않는 나라는
그 어떤 나라일지라도 원한과 증오를 낳게 마련이다. 개인의 경우도 마찬가지다.
지난해 9월 11일 미국이 본토에서 테러 공격을 받은 것도 따지고 보면 이와 같은
빈부의 격차의 맥락으로 보는 견해가 미굴내에 양심 있는 사람들에 의해서
제기되고 있다. 세상은 혼자서 사는 것이 아니다. 반드시 이웃과 함께 살아간다.
이웃과 어떤 관계를 이루고 있느냐에 의해서 그 삶의 의미와 가치를 매길 수 있다.
작은 것을 가지고도 이웃과 함께 나누며 고마워하고 만족할줄 알았던
우리 선인들의 순박한 그 마음씨가 그립다. 분수 밖의 욕심을 부리지 않는 맑은
가난의 미덕을 다시 생각할 때다. 탐욕을 이기려면 우선 이웃과 나누어 가질 수
있어야 한다. 민나는 대상마다 보다 더 친절하 고 따듯하게 대해야 한다.

임제 스님을 깨달음으로 인도한 목주 선사는 고향 땅 목주의 개원사 주지로
있으면서 깊은 밤이면 부지런히 왕골로 짚신을 삼아 그것을 곡식과 바꾸어
어머니를 봉양했다. 어머니가 돌아가신 뒤에도 선사는 밤잠을 줄여가며
짚신 삼는 일을 멈추지 않았다.
새벽이 되면 한 묶음 짚신 꾸러미를 남몰래지고 나가 큰 길가 나뭇가지에
걸어두고 오고 가는 길손들에게 신고 가게했다.
그래서 선사의 별명을 진포혜 라고 했다. '진'은 스님의 속성이고 '포혜'는
왕골로 삼은 짚신이다.

지리산 자락에 홀로 사는 60 넘은 한 노인을 나는 알고 있다. 그는 남들이 버린
물건을 거두어다 망가진 것은 말짱하게 고치고 헤진 것은 빨아서 빨아서 깨끗이
꿰매 놓는다. 집 뒤에 선반을 만들어 거기 물건을 놓아두고 아무나 필요한 사람들이
가져가도록 한다. 지난 한 해를 돌아보면서 나는 이웃에게 어떤 일을 나누었는지
스스로 묻는다. 잘 산 한 해였는지 허송세월을 했는지 점검한다. 하루 한 가지라도
이웃에게 착한 일을 나누면 그날 하루는 헛되히 살지 않고 잘 산 날이다.
이웃과 나누는 일을 굳이 돈만 가지고 하는 일로 생각하지 말아야 한다.
친절하고 따뜻한 그마음씨가 소중하다. 나누는 일을 이 다음으로 미루지 말라.
이다음은 기약할 수 없는 사간이다. 오후 4:35 2009-08-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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