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Friday, November 25, 2011

12 회 너와 나의 만남

12장 회 會 너와 나와의 만남

和氣滿面

훈훈한 마음으로 빙그레 웃는 얼굴

八十翁 怡堂 安秉煜「인생은 너와 나와의 만남」

독일의 문학자 한스 카로사Carossa의 밀이다. 인간은 만남의 존재다. 생즉회 生卽會,생즉우 生卽友, 산다는 것은 만나는 것이다 Life is encounter. 만남을 조우 遭遇라 하고, 해후 邂逅라고 한다. 인생은 수없는 만남의 연속이다. 너와 나와의 만남에서 인생은 시작한다 세상에 만남처럼 중요한 것이 없다. 에덴 동산에서 아담이 이브를 만나 서로 사랑하여 한 가정을 이루고 카인과 아벨을 낳았다. 이것이 가족의 시작이요, 공동체의 탄생이요, 사회의 출발이다. 만남에서 관계가 시작된다. 아담과 이브에서는 부부 관계가 되고, 카인과 아벨은 형제 관계가 되고, 아담과 이브, 카인과 아벨간에는 부모자식 관계가 생겼다. 나와 너가 만나면 하나의 관계가 생기고 , 관계가 생기면 서로 지켜야할 원리 원칙과 행동의 규범이 생긴다. 우리는 이것을 도덕이라고 하고, 윤리라고 일컫는다. 도덕과 윤리는 동동체를 유지하기 위한 중요한 질서요, 필요한 규칙이다. 이 질서가 무너지면 공동체는 붕괴한다. 인간은 관계 속에서 살아간다. 관계란 무엇이냐, 두 사물, 두 존재가 서로 만나 얽히고 결합하고 연관 聯關을 맺는 것이다.

인간은 관계적 關係的존재다. 인간은 여러 가지 관계의 그물속에 얽혀서 생활한다.

나는 아내와 부부 관계를 이루고, 자식과 부자 관계를 맺고, 부모와 친자 관계를 형성하고, 스승과 사제 관계를 맺는다. 나는 친척 관계, 친구 관계, 동창 관계, 동료 관계, 선후배 관계, 동향 관계, 동포 관계 등 많은 관계의 체계 속에서 살아간다.

관계를 간 間이라고 한다. 간은 사이 間자로서 무엇과 무엇과의 사이를 말한다. 나는 부부지간, 부자지간, 형제지간, 친구지간, 동창지간 등 여러가지의 간에서 산다. 그러므로 사람을 인간 人間이라고 한다.

인간이란 말은 의미심장한 말이다. 인간은 관계적 존재라는 뜻이다. 間을 떠나서 인간은 존재할 수 없다. 간이 없는 인간은 이 세상에 아무도 없다. 인간은 공립적 共立的존재요, 공생적 共生的 존재다. 인간은 남과 더불어 살아야 하는 공동체의 구성원이다. 인류의 역사는 공동체의 확대의 역사다.

가족은 인간의 최초 공동체요, 가장 운명적인 공동체다.

우리는 자기의 부모를 선택할 수 없고, 자기자식을 선택할 수 없다. 부모자식의 관계는 운명적인 관계다. 직장이나 정당은 마음대로 선택할 수 있지만, 가정은 선책이 불가능하다.

피와 사랑의 2대 원리로 구성된 가족 공동체는 인간의 공동체의 원형 原型이요, 근간이다. 가족공동체에서 종족 동동체로, 민족 공동체로, 사회 동동체로, 국가 공동체로, 크게 확장하여 마침내 지구 동동체, 세계 동동체로 확대되었다. 이제 우리는 인류의 한식구가 되었고, 국제 공동체의 일원이 되었고, 세계 시민의 한 사람이 되었다.

지구라고 하는 하나밖에 없는 생활 공간 속에서 197개의 국가가 서로 경쟁하고 서로 협동하면서 상부상조와 공생공영의 길을 걷고 있다.

우리는 내 나라, 내 민족이라는 국가적 차원, 민족적 차원을 넘어서 세계적 차원, 인류적 차원, 지구적 차원이라는 높고 넓은 사각에서 모든 문제를 생각하고 행동해야 한다.

세계사는 우리에게 커다란 사고 思考의 전환과 행동의 혁신을 요구한다. 우리는 편협하고 배타적이고 폐쇠적인 감정적 민족주의에서 벗어나 합리적이고 개방적이고 포용적인 사고 방식과 행동 방식을 배워야 한다.

이 세상에는 세 종류의 사회가 있다.

첫째는 밀림사회다. 야수 野獸들이 사는 정글사회Jungle Society에는 폭력과 투쟁의 법칙이 지배하고 약육강식의 원리가 좌우한다. 강한 동물은 약한동물을 무자비하게 잡아먹고, 약한자는 강한자의 비참한 밥이 된다. 그것은 잔인과 비정 非情과 야만野蠻과 광폭狂暴의 세계다.

밀림사회에서는 도덕도 없고, 대화도 없고, 협동도 없고, 예절도 없고, 타협도 없고, 양보도 없다. 먹히느냐, 죽느냐 죽이느냐의 살벌한 싸움만이 있을 뿐이다.

그러나 인간 사회에도 폭력과 투쟁의 법칙이 아직도 잔존 殘存한다. 나라와 나라사이의 전쟁과, 폭력으로 정권을 탈취하는 정치적 구테타가 그것이다. 폭력과 투쟁이 벌어지는 야수 사회는 최하등 最下等의 사회다.

둘째는 스포츠 사회다. 스포츠 사회에는 공정과 경쟁의 법칙이 지배한다. 투쟁과 경쟁은 차원이 다르다. 스포츠는 폭력적 싸움이 아니고 경쟁적 싸움이다.

서로 공정한 룰과 규칙을 지키면서 정정당당하게 승부를 가리는 스포츠는 대단히 인간적이고 우호적이고 합리적이다. 그러나 스포츠 사회에는 반드시 승자와 패자가 있다. 모든 사람이 다 승자가 될 수는 없다. 스포츠 사회는 중등 中等사회다.

셋째는 심포니Symphony사회요, 교향악과 같은 사회다.

심포니 사회에서는 협동과 조화, Cooperation Harmony의 원리가 지배한다. 컨덕터의 지휘에 맞추워 각각 다른 여러 樂士가 악기를 연주한되, 여러 소리가 서로 침범하거나 방해하지 않고 한데 어울려 아름드운 조화를 이루고 음악이라는 위대한 미와 가치를 창조한다. 아것처럼 평화롭고 협동적이고 아름다운 사회가 없다. 심포니 사회는 나도 살고 너도 사는 공생공화 共生共和의 세계요, 모두기 승자가 되는 기쁨의 사회다.

심포니 사회에는 패자가 없다. 모두가 승자다. 심포니는 잡음과 소음의 세계가 아니고 미음 美音과 화음 和音의 세계요, 공존공영 共存共榮과 상부상조 相扶相助의 협동사회協同社會다 .

곤자는 이러한 세계를 「和而不同」의 세계라고 하였다. 모든 악기가 동일하지 않고 저머다 다르다. 나팔은 힘찬 소리를 내고, 바이올린은 섬세한 소리를 내고, 색소폰은 흐느끼는 소리를 내고, 피리는 연약한 소리를 내지만, 여러소리가 전체적 하모니를 이루워 아름다운 和의 세계를 창조한다. 이것이 「화이부동」이다

농민은 농민의 목소리를 내고, 공부원은 공무원의 목소라를 내고, 기업가는 기업가의 목소리를 내지만, 여러 계층의 목소리가 서로 견재와 균형을 이루면서 민주주의 사회가 건설된다.

자기 고집만 부리는 미숙 未熟한 국민이나 남과 협동할 줄 모르는 반숙 半熟 국민은 심포니같은 협동 사회를 형성하지 못한다. 성숙한 국민만이 심포니와 같은 민주적 협동 사회를 건설할 수 있다.

우리가 앞으로 건설해야 할 사회의 모델은 심포니와 같은 협동 사회다. 진정한 민주주의 사회를 건설하려면 모든 국민이 공동체 의식을 가져야 한다.

높은 수준의 바람직한 공동체의식의 구체적 내용으로서 나는 오수원칙 五守原則을 강조한다. , 다음의 다섯가지 원칙을 꼭 지켜야 한다.

첫쩨는 시간 지키기다. 우리는 시간에 대하여 2대 원칙을 지켜야 한다. 첫째는 시간을 지키는 것이요, 둘째는 시간을 아끼는 것이요, 두 가지가 다같이 중요하다. 남에게는 지키는 것이 중요하고 자기자신에 대해서는 아끼는 것이 중요하다.

시간은 인생의 가장 중요한 자본이다. 시간의 자본은 다음의 여섯가지 특색을 지닌다.

시간은 만인에게 공평하게 분배되어있다. 누구든지 하루에 24시간으로 계산하며 1440분의 시간을 갖는다.

시간의 자본처럼 공평한 자본이 없다. 시간은 한 나라의 군주든 무명 시민이든 균등하게 분배되어 있다.

시간은 매매 불가능 賣買 不可能의 자본이다. 시간은 돈으로 살 수도 없고 돈을 받고 팔 수도 없다. 현대 자본주의 사회에서 돈은 놀라운 구매력을 갖는다. 돈이 있으면 무엇이나 다 살 수 있다. 그러나 억만금을 주어도 단 1초의 시간도 살 수 없다. 돈도 시간 앞에는 완전히 무력하다.

시간은 대차 貸借불가는의 자본이다. 시간은 남에게 빌려 줄 수도 없고 남에게 빌려 쓸 수도 없다.

시간은 저축 貯蓄 불가능의 자본이다.돈은 은행에 저축했다가 필요한 때에 꺼내어 쓸 수 있다. 그러나 시간은 저축할 수가 없다. 돈의은행은 있지만 시간은행은 없다. 시간은 쏜살같이 흘러간다.

시간은 한번 흘러가 버리면 다시 돌이킬 수 없다. 돈은 없다가도 벌면 또 생긴다. 그러나 한번 가버린 시간은 영원히 가버린 것이다. 시간은 回復 불가능 자본이다.

시간은 지극히 제한된 자본이다. 시간은 미국의 경영학자 Drucker가 지적한 바와 같이 지극히 유한한 자본이다. 시간은 개척과 개발이 불가능하다. 나에게 주어진 시간은 겨우 60,70년밖에 없다. 그러므로 우리는 시간을 아껴 써야 한다. 시간을 낭비하지 말아라. 그런데 우리는 얼마나 시간을 낭비하고 있는가. 짧은 인생이 시간의 낭비로 더욱 짧아지고 있다.

미국의 정치가요 과학자인 벤자민 프랭크린의 다음 말은 시간에 관한 금언 金言이다.

「만일 네가 네 인생을 사랑한다면 네 시간을 사랑하여라. 왜냐, 인생은 시간으로 구성되어 있기 때문에.

시간을 낭비하는 것은 인생을 낭비하는 것이요, 시간을 사랑하는 것은 인생을 사랑하는 것이다.

시간을 타락적으로 낭비하느냐, 생산적으로 활용하느냐에 따라서 인생의 성공과 실패, 행복과 불행이 결정된다.

옛사람은 말했다. 「석시여금 昔時如金.」시간 아끼기를 금싸라기를 아끼듯이 아껴라. 시간의 낭비는 돈의 낭비보다 더 나쁘다. 돈은 벌면 또 생기지만 한번 가버린 시간은 다시 돌이킬 수 없다.

시간의 애용자 愛用者, 시간의 활용자 活用者가 되여라.

시간을 아끼는 것도 중요하지만 대인 관계에서는 시간을 지키는 것이 더 중요하다.

시간 엄수 嚴守는 사회 생활의 철칙이다. 「남의 시간을 빼앗는 것은 그 사람의 돈을 빼앗는 것이다.」라는 명언을 잊지 말기를 바란다. 한국인의 「코리언 타임」은 수치 중의 수치요, 결점중의 결점이요, 악덕 惡德중에 악덕이다. 우리는 시간을 철저히 지키는 국민이 되어야 한다.

아끼자와 지키자. 시간의 2대 계명을 잊지 말아라.

둘째는 법과 질서를 지키는 것이다.

「문명은 질서다.

미국의 철학자 존 듀이의 명언이다. 법과 질서를 지키는 것이 문명인이요, 법과 질서를 지키지 않는 것이 비문명인 이다. 제대로 된 사회는 규율과 질서를 지키는 사회요, 제대로 되지 않은 사회는 규율과 질서를 지키지 못하는 사회다.

법과 질서를 안 지키면 무법천지로 전락한다. 질서의 반대는 혼란이다. 혼란은 추 醜요, 악 惡이요, 낭비여, 불편 不便이요, 부자유 不自由다. 질서는 미요, 자유요, 편리요, 절약이요, 행복이다.

질서는 천지자연 天地自然의 대법칙 大法則이다.

하나냄이 천지를 창조할 때 질서의 원리로 만들었다. 우리는 법과 질서를 지키는 국민들이 되어야 한다. 준법정신은 민주주의의 기본원리다. 교통사고가 제일 많이나는 나라가 한국이다.

1년에 1만명이 죽는다. 왜냐, 교통법과 질서를 안 지키기 때문이다. 한국인의 법과 질서의 관념은 세계의 최하위권에 와 있다. 준법정신이 없는 국민, 질서를 안 지키는 나라, 모든 한국인이 깊이 생각해야 할 민족의 난문난제難問難題다.

셋째는 분수 分數지키기다. 사치하지 말라, 낭비하지 말라, 절약정신을 가지자. 자기의 분수에 맞게 살자, 석탄 한줌, 기름한방울, 종이 한장, 쇠붙이 하나, 쌀 한톨, 연필 한 자루, 모든 물자를 아껴 써야 한다.우리나라는 지하자원이 부족한 나라이기 때문에 물자를 낭비하지 않아야 한다. 우리가 쓰는 물건과 물자는 모두 비싼 달러를 주고 외국에서 사온 것들이다. 석유, 석탄, 곡식, 원자재, 철강, 목재, 일년에 약 400억 달러 이상의 물자를 사와야만 국민의 기본 생활이 가능하다.

수입 안에서 지출하여라, 버는 범위 내에서 써라, 낭비하지 말라. 이것은 소비 생활의 대 원칙이다.

우리는 너무 부허 浮虛하게 살았고, 방만 放漫하게 생활했다. 부허와 방만은 패망 敗亡의 길이다.

Wednesday, November 23, 2011

제 11장 수 인생은 도장이다.

11장 수 인생은 도장道場이다

人生道場이다

正直의 모자를 쓰고

誠實의 옷을 입고

謙遜의 허리띠를 띠고

기쁨의 노래를 부르면서

을 향하여

쉬지말고 前進하자

1999 八十翁 峨嵯山 棲碧庵 怡堂 安秉煜

인생이란 무엇이냐.

우리는 인생을 여러가지로 비유할 수 있다.

인생을 하나의 연극에 비유할 수도 있고, 전쟁에 비유할 수도 있고, 농사에 비유할 수도 있고, 경기競技와 게임에 비유할 수도 있고, 여행에 비유할 수도 있고, 항해에 비우할 수도있고 일장춘몽一場春夢 한바탕 꿈에 비유할 수도 있다.

나는 인생을 하나의 도장에 비유하고 싶다. 인생은 도장이다. 어떤도장이냐. 세가지를 갈고 닦는 삼수도장三修道場이다.

첫째는 수학 修學의 도장이요,

둘째는 수업 修業의 도장이요,

셋째는 수덕 修德의 도장이다.

우리는 삼수 도장에서 학과 업과 덕을 연마하는 수학인이요, 수업인이요, 수덕인이다.

생즉수生卽修, 산다는 것은 갈고 닦는 것이다. 우리는 이 세상에 태어날 때 하나의 백지 상태로 태어난다.

아무 재주도 없고 아무 능력도 없고 아무 지식도 없고 아무 교양도 없고 아무 덕성도 없는 하나의 무지무능 무력무용無知無能 無力無用의 존재로 태어난다.

산모가 돌보지 않으면 갓난아기는 죽고만다. 이 세상에 갓 태어났을 때 인간은 생물중에서 가장 무력한 존재다. 제 힘으로 살아갈 힘이 하나도 없다. 부모의 양육과 학교의 교육에 의하여 우리는 하나의 인간으로 서서히 성장한다.

우리는 수학의 도장에서 밀을 배우고 글을 배우고 지식을 배우고 예절을 배우면서 인간으로서의 기본적 교양을 쌓는다.

우리는 수업의 도장에서 전문 지식과 생산 기술을 배우면서 직업인으로서의 자질과 기술과 경험을 축적한다.

우리는 수덕의 도장에서 인격과 덕성을 연마하면서 원만한 인간으로 성장하고 성숙해진다.

사람은 무능무력한 동물로 태어나서 장기간의 학습과 수련에 의하여 인간다운 인간이 되는 것이다. 동물인動物人에서 인격인人格人으로 성장하고, Animal being 에서 Human being으로 되는 것이다.

중국의 고전인《예기 禮記》에 이런 말이 있다.

「옥불탁이면 불성기요, 인불학이면 부지도다 玉不琢 不成器 人不學 不知德.」《예기》,〈학기〉

구슬은 갈고 닦지 안으면 좋은 그릇이 될 수 없고 사람도 배우지 않으면 훌륭한 도를 알 수 없다.

는 닦을 수요, 옳게 할 수요, 익힐 수요, 꾸밀 수요, 다스릴 수자다.

세상에 갈고 닦는 것처럼 중요한 것이 없다.갈고 닦으면 빛이나고 힘이 생기고 아름다워진다. 마음과 행동을 바로잡고 몸가짐을 바르게 갖는 것이 수업修業, 진리와 도를 배우고 닦는 것이 修道, 정신을 연미하고 인격을 높이는 것이 수양修養이요, 마음을 닦고 바로잡는 것이 수심修心이다.

우리는 진지하게 수도하는 마음으로 인생을 열심히 살아야 한다. 우리는 부지런히 수련하는 자세로 성실하게 생활해야 한다. 그래야만 나의 인격이 깊어지고 넓어지고 높아진다.

인생 즉 수양, 산다는 것은 수양하는 것이다. 인생에는 여러가지 종류의 장이 있다. 장은 마당 장, 곳 장이다. 인간의 일과 행동이 벌어지는 물리적 공간을 장이라고 한다. 영어의 Field, Ground, Place, 전쟁이 벌어지는 곳이 전장이요, 연극이 벌어지는 곳이 극장이요, 직업이 벌어지는 곳이 직장이요. 장사가 벌어지는 곳이 사장이요. 공부가 벌어지는 곳이 학습장이요, 도박이 벌어지는 곳이 도박장이요, 놀음판이 벌어지는 곳이 유흥장이요, 스포츠가벌어지는 곳이 구장球場이요, 사형이 벌어지는 곳이刑場이다

인생의 여러장 중에서 가장 진지하고 가장 뜨겁고 가장 건설적인 장이 道場이다.

이란 무엇이냐. 유도, 검도, 태권도, 합기도 등 무예武藝를 배우고 수련하는 곳이다. 도장은 정신과 신체의 단련장鍛鍊場이다.

불교에서는 도장이라고 발음하지 않고 도량이라고 한다. 도잔을 산스크리트어로 보디만달라Bodhimandala라고 한다. 만달라는 진리를 배우는 곳, 도를 깨닫는 장소란 뜻이다.

영어에서는 도장을 Gymnasium이라고 한다.체육관이라는 뜻이다. 옛날 그리스의 청년들이 모여서 심신을 단련한 장소다. 이 말은 그리스어 김노스Gumnos에서 왔다. 김노스는 나체 裸體란 뜻이다.

그리스의 청년들은 신체를 훈련할 때 나체로 훈련 하였기 때문에 체육훈련 장소를 김나지움이라고 한다.

인간의 생명은 갈고 닦지 않으면 무용지물이 되고 만다.

우리의 생명을 열심히 갈고 닦아야만 쓰만한 그릇이 되고 유용한 인물이 될수도 있다.

도장은 어떤곳이냐. 다음 네가지의 특색을 지닌다.

첫째로 무예를 배우는 훈련장이다. 무예는 하나의 기술인 동시에 하나의 도. 그러므로 유도, 검도, 태권도라고 한다.

도는 진지하고 엄숙한 것이다. 그러므로 도장에가면 진지하고 엄숙한 분위기가 넘쳐흐른다.

둘째로 도장에는 스승과 제자사이에 깊고 뜨거운 사제애師弟愛가 있다. 도장의 스승을 사범師範 또는 사부師傅라고한다. 사는 스승사자인 동시에 본받을 자요, 범은 모법 범, 본보기 범자다. 부는 스승 자인 동시에 도울 부, 가까울 부자다.

사범은 우리가 존경하는 스승인 동시에 본받아야할 모범적 인물이다. 사부는 우리가 우러러보는 선생님인 동시에 우리를 친절하게 도와주시는 분이다. 스승은 제자를 사랑하고 열심히 무예를 가르친다. 제자는 스승을 우러러보고 부지런히 무슬을 배운다.

스승과 제자 시아에는 두터운 상경하애上敬下愛의 정신이 있다. 제자는 스승을 존경하고 스승은 제자를 사랑해야 한다. 존경과 사랑은 사제간의 도리다. 오늘날의 학교에서는 도장에서와 같은 뜨거운 사제애를 찾아볼 수 없다.

셋째로 도장에는 제자 상호간에 업격한 규율規律과 정연한 질서와 서로 지켜야 할 예절이 있다. 상호간 서로 믿고 아끼는 우정이 있고 선배와후배, 고참古參과 신참新參, 상위자와 하위자 사이에는 돈독한 신의와 깊은 동지애가 있다.

나는 어느 사범의 제자요, 어느 제자의 사범이다. 우리는 어느 도장에 속한다는 소속감所屬感과 대의명분大義名分의 질서가 엄존한다. 이것이야말로 도장이 일반학교와 다른 훌륭한 정신적 전통이다.

끝으로 도장은 진지한 극기훈련克己訓練의 단련장이다.무예를 배우려면 자기와 싸우면서 피눈믈나는 훈련을 몇해동안 쌓아야 한다.

도장에서는 백련연마百鍊千磨, 백번 연습하고 천번 갈고 닦는 고된훈련을 해야한다. 훈련은 인간을 위대하게 만든다.

도장은 인간수련의 진지한 용광로다. 무예를 연마하고 분투노력의 사합에 열중하는 훈련생의 표정을 보라.

온몸에서 땀이 비오듯하고 눈에는 맑은 정기精氣가 빛나고 얼굴에는 용맹스런 패기覇氣가 충만하고 몸에서는 힘찬 기합소리가 터져나온다.

그 열기, 그 투지, 그 끈기, 그 정성, 그 기백, 그것은 인생의 값진 보배요, 정신의 활력소요, 생명의 강장제强壯劑.

시합이 끝나면 서로 정중하게 인사를 나누고 상호격려相互激勵의 따뜻한 우정을 교환한다. 도장의 이런 진지한 분위기는 사회의 어느 곳에서도 찾아볼 수 없고 배울 수 없다.

우리는 스스로를 열심히 갈고 닦는 자수인自修人이 되어야 한다.

우리는 일심전력一心專力으로 수련하는 전수인專修人이 되어야한다. 우리는 빛나는 존재가 되기 위하여 부지런히 자기의 정신과 인격을 갈고 닦아야 한다.「일어나라, 빛을 발하라」 (〈이사야서 〉60 1) 라고 구약성경은 가르쳤다.

우리의 눈도 빛나고 얼굴도 빛나고 말도 빛나고 정신도 빛나고 생활도 빛나고 인격도 빛나야 한다. 우리의 몸에서 밝은 빛을 발하는 발광체發光體가 되어야한다.

어떻게하면 우리의 몸에서 빛이 날 수가 있는가. 부지런히 나의 정신과 인격을 갈고 닦아야 한다. 빛은 수련의 산물이다.

열심히 수학하고 수업하고 수덕하는 사람만이 큰 힘과 큰 빛을 발할 수 있다.

인생은 첫째로 수학修學의 도장이요, 둘째로 수업修業의 도장이요, 셋째는 수덕修德의 도장이다.

현대는 양의 시대가 아니고 질의 시대다. 양이 많은 것도 중요하지만 질이 좋은 것이 더 중요하다.

만물유질萬物有質, 이 세상의 모든 사물에는 다 질이 있다. 질은 바탕이요, 내실이요, 속이요, 알맹이다.

물은 수질이 좋아야 한다. 수질이 나쁜 물을 마시면 병이 생긴다.

흙은 토질이 좋아야 한다. 토질이 우수해야 한다 경영화에서 품질과리(Q.C)를 역설하는 것은 결코 우연한 일이 아니다.

사람에도 질이 있다. 나는 인간의 질을 다섯 가지로 나눈다.

첫째는 악질惡質이다. 인간의 질이 가장 나쁜 것이다. 악질인은 인종지말人種之末이 되고 망종亡種이 되고 패륜아悖倫兒가 되고 악마가 되고 인면수심人面獸心의 존재로 전락한다. 살인범, 흉악범, 강도, 강간범, 유괴범, 방화범, 매국노로 전락한다. 자기 아버지를 죽이고 자기의 사식을 살해하는 흉악 무도한 악당으로 전락한다.

악질인이 많으면 악질사회로 전락한다. 악질사회가 되면 불안하고 무서워서 살 수가 없다. 악질인은 후안무치厚顔無恥, 철면피요, 파렴치다.

그는 지옥계, 아귀도餓鬼道, 축생도畜生道로 전락한 사람이다. 그는 탐진치貪瞋痴의 삼독에 빠진 사람이다. 그는 인비인 人非人이다. 사람이면서 사람이 아니다. 그는 사람의 탈을 쓴 야수다. 인간임을 포기한 사람이다.

둘째는 저질인低質人이다. 악질인보다는 좀낫다. 저질인은 야비하고 저속하고 치사스러운 행동을 한다. 남을 속이고 약속을 안 지키고 배신 행위를 하고 도둑질을 하고 무책임한 행동을 하고 무례한 짓을 하고 배은망덕한 행동을 한다.

그는 구역질 나는 사람이요, 한심한 사람이요, 수준 이하의 사람이다. 저질인이 많으면 그 사회는 저질사회로 전락한다.

셋째는 범질인凡質人이다.그는 평범한 사람이다. 은 범상할 범, 천할 범, 대강 범자다. 그는 범인凡人이요, 범부凡夫, 평민이요, 보통 사람이다. 그는 특출하지도 않지만, 열등하지도 않다.

그는 범상하고 범용凡庸한 사람이요, 보통 시민이다. 범질인은 기층基層을 구성한다. 그는 상인常人이요, 대중사회의 대중인이다.

사람은 적어도 이 수준까지는 도달하여야 한다. 범질인은 사회의 중류 계층에 속한다.

넷째는 양질인良質人이다. 그는 질이 좋은 사람이다. 양질인은 건전한 인격의 소유자요, 인생의 모범생이요, 사회의 우등생이다.

그는 신용을 지키고 책임감이 강하고 친절하고 예절이 바르고 봉사 정신이 많고 협동 정신이 왕성하고 법과 질서를 지키고 남과 대화를 잘하고 직분에 충실하고 공동체 의식과 애국심과 시민정신이 투철하고 도덕 의식이높고 교양 수준이 뛰어난 사람이다. 그는 법없이도 사는 사람이요, 지덕知德을 겸비한 사람이요, 양식良識을 가진 교양인이다.

교육의 목적은 양질인을 만드는 것이다. 그는 요순堯舜 시대의 착한 백성이요, 인격사회의 훌륭한 구성원이다.

이런 사회야말로 가장 바람직한 사회다. 양질인의 사회는 마음이 평안하고 살기 좋고 기쁘고 행복한 사회다.

우리가 지상에 건설하고 싶은 사회도 바로 이런 사회다.

끝으로 特質人이다. 특질인은 하나님의 특제품이요, 역사가 보낸 사람이요, 하늘이 내신 어른이요, 인류의 걸작품이다.

우리는 그들을 성인聖人이라고 일컫고, 위인偉人이라고 칭한다.

연령의 순으로 말하면 석가요, 공자요, 소크라테스요, 마호메트요, 그리스도다. 그들은 인류의 영원한 스승이요, 만대에 빛나는 위대한 별이다. 그 다음 수준의 인물로 내려오면서 간디, 바울, 맹자, 원효대사, 슈바아처, 나이팅게일, 율곡, 도산, 성프란시스코 등등, 많은 인물의 별들이 빛난다.

그들은 한마디로 인류의 수퍼스타다. 오늘날 인류가 이만큼 높은 수준에까지 도달한 것은 슈퍼스타들의 위대한 인격과 훌륭한 가르침이 있었기 때문이다.

동물에게는 도덕이 없다. 인간에게만 도덕이 있다.

도덕은 도덕이 합한 말이다. 도는 무엇이고 덕은 무엇이냐. 도는 우리가 가야 할 길이요, 덕은 길을 갈 수 있는 힘이다.

도는 인간이 실천해야 할 객관적 규범이요, 덕은 그 규범을 준수할 수 있는 주체적 능력이다.

도덕은 인간의 길과 힘이다. 아무리 우리 앞에 옳은 길이 있어도 그 길을 가고자하는 의지와 갈 수 있는 능력이 없으면 그 길을 가지 못한다.

17세기의 영국 경험론의 철학자 베이컨Bacon은「지는 힘이다」라고 갈파했다.이 말은 참으로 명언이다. Knowledge is Power, Scientia est potentia. 는 힘의 원천이다.

지식이 많다는 것은 힘이 많다는 것이요, 지식이 없다는 것은 힘이 없다는 것이다. 유식즉유력有識卽有力이요, 無識卽無力이다. 다식즉다력多識卽多力이요, 소식즉소력小識卽小力이다. 전기에 관한 지식이 없으면 전기를 이용하여 전력을 창출하고 자연을 이용하고 지배할 수 없다.

지식은 인간이 갖는 위대한 도구요, 놀라운 무기요, 강한 힘이다. 그러나 덕보다 더 강한 힘이다. 용기의 덕을 갖는 사람은 용기의 힘으로 인생의 난관과 역경을 극복할 수 있다. 정의正義의 힘을 갖는 사람은 정의의 힘으로 부정不正과 불의不義를 이길 수 있다.

덕은 인간이 갖는 위대한 정신의 힘이다. 덕을 의미하는 영어의 Virtue라는 말은 라틴어 Virtus에서 유래한다.

Virtus Vir에서 왔다. Vir는 남자라는 뜻이다. 비루투스는 남자다운 것, 힘이 있는 것, 용기, 위엄을 의미한다.

덕을 그리스어로 Arete라고 한다. 아레테는 그리스의 주신 主神인 제우스와 그의 아내 헤라 사이에서 태어난 아들이다.

Ares는 전쟁의 신이다. 아레스가 로마 신화에 가면 Mars, 즉 전쟁의 신이다.

아레스는 남자다운 것과 용기를 의미한다. 영어의 덕이란 말의 그리스어와 라틴어 어원이 모두 「남자다운 것ㆍ힘」에서 유래한 것은 결코 우연한 일이 아니다

Sunday, November 6, 2011

제 10장 기 호연지기를 길러라

10장 기 호연지기浩然之氣를 길러라

洗心淨魂 怡堂 安秉煜

원기

우리는 어떤 사람이 되어야 하느냐. 우리는 어떤 인격을 형성해야 하느냐. 바람직한 인간은 어떤 속성屬性을 구비해야 하는가. 이것은 교육의 근본 문제인 동시에 인생관과 가치관의 햇심에 속한다. 나는 기를 표준으로 오기인五氣人을 제창한다. 우리의 몸에는 다섯가지의 기가 넘쳐야 한다. 기는 기운이요, 힘이요, 생명의 근원적인 에너지다.

첫째로 우리의 몸에서는 발랄한 생기生氣가 약동해야 한다.

둘째로 우리의 눈에서는 맑은 정기精氣가 빛나야 한다.

셋째로 우리의 머리에서는 슬기로운 총기聰氣가 넘쳐야 한다.

넷째로 우리의 얼굴에서는 훈훈한 화기和氣가 감돌아야 한다.

다섯째로 우리의 인격에서는 풍만한 덕기德氣가 충만해야 한다.

이것이 이상적 인간상이다.

우리는 오기인이 되어야 한다. 몸에서 오기가 넘치는 사람이 인생의 대업을 성취하고, 사회의 성공자와 승리자가 되어 많은 사람의 영도자 領導者가 될 수 있다.

오기를 하나씩 설명하기로 한다.

첫째로 우리의 몸에서는 원기元氣가 약동하고 생기가 발랄하고 활기가 충만하고 패기覇氣가 넘쳐야 한다.

원기는 영어로 바이탈리티Vitality, 스태미너Stamina, 라이블리네스Liveliness, 비비드네스Vividness.

1962 7월 영국에 갔을 때 런던의 하이드파크에서 영국 신사의 씩씩한 걸음걸이를 보고 나는 신선한 충격을 느꼈다. 어깨와 가슴을 활짝펴고 곧은 자세와 보무당당步武堂堂한 걸음 걸이로 푸른 잔디밭 위를 활발하게 걸어가는 영국 신사는 위풍이 늠름하고 기세가 활달하였다.

영국 신사는 걸음 걸이가 다르구나, 사람이 어떻게 하면 저렇게 자신만만한 태도로 힘차게 걸어갈 수 있을가. 과연 오대양 육대주를 2백 년 동안 지배한 영국인은 걷는 것부터가 다르구나 명실공히 세계의 일등 국민이다.

우리 한국인은 왜 저렇게 걷지 못할가. 나도 한번 저 신사처럼 늠름하게 걸어 보자. 나는 그 신사의 뒤를 따라가면서 40평생에 처음으로 씩씩하고 당당하게 걸어 보았다. 기분이 대단히 상쾌하였다.

그후 부터 사람의 걸음걸이에 대하여 깊은 관심을 갖게 되었다. 젊은 청년들에서 강연을 할 때마다 그 영국 신사의 이야기를 하고 그렇게 걸으라고 강조한다.

「그 사람을 알려면 먼저 그 사람의 걸음걸이를 보라.」 「걸음걸이는 인간의 운명을 지배한다」 라는 말이 있다.

걸음걸이는 그 사람의 정신과 태도를 표현한다. 씩씩하게 걸으면 서격과 행동이 씩씩해지고, 축 늘어져서 걸으면 축 늘어진 인간이 된다. 우리 한국인은 제대로 걸을 줄을 모른다. 당당하게 걷는 사람을 보기 힘들다. 나의 관찰에 의하면 올바로 걷는 사람이 열 명 중에서 한명 정도밖에 안 되는 것 같다.

한국의 지도자 중에서 도산 선생의 걸음걸이가 제일 늠름하였다고 한다. 나는 20대의 젊은 시절에 몽양夢陽 여운형呂運亨선생의 보무당당한 걸음걸이를 보고 참으로 멋있다고 느꼈다.

70을 넘은 고령의 미국 대통령 레이건의 한국에 왔을 때 당당하게 걷는 것을 보고 역시 다르구나 하고 느꼈다.

아신峨山 정주영鄭周永 화장의 걸음걸이도 활기가 넘쳤다.

한국인 중에서 당당하게 걷는 것은 군인과 비행기를 타는 여자 승무원과 병원의 간호가들이다. 이것은 직업과 깊은 관계가 있다. 손을 주머니에 넣고 어깨를 구부리고 땅만 내려다보며 한없이 걷는 한국사람들이 너무나 맣다. 활발하게 걷는 것 부터 배워서 실천해야 한다. 그래야 우리 국민의 성격과 행동이 활발해 진다.

옛 사람들은 호안우보虎眼牛步라고 하였다. 호랑이처럼 빛나는 눈을 가지고 소처럼 힘착게 걸으라고 하였다.

「노쇠老衰는 다리에서 부터 온다」 라는 말이 있다. 인간의 두다리는 우리의 몸을 떠받드는 기둥이요, 우리를 운반하는 수레요, 바퀴와 같다. 사람이 걸을 때에는 6백여개의 근육과 206개의 뼈 중 약 절반이 움직인다고 의시는 말한다. 걷는 것처럼 건강에 좋은 운동은 없다. 우리는 건각인健脚人, 다리가 튼튼한 사람이 되어야 한다.

우리는 원기가 넘치고 생기가 약동하는 적극적인 인간이 되어야 한다. 어떻게 하면 적극적인 인간이 될 수 있느냐.

심리학자들도 다음 다섯 가지의 실천을 권한다.

첫째, 걸음걸이를 활발하게 걸으라.

둘째, 앞좌석에 가서 앉으라.

셋째, 먼저 말을 건네어라.

넷째, 상대방의 눈동자를 보라.

다섯째, 크게 미소하여라.

이런 생활 태도를 가지면 자기도 모르는 사이에 적극적인 성격이 형성된다.

새 시대의 한국인은 적극적인 인간이 되어야 한다. 우리는 적극적인 정신 태도를 가지고 살아야 한다.

일찍이 육당六堂 최남선崔南善선생은 이렇게 말했다.

「이 세상에는 두 종류의 민족이 잇다. 하나는 살아지니까 사는 소극적인 민족이요, 또 하나는 살려고 하는 강한 의지를 가지고 살아가는 적극적인 민족이다. 과거에 우리 국민은 전자에 가까운 역사를 살아왔다. 이제 우리는 이러한 소극적인 태도를 과감하게 버려야 한다.

미국의 「성공학 成功學」의 권위자인 나폴레옹 힐Hill과 크레멘트 스톤Stone 1960년에《적극적인 태도에 의한 성공 Success through a positive attitude》 이라는 명저를 공저共著했다. 그 결론은 이렇다. 이 세상에서 성공한 사람은 모두 적극적인 정신 태도를 가진 인간이요, 실패한 사람은 모두 소극적인 정신 태도를 가진 인간이다.

P.M.A Positive mental attitude는 성공의 원리요, N.M.A 는 실패의 원리다. 성공과 승리를 원 하느냐. P.M.A의 인간이 되어라.적극적인 정신 태도를 가지고 목표에 용감하게 도전하는 사람이 성공과 승리의 영광을 거둔다.

정기精氣

우리의 눈에서는 맑은 정기精氣가 빛나야 한다. 우리의 눈동자는 수정처럼 영롱하고 아침 이슬처럼 정경해야 한다.

맹자는 이렇게 말했다.

「사람에게는 눈동자가 제일 중요하고, 마음이 맑으면 눈동자가 맑고 마음이 흐리면 눈동자가 흐리다.」 《맹자》, 〈이루 離婁

눈은 마음의 창문이요 정신의 거울이다. 인간의 몸에서 가장 밝고 빛나는 것이 눈이다.

「눈은 감각感覺의 여왕」이라고 시인 괴테는 말했다.

눈은 인생의 태양이다. 우리는 먼저 눈으로 모든 것을 밝게 보아야한다. 눈이 안 보이면 암흑인暗黑人이 된다. 우리의 안광眼光은 형형炯炯해야 한다. 눈동자의 초점이 몽롱하고 흐리멍덩하지 않아야 한다.

우리는 어떤눈을 가져야 하느냐. 다섯 가지의 눈을 가져야 한다. 오안인五眼人이 되어라.

첫째는 역사적인 눈이다. 지금 여기만 보아서는 안 된다.

역사의 과거와 미래를 넓게 바라 보아야 한다. 민족의 십년 앞, 백년 앞을 바라보는 원시적原始的 안목眼目을 가져야 한다. 우리는 정중지와井中之蛙, 우물안의 개구리가 되지 않아야 한다.

역사는 우리에게 넓은 시야視野를 제공한다.

둘째는 과학적인 눈이다. 과학자는 냉철한 눈을 가지고 사물을 있는 그대로 예리하게 지시한다. 편견을 버리고, 선입관념을 제거하고, 환상과 망상에 사로 잡히자 말고, 고정하게 사물을 보려고 한다.

우리는 아집我執과 독선獨善에서 벗어나 명경지수明鏡止水와 같은 마음으로 공평하게 객관적으로 사물을 보아야 한다.

세째는 예술적인 눈이다. 「미는 영원의 기쁨이다」 시인 키츠Keats의 말이다. 예술가는 모든 것에서 미를 발견하고 미를 표현하고 미를 창조 한다. 미와 예술처럼 인간에게 희열과 활홀과 도취陶醉의 감정을 주는 것은 없다. 미와 예술이 없는 세계는 삭막하고 황량하고 무미건조하다.

세계는 다채다양한 미의 향연장饗宴場이여, 자연은 풍성한 미의 전당殿堂이다. 우리는 예술가의 눈을 가지고 도처에서 미를 발견하고 미를 즐겨야 한다.

네째는 철학적 눈이다.「철학자처럼 사색하고 농부처럼 일 하여라. 이것이 이상적인 인간상이다.

라고 문학자 루소는 갈파했었다.

철학자는 깊이 생각한다. 철학자는 사물의 근본과 핵심을 예리하게 통찰하고, 생각하면서 살아야 한다. 사색思索은 지혜를 낳고, 지혜는 인생의 정도正道를 제시한다.

끝으로 종교적인 눈이다, 종교는 인간의 근본되는 가르침이라는 뜻이다.

종교는 인간의 근본적인 문제에 대한 근본적인 대답이다.

사랑하는 마음을 가지고 인간을 보라. 측은지심惻隱之心을 가지고 사람을 대하여라. 대자대비한 마음으로 중생을 바라보라.

그리스도의 눈으로 보고, 공자의 눈으로 보고, 부처의 눈으로 보라. 이것이 종교의 눈이다.

눈이 잇다고 다 보이는 것이 아니다. 볼 줄 아는 눈이 있어야 보인다. 먼저 우리는 눈을 떠야 한다. 정신적 개안開眼이 가장 중요하다. 사물을 바로보는 것처럼 중요한 것이 없다.

바랍 보는 데서 지혜가 싹트고 깨달음이 생기고 자극을 받고 향상의 힘이 솟고 감격의 기쁨이 있고 사랑의 빛이 발하고 개혁의 의지가 분출하고 구원과 해탈의 문이 열린다.

총기

우리의 머리에는 총기聰氣가 넘쳐야 한다. 총기란 무엇이냐, 총명한 기운이요, 슬기로운 분별력이요, 올바른 사라판단이다.

이 세상의 모든 일에는 선후본말先後本末이 있다. 먼저 할일과 나중에 할 일, 근본되는 것과 말단에 속하는 일이 있다. 대소경중大小輕重이 잇다. 큰 일과 작은 일, 가벼운 일과 중요한 일이 있다.선악정사善惡正邪가 있다. 선한 일과 악한 일, 마른 일과 틀린 일이 있다. 시비곡직是非曲直이 있다. 사리에 맞는 일과 맞지 않는 일, 잘봇된 일과 잘 된 알이 있다.

이것을 바로 아는 것이 총기다. 무엇이 성하고 무엇이 악한지, 무엇이 옳고 무엇이 틀렸는지를 바로아는 능력이 지혜요 총명이다

맹자는 이것을 良知 良能이라고 하였다.

프랑스이 철학자 데카르트는 「지성知性이란 무엇이냐, 참과 거짓을 분간하는 능력이다」라고 말했다.

세상에 올바른 판단력처럼 중요한 것이 없다. 올바른 판단에서 올바른 행동이 나오고 올바른 행동에서 올바른 결과가 생긴다.

잘못된 판단에서 잘못된 행동이 나오고 잘못된 행동에서 잘못된 결과가 나온다. 그러므로 우리는 모든 일에 대하여 공정한 판단을 해야 한다. 사람은 남의 일에 대해서는 올바른 판단을 하지만 자기 일에 대해서는 올바른 판단을 하기가 어렵다. 왜야, 나의 이해 감정이 얽혀 있기 때문이다.

자기일에 대하여 공정한 판단을 하는 사람은 참으로 현명한 사람이다.

인간의 눈은 모든 것을 다 볼 수 있지만 가장 가까운 자기의 얼굴은 볼 수 없다. 자기 일에 머두운 것이 인간이다.

왜 어두우냐, 불교는 아집我執과 아욕我慾과 아만我慢과 아치我癡에 사로잡혀 있기 때문이라고 말한다.

참으로 옳은 말이다.

아집이란 무엇이냐, 자기의 욕심 때문에 눈이 너두워지고 자기만의 욕심에 사로잡혀 있는 것이다.

아만이란 무엇이냐, 자기를 자만하고 남을 업신여기어 자기교만自己驕慢에 빠지는 것이다.

아치란 무엇이냐, 자아에 관한 무명無明이여, 미망迷妄이다. 내가 나를 알지 못하는 것이다. 치는 어리석을 치요, 미련할 치다.

인간은 자기 자신에 대하여 아집 · 아만 · 아욕 · 아치의 네가지 병에 걸려 있다. 많은 사람들이 자기가 이 병에 걸렸다는 것을 모르고 있다. 내가 나를 바로 알아야 한다. 내가 나를 바로 안다는 것은 참으로 어려운 일이다.

그러므로 그리스의 철인哲人은 「너 자신을 알아라」라고 강조했다. 영어의 노우 자이넬프Know thyself, 그리스어의 그노티 새아우튼Gnothi Seauton이다. 그리스 사람들은 아폴로 신전의 하얀 대리석 벽에 이 말을 바로새기고 행동의 좌우명으로 삼았다. 내가 나 자신을 바로 아는 것이 지혜 중에서 가장 으뜸가는 지혜다.

총면의 총 자는 귀밝을 총, 총명할 자다. 귀가 밝은 것이 총이요, 눈이 밝은 것이 명 이다.

우리는 귀가 밝고 눈이 밝아야 한다. 사람은 귀가 어둡고 눈이 어두워지기 쉽다. 늙으면 더욱 그렇다.

Thursday, November 3, 2011

9-2 죽음의 신이 당신의 문을 두드릴 때....

9-2 죽음의 신이 당신의 문을 두드릴 때….

힘을 기르자

앰비션 다음에 중요한 것은 어빌리티ABILITY. 뜻만 있다고 무슨 일이나 이루어지는 것은 아니다. 이상을 실현하려면 힘이 있어야 한다. 입지立志다음에 중요한 것은 양력養力이다.

우리는 힘을 길러야 한다.힘의 중요성을 가장 강조하고 역설 한 것은 위대한 선각자 도산 안창호 선생이다.

도산의 사상은 힘을 기르자는 사상이요, 도산의 운동은 민족의 힘을 기르자는 운동이다. 도산의 힘의 철학을 설명하기로 한다.

최근 백여 년 동안에 우리 국민에게 가장 크고 놀라운 충격을 준 사건은 청일淸日 전쟁戰爭이다. 1894년에서 1895년까지 약 1년 동안 우리나라는 청일 전쟁의 비참한 전쟁터가 되었다.

열여석 살 난 다정다감한 소년 도산은 평양에서 청일 전쟁의 비극적 광경을 목격하고 견딜 수 없는 분노와 커다란 충격을 느꼈다. 일본과 청국이 싸우면 청국 땅에 가서 싸우거나 일본 땅에가서 싸울 일이지, 어째서 한국 땅에 와서 마음대로 전쟁을 벌이는가, 우리나라 군대는 뭘 하고 있는가. 우리 정부는 왜 외국 군대를 나라 밖으로 밀어내지 못하고 두 나라 군대를 나라안에 끌어들여 전쟁을 벌이게 하는가.

역사의 명승 고적이 불에 타서 잿더미가 된다. 일본 군인들이 한국 부녀자들을 마구 강간한다. 청국군이 한국 사람을 때리고 재산을 빼앗는다. 이 비참한 광경을 보고 도산은 큰 의문을 느꼈다. 어째서 한국이 청일 전쟁의 참담한 전쟁터가 되었는가.

그는 곰곰이 생각한 끝에 하니의 명백한 결론에 도달했다.민족의 힘이 없기 때문이다. 힘이 없으면 어떻게 하면 좋으냐. 민족의 힘을 길러야 한다. 어떻게하면 민족의 힘을 기를 수 있는가. 왜 힘이 있는 나라가 잇고, 힘이 없느 나라가 있는가.

나라의 힘은 어디서 생기는가. 우리는 어떤 방법으로 힘을 길러야 하느가.

도산은 이 문제를 놓고 오랫동안 진지하게 생각하고 심각하게 고민했다.

1921 44세 도산은〈힘을 기르소서〉라는 글에서 이렇게 말했다.

「내가 여러분에게 간절히 부탁하는 것은 이것이외다. 여러분은 힘을 기르소서, 힘을 기르소서이 말이외다.」도산은 힘에관하여 진지한 사색과 깊은 연구 끝에 「힘의 3대 원칙」을 깨달았다.

첫째, 일은 힘의 열매다. 힘과 일은 깊은 상관관계를 갖는다.

큰 힘이 있으면 큰일을 할 수 있고, 작은 힘이 있으면 작은 일을 하고, 힘이 전혀 없으면 아무일도 못한다. 힘은 일의 어머니요, 일은 힘의 아들이다. 큰일을 하기를 원하느냐. 모름지기 큰 힘을 길러라. 이 세상에는 힘의 법칙이 엄존嚴存한다.

「힘이 있으면 살고 힘이 없으면 죽는 것이 하늘이 정한 원리원칙原理原則이다.

둘째, 힘은 기르면 생기고 안 기르면 안 생긴다. 힘은 하늘에서 떨어지는 것도 아니요, 땅에서 솟아나는 것도 아니다. 없는데서 있는 데로, 약한데서 강한데로, 적은데서 많은데로 꾸준히 힘을 길러야 한다. 강한나라가 본래부터 강했던 것은 아니다. 처음에는 약한 나라였다. 그러나 꾸준히 힘을 기른 결과 강한 나라가 된 것이다.

「오늘에 힘없음을 한탄하지 말고 힘을 기르면 생긴다는 것을 굳게 믿고 이제부터 꾸준히 힘을 기릅시다.

그는 실력양성주의 實力養成主義를 강조했다.

셋째, 우리가 믿고 바랄 것은 자기 자신의 힘밖에 없다.

남의 힘을 믿지말라. 남의 힘은 믿을 것이 못 된다. 우리는 스스로의 힘을 믿고 살아야 한다.

우리는 자력주의自力主義의 철학과 자주독립의 인생관을 가지고 살아야 한다.

내 운명을 내 힘으로 개척하고, 내 발로 서서 내 힘으로 사는 자주인自主人이 되어야 한다.

우리는 자강부식自强不息, 부단히 자기를 강화하고 자력갱생自力更生, 자신의 힘으로 자기의 인생을 건설해야 한다.

이것은 도산이 강조한 민족 자주 사상民族 自主 思想이다

하늘은 스스로 돕는 자를 돕는다. 우리는 스스로 돕고 서로 돕는 자조호조自助互助의 사상을 가져야 한다.

이것이 도산의 힘의 철학, 힘의 사상의 기본 원리다. 참으로 간결명쾌하다.

그러면 힘은 어디서 생기ㅣ는가. 힘의 원천은 무엇이냐. 힘을 기르는 방법과 힘의 내용은 어떤 것인가.

도산은 힘의 원천으로서 민족民族 삼대三大 자본資本 저축론貯蓄論을 강조했다. 우리는 힘있는 나라가 되기 위하여 세가지의 자본을 저축해야 한다.

첫째는 금전金錢의 자본, 즉 경제적 자본의 저축이다.

뚤째는 지식과 기술의 자본, 즉 정신적 자본의 저축이다.

셋째는 신용의 자본, 즉 도덕적 자본의 저축이다.

금전의 자본에 관하여는 모든 국민이 부지런히 일하고 열심히 저축하여 적어도 저금 통장에 2천 불 이상을 저축해야 한다.

기독교에서는 十一租를 강요한다. 자기 수입의 10분의1을 하나님 앞에 바쳐야 한다.

도산은 자기 수입의 10 2 이상을 저축하라고 하였다.

금력은 가장 큰 자본이다. 돈은 사업의 제일 중요한 밑천이다. 돈이 없으면 아무 일도 못한다. 도산은 금전의 자본을 저축하기 위하여 근검저축勤儉貯蓄을 역설했다.

돈만 있다고 나라가 부강해지는 것은 아니다. 지식과 기술의 자본이 필요하다. 우리는 저마다 부지런히 공부하여 한 가지 이상의 전문 지식과 생산 기술을 갖추어야 한다. 현대는 전문가의 시대요, 기술의 새대요, 정보화의 시대다.

도산은 평생교육을 역설하고 국민 개학皆學과 국민 개업皆業을 강조했다. 온 국민이 모두 배우고 모두 일을 해야 한다. 지금은 주먹구구로 살아가는 시대가 아니다. 전문가의 시대다. 도산은 우리 나라에서 처음으로 一人一技를 강조했다.

도산은 3대 자본 중에서 신용의 자본을 가장 역설했다. 세상에 공신력公信力처럼 중요한 것이 없다. 신용은 사회적 자본인 동시에 도덕적 자본이다. 신용에 관해서는 〈인생은 도장道場이다〉의 장에서 자세히 논하기로 한다.

개인이든 국가든 3대 자본이 저축되면 될수록 힘이 강해지고, 3대 자본이 저축되지 않으면 않을 수록 힘은 약해진다.

지금부터 70여 년 전에 도산이 우리 국민에게 나라의 힘의 원천으로서 3대 자본 저축론을 역설했다는 것은 참으로 놀라운 탁견卓見이 아닐 수 없다.

그는 탁월한 선각자였다. 우리 니라 우리 민족은 아직도 3대 자본의 저축이 덜 되어 있다. 민족 3대 자본의 저축은 우리 민족이 앞으로 추구해야 할 가장 중요한 과제다.

성취인

3A의 마지막은 어치브먼트ACHIEVMENT. 어치브먼트는 성취하는 것이다.

생즉성生卽成, 산다는 것은 이루어 놓는 것이다.

성취란 무엇이냐. 뜻한 바를 실현하고 목표를 달성하는 것이다. 성취에는 기쁨이 있고 감격이 있고 영광이 있고 긍지가 있다.

각고면려刻苦勉勵의 노력 끝에 고대하던 박사학위를 받았을 때, 천신만고의 사투死鬪 끝에 고산준령高山峻嶺의 정상에 태극기를 꽂았을 때, 악전고투 끝에 어려운 고시考試에 합격했을 때, 백련천마百鍊千磨의 고난 끝에 영광의 금메달을 목에 걸었을 때, 피눈물나는 고생 끝에 큰 기업을 일으켰을 때, 천일기도千一 祈禱의 비원悲願 끝에 간절히 바라던 옥동자를 낳았을 때, 우리는 감격의 눈물을 흘리고 기쁨의 만세를 부르고 민족의 큰 미소를 짓는다.

감격의 가쁨은 고난에 비례한다. 고난이 클수록 감격이 크다. 노력하지 않고 쉽게 승리하고 쉽게 성공하면 큰 기쁨이 없고 큰 자랑이 아니다. 무릇 큰일이든 작은 일이든 성취한다는 것은 즐겁고 보람있는 일이다.

심신이 발달하여 어른이 되는 것이 성년成年이요, 학업이나 사업을 성취하는 것이 성업成業이요, 공적功績을 이르는 것이 성공成功이요, 도통道通의 경지에 도달하는 것이 성도成道, 번뇌에서 벗어나 해탈에 이르는 것이 성불成佛이요, 무슨 일이나 크게 성취하는 것이 대성大成이다.

노자老子는 「대기만성大器晩成」이라고 하였다. 큰 그릇 큰 인물은 쉽게 이루어지는 것이 아니다. 오랜 시간과 정성어린 수련이 필요하다.

동양에서 최초로 노벨 문학상을 받은 것은 인도의 시인 타고르Tagore. 카르카타의 부유한 바라몬 가정에서 태어난 타고르는 시를 잘 쓰고 그림을 잘 그리고 작곡에도 뛰어나고 강연도 잘했다.

인도의 국가國歌는 타고르가 작사했다.

그는 세계각국을 돌아다니며 강연을 했고 타고르 국제대학을 창립하여 세계 평화에 크게 공헌했다. 나는 1993 12월에 두번째로 인도에 갔을 때, 타고르가 태어난 집과 그가 임종한 방과 그가 세운 대학을 구경하고 믾은 감동을 받았다.

그는 자신의〈기탄잘리GITANJALI〉라는 유명한 시집을 출판했다. 그는 자신의 시를 직접 영어로 번역하고 이 시집으로 노벨상을 받았다.

《기탄잘리》는 「노래의 선물」이라는 뜻이다. 나는 중학교 문학소년 시절에《기탄잘리》를 감명깊게 읽엇다. 그 시집 속에 나오는 짤막하지만 유명한 시 한 수를 소개한다.

그 시는 대략 다음과 같은 내용이다.

「어느 날 죽음의 신이 찾아와 당신의 문을 두두릴 때 빈손으로 그를 돌려보내서는 안된다. 내가 이룩한 소중한 업적을 생명의 광우리 속에 가득 담아서 죽음의 신 앞에 내어 놓아야 한다. 죽음의 신이 아무 예고도 없이 어느 날 갑자기 찾아와 나의 문을 노크할 때 나는 일생동안에 내가 이룩한 활동의 유산遺産을 죽음의 신 앞에 바쳐야 한다. 그를 빈손으로 돌려보낸다는 것은 부끄러운 일이다.

나는 이 시의 이미지를 좋아한다. 우리는 이 세상에 올 때에 빈손으로 온다. 그러나 이 세상을 떠날 때에는 무엇인가 남겨 놓고 가야 한다. 나의 노력의 산물, 나의 정성의 성과成果, 내가 이룩한 업적, 내가 만든 작품을 남겨 놓고 가야 한다.

중국의 학자 왕언장王彦章은 이렇게 말했다.

인생은 남겨 놓고 가는 것. 우리는 훌륭한 지식을 남기든, 많은 사업이나 재산을 남기든, 뛰어난 작품을 남기든, 위대한 생애를 남기든, 빛나는 인격이나 유훈遺訓을 남기든, 무엇인가 보람있는 것을 남겨 놓고 가야 한다.

인생의 목적은 성취에 있다. 무엇을 남겼는가가 가장 중요하다. 한국 땅 한구석에 한국 역사의 한 모퉁이에, 내가 왔던 흔적, 내가 건설한 기념비를 남기고 가야 한다. 손톱자국, 발톱 자국 이라도 남겨 놓고 가야 한다.

우리는 근면한 성취인成就人이 되어야 한다. 우리는 건실한 성취成就 사회社會를 만들어야 한다.

성취 사회의 성취인, 이것이 우리의 정신적 지표指標.

입지인立志人이 되어라.

能力人이 되어라.

成就人이 되어라.

나는 장차 한국 사회에 무엇을 남겨 놓고 갈 것인가를 생각하면서 살아야 한다.

큰 뜻을 세우고 사는 자만이 위대한 유산을 남 길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