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uesday, October 30, 2012
숭산 큰스님 가르침 금강경
금강경 * 金剛經 The Diamond Sutra
凡所有相 皆是虛妄 All appearance is delusion. 실체를 가지고 있는 모든것은 환상이다
菩見諸相 非相 卽見如來 If you view all appearance, then that view is your true nature. 모든 현상은 환이다. 모든 현상은 존재하지않는 것으로 깨닫는것 자체가 참 자아이다.
應無所住 而生基心 Do not become attached to any thoughts that arise in the mind. 어디에도 생각에 집착함이 없이 마음을 일으키라.
若以色見我 以音聲求我 If you see form as the Absolute, If you search out the Absolute with your voice. 바깥모양을 절대로 보며 그 절대를 소리로 찾으려하면
是人行邪道 不能見如來 you are practicing the wrong path, and you cannot see your true self. 참나自我를 찾을 수 없다.
一切有爲法 如夢幻泡影 All compounded things are like a dream, a phantom, a bubble,or a reflection.삶은 꿈이며 환이며 물거품과 같다.
如露亦如電 應作如是觀 They are like dew or lightning.Thus should you view them. 또한 이슬이며 번갯불이다. 모든것을 이렇게 알아야 한다.
현재 우리에게 가장 많이 알려진 경전이 *금강경*과 *반야심경*이다. *금강경*은 대승불교에서도 제일 중요한 가르침 중 하나이다. *금강경*은 *반야심경*보다는 훨씬 분량이 많다. *금강경*은 현재 한국불교의 주류라고 할 수 있는 조계종과 태고종의 근본의 근본경전이다. 고종의 근본경전이다. *금강경은 한 시간 이내면 다 읽을 수 있는 짧은 글이지만 대승불교의 핵심이 담겨있는 글로서, 소승불교를 건너 대승불교로 가는 다라와도 같다. 즉, 소승 * 대승적 관점을 함께 포함하고 있다는 얘기다. 그러나 무엇보다 보살도의 길을 강조하고 있다.
모든 현상은 幻이다 제상비상 諸相非相
이 얘기는 *금강경*의 가르침 중에서도 가장 중요하면서 제일 잘 알려진 부처님의 가르침 중 하나이다. 모든 현상은 끊임없이 나타났다. 사라진다. 우리가 보는 모든 것은 무상하다. 듣고 냄새맡고 맛보고 만지는 모든것이 또한 무상하며, 우리라는 존재역시 무상하다. 바로 소승불교의 중심 가르침이다.
그런데 자세히 보면 좀 이상한 것을 발견할 수 있다. 대부분의 *금강경*변역본을 보면 '우리앞에 놓여진 실체를 幻으로 보고,그 다음에 본질, 참 자아를 볼 것'이라고 되어있다. 즉, 어떤 주제가 있고 그주제가 어떤대상을 파악한다는 얘기다. 그런데 주체, 실제를 보는 자인 우리 자체가 이미 무상한 존재이다. 보고 냄새맡고 맛보고 만지는 모든대상 역시 무상하다. 어떻게 幻이 幻을 볼 수 있는가.
우리의 존재가 무상하다면 사실상 우리는 존재하지 않는 것이다. 우리를 구성하고 있는것은 언제나 쉬지않고 움직이고 변한다. 영원히 존재하는 것은 없다. 그런데 어떻게 이처럼 쉬지않고 움직이는 것이 우리의 움직이지않는 참 자아를 볼 수 있는가? 자칫 이것은 말장난에 빠질우려가 있다. 따라서 '우리 앞에 놓여진 실체를 幻으로 보고, 그다음에 본질, 참 自我를 볼것'이라는 부분은 다음과 같이 다시번역하는 것이 옳다. '모든현상은 幻이다. 모든현상을 존재하지 않는것으로 깨닫는 것 자체가 참 자아이다. 若見諸相非相 卽見如來'
우리는 이 세상을 볼 수있고 들을 수있고 냄새 맡을 수 있다. 이처럼 보는 것, 듣는 것, 냄새 맡는 것, 맛보는 것, 만지는 것이 우리의 참 自我이다. 보고있는 그 자체가, 듣고있는 그 자체가, 냄새 맡고있는 그 자체가 우리의 본성이다. 여기에는 대상과 주체가 따로없다. 들을 때 그것이 우리의 참 自我이다. (주장자를 치시면서) 이 "탕!" -하는 소리를 듣는 행위가 '......할 때 참 자아를 얻을 것이다." 라는 부분은 명확하지 않다.
누가 참 자아를 얻는가? 幻은 幻을 볼 수 없다. 따라서 모든 현상을 무상한 것으로 觀하는 것 그 자체가 참 자아라고 말하는 것이 훨씬 더 명확하다
어디에도 생각에 집착함이 없이 마음을 일으키라 應無所住 而生基心
禪의 실질적 창시자라 할 수 있는 6조 혜능 대사는 속세에서 '老行者'라고만 알려진 평범한 신도였다. 많이 배우지는 못했으나 병든 어머니를 지극정성으로 봉양하는 효자였다. 그는 산에서 매일 나무를 해다가 시장이나 집근처 마을에 내다팔아 생계를 꾸리며 살았다. 어느 날 부잣집에 나무배달을 마치고 집으로 돌아가던 길이었다. 북적거리는 시장통을 걸어가는데, 스님 한 분이 다음과 같은 염불을 외면서 그의곁을 지나갔다.
"어디에도 생각에 집착함이 없이 마음을 일으키라."
이 마을을 듣는 순간 마음이 확 열렸다. 마음속에 무엇인가 꽝 하고 다가온 것이다. 그때까지 그는 불교에대해 아무것도 몰랐을 뿐만 아니라 경전을 공부한 적도 없었다. 심지어 한자를 어떻게 쓰는지도 모르는 완전히 무식한 사람이었다. 그러다 오직 *금강경*의 이 대목만을 들은 것이다.
"어디에도 생각에 집착함이없이 마음을 일으키라"
우리마음속에서 왔다갔다 하는 어느 것에도 집착하지 않으면 그 대로 진리이다. 그러나 이것을 실제로 행하는 사람은 그리 많지않다. 대부분의 사람들은 자기들의 생각이 진짜라고 생각하면서 그것을 좇으며 살아가고 있다. 생각을 놓아버릴 때 그 순간 일어나는 생각이 진리이다. 빨간 불이면 멈추고 파란 불이면 건너가는 보행자처럼 말이다.
*금강경의 이 대목은 아주 간단하지만 매우깊은 가르침을 담고 있다. 집착을 불러일으키지 않는 생각을 경험하는 매우 명확한 길을 보여준다. 단지 생각하라. 생각하라는 의미는 '나'가 없다는 것이다. 안과 밖이 언제나 하나가 되어 단지 그것을 그것을 하라는 얘기다. 하늘을 볼 때 단지 푸른빛을 볼 뿐이다.
순간순간 '...... 할 뿐 이다. 벽은 하얗다. 지금은 저녘 7시 36분이다. 바로 지금 밖에 바람부는 소리가 들린다. 아무 장애없이 우리마음에 단지 생각이 오고 갈 뿐이다. 바깥모양을 절대로보며 그 절대를 소리로 찾으려하면 참 나를 찾을 수 없다.
若人色見我 以音聲求我 是人行邪道 不能見如來
많은 사람들은 신이나 부처에 집착해 있다. 피상적으로 사물을 보고 바깥에서 산이나 부처를 찾는다. 그리고 뭔가 기적을 기대한다. 그러나 이런 식으로는 진정한 신도, 부처도 볼 수 없다. 모양이란 우리가 인식하는 바깥것을 의미한다. 그것은 또한 미음에서 일어나는 생각처럼 안의것을 의미하기도 한다. 즉 바깥대상에 따라 함께 일어나는 느낌, 인식, 충동, 의식을 의미한다. 그것들 역시 '어떤 형태'임은 말할 것도 없다.
따라서 우리가 이런 형태를 실제로 존재한다고 믿는다면 잘못된 생각이다. ㅂ본래 형태도 감정도, 인식도, 충동도, 의식도 없는 그것들은 완벽히 무상하다. 이것들에 집착하면 우리는 참 나를 볼 수 없다. 집착은 모든것이 변하지 않고 존재한다는 잘못된 관점에서 나온다. 이 착각때문에 우리는 바깥세계에 뭔가 대상과 사물이 있다고 믿으며, 안에도 뭔가 있다고 믿는다. 즉 안과 밖을 만드는 것인데, 이러한 것은 집착이다. 절대를 알아야 참 나를 찾을 수 있다. 거기에는 어떤 이름도 모양도 옶다. 안과 밖, 주체와 객체가 없다.
그런데 참 나를 보는것과 진리를 보는것은 약간 다르다. 참 나를 보는것은 절대를 보는 것이다. "탕!"-모든것은 우주적 본질, 똑같은 본질이다. "탕!"- 이것이 바로 참 나를 깨닫는 단계이다. 그러나 진리를 안다는 것은 먼저 참나를 얻었을 때 가능하다. 그런 연후에라야 볼 때, 들을 때, 냄새맡을 때, 맛 볼 때, 만질 때 모든것이 있는 그대로 진리이다.
절대를 께달아야 한다는 것이 *금강경*의 가르침이다. "탕"- 그러나 이 깨달음은 대승불교로 가는 중간 길이다. *반야심경*, *화염경*, *법화경*에서 우리는 완벽한 진리의 관점을 얻을 수 있다. *금강경*의 핵심은 모든것이 '空'하다는 것이며, 이것을 먼저 깨닫는 것이 중요하다고 가르친다. 만약 참 自我를 발견하고 싶다면 완벽하게 비여있어야 한다. 먼저 空함을 얻어야만 한다. 본성을 찾고 싶다면 비어있음을 깨달아야 한다. 본래 空함이 우리의 本性이다. 본성이란 절대이다. "탕!" 만물이 절대이다. 이것을 머리로만 이해하는 것은 도움이 안된다. 참선 수행을 통해 깨달아야 한다.
삶은 꿈이며, 환이며, 물거품이며, 이슬이며, 번갯불 이다. 모든것을 이렇게 알아야 한다. 一切有爲法 如夢幻泡影 如露亦如電 應作如是觀
이 역시 아주 중요한 가르침이다. 생각에 집착하면 모든것이 이름과 모양을 갖게되며, 있다 없다 하는 이분법적 세계가 존재한다. 그러나 이름과 모양은 언제나 변하고 또 변하기 때문에 모든것이 무상하다. 모든것이 꿈이고 이슬이고 물거품이며 번갯불 이다. 이 세상 어느것도 그대로 머무는 것은 없다. 모두가 변화의 과정에 있다
생각이 만들어낸 분별의 세계에 집착하지 말아라. 그럴 때에라야 이 끊임없이 변하는 우주의 진정한 본질을 경험할 수 있다. 어떤바깥 세계에도 집착하지 말라. 이름과 모양에 집착하지 말라. 이것을 잘 간직하면 우리의 마음은 움직이지 않는다. 오고가는 것은 아무것도 없다. 나타나거나 사라지는것도 없다. 이름과 모양은 공허하며, 전 우주는 완ㅂ벽히 공하다. 우리의 존재역시 완벽히 공하다. 이것을 깨달으면 우리는 곧 참 自我를 얻을 수 있다.
*금강경*은 만물의 무상함을 가르쳐 우리가 이 생각이라는 '꿈'을 캐기위해 어떻게 깨달음을 얻어야 하는지 가르친다. 그러나 경전 읽는 것만으로는 충분하지 않다. 꿈에서 깨어나려면 金剛經을 사용해야만 한다. '오직 모를 뿐'을 가져야 한다. 이것은 다이야몬드와 같은 칼이다. 오직 수행하라. 오직 수행하라. 단지 그것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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