Friday, August 10, 2012

첫째 질문 개에게도 불성이 있는가

一 問 조주[趙州]의 개[狗]

개에게도 불성이 있는가?

조주 선사께서 어떤 스님으로부터 질문을 받았다.

"개에게도 불성이 있읍니까, 없읍니까?[狗子還有佛性也無]"

조주 큰스님은 "무[無]"라고 말했다.

질문

1. 부처님은 만물에 불성이 있다고 했다. 그런데 조주 대선사는 개에겐 불성이 없다고 하셨다. 어느것이 옳은가?

2. 조주 대선사께서 '무[無]"라고 말한것은 무엇을 의미하는가?

3. 그러면 내가 여러분에게 묻겠디. 개에게 불성이 있는가?



이것은 아주 유명한 '무'자공안이다. 부처님은 만물이 불성을 가지고 있다고 했다. 태양, 달, 별, 산, 너, 나, 우리 모두 똑같은 실체라고 했으며, 너의 본성, 나의 본성, 개의 본성이 모두 하나라고 했다. 불성을 일컫는 이름이 '실체'이다 만물이 비록 제각각 이름과 모양이 다르다 할지라도 우주적 실체를 가지고 있다.
그런데 조주 대선사님은 왜 개에게 불성이 없다고 했을까? 원래 모든것은 공하기 때문에? 그렇다면 부처님도 불성이 없는가? 부처님도 공하기 때문에? 이것은 말장난에 불과하다. 만물의 본성을 굳이 표현하고 싶으면 어떤 구체적인 표현을 하는것이 중요하다.

예를들어 여기 시계가 있다. 내가 이렇게 묻겠다. 이 시계에는 불성이 있는가. 없는가? '크다' '무겁다' 도금이 되었다' 등등으로 대답 한다면 충분하지않다.
뭐, 한 면만 본다면 그런대답이 어떤 설명이 될수는 있겠다. 그러나 한쪽 면에서먼 사실이라면 그것은 완벽한 대답이 아니다. 또 '하늘은 푸르다. 나무는 초록색이다'라고 대답 할 수도 있다. 유효한 진리를 얘기한 것이지만 그것도 충분하지않다. 그런 대답은 형이상학적인 대답이다.

그렇다면 이 시계의 본성을 구체적으로 표현해주는 것은 무엇인가. 지금은 낮 1시다. 시계와 관련한 바른 실천은 무엇인가.이 시계의 바른기능은 무엇인가. 그것은 시계는 시간을 가르쳐주는 기계라는 것이다. 모든 공안이 그와같다. 아주 쉽다.

참선은 이처럼 우리가 바로 이 순간에 어떻게 살아야 하는지를 가르쳐준다. 조주스님이 '개에게는 불성이 없다'고 하신 것은 어쩌면 틀린말일 것이다. 하지만 선사들은 참선이모든 생각에 대한집착을 끊는 중요성을 가르치는 것이기 때문에 종종 제자들에게 틀린 말을 하기도 한다. 말과 단어에 대한 의존을 끊는 것이다. 맞다, 틀리다에 집착ㅎ하지 않고 언어를 자유롭게 사용하는 것이다. 생각은 언제나 바뀐다. 선과 악에 대한 모든 생각은 (그전엔는 그렇게 변하지 않을 것 같던것도) 완전히 다른 생각으로 바뀐다. 옳고 그름도 마찬가지이다.

조주 큰스님의 무'자 공안도 이와 비슷하다. 조주 큰스님에게 질문을 했던 스님은 개가 정말 불성을 갖고 있는지. 없는지 궁금했을 것이다. 부처님이 말씀하신 '불성'이라는 것이 도대체 무언지 많이 생각했을 것이다. 만물이 불성이 있다고 했는데, 그러면 개에게도 있을까? 개도 깨달음을 얻을 수 있을까? 그 스님은 머릿속으로 아주 많은 생각에 사로잡혔을 것이다.

어떻게 이 스님의 생각을 끊게 할 수 있을까. 조주 큰스님은 이런 상황에서 '틀린' 대답을 함으로서 그 스님의 생각을 끊으려 한 것이다. 이것이 '무'자 공안의 핵심이다. 조주 큰스님은 맞다. 틀리다는 개념적인 답이 아니라 제자의 마음속에 똑바로 들어가서 제자에게 큰 의문을 안겨준 것이다.

그런데 세월이 흐른후 조주스님이 본래 가르치고자 했던 의도와는 다르게 오직 참선할 때 '무'자 화두를 사용하는 수행법이 등장했다. 이는 조주 큰스님이 내민 약에 집착하는 경우이다. 특히 일본불교에서 많은 사람들은 제자들에게 이 '무'를 강하게 잡아서 '삼매'에들어야 한다고 가르친다. 수행자는 소리를 지른다. "무------" 그러면 스승ㅇ은 이렇게 말한다. "더 강하게" 학생이 "무우우------"하면 스승은 만족해 한다.

이것은 옳은 수행이 아니다. 진정한 삼매도 아니다. 선은 순간순간 거울처럼 맑은 마음을 유지하는 것이다. 무[無] 삼매는 마음속 만물이 단지 무가 되는 것이다. 붉은 것이 와도 '무' 이고, 흰것이 와도 '무'이다. 오직 '무'이다. 이것은 집착이다. 배고픈 사람이 와도 '무'이고, 목마른 사람이 와도 '무'이다. 이것은 집착이다. 아주 나쁜 선병이다. 실제로 참선수행은 삼매와 관련이 없다. 순간적으로 그것을 경험할 수도 있겠지만 그것에 집착해서는 안 된다. 선은 언제나 맑은 마음을 가지는 것을 말한다.

심리치료와 참선 수행을 연결시키고 싶어하는 사람들이 있다. 참선이나 명상을 하면 편안한 느낌을 갖기 때문이다. 순간적이라 할 지라도 괴로움이 모조리 사라지는 것 같은 느낌 말이다. 그러나 이것은 아편과 같다. 수행 그 자체가 목적이 된다. 일상에서 사람들과 부대끼며 일하려 하지않고 다만 참선만 하려한다. 그러면 수행과 삶은 분리된다. 참선을 특별한 것으로 만들어버린다. 서쪽으로 가고 싶은데, 동쪽으로 가는 셈이다. 선은 특별한것이 아니다.

순간순간 나는 지금 무엇을 하고 있는가, 평상심, 이것이 진정한 선의 마음이다. 단지 '무'의 삼매 수행에만 집착하다면 중생이 가지고있 는 각각의 요구, 각자의 다른 상황에서 그들을 도와줄 수가 없다. 단지 '무'만을 볼 뿐이다.

이 공안에서 첫 번째 질문은 "부처님은 만물이 불성을 가지고 있다고 말했다. 그러나 조주스님은 개에게 불성이 없다고 말했다. 어느것이 옳은가?" 였다. 불성이 있는가, 없는가? 있는가,없는가? 있는가 , 없는가? 이것은 오직 생각이다. 불성이 있든 없든 그것은 그리 중요하지 않다. 조주 스님은 '없다'라고 대답함으로서 것을 지적한 것이다. 생각을 놓아버리고 말과 단어에 집착하지 말라. 그것이 이 첫 번째 질문의 핵심이다.

두 번째 질문 "조주 큰스님은 개에게 불성이 '무'라고 하셨다. 이것은 무슨뜻인가? 질문도 마음속에 완벽히 생각을 끊으면 명확해진다. '무[無]'란 특별한 의미가 아니다. 어떤사람들은 '무'를 특별한 것으로 만들지만 본래 특별한 것은 아니다. 누군가 만공 스님에게 이렇게 물었다. "조주의 '무'자 공안에서 '무'란 무슨 뜻입니까?" 그러자 만공은 "절 앞 밭을 보아라. 거기에(먹는)무가 많을 것이다."라고 했다. 바로 지금 이순간, 것이 진리이다.

세 번째 질문인 "그러면 내가 너에게 묻겠다. 개에게 불성이 있는가?"가 묻는 의미도 아주 명쾌하다. 실체와 진리를 깨달아 바른 실천을 하는것, 그것이 조주 큰스님의 '무'자 공안이다.

Tuesday, August 7, 2012

10개의 공안

10개의 공안

임제종은 1백칙 공안을 뽑아 '벽암록[碧巖錄]'이라는 것을 만들었고, 조중동은 이른바 '종용록[宗容錄]'이라 불리는 1백칙을 사용한다. 조중동의 공안 모음집이 단순한 것임에 반해, 임제종의 그것은 아주 복잡한 공안 모음집이다.

이중에 48개 공안을 선택해서 엮은 것이 '무문관[無門關]'이다. 때때로 '문 없는 문' 혹은 '문없는 길목'이라 번역된다. 한국불교의 조계종은 1천 7백 개의 중요한 공안 모음집을 발전시켰고, 우리 관음선종에서 추린 10개의 공안을 통과하면 주요 공안들을 거치는 셈이된다.

물론 대부분의 수행자들이 그이상 공부를 하지만 10개의 문을 통과하면 모든 공안수행의 본질을 이해한다고 할 수 있다. 공안이 무엇인지 알면 바른 수행이 무엇인지도 알게된다. 하지만 지적인 이해만으로는 충분하지않다. 개념적인 이해만가지고서는 공안의 참뜻을 알 수 없기 때문이다.

물론 공안을 머리로 이해하는 것만으로도 많은 공안들을 통과하는 사람들이 종종있다. 또 공안을 통과했다 하더라도 수행을 열심히 하지않는 사람들이 있다. 끊임없이 노력하고 점검해서 공안의 의미를 소화하지 못한다면 이 공안은 단지 마른 지식일 뿐이다. 공안은 수행에 방향을 제시한다. 그 방향이 바로 '오직 모를 뿐' 이다. 공안에 답하는 것만으로 충분하지 않다. 완벽하게 행할 때 비로소 공안의 지혜를 깨달았다고 할 수 있다.

" 남쪽으로 10리 가량 가면 독수리 머리모양의 봉우리를 가진 큰 산이나온다. 더 올라가면 개울이 흐르는 계곡이 나온다. 여기서 10리를 더가면 동굴이 나오는데, 그 동굴에 금주전자가 있다. "누군가 이렇게 말한다면 우리는 금주전자가 어디에 있는지 선연히 알 수 있을 것이다. 하지만 아무리 이말을 잘 이해한다 해도 스스로 걸어가지 않으면 결코 금주전자를 얻을 수 없다. '돈'이라는 것을 머릿속으로 아는것과 실제 내 주머니에 갖고 있는 것에는 엄청난 차이가 있듯이 말이다.

공안도 마찬가지다. 잔지 공안을 이해하는 것만으로는 도움이 안된다. 많은 사람들이 공안 인터뷰를 할 때에는 좋은 대답을 하지만 막상 일상생활에서는 그렇게 살지못하는 경우가 많다. 공안을 '이해'하는것은 좋지않다. 답이 옳읁지, 틀린지 그것도 중요하지 않다. 가장 중요한 것은 우리의 일상이다. 우리의 일상이 맑고 순간순간 바르면 공안의 답은 큰 문제가 아니다. 수행과 일상은 하나이다.

우리 관음선종에서 제시하는 공안 수행의 핵심은 '오직 모를 뿐' 과 일상생활을 어떻게 연결시키느냐 하는 것이다. 참선을 통해 어떻게 순간순간 중생을 도우며 살까 하는 것이다. 이 세계는 매우 빨리 변하고 있다. 그리하여 엤날처럼 '화두'만 잡고 있거나 시적인 주석에만 몰두하기 힘들다. '무' 자 화두를 들고 길을 걸을 때나 잠잘 때나 24 시간 내내 한 생각만 하고 있다면 아마 차에 치일지도 모른다.

그래서 공안 수행이 필요하다. 옛 스승들의 지혜를 묻고 답하는 방식으로 수행함으로서 순간순간 변화하는 삶 속에 선의 올바른 실천을 위해 공안을 사용하는것이다. 순간순간 따지는 마음없이 오직 다른사람들을 돕기위해 공안을 사용하는것이다.

공안에서 제시하는 질문들은 우리 삶의 기본방향을 제공한다. 그것들은 본래 마음의 지혜를 바로 지금 어떻게 쓸 것인가에 초점이 맞춰져 있다. 공부를 열심히하면 마음이 항상 맑게 유지되며, 매 상황마다 모든 중생을 도울 수 있다.

오직 모를 뿐 으로 정진하라

'오직 모를 뿐'으로 정진하라.

이 책에는 소승불교, 대승불교, 선불교 등의 아주 많은 가르침들이 있으며, 기독교나 카톨릭에 관련된 이야기도 있다. 그러나 말과 단어는 단지 생각이다. 그리고 이 생각이 고통을 만들어낸다. 이 모든 것을 쓰레기통에 버려야만 한다.

본성을 깨닫는다는 것은 머릿속으로 이해하는 영역이 아니다. 내가 '오직 모를 뿐'을 강조하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여기에는 동양도, 서양도, 한국도, 일본도, 미국도 없다. '오직 모를 뿐'은 불교도 아니고, 기독교도 아니고, 참선도, 그 어느것도 아니다. 미국인 제자 한사람이 나에게 이렇게 물었다.

"큰스님께서는 만물이 하나라고 하셨는데, 왜 소승이니, 대승이니, 참선이니 하는것을 구분하십니까?
나는 아렇게 대답했다.

"나는 소승이니, 대승이니, 참선이니 하는것을 가르치는 것이 아니다. 불교조차 가르치지 않는다. '오직 모를 뿐'을 기르칠 뿐이다. 알겠느냐?"

언제 어디서나 오직 모를 뿐이다. 그렇다면 우리는 무엇이든 할 수 있다. 소승이니, 대승이니, 참선이니 하는것에 얽매이지 말라. 뼈대는 오직하나. 어떻게 지금 이 순간 중생의 잠을 깨워 이 세상을 도울 것인가 하는 것이다.

무엇이든 우리의 본성을 깨닫는데 도움이 된다면 그것을 이용해 모든중생을 고통에서 벗어나게 하면된다. 참선수행은 특별한 어떤 것이 아니다. 그것은 정적과 축복과 행복을 보장해주는 도깨비 방망이가 아니다. 물론 때때로 이런순간을 경험하는 것은 가능하다. 하지만 문제는

'나는 누구인가?' 하는 내면 속 물음에 대한 답을 찾는 것이다.
태어날 때 나는 어디서 왔으며 죽을 때 나는 어디로 가느냐이다.

삶에서 가장 기본적이고 중요한 이 물음은 제쳐두고 우리는 모든 에너지를 욕심, 분노, 무지를 좇는 데 사용한다. 결국에는 변할 것, 무상할 것들을 좇으며 산다. 감정과 고통에 집착하고, 어떨 때는 고통을 즐기기까지 한다.
인간은 영리한 동물이면서도 그들의 전 삶은 고통의 바다를 떠다닌다.

우리의 업을 지배하지 못하면 어느 것도 할 수 없다. 죽을 때(몸이 사라질 때) 무엇을 할 수 있는가. 죽는순간 당신의 업은 당신을 어딘가로 끌고 갈 것이다. 어디로 가는지 당신은 알지 못한다. 아마 십중팔구 다시 고통의 바다에 태어날 것이다. 모든 생각을 끊으면 '참나'로 돌아갈 수있다. 그것은 삶과 죽음의 영역을 넘어서는 것이다.
'오직 모를 뿐'으로 정진하라.

Friday, August 3, 2012

총

타운뉴스 칼럼
타운뉴스 발행인 안창해

총[銃]

사내아이들은 총을 좋아한다. 대부분의 이이들이 전쟁놀이를 하면서 자란다. 어른이 되어서도 총을 좋아한다. 사내들이 총을 놓아하는 이유를 살펴보면 첫째로 총의 모양새가 남성을 상징하나다는 프로이드 적인 해석이 가능하다. 또 각종 범죄물과 폭력물 등에서 보여주듯이 모든것을 단죄하고 해결하는 궁극적 수단이 되기도 하는것이 총이다. 살상무기이지만 꺼꾸로 범죄와 폭력에 맞설 수 있는 도구이기도 하다. 힘과 권력을 상징한다. 그 조그만 쇳덩어리가 사내들에게 어필하는 이유이다. 장난감 총을 가지고 놀다가 성인이 돼서는 쉽게 진짜 총을 구입할 수 있으니 이 얼마나 가슴설레는 일인가.

미국은 합법적으로 개인의 총기 소유 및 소지가 가능한 나라이다. 총을 쉽게 구입할 수 있다. 낚시도구를 사는 것 처럼 쉽다. 신원조회를 통해 전과유무를 확인하는 것만이 낚시대를살 때와 다른 점이라고 한다. 쉽게 구입할 수 있기 때문에 총을 소유하고 있는 사람들이 의외로 많다. 그렇게 많은 일반인들이 총을 소유하고 있는 것에 비해서 총기로 인한 사고가 그리 많지 않은 편이라고는 하나 사고가 나면 돌이킬 수 없는 비극이 발생한다.

지난주에 지인과 저녁식사를 하고 나오면서 길 건너를 보니 네온사인이 번쩍이는 극장건물 앞에 수많은 젊은 이들이 줄을 서 있었다. 자세히 보니 길바닥에 앉아 있고 심지어는 누워 있기도 했다. 대부분 십대, 이십대 젊은이들이었고 간간이 나이 든 사람, 혹은 어린아이들이 눈에 띄기도 했다. 그런데 젊은이들이 군화같은 부츠에 군복비슷한 옷을 입고 있었다. 분위기가 어쩐지 심상치 않아 무슨 영화를 보려고 저리 줄 서있나 물어보니 그날 자정에 개봉하는 배트맨 시리즈 3탄 (다크 나이트 라이즈)를 보려고 초저녁부터 기다린다는 것이었다.

그 다음닐 미국 콜로라도 주 오로라시의 배트맨 영화개봉관에서 무장괴한이 죄 없는 관객들에게 무차별 총격을 가래 12명이 사망하고 58명이 부상당했다는 보도가 나왔다. 장소만 달랐지 같은 영화를 보려고 모여 들었던 비슷한 또래의 젊은이들이 희생자 대부분이었다. 더욱이 무차별 난사를 저지르고 체포된 젊은인는 장래가 촉망되는 뇌과학 분야 박사과정의 학도였다. 그는 지난 몇 개월동안 온라인으로 총기류 및 탄알을 만 오천불 어치나 구입했다고 한다. 총기류를 인터넷으로도 구입할수 있다니.

그렇게 쉽게 합법적으로 구입할 수 있는 총기가 누구의 손에 들어가는지 아무도 알 수 없다. 무슨 목적으로 구입하는지도 무른다. 일단 누군가의 손에 들어간 총은 언젠가는 사용되어질 것이고 그 순간에 누군가의 목숨이 위태로워진다. 자기방어를 위해 총이 필요하다고 총기소유 및 소지를 정당화하는 의견도 있으나 어쨋든 총은 살상무기이다.

사람은 평소에도 감정 조절이 잘 안되기 때문에 여러가지 방법으로 마음을 다스리는 공부를 한다. 분노가 일고 복수를 하고 싶어도 사회의일원으로서 폭력을 행사하는 것은 잘못이라고 교육을 받는다. 가정과 학교에서 그렇게 교육을 받지만 우리가 사는 이 사회는 무차별적인 폭력의 이미지에 속절없이 노출되어 있다. 일상에서 폭력은 매스미디어를 통해 오락화 되어있으며 범죄물과 폭력물이 태반인 엔터테인먼트 산업에서 폭력행사는 미화, 정당화, 심지어는 영웅화되고 있다.

이렇게 폭력에 무감각해진 사회속에서 청소년들은 게임이나 영화등에서 난무하는 살인행위들을 보고있다. 사람이죽고, 사람을 죽이는 일을 대수롭지않게 받아들이고 있다.

자주 보도되는 총기 사건을 볼 때마다 그리고 가끔 잊을 만하면 터지는 대규모 무차별 총기난사 사건을 할 때마다 자업자득이라는 생각을 지울 수 없다. 사회가 전반적으로 폴력에 무감각해지고 총기류 및 무기를 아무나 쉽게 입할 수 있는 현실에서 필연적으로 발생할 수 밖에 없는 현상이 아닌가.

"어떻게 이런일이 어날 수 는가"라는 말은 무책임한 질문이다. 오히려 "올것이 왔다"는 표현이 맞지 않을 까?

잘 알려져 있듯이 미국 총기협회의 로비는 가히 상상을 초월하고 있다. 그렇다고 개인의 총기소지를 법적으로 막을 길은 없다고 포기해서는 곤란하다. 이런일이 발생할 때 마다 목소리높여 외쳐야 한다. 방울 방울 떨어지는 물방울이 바위도 뚫지 않던가.

아울러 개인의 총기소지를 막기 위해 종교단체나 학교 등에서 앞장서서 다각적인 노력을 기울여야 한다. 또 폭력에 젖은 사회 분위기를 순화시켜야 다. 다 아는 사실이지만 이런 사건으로 인해 다시한번 자각하고 개개인이 의식의 변화를 일으켜 궁극적으로 사회의 변화를 일으켜야한다.

사회의 변화는 법이나 억누름을 통해 강압적으로 루어지는 것이 아니다. 한 사람, 한사람 개인이 의식을 바꿀 때 일어난다.

ch@townnewsusa.com

Thursday, August 2, 2012

있는 그대로 부처다

있는 그대로 부처다• 卽如如佛 Just-like -This is Buddha
靈光獨曜 逈 脫根塵 신령스런 빛 홀로 빛나 육근 육진을 멀리 벗어났네.
The sprit remains clear and bright. The six roots(senses) and six dusts(perceptions)fall away.
休露眞常 不拘文字 진여의 항상한 본체 드러나 문자에 구애받지 않네.
The original body remains clear constantly. Speech and words cannot hinder it.
眞性無染 本自圓成 마음의 성품에 물듦이 없으니 본래 스스로 원만한 이룸이다.
True Nature has no taint, and is already a perfect sphere.
但難妄緣 卽如如佛 허망한 생각 여의기만 하면 그것이 바로 있는 그대로 부처라네.
Not attached to any thinking, just-like-this is Buddha.
四大各難如夢中 지수화풍 4대가 각기 꿈 가운데 흩어지고
The four elelments(earth, fire, water, air) disperse as in a dream.
六塵心識本來空 육근 육진 심식이 모두 공하도다.
The six dusts(perceptions), roots(senses), and consciousness are originally empty.
慾識佛祖廽先處 부처님과 조사들이 깨달은 곳을 알고자 하는가 ?
Do you want to understand the Buddha and the eminent teachers?
日落西山月出東 서산에 해가 떨어지면 동산에 달이 솟는다.
The sun sets over the western mountains. The moon rises in the east.
오래전 중국에 '신찬[神讚]'이란 스님이 한 분 살았다. 그는 공부를 아주 열심히 해서 어려운 실험을 모두 통과했다. 은사스님이 가장 뛰어난 제자로 인정할 정도였다. 그러나 은사스님은 참선 수행에는 별 관심이 없었다. 그래서 신찬에게 경전만 가르쳤고, 나중에 훌륭한 학승이되어 그이 맥을 이어가기을 바랐다.
그러나 신찬은 경정 공부를 하면 할 수록 의문이 생겼다.
어느 날 은사스님은 뛰어난 제자 세명을 뽑아 3년동안 장학금을 주기로 했다. 그 돈으로 중국어디서나 그들이 원하는 곳에서 무엇이든 공부할 수 있게 하기 위해서였다. 신찬도 그중 하나로 뽑혔다. 은사스님이 제자 세 명을 불러모았다. 그들 각자에게 앞으로 3년동안 무엇을 공부하고 싶은지 물었다.
첫 번째 스님은 유교를 공부하겠다고 말했다. 두 번째 스님은 도교를 공부하고 싶다고 했다. 마침내 신찬의 차례가 되었다. 그는 스승에게 이렇게 말했다.
"저는 더 이상 아무것도 배우고 싶지 않습니다."
"나도 네가 이미 경전에 도통해 있다는 것을 알고 있다. 하지만 좀 더 공부를 했으면 좋겠다고 생각하고 있는데------."
그러나 신찬은 단호했다.
"죄송합니다. 3년동안 좀 쉬었으면 좋겠읍니다."
스승은 약간 서운했지만 승낙했다. 신찬은 곧바로 길을 떠나 참선을 가르치는 절로가서 아주 열심히 수행했다. 그는 오직 100퍼센트 '모르는 마음'을 간직하며 3년 정진끝에 결국 깨달음을 얻었다. 그는 그곳에 그대로 머물까도 생각했지만 어릴 때 부터 항상 그를 돌봐주어 왔던 은사스님에 대한 은혜를 저버릴 수가 없었다. 드디어 드디어 신찬을 비롯한 제자 세 명이 모두 3년 뒤 약속한 날짜에 모였디. 은사스님은 제자들을 하나씩 불러 그동안 공부한 것을 물었다.
"그래, 유교를 공부하여 무엇을 배웠느냐?"
"언제나 다른사람과 좋은관계를 유지하라는 것을 배웠읍니다. 부모와 스승을 공경하라는 것도 배웠읍니다."
"훌륭하다."
"그래 신찬은 지난 3년간 무엇을 배웠느냐?"
" 본래 아무것도 없으니 아무것도 얻을 수 없었읍니다."
"아니, 저 두 사람이 그렇게 열심히 공부하는 동안 너는 배운 게 없다고?"
"피곤할 때 잠자고 배고풀 때 먹었읍니다."
엉뚱한 대답에 은사스님은 화를 냈다.
"이 발칙한 놈 같으니. 저 두사람은 열심히 공부해 훌륭한 스승이 될 터인데, 너는 시간만 낭비하고 돌아왔다는 말이냐. 너는 내일부터 나를 따라다니며 심부른이나 하거라."
스승은 화가 머리끝까지 치밀어 올랐지만 신찬을 마음속 깊이 아꼈기에 내칠 수가 없었다. 신찬은 매일 스승의 방을 청소했다. 음식을 준비하고 옷을 빨았다. 어느 날 은사스님이 목욕을 하면서 신찬에게 등을 밀어달라고 했다. 신찬은 그의 등을 밀면서 온잣말을 했다.
"법당은 훌륭한데 영험이 없구나 [好所佛堂 而佛不聖]"
은사스님이 무슨 말인지 몰라 천천히 얼굴을 돌려 신찬을 바라보자 신찬은 계속해서 말했다.
"부처는 비록 영험이 없지만, 능히 放光을 하는구나."
이말을 들은 은사스님은 겉으로는 아무 말도 안 했지만 속으로는 충격을 받고 신찬이 보통 경지가 아니라는 것을 느끼게 됐다.
'이녀석이 뭔가 바뀌어 돌아왔구나.'
며칠후 어느 날, 은사스님은 방에서 열심히 경전을 일고있었다. 신찬은 공부에 방해되지 않도록 조심하면서 마룻바닥을 조용히 닦고 있었다. 그때였다. 갑지기 벌 한 마리가 방 옆 창호지에 달라붙어 시끄러운 소리를 내기 시작했다. 옆문이 열려 있었는데도 나갈곳을 찾기위해 아둥바둥거리고 있었다. 이를 물끄러미 보고있던 신찬이 혼잣말로 중얼거렸다. "세계는 광대하고 넓은데 어찌하여 낡은 창호지만 뚫고 있는냐." 그리고 신찬은 다음과 같은 시를 읊었다.
열린 문으로 나가려 하지 않고[空門不背出]
창을 뚫고 있으니 어리석구나[投窓也太癡]
백년을 낡은 종이 뚫어보아야[百年鑽故紙]
언제나 깨칠 날을 기약하리오[何日出痘時]
은사스님은 신찬의 말을 듣고는 깜짝 놀랐다. 그리고 신찬의 눈을 꿇어져라 보았다. 두 사람은 모두 아무 말이 없었다. 은사스님은 잠시 후 이렇게 물었다.
"네가 바깥에서 행각하며 누구를 만났고 어떤것을 배웠기에 그런 말을 하느냐?"
신찬이 말했다.
"저는 이곳을 떠나 백장[白丈] 큰 스님께 갔읍니다. 그리고 백장 스님의 가르침을 입어 얻은 바가 있읍니다만, 은사스님께서 연로하신것을 생각하고 일부러 돌아와 지비은덕을 갚고자 한것 뿐입니다. 스승님 공부에 조금이라도 도움이 될까하여 조잡한 언어로 시를 지어보았읍니다. 용서하십시요."
은사스님은 잠시 침묵을 한 뒤 입을 열었다.
"아니다 어리석은 사람은 나다. 너는 나의 제자였지만 이제 네가 나를 가르치는구나. 너의 깨달음을 나에게도 전해다오."
은사스님은 북을 울려 모든 스님들을 법당 안으로 모이게 한 뒤 신찬에게 설법을 청했다. 신찬은 법좌에 올라서 이렇게 말했다.
신령스런 빛 홀로 빛나 (靈光獨輝)
육근 육진을 멀리 벗어났네 (迥脫根塵)
진여의 항상한 본제 드러나 (體露眞常)
문자에 구애받지 않네 (不拘文字)
마음의 성품이 물듦이 없으니 (心性無染)
본래 스스로 원만한 이룸이다 (本自圓成)
허망한 생각 여의기만 하면 (但難妄緣)
그것이 바로 있는 그대로 부처라네 (卽如如佛)
지수화풍 4대가 각기 꿈 가운데 흩어지고 (四大各難如夢中)
욱근 육진 심식이 모두 공하도다 (六塵心識本來空)
부처님과 조사들이 깨달은 곳을 알고자 하는가? (慾識佛祖廻先處)
서산에 해가 떨어지면 동산에 달이 솟는다 (日落西山月出東)
신창의 시를 찬 줄 한 줄 보자.
'신령스런 빛 홀로 빛나 육근 육진을 멀리 벗어났네.'
이 문장은 본성과 공을 설명하고 있다. 눈도 없고 귀도 없고 혀도 없고 몸도 엊ㅄ고 마음도 없다.
'진여의 항상한 본체 드러나 문자에 구애받지 않네.'
경전의 공부와 학문적 사고의 틀을 깨도 있다.
'마음의 성품에 물듦이 없으니 본래 스스로 원만한 이룸이다.'
본성이 맑으며 이미 완전한 원[圓]이다. 우리 본성은 그대로 완전하다 . 따라서 원죄란 없다.
우주처럼 시작도 , 끝도 없다. 그래서 그다음 문장에서 말하는 것처럼 '허망한 생각 여의기만 하면 그것이 바로 있는 그대로 부처'다.
다음 문장은 '지수화풍 4대가 각기 꿈 가운데 흩어지고' 이다.
이는 소승불교의 가르침이다. 우리는 고통의 세계, 아니 사실은 고통으로 가득한 꿈속에서 살고 있으므로 공함, 열반을 얻으면 모든 고통이 사라진다.
'육근 육진 심식이 모두 공하도다.'
모든것은 오로지 우리마음이 만들어내는 것이다. 여섯 가지 먼지(인식작용). 여섯가지 뿌리(감각). 그리고 여섯가지 의식은 본래 공하다.
이 문장은 대승불교 가르침의 벼대를 표현하고 있다.
'부처님과 조시들이 깨달은 곳을 알고자 하는가?
미지막 문장은 이에대한 답이다. 다름 이닌 완벽한 있는 그대로의 진리(Just like-this Buddha ) 를 표현하고 있다.
'선산에 해가 떨어지면 동산에 달이 솟는다.'
진리는 있는 그대로 이다. 여여[如如]하다. 구것이 전부이다. 마음이 공하면 맑은 거울과 같다. 태양이면 태양, 달이면 달, 있는 그대로 비춘다. 그때 우리는 순간의 세계(moment-world)를 얻는다. 그것이 단지 진리이다. 비추는 것이다. 이것ㅇ이 부처님의 가르침이다.
본성이란 바로 불성이다. 그것은 본래 이름이 없는 것인데, 어떻게든 말로 표현할력고 하니까 '불성' , '본성'이라고 부르는 것이다.
나는 미국 가톨릭 겟세마네 수도원에서 수도사들에게 참선 지도를 할 때마다 한 번도 '부처'라거나 '불성'이라는 말을 쓴 적이 없다. 대신 '신성(神聖)' 으로 바꿔 불렀다. 수도사들은 아주 행복해했고 우리 모두는 완전히 서로를 공유할 수 있었다. 어떻게 부르든 말이란 그리 중요한 것이 아니다. "탕!"
은사스님은 신찬의 말에 즉각 깨닫고 말하기를 "다 늙어서야 궁극의 일을 듣게 될 줄 어찌 알았으랴!(何期垂老 得聞極則事)"하였다.
이리하여 절의 소임을 신찬에게 맡기고 도리어 신찬스님을 스승으로 받들었다.

Wednesday, August 1, 2012

우리는 불의 못참고 중국인은 불이익 못참아

"우리는 불의[不義] 못 참고 중국인은 불이익[不利益] 못 참아"

전 4선 의원 "중국이 지역구" 취임후 10년 수 백 번 다녀와 "중국, 적으로 대하면 적이 된다"

"내 지역구가 이젠 중국입니다." 서울 성동구에서 4선(11. 12. 14. 15대) 국회의원을 지낸 이세기(76) 한중친선협회 회장 말이다.
이 회장이 8월 초 한•중 수교 20 쥬년을 맞아 [이세기의 중국 관계 20년] (중앙북스)을 펴낸다.
국토 통일원 장관이던 1985년 인도네시아 에서 우쉐첸[吳學謙] 중국 외교부장을 만난 걸 시작으로 장쩌민[江澤民]#&8226;후진타오[胡錦濤] •시진핑[習近平]등
중국 3. 4. 5 세대 지도부와 세대를 뛰어넘는 교류를 지속하고 있는 그는 지금도 한 달에 두 번 정도 중국을 방문한다. 이 회장을 지난 26일 만났다.
-책에서 전하고자 하는 메시지는
"두가지다. 하나는 모든 인간돤계도 중요한건 상호신뢰라는 점을 얘기하고 싶다. 역지사지[易地思之] 해서 상대를 봐야 한다. 다른하나는 중국을 올바로 봐야 한다는 건데,
과거의 시각으로 현재의 중국을 보는 우[愚]를 범해서는 안 된다는 얘기다. 중국을 적으로 대하면, 중국은 적이 된다.

- 중국 최고 지도자들은 거의 다 만나셨는데,
"우리 지돚자들이 직설적인데 반해, 중국 지도자들은 우회적이다. 특히 언어 구사에서 짧은 한 두마디 말로 많은걸 생각케 하는 함축적 표현을 즐긴다. 겉은,
부드러운데 속은 강한 외유내강[外柔內剛] 형이 많다. 튀거나 거들먹 거리는 사람은 살아남기 어려운 분위기다."

-중국은 오는 가을 후진타오에서 사진핑으로 권력교체를 할 것 같다. 두 사람을 비교한다면,
"후진타오 주석은 한마디로 '신사'의 풍모를 갖고 있다. 먼지 하나 털 데가 없다. 그러나 속은 무척 단단한 사람이다. 반면 시진핑 부주석은 대범한 편이고, 서굴서굴하다 .
지신감도 넘친다. 특히 시장[市場]친화적이라 우리 기업들한테는 큰 기회가 될 것 같다."

-2002년 한중수교협회 회장이 된 이후 지금깢지 수백번 중국을 방문한 것으로 안다. 중국사람은 우리와 어떻게 다른가.
"가장 큰 차이는 '시간[時間]을 보는 관점이다. 중국사람한테 시간은 무한대이지만 우리는 늘 시간에 쫓긴다. 우리 회사원은 출장 기간내 무슨문제를 해결하려고 하고,
정치인은 자기 임기내 무얼 이루려 한다. 그러나 중국인들은 우공이산[愚公移山]이라는 성어가 있듯이 오늘 내가 못하면 나중에 지식들이 하겠지 하며 느긋하다. 그러다보니 협상ㅇ에서 우리가 늘 밀린다."

- 중국을 상대할 때 우리가 염두에 둬야 할 점이 있다면,
"우리가 총론을 중시하는데 반해 중국은 각론을 더 파고든다. 우리 만족은 불의[不義]를 못참지만 중국인은 불이익[不利益]을 못 참는다.
비지니스건 외교건 철저하게 이해타산적 관점에서 각론을 중시하는게 중국이다. 중국이 흥정에 강하다는 걸 잊지 않았으면 한다."

- 중국은 냄비가 아니고 가마 솥이다. 금방 끓는게 아니고 서서히 끓는---. 사귀는데 오래걸린다는 얘기다. 그러나 한번 사귀어 놓으면 오래간다. 그게 꽌시다. 꽌시없는 중국은 생각하기 힘들다."
유상ㅊ철 중국전문기자 scyou@joongang.co.kr

기림비 건립은 풀뿌리 운동이다

기림비 건립은 풀뿌리 운동이다. 시론 김동석 유권자센터소장

꼭 만 5년 전인 2007년 7월 30일 이었다. 연방하원은 세계 제2차 대전 때 일본이 저지른 전쟁 범죄를 고발한 '일본군 강제 위안부' 결의안을 만장일치로 통과시켰다.

'일본은 일본정부가 20만명 이상의 아시안 여성들을 일본군대의 위안부로 강제 납치했음을 인정, 사과하고 보상, 배상해야 하며 다시는 이와같은 일이 발생하지 않도록 후대들에게 교육시켜야 한다'는 내용의 결의안이다.

결의안 통과는 전국의 한인들이 합심해서 총력전을 펼친 결과였다. 그러나 동북아지역의 새로운 국제질서를 틈탄 일본은 다시 아시아의 맹주자리를 확보하려는 궁리를 시작했다. 하지만 미국의 시민 사회에서 확산되고 있는 일본군위안부 문제는 일본에게 발톱의 가시가 되고있다.

일본에 대한 부정적 여론의 확산을 막아 보려는 일본은 지난 5월초 자민당 의원들이 뉴저지 펠팍을 찾아와 기림비를 들여다 보고 시장과 시의원들에게 철거를 요청했다. 노골적으로 돈을 줄테니 그렇게 해 달라고 까지 했다. 뉴욕주재 일본총영사도 기념비를 찾아와서 같은 요청을 하고 기림비에 새겨진 내용이 사실과 다르다고 생트집을 잡기도 했다.

그러나 펠팍 시장을 비롯한 미국 정치인들은 일본의 요구에 상당한 불쾌감을 표시했고 오히려 일본 총영사와 정치인을 훈계하는 단호함을 보여주엇다. 그 바람에 뉴저지 한인들이 세운 일본군위안부기림비가 한국과 일본에서는 물론 전세계의 뉴스가 되었다.

큰 관심을 보이지 않던 한인사회 지도급 인사들의 관심도 쏟아졌다. 심지어 어느 롱아일랜드 한인 지도자는 한국내 어느 지방정부의 이름을 새긴 기림비를 한국에서 제작해서 들여왔다. 그리고는 지역정치인과 지역주민들을 교육시키는 일을 생략하고

하루아침에 어느 공원에 뚝딱 기림비를 세웠다. 이 역시 두 번째의 기림비라고 한인 언론들은 큰게 보도했다. 그러자 어떤 사람들은 그렇게 어렵게 하지말고 자기집 정원이나 한인교회에 기림비를 세우면 더 빠르지 않겠느냐는 조언까지했다.

그러나 우리의 동네 지도자들은 무엇이 풀뿌리 정치이고 그것이 미국주류 정치권을 어떻게 움직이는가에 대해 깊은 인식이 없는 것같다. 풀뿌리 운동에 입각하지 않고서는 어떤 기림비나 결의안 활동도 위험하기 때문이다.

필자는 지난 6월 하원에서 일본군위안부결의안 통과를 주도한 일본계 3세인 마이크 혼다 의원을 만났다. 자신의 71번째 생일잔치에 초대해준것이다. 우리는 최근의 기림비건에 대해 우려를 하면서 진정한 풀뿌리 운동이 되도록 다시 힘을 합치기로 했다.

결의안 5주년을 기념해서 풀뿌리 활동가들이 모이면 철저하게 시민운동이나 인권운동의 차원에서 접근해야 한다는것이 혼다의원의 의지다. 일본군위안부 문제는 인류보편적인 인권문제지

한국과 일본간의 분쟁문제가 아님을 명확히 해야한다는 것이다. 그래서 울리는 한국인만의 문제가아니고 그리고 한국인들만 이를위해서 활동하는 것이 아님을 만천하에 알리기위해 타인종 풀뿌리 단체들과 힘을 모아야 한다.

정치적 영향력을 높이기 위해서 미국 시민의 입장을 갖는 것이 가장 바른 길이다. 그리고 투표하는 유권자의 입장과 세금내는 납세자의 입장을 명확하게 하는것이 가장 영향력이 크다. 이것을 우리 동포사회가 좀 더 분명히 알았으면 하는 바람이다.

문제가 생기면 쪼르르 서울로 달려가는 것을 반복해서는 올바른 길을 갈 수가 없다. 쉽고 빠른 길이 아니라 힘들고 더디간다 해도 바른길을 가는것이 튼튼한 기초가 된다.

일본군위안부 결의안 5주년을 맞이해서 가장 시급하고 큰 과제 역시 우리 모두가 풀뿌리 운둥이 어떻게 작동하는가를 바로아는 일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