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4 제 4편 영원한 자유 1장 오매일여
1 영겁불망 永劫不忘
우리가 도를 닦아 깨달음을 성취하기 전에는 영혼이 있어 윤회를 거듭합니다. 그와 동시에 무한한 고苦’괴로울고’ 가 따릅니다. 미래겁이 다하도록 나고 죽는 것이 계속되며 무한한 고가 항상 따라 다니는 이것이 이른바 생사고生死苦라는 것입니다.그렇다면 이 무한한 고를 어떻게 해야 벗어나며 해결 수가 있는가? 그러기 위하여서는 굳이 천당에 갈 필요도 없고 극락에 갈 필요도 없읍니다. 오직 사람마다 누구나 갖고 있는 능력, 곧, 무한한 능력을 개발하여 활용하면 이 현실에서 대해탈의, 대자유의, 무애자재한 생활을 할 수 있는 것입니다. 이것이 불교의 근본 원리입니다.
불교에서는 영원한 생명과 무한한 능력을 “불성佛性”이니 “법성法性이니 또는 “여래장如來藏이니 “진여眞如니 등등으로 말하고 있으며, 누구든지 이것을 평등하게 가지고 있다고 봅니다. 그리고 이것을 개발하면 곧 부처가 되므로 달리 부처를 구하지 말라고 합니다.
그러면 생사해탈生死解脫의 근본은 어디에 있는가? 일찌기 선문禪門에서 조사祖師 스님들은 말씀하셨읍니다.
산 법문 끝에서 바로 깨치면
다시는 미혹하지 않는다.
活句下 薦得” 활구하 천득
永劫不忘 영겁불망
곧 불교의 근본 진리를 바로 깨치면 그 깨친 경계, 깨친 자체는 영원토록 잊어버리거나 없어지지 않는다는 것입니다. 일상생활에서 배운 기술이나 지식은 시간이 지나면 잊기도 합니다만, 도를 성취하여 깨친 이 경계는 영원토록 잊어버리지 않습니다. 금생에만 잊어버리지 않는 것이 아니고, 내생에도, 내내생에도 영원토록 잊어버리지 않습니다.동시에 생활의 모든 것을 조금도 틀림없이 모두 다 기억하는 것입니다. 이것이 불교에서 말하는 영겁불망永劫不忘 이라는 것입니다.
마조馬祖스님께서는 이에 대해 이렇게 말씀하셨읍니다.
한번 깨치면 영워히 깨쳐서 一悟永悟 일오영오
다시는 미혹하지 않는다. 不復更迷 불복경미
그러므로 깨첬다가 매昧 ‘새벽매’ 했다 또 깨쳤다 하는 것이 아니고 한번 깨치면 금생, 내생, 여러 억천만 생을 내려가더라도 영원토록 어둠에 빠지지 않는다는 것입니다.
또 원오圓悟스님도 그에 대해 말씀하셨읍니다.
한번 깨치면 영원히 얻어서 一得永得 일득영득
천겁, 만겁을 두고 그와 똑같을 뿐 변동이 없다. 億千萬劫 亦只如如 억천만겁 역지여여
깨친 경계에 조금이라도 변동이 생기면 그것은 바로 깨친 것이 아니라는 말입니다.이렇게 되면 이에 따르는 그 신비하고 자유자재한 활동력인 신통묘력神通妙力은 말로 다 표현할 수 없으니, 참으로, 불가설 불가설不可說 不可說 입니다.
대자유에 이르는 길, 돋, 영겁불망永劫不忘인 생사 해탈의 경계를 성취함에 있어서는 여러가지 방법이 있지만 그 중에서도 가장 빠른 것이 참선입니다. 참선은 화두話頭가 근본이며,화두를 부지런히 참구하여 바로 깨치면 영겁불망이 안 될래야 안 될 수가없읍니다. 영겁불망은 죽은 뒤에나 알 수 있는 것이라고 생각하기 쉬우나 그렇지 않습니다. 생전에도 얼마든지 알 수 있읍니다. 숙면일여熟眠一如하면, 곧 잠이 아무리 깊이 들어도 절대 매昧하지 않고 여여불변如如不變하게 되면, 그때부터는 영겁불망이 되는 것입니다.
그런데 숙면일여가 여래如來의 숙면일여가 되면 진여일여眞如一如가 되지만, 보살의 숙면일여는 8지 보살의 아라야阿羅耶 ; Alaya 위位에서입니다. 제8아라야위에서의 숙면일여는 보통 우리가 말하는 나고 죽음에서, 곧 분단생사分段生死에서 자유자재합니다. 그러나 미세한 무의식이 생멸하는 변역생사變易生死가 남아 있어서 여래와 같은 진여위眞如位의 자재自在함은 못 됩니다. 그러므로 아라야위에서의 숙면일여는 바로 깨친 것이 아니며, 여래위, 진여위에서의 숙면일여가 되어야만 참다운 영겁불망이 되는 것입니다,
그러나 8지 이상의 아라야위에서의 수면일여만 되여도 죽음으로 인하여 다시 매하지는 않습니다. 영원토록 퇴진退進하지 않는 다는 말입니다. 아라야위에서의 불망不忘과 진여위眞如位에서의 불망은, 차이는 있지만, 다시 매하지 않는 불퇴전不退轉은 같읍니다.
오매일여도 여래위에서의 오매일여와 아라야위에서의 오매일여가 다르면서 또한 같은 것과 흡사합니다.숙면일여라고 하여 잠이 깊이 들어도 여여한 것이라고 하면 누구나 할 수 있는 것이 아니냐고 생각할 수 있지만, 그것은 결코 쉬운 일이 아님니다. 예로부터 대종사, 대조사치고 실제로 숙면일여한 데에서 깨치지 않은 사람은 한사람도 없읍니다.
누구나 깨치기 전에는 모든 것이 식심분별識心分別이므로 앞 못보는 영혼에 불과합니다. 봉사 영혼이 되어서 수업수생隨業受生하니 곧 업따라 다시 몸을 받게 되는 것입니다. 자신의 자유는 하나도 없읍니다. 김 가가 되고 싶어도 마음대로 안되고, 박 가가 되고 싶어도 마음대로 안 됩니다, 중처변추重處便墜로서 곧 자기가 업을 많이 지은 곳으로 떨어지니다. 그것은 어쩔 수 없는 이치입니다. 자기의 자유가 조금도 없는 것을 수업수생라고 합니다.
그러나 자유자재한 경계가 되면 수의왕생隨意往生하니 곧 자기가 마음먹은 대로 할 수 있읍니다. 동으로 가든 서로 가든,김 가가 되든 박 가가 되든 마음대로 하는 것입니다. 이것이 수의왕생으로, 불교의 이상이며 부처님 경전이나 옛 조사스님들이 말씀하신 것입니다.
수의왕생이 되려면 숙면일여가 된 데에서 자유자재한 경계를 성취해야 합니다. 그렇게 되기 전에는 아무리 아는 것이 많고, 부처님 이상 가는 것 같아도 그것으로 그치고 맙니다. 몸을 바꾸면 다시 캄캄하여 아무소용이 없습니다.
송나라 철종哲宗 원우 7년1092년 이었읍니다.소동파蘇東坡의 동생이 고안高安에 있을 때 동산洞山 선사와 수성 총 壽聖 聰선사와 같이 지냈읍니다. 그 동생이 하루 밤에 두 스님과 함께 성 밖에 나가서 오조 계 五祖 戒 선사를 영접하는 꿈을 꾸었는데, 그 이튿날에 형인 동파가 오는 것이었읍니다. 그때 동파의 나이가 마흔아홉이었는데 계戒 선사가 돌아가신 지 꼭 오십년이 되던 때였읍니다. 오 십년 전 그의 어머니가 동파를 잉태하였을 때 꿈에 한쪽 눈이 멀고 몸이 여윈 중이 찾아와서 자고 가자고 하였더라는 것입니다.
그가바로 계 선사였읍니다. 계 선사는 살아서 한쪽 눈이 멀고 몸이 여위었더랬읍니다. 동파 자신도 어려서 꿈을 꾸면 스님이 되어서 협우峽右에 있는 경우가 많았읍니다. 그런데 계 선사가 바로 협우 사람이었읍니다.
이 사실들로써 동파가 계 선사의 후신인 줄 천하가 다 잘 알게 되어서 동파도 자신을 계 화상戒 和尙 이라고 불렀읍니다.그리고 동파는 자주 동산洞山에게 편지를 해서 “어떻게 하든지 전생과 같이 불법佛法을 깨닫게 하여 달라” 하였으나 전생과 같이는 되지 못하고 죽었읍니다. 오조 계五祖 戒 선사는 운문종의 유명한 선지식이었는데, 지혜는 많았지만 실지로 깊이 깨치지 못한 까닭에 이렇게 어두어져 버린 것 입니다.
실제로 옛낭의 고불고조古佛古祖는 오매일여가 기본이고, 영겁불망이 표준이 되어서 수도하고 법을 전했읍니다. 여기에 실례를 들어 이야기히겠읍니다.
2 대해선사
앞에서 나온 오조 법연 선사의 제자에 원오 극근 圓悟 克勤 선사가 있고, 그 제자에 대혜종고大慧宗杲 선사가 있읍니다. 강원에서 배우는 “서장書狀이라는 책이 대혜 종고 선사의 법문으로, 그는 임제의 정맥으로서 천하의 법황法王이라고 자처하고 있었읍니다. 이제 대혜스님이 어떻게 공부했고 어떻게 인가를 받았는가에 대해 이야기 하겠읍니다.
대혜스님은 스므살 남짓 되었을 때, 요즘 말로 “한소식” 했다고 해서 사람들을 놀라게 했읍니다. 그런데 그 소식은 진짜 소식이 아니라 가짜 소식이었읍니다. 그래도 전생 원력이 크고, 또 숙세宿世의 선근善根이 깊은 분이어서 그 지혜가 수승했습니다. 그래서 가짜 소식을 진짜 소식으로 사용했던 것입니다. 이 가짜 소식을 가지고 천하를 돌아다니는데, 이 가짜 소식에 모두 속아 넘어 갔읍니다. 비유로 말하자면 대혜스님이 성취한 것은 엽전에 불과한데 세상사람들은 진금眞金처럼 여기고 “바로 깨쳤다”고 인가를 하여 대혜스님은 더욱 기고만장하여 날뛰고 다녔읍니다.
그무렵 “천하 5대사”라는 다섯 분의 선지식이 있었는데, 그 가운데 담당무준湛堂 無準 선사라는 분이 있었읍니다. 대해스님이 이 선사를 찾아가며 “천하 사람이 나를 보고 참으로 깨쳤다고 하고 진금眞金이라고 하니 이 스님인들 별 수 있을까? 하고 생각했읍니다. 그러고는 병의 물을 쏟듯, 폭포수가 쏟아지듯 아는 체하는 말을 막 쏟아부었읍니다. 담당스님이 가만히 듣고 있다가 “자네 좋은 것 얻었네, 그런데 그 좋은 보물 잠들어서도 있던가?” 하고 물어왔읍니다. 자신만만하게 횡행천하橫行天下하여 석가보다도, 달마보다도 낫다 하던 그 공부가 잠들어서는 없는 것입니다. 법력이 천하제일이라고 큰 소리 텅텅 쳤지만 잠이들면 캄캄해지고 마는 것입니다.
그래서 대혜스님은 담당스님에게 이렇게 말했읍니다.
“스님, 천하 사람들이 모두 엽전인가 봅니다. 저를 엽전인 줄 모르고 금덩어리라고 하니 그 사람들이 모두 엽전 아닙니까? 스님께서 제가 엽전인줄 분명히 지적해 주시니 스님이야말로 진짜 금덩어리입니다. 사실 저도 속으로 의심을 하고 있었읍니다. 모든 것에 자유자재하지만 공부하다 깜박 졸기만 하면 그만 아무 것도 없는 것입니다. 그래서 제가 깨달은 이것이 실제인지 아닌지 의심하고 있었읍니다.”
이말을 들은 무준 선사는 크게 꾸짖었읍니다.
“입으로 일체 만법에 무애자재하여도 잠들어 캄캄하면 어떻게 생사를 해결 할 수가 있느냐! 불법이란 근본적으로 생사 문제를 해결하는 것이야. 생사해탈을 얻는 것이 근본이야, 잠들면 캄캄한데 내생은 어떻게 하겟어.”
그러면서 담당스님은 대혜스님을 내쫓았읍니다. 대해스님의 근본 병통病痛을 찔렀던 것입니다.
또, 옛날에 경순景淳선사라는 스님이 있었는데 자신의 법이 수승한 듯 여기고 있었읍니다. 그러다가 한번은 잘못하여 넘어진 뒤로 중풍이 걸렸는데, 그러고나니 자기가 알고 있었던 것과 법문했던 것을 모조리 잊어버리고 그만 캄캄한 벙어리가 되어 버렸읍니다. 모든 법을 아는 체했지만 실지로 바로 깨치지 못했기 때문에 한번 넘어지는 바람에 모든 것이 다 없어지게 된 것입니다.
그 때 도솔조兜率照 선사라는 이가 행각行脚을 다니다가 이 모습을 직접 눈으로 보고는 이렇게 한탄했읍니다. “한번 넘어져도 저렇게 되는데 하물며 내생이야 偶一失跌尙如此 況隔陰耶. 우일실질상여차 황격음야”
이 생사 문제는 영겁불매가 되여 억천 만겁이 지나도록 절대불변하여 매昧하지 않아야 성취되는 것입니다. 그런데 한번넘어져도 캄캄하니 뭄을 바꾸면 두망할 것도 없는 것입니다. 천하에 자기가 제일인 것 같았던 대혜스님도 무준 선서가 그렇듯 자기 병통을 콱 찌르니 항복 안 할 수가 없었읍니다.그리하여 다시공부를 시작하여 죽음을 무릅쓰고 정진하고 있었는데 담당 무준 선사가 시름시름 병을 앓더니 곧 죽게 되었읍니다.
그래서 “스님께서 돌아가시면 누구를 의지해야 하겠읍니까?”하고 물으니 경사京師의 원오 극근 선사를 소개해 주었읍니다.그 유언에 따라 그는 원오 극근 선사를 찾아갔읍니다. 찾아가서 무슨 말을 걸어 보려고 하나 원오스님은 절벽 같고, 자기 공부는 거미줄 정도도 안 되는 것이었읍니다. 만약 원오 극근 선사가 자기의 공부를 조금이라도 인정하는 기색이면 그를 땅 속에 파묻어 버리리라는 귿은 결심으로 찾아갔는데, 어떻게 해 복 도리가 없었읍니다. 그리하여 “아하, 내가 천하가 넓고 큰 사람 있는 줄 몰랐구나 !” 라고 크게 참회하고 원오선사께 여쭈었읍니다.
“스님, 제가 공연히 병을 가지고 공부인 줄 잘못 알고 우쭐했는데, 담당 무준 선사의 법문을 듣고 그 후로 공부를 하는데 아무리 해도 잠들면 공부가 안 되니 어찌 해야 됩니까?”
“이놈아, 쓸데없는 망상 하지말고 공부 부지런히 해, 그 많은 망상 전체가 다 사라지고 난 뒤에, 그때 비로서 공부에 가까이 갈지 몰라.”
이렇게 꾸중을 듣고 다시 열심히 공부를 하였읍니다.그러다가한번은 원오스님의 법문을 듣다가 확철히 깨달았읍니다.기록에 보면 “신오神悟”라 하였는데. 신비롭게 깨쳤다는 말입니다.그때 보니 오매일여입니다. 비로서 꿈에도 경계가 일여하게 되었읍니다. 이리하여 원오스님에게 갔읍니다. 원오스님은 말 조차 들어보지 않고 쫓아냈읍니다. 말을 하려고만 하면,
“아니야 아니야 不是 不是”라는 말만 되풀이합니다. 그러다가 원오스님은 대혜스님에게 “유구와 무구가 등칡이 나무를 의지함과 같다 有句無구 如藤倚樹 유규무구 여등의수” 는 화두를 물었읍니다.그래서 대해스님은 자기가 생각할 때는 환하게 알 것같아 대답을 했읍니다. 그러나 원오스님은 거둡 아니라고 하셨읍니다.
“이놈아, 아니야, 네가 생각하는 그것이 아니야. 공부 더 부지런히 해! “
대해스님이 그말을 믿고 불석신명不惜身命하여, 곧 생명을 아끼지 아니하고 더욱 부지런히 공부하여 드디어 깨쳤읍니다. 이렇듯 대해스님은 원오스님에게 와서야 잠들어도 공부가 되는 데까지 성취했읍니다. 이렇게 확철히 깨쳐 마침내 원오스님에게서 인가를 받았읍니다. 동시에 임제의 바른 맥 임제정종臨濟正宗을 바로 깨쳤다고하여 원오스님이 임제정종기臨濟正宗記를 지어 주었읍니다. 이리하여 대혜스님은 임제정맥의 대법왕으로서 천하의 납자衲子들을 지도하고 천하 대중의 대조사가 되었던 것입니다. 이 모든 것이 대혜스님 어록에 남아 있읍니다.
잠이 깊이 들어서도 일여한 경계에서 원오스님은 또 말씀하셨읍니다
“애석하다. 죽기는 죽었는데 살아나지 못했구나 可惜 死了不得活 가석 사료불득활.”
일체망상이 다 끊어지고 잠이 들어서도 공부가 여여한 그 때는 완전히 죽은 때입니다. 죽기는 죽었는데 거기서 살아나야 합니다. 그러면 어떻게 해야 살아나느냐?
“화두를 참구 안 하는 아것이 큰 병이다 不疑言句 是爲大病 불의언구 시위대병”
공부란 것이 잠이 깊이 들어서 일여한 거기에서도 모르는 것이고, 거기에서 참으로 크게 살아나야만 그것이 바로 깨친 것이고, 화두를 바로 안 것이며 동시에 그것이 마음의 눈을 바로 뜬 것입니다.
이처럼 바로 깨치려면 오매일여寤寐一如가 되어야 합니다.내가 항상 이 오매일여를 주장한다고 오매일여병에 들었다고 말하는 사람도 있지만 이 오매일여를 인정하지 않는 사람은 불법을 인정하지 않는 사람이고, 또 선禪을 모르는 사람입니다. 사람들이 오매일여를 반대하고 비방하게 되는 것입니다.” 대혜스님과 같은 대근기大根機도 오매일여가 되기전에는 그것을 믿을 수 없었읍니다. 그렇다고 부처님께서 오매일여를 말씀씀했으니 안 믿을 수도 없었읍니다. 그래서 속으로 “부처님 말씀이 거짓말이 아닐까? “하는 생각도 들었지만 그러다가 자기가 완전히 오매일여가 되고 보니 부처님께서 말씀하신 그대로였읍니다.
그래서 대혜 선사는 아렇게 말했읍니다.
“ 부처님께서 오매일여라 하신 말씀이 참말이요, 실제로구나
佛說寤寐一如 是眞言是實言 불설오매일여 시진언시실언.” 3 태고스님 계속…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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