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howing posts with label 경봉대선사 법어집. Show all posts
Showing posts with label 경봉대선사 법어집. Show all posts

Tuesday, January 17, 2012

경봉 정석 대종사

경봉 정석 대종사 鏡峰 靖錫 大宗師
경봉스님의 행장
경봉스님은 1892년 4월 9일 경남 밀양군 부내면 서부리에서 출생하였고 1908년 불찰대본산 통도사에서 성혜性慧스님을 은사로 하여 득도하였다.
스님은 내원사, 금강산, 마하연, 석왕사, 통도사, 극락전 선원 등에서 평생을 禪과 더불어 살아오셨으며, 법명은 정석靖錫, 법호는 경봉鏡峰이다.
스님은 75세 때 1966년 윤달에 뜻있는 몇몇 신도들이 경봉 자신의 수의壽衣를 짓는 것을 보시고 깊은 사색에 잠기시다 말씀하시기를
『여러분들이 니의 수의壽衣를 만드는 것을 보니 마음도 이상하고 섭섭한 생각이 든다. 본래는 거래생멸去來生滅이 없지만 세상 인연이 다해가는가 싶으니 정말 무상無常의 감이 더욱 느껴진다.
금년 병오년에서 무진년까지 39년 간인데 그동안 가만히 생각해보면 내가 다른사람에게서 받은 부고訃告가 무려 6백 40여통이나 된다. 이 많은 사람들이 어디로 다 갔는지, 한번 가더니 소식이 없구나.』
75세의 노경老境에 이른 스님의 얼굴 모습에 자비와 와로움이 깃들어 있더니 이렇게 계송을 읊으셨다.
『옛부처도 이렇게 가고
지금 부처도 이렇게 가니
오는 것이냐 가는 것이냐.
청산은 우뚝섰고 녹수는 흘러가니
야반삼경에 촛불 춤을 볼지어다.』
스님은 1982년 91세로 입적하시니 선사의 훤출하고 자상한 모슴을 이제는 대할 길이 없다..
대중에게 법을 보이다
밝은달이 비칠 때 맑은 바람이 불어오고 맑은 바람이 불어올 때 밝은 달이 비친다. 참으로 이러한 때가 좋은 사절이다.
도대체 인생의 진리란 무엇인가? 세삼사람들이 무엇이거니 무엇이거니 하고 부르짓는 진리가 있지만 인생의 生死大事가 참으로 큰 것이다. 나고 죽는 일에 초월하려고 설산에 들어가서 6년을 고행하셨다. 실은 처음 6년간은 신선도神仙道를 닦다가 그릇된 줄 알고 다시 6년 고행하셨으니 12년을 수행하신 것이다.
참으로 중생들은 인생의 사는 목적도 모르고 인생의 삶의 참된 가치관과 참맛도 모르고 살다가 부지불각不知不覺에 죽고 마는 것이다. 이 몸은 살아 있을 때에나 가치가 칬지 들어갔던 숨이 나오지 않으면 곧 내생이요, 죽으면 공동묘지나 사설묘지에 묻혀서 흙 한줌되고 화장하면 재 한줌되고 마니 이렇게 무상한 것이 인생이다.
중생들은 참으로 생사바다에서 나고 죽는 것이요, 과거 현재 미래의 모든 부처님과 역대조사歷代祖師와 천하선지식天下善知識은 나고 죽는데 물들지 않고 나고 죽는데 초월하며 나고 죽는데 해탈하니 이것을 이름하여 열반이라 한다.
옛 부처도 이렇게 가고 이제 부처도 이렇게 가니 중생들은 다만 가고 오는 것이 본래없는 다만 이름 뿐인줄 알아서 빛과 소리에 집착하지 말아야 한다.
空한 것이 곧 빛이요 빛이 곧 공한 것이니 공한것은 없다는 뜻이다.
그러므로 눈, 귀, 코, 혀, 몸 뜻의 여섯 뿌리와 빛 소리 향기 맛 촉감 법 등 여섯 티끌과 여섯가지 뿌리에 대한 여섯가지 알음알이로 분별하는 것을 합하면 십팔계가 되는데 이것과 사대오음이 곧 공한 것이다.
우리 인생이 태어나기 전에 잘못되고 죽은 후에도 잘못되니 태어날 때마다 그릇되는 것이다. 우리의 목숨이 땅에 떨어질 임종시에 무생無生의 이치, 즉 본래 태어남이 없는 이치를 알아 정법안장正法眼藏을 알면 잘못되고 잘못되는 것이 마침내 그릇치는 것이 이니다.
이러한 도리에 이르러서는 일천 부처도 이 산눈活眼속에는 티끌이되고 이르는 곳마다 보리菩提의 대도량大道場이요 천 백억 대비보살大悲菩薩이라도 이러한 도리에는 용납할 수가 없는 것이다. 이것이 곧 관자재보살觀自在菩薩 즉 관하는 것이 자재한 보살이요 또 무위진인無位眞人이니 지위가 없는 참된 사람이요 또 자기의 주인공이라 한다.
그러므로 장부가 스스로 충천衝天하는 힘이 있어 부처가 행하는 곳도 가지않으니 이것이 곧 일을 마친 범부요 격에 뛰어난 대장부로다. 이도리를 모든 사람들이여 아는가?
말을 하고저 하나 말이 미치지 못한다. 대중은 동쪽산 하수河水 북쪽에 잘 사량思量해 볼지어다 상위에 팥죽이 반은 푸르고 반은 붉다. 허허…….미소할 뿐……
나의 말 가운데 과거 현재 미래 모든 부처님과 역대조사歷代祖師와 천하선지식天下善知識의 모든 법문이 여기 다 들어있고 석가부처님의 사십구년간 법문하신 팔만대장경이 여기 다 들어있다.
喝 하시고 법좌에서 내려 오시다.

結制示衆
잠시 계시다가 대중을 둘러보고 눈을 크게 뜨신다음 말씀하시기를,
지극한 도리는 말로서 할 수 없으니 어찌가히 전하며, 가히 전할 수 있다면 무엇을 전할까.
이러한 도리가 비록 물物에 응하여 주나 무물無物이요, 무물이라는 말도 자몰自沒이다. 그러나 소리가 끊어진 말이 도리어 널리 묭응妙應하고, 도가 어둡고 밝음이 아니나 말과 묵묵한데 한가지로 취한다. 이 일을 누가 들어서 말하며, 물물物物이 비고 넓어서 대천세계大千世界에 함께 통하니 티끌같이 많은 품류品類가 하나가 아니요, 설사 동일하다 할자라도 모든것이 여러가지 형태로 나타난다.
원음이 맑고 맑아 범부와 성현이 함께 통하며 천만가지가 지혜의 종자를 훈습하므로 이 一門이 곧 무량한 의지義旨이다.
그러므호 산과 물이 말없는 법을 설하고 초목이 늘 설법함이 끊어짐이 없으니 깊고 깊으며 다시깊다. 그러나 이것도 곧 말과 글이니 비유하자면 뱀을 그리는데 발을 붙이는 격이다.
아, 종두 鐘頭야! 오늘이 선원禪院에 겨울안가冬安居 결제結制하는 날이라 하지? 오늘모인 사부대중四部大衆이여! 탁자위에 밥과 떡 과실과 나물이 많이 놓여 있으니 먹기를 다하고 귀당歸堂하라.
무영안비동윤월 無影雁飛冬潤月
그림자 없는 기러기 찬 시내 달빛에 날고,
석사동주두이서 石獅東走斗移西
돌사자 동으로 달아나고 북두성은 서쪽으로 옮겨가네.

결제시중結制示衆
주장자로 법상을 한번 치시고 말씀하시기를,
부처와 조사도 입을 벽위에 걸었으니 이 도리를 아느냐 ?
이 도리를 얻었다 해도 옳지않고 얻지 못했다 해도 옳지않으니 이 도리를 말해 보아라. 법상레 오르기 전과 오른 뒤에 이와같이 설하고 이와같이 설했으니 「이와같다」고 하는 이치를 무엇이라고 생각하느냐?
이 일은 그만 두고 지극한 이치를 봄見에 광명을 드리우고 진리를 들음에 메아리가 응함이라. 보고 듣는 법이 진상塵想을 이루면 大千世界에 빛이 흐르고 메아리가 헤아릴 수없이 많은 세계에 전하여, 나타남을 대함에 그림자를 전부들어 내어, 있고 있지 아니함이 없으니, 소리가 이 소리가 아니요 빛이 이 빛이 아니다. 이것은 빛도 아니고 소리도 아니나, 산이 높음에 물이 급히 흐르고 봄이오면 꽃이곱게 핀다.
눈으로서 가히 볼 수 없고 귀로서 가히 들을 수 없다. 보는 것도 아니요, 듣는것도 아니나, 분명히 보고 들으니 빛을보고 소리를 들음이 육근과 육진에 벗어난다. 이 법이 보고 듣는데 구애拘碍받는 것이 아니니 남에게 잘못 전하지 말라.
어제는 영축산에서 물소리를 들으며 산빛을 보았는데,
오늘은 千聖山에서 법상에 오르니,
어제가 옳은가, 오늘이 옳은가? 애닲도다.
여기서 양산길이 삼십리로다.
좌단천차고로두 坐斷千差古路頭 앉아서 온갖 차별을 옛 길위에 끊으면,
해개공안제인주 解開空岸濟人舟 저 언덕 건너는 뱃길을 열어 줄 것이네.
명명일구해군상 明明一句該群像 밝고 밝은 한 글귀가 망상을 꾸려,
선창비성작마구 善唱非聲作麽求 소리 아님을 연설하니 다시 무엇을 구할 것인가.

반산림半山林
동짓달 그믐날 구순안거 절반되는 날 결제와 해제 중간인, 반산림
주장자로 법상을 한번 치시고 말씀하시기를,
종사宗師의 설법은 말이 많지 않으니, 법문은 종사가 법상에 오르기전에 있고, 종사의 운과 대중의 눈이 서로 한 번 마주치는데 있는것을, 뱀을 그려놓고 발을 붙이는 것처럼 주장자를 들어 법상을 한번 친 것이다.
그런데 간혹 넙자衲子들이 이 도리를 분명히 알지도 못하면서 언어와 문자만 익혀서 어떤것이 禪이고 道이며, 또 무엇이 삼요三要이며 삼구三句라 하기도 하고, 혹은 부처를 꾸짖고 조사를 나무라기도 하는데, 이낱도리這箇道理에는 부딪칠 수가 없는 것이 오늘은 선가에 반삼림인데, 차담과 진수를 잘 차려 먹었으니, 이것을 가지고 한마디 법문을 하겠다.

반반수여백 생시대조홍 飯飯水與白 生枾大棗紅
밥과 떡이 물과함께 희고, 감과 대추는 붉도다.
상두진차색 황흑겸차청 床頭珍差色 黃黑兼次靑
상위에 차린 진수의 빛갈은 누르고 검고 또한 푸르기도 한데
형형물물체 각구육미주 形形物物體 各俱六味住
모든 물물의 당체엔 각기 여섯가지 아름다운 맛 감추었다.
진수일구이 귀처역무흔 盡收一口裏 歸處亦無痕
모두 한 입에 넣으니, 돌아간 곳 또한 흔적이 없네.

풍한빙사옥 설강매토향 風寒氷似玉 雪降梅吐香
바람은 차게불고 어름은 옥같네 눈속의 매화는 향기를 토한다.
진세수행자 호권차경광 塵世修行者 好眷此景光
어지러운 세상 수행자들이여, 이 풍경의 빛을 잘 볼지어다.

결제시중
법상에 오르시어 묵묵히 계신다음 주장잘를 들어 법상을 치시고 말씀하시기를,
산하대지山河大地를 천하노화상天下老和尙이 백번이나 부순다면 어떤것이 이 모든 사람들의 비공鼻空인고?.
일러도 얻지 못하고 일르지 않더라도 또한 얻지 못한다. 이낱這箇는 가희 형용키 어려우며 가희 설명키 어려우니, 마음이라고 하여도 마음이 아니고 부처라고 하여도 무처가 아니며, 물건이라고 하여도 물건이 아니다.
그러면 저개這箇가 무엇인가? 석가노자釋迦老子도 꿈을 설했고, 삼세제불三世諸佛도 꿈을 설했고, 천하 노화상들도 꿈을 설했으니, 또한 묻노라. 대중은 일찌기 꿈을 지었느냐, 마느냐? 만약 꿈을 지었으면 야반을 향해서 一句일러 보아라. 잠시 계시다가 말씀하시기를
인간별유진소식 人間別有眞消息 인간에 별로히 참소식이 있으니
호향치시설몽춘 好向此時設夢春 좋게 이 때의 꿈 설하는 것을 볼지어다.
설법을 하려고하니 할 말이없다. 정법안장正法眼藏의 진리는 마음 행할 곳이 없고 말 길이 끊어져서 일체 이름과 형상이 없다. 이러한 현현玄玄하고도 묘묘妙妙한 이치를 입으로 아무리 말을 많이 하더라도 말뿐이요, 글로서 태산같이 수 없이 쓰더라도 다만 글 뿐인 것이다.
비유하면 우리가 매일 밥을 먹지만 밥의 참 맛을 말로서 형용하기 어렵고, 장미꽃 향기를 맡고 그 냄새를 글로서 표현하기 어려운 것과 같다.
부처님게서도 사십구년동안 설법하시고 최후에는 다자탑多子塔앞에서 가섭존자와 자리를 나누어 앉아 있었을 뿐이요, 또 영상회상靈山會上에서 꽃을들어 대중에게 보이시니 가섭존자는 미소하였을 뿐이다. 또한 열반하실 때에는 니연하泥蓮河에서 곽槨 밖으로 두 발을 내어 보이셨을 뿐이다.
그리고 유마거사維摩居士도 32명의 대보살과 더불어 말로서 문답도 하고 설법도 하다가 구경究竟의 불이법을 설하게 될 때에는 묵언하였을 뿐이다.
이 법은 입을열면 그릇치고, 열지않으면 잃어버리고, 열지도 닫지도 않는다면 10만 8천리나 어긋난다고 하는 뜻이 어디에 있는지 잘 살펴 보아야 한다.
이 법은 한 생각 일어나가 전에있고, 눈과 눈이 서로 마주쳐보는데 있고, 삼라만상에 다 법이 있으며, 중생의 일상생활에 다 법문이 있다. 우리가 가고 오는데 도가있고, 물건을 잡고 놓는 것이 곧 禪이다.
또 이렇게만 집착하여 알아도 않된다. 설사 현현한 것을 말하고 묘묘한 것을 말하더라도 똥물과 오줌뿌리는 것과 같고, 방망이로 치고 큰소리로 할喝을 할지라도 소금을 가지고 목마른 사람의 갈증을 풀어주려는 것과 같은 것이다.
금도 불에 넣어서 단련하고 단련하여 불순물이 다 제거되어야 순금이 되어 세계에 통용하는 보배가 되듯이 사람의 마음도 닦고 수련하여야 탐욕과 증오와 어리석음의 삼독심이 없어진다. 팔만 사천 번뇌망상이 菩提로 化하여야 그 마음이 밝고 밝아 불매不昧하고 요요了了하여 마치 밝은 거울이 허공에 달린 것과 같다.
마음도 아니요 부처도 아니요 물건도 아닌 이것이 무엇인고? 이것을 모든사람이 알려고 하는 것이다.
만약 이것을 알면 저 법에 자재하고 사리에 통달하는 출격出格대장부가 될 것이다.
行人路上에 望石頭로다.
망석두 망석두여!
宮商의 맑은 노래를
이 세상에 몇이나 알고 듣는고?

불국사 석가탑 사리봉안 법어
법좌에올라 대중을 한번 둘러보시고 말씀하시기를,
『설법은 말과 글을 의지해서 하는것도 있고, 말과 문자를 떠나서 하는 것이 있는데 참으로 적실한 설법은 종사가 안장있던 자리에서 일어나 한 걸음 두 걸음 걸어나와, 여러분들 앞에서 눈으로 여러분들을 한 번 둘러보고, 여러분들은 종사의 얼굴을 한 번 보는데 다 글어있고, 눈과 눈이 마주치는데 도가 있는 것이다.
말과 글로서 법문을 듣는것을 다문이라하고, 말과글을 떠나서 여래의 비밀장을 아는 것을 구족다문俱足多聞이라고 말한다.
세상의 비밀은 남이 모르게 몰래 숨기는 것이짐만은 부처님의 비밀장은 화반탁출和盤托出로 여러사람 앞에 들어내 보여도 모른다.
종사가 법좌에 오르기 전에 좋은 소식이 있고, 종사가 무슨 말을 하려는고? 하는 여러분의 그 한 생각이 일어나기 전 좋은 소식이 있는데, 그 자리가 곧 부처님이 세상에 출현하는 곳이요, 모든 부처님이 열반에 드는 곳이다.
손바닥을 들어 보이시고, 손가락을 꼽으시며 왼손도 손가락이 하나 둘 셋 넷 다섯, 오른손도 손가락이 하나 둘 셋넷 다섯 「5X5=25는 원래로 10이다.」여기에 능히 의심없을 사람이 누구냐? 이밖에 현현玄玄하고 오묘한 것을 구한다면, 第二頭 第三頭에 떨어진다.
오늘은 석가탑에 부처님의 사리를 봉안하는 날인데, 부처님은 모시지 않았다. 오늘 이 종사는 여러분들에게 각자 자기를 찾아 자성불自性佛을 발견하여 봉불식奉佛式을 해야하고 사람마다 사리舍利가 있으니, 이것을 봉안하라고 권한다.
석가탑에는 부처님의 사리만 봉안했지만 여러분에게는 산 부처가 들어있어 오고가는데 아주 편리하고 자유자재 한 것이다.』
주먹으로 허리를 치시며 喝하시고 법상에서 내려오시다.

Tuesday, December 6, 2011

2 할머니 옛날이야기 두번째

2 경봉 스님 말씀

참선은 많은 말이 필요치않은 것이다. 눈만 끔적거려도 알고 손만 한 번들어도 아는 것이 이 도리니까. 화두話頭라는 것은 본래 없는 것이지만 조사祖師가 중ㆍ하근기 中下根機를 위해서 바로 일러준 것인데, 천 칠백가지 공안 公案가운데 하나만들고 참구 參究하여 화두가 타파되면, 나의 이 본성 本性을 아는 시절이 오는 것이다.

앉으나 누우나 생각 생각이 끊임없이 해서, 도 닦는 사람들은 전문적으로 물이 흘러가듯 해야 한다. 앉으나 누우나 항상 자기의 그 알려고 하는 화두를 눈앞에 대하기를 사람을 서로대한 것과 같이 해서 잠시라도 중단하면 안된다.

금강과 같은 그런 큰용기와 뜻을 세워서 죽나사나 하는 그런심정으로 공부를 화되, 한 생각이 만년과같이 해서 내 마음의 광명을 돌이켜 비춘다. 살피고 다시 관하여 미음가운데 망상과 하찮은 생각이 있나없나 살펴서 망상이 붙으려해도 붙을 수가 없어야 한다. 파리가 오만군데 다 붙지만 불이 훨훨 붙는데는 못 붙듯이 망상의 파리도 듣는데 붙고 보는데 붙고 일상생활 붙지않는데가 없이 붙어서 사람의 애를 먹이지만, 지혜智慧의 불이 훨훨 붙는데는 붙으려해도 붙을 수가 없다.

공부를 하려고 앉아있으면 혼침에 빠져 잠이오거나 이 생각 더 생각 산란심이 오게 마련인데, 이것을 오래닦아 조복받으면 자연히 쉬워진다. 쉬고 쉬어서 홀연히 어떤경지를 보거나 어떤 소리를 들으면, 활연히 의정疑情덩어리가 타파될 때, 자기의 본성을 아는 것이다.

예전 당나라에 배휴裵休라는 사람이 있었다. 쌍둥이로 등이 맞붙은 가형아로 태어나서 부모가 칼로등을 갈라 약을 바르고 치료를 해서 키웠는데, 살이 많이 붙은 아이는 형이되고 적게붙은 아이는 동생이 되었다.

형의 이름은 도라 부르고, 동생도 도라 썼는데 글자는 같지만 음이 틀린다. 형 도는 법도를 말하는 도라하고 동생은 헤아릴 때 말하는 탁꾀할탁 이라고 불렀다.는 어릴때 형인 배도의 장성한 후 지은 이름이다.

어려서 조실부모하고 외삼촌한테 몸을 의탁하고 있었고, 동생 탁은 어디로인지 혼자가고 알 수가 없었다.

어느날 일행선사 一行禪師라는 도덕道德이 높은 스님이 오셔셔 외삼촌과 말씀을 하시는데, 배휴가 문밖에서 자기이야기하는 것을 지나치다가 잠깐 들었다.

그 스님 말씀인즉

「저 아이는 웬 아이 입니까 ?

「나의 생질인데 부모가 없어 데리고 있읍니다.

「저 아이를 내보내시오.

「부모도 없는 아이를 어떻게 보냅니까 ?

「내가보니 저 아이를 놓아두면 워낙 복이없는 아이라서 얻어 먹을 아이인데 저 아이로 말미암아 삼 이웃이 가난해집니다. 저 아이가 얻어 먹으려면 우선 이 집부터 망해야 하니 당초에 그렇게 되기전에 내보내시오.

선사가 돌아간 뒤에 배휴가

「외삼촌 저는 어다로든지 가야겠읍니다.

「가기는 어다로 가느냐 ?

「아까 일행선사님의 말씀을 들었읍니다. 내가 빌어 먹으려면 일찍빌어 먹을 일이지 외삼촌까지 망해놓고 갈 것이 있겠읍니까. 지금부터 빌어 먹으려 가렵니다.

하고는 자꾸만 만류하는 외삼촌을 뿌리치고 얻어먹는 거지가 되어서 사방으로 다니던 중, 하루는 어느 절 목욕탕에 부인삼대婦人三帶라는 아주 진귀한 보배가 떨어져 있는것을 보고 혼자 생각하기를 이 좋은 보배를 누가 잃어버렸나, 하고 구걸해 먹는 처지에 주어다 팔아먹든지 할텐데, 임자를 찾아주려고 보배임자가 오기를 가디리고 있었다.

이 보배는 어떤 물건인가 하면 그 고을 자사刺使(지금의 도지사)한테 죽을 죄를 지은 사람이 삼대 독자인데, 그 어머니가 아들의 명을 구하려고 가산家産을 모두 팔아서 멀리 촉나라에 까지 가서 이 부인삼대를 구해다가 지사에게 애걸을 하여 그 삼대독자를 살리려는, 참으로 애절한 사연이 있는 물건이다.

그 어머님이 절 목욕탕에서 목욕을하고 행장을 수습하여 간다는 것이 워낙 바쁘게 서두루다 보니 귀중한 보물을 빼 놓고 간 것이다. 집에가서 찾아보니 부인삼대가 없어서, 허둥지둥 절 목욕탕에 와 보니 웬 거지가 목욕탕 앞에 서 있기에 저 거지가 안 가져 갔을까 해서 물어보니

「내가 주워 챙겨놓았는데 당신이 주인이면 가져가시요. 내가 그 보배를 지켜준다고 여기 있었오.

빌어먹는 처지에 어떻게 보물을 지켜주고 할 여유가 없을 텐데 그것을 지켜주어 그 사람이 감격하여 치하를 하고 보배를 가지고 가서 삼대 독자를 살렸다.

그후 배휴가 그렇게 좋은일을 하고 외삼촌 집에 들리니 마침 일행선사가 오셨는데 배휴를 보더니

「얘야 네가 정승이 되겠구나.

배휴가 그 말을 듣고

「스님이 언제는 내가 빌어 먹겠다고 하더니, 오늘은 정승이 되겠다고 하니 거짓말 마시오.언제는 빌어 먹겠다고 하더니, 또 정승은 무슨 말씀이요.

「전날에는 너의 얼굴상을 봤고, 오늘은 너의마음 상을 보았다. 네가 그동안 무슨 일이 있었지 ?」하고 묻자 배휴가 사람하나 살린일을 이야기 하니

「그래서 였구나!」 하고 수궁을 하였다.

그후 참으로 일행선사의 말씀처럼 삼공三公영의정이 되었다. 그후 어느절에 갔더니 그절에 조사님들을 모셔놓은 영각影閣에 가서 조사의 영상影像을 보고 스님들에게 묻기를

「선사先師의 영상은 저기 걸려있는데, 선사들은 모두 어디로 갔읍니까 ?」하니, 수백명 되는 대중이 있어도 답하는 사람이 없으니, 배휴가

「이 절에 공부하는 사람이 없읍니까 ?

하고 물으니 마침 황벽선사黃檗禪師가 그 절 부근에 토굴을 묻고 있었는데 대중들이 말하기를 아마 그분이 참선하는 분 같다고 하며 황벽스님을 모셔왔다. 배휴가 황벽스님에게 묻기를

「선사先師의 영상은 저기있는데, 선사들은 모두 어디로 갔읍니까?

황벽스님이 벽력같은 소리로

「배휴야 !」 「예,」하고 대답하자

「어디에 있느냐 ?

하고 큰 소리로 하는 말에 배휴가 활연히 도를 알았다.

그 후에, 황벽스님을 도와서 불교를 많이 외호하고 불경佛經에 서문序文도 지었다.

배휴의 지위가 한 나라의 정승이 되었으니 함께 등이 붙어나온 그 동생을 생각하고 사방에 수소문을 해서 찾아도 동생의 행방은 묘연하였다. 어디로 갔는지 무었을 하는지 내가 이렇게 정승 노릇을 하고있느니 좀 도와주고 함께 잘 지내려고 해도 찾을 수가 없었다.

하루는 황하강을 배를타고 건너는데 때마침 여름철이라, 배휴가 뱃사공을 보니 웃옷을 벗어부치고 노를 젓는데 등어리를 살펴보니 자기등어리와 같아서 동생이 아닌가 하고

「자네 이름이 무엇인가 ?

「배탁이 올시다.

「그럼 네가 내동생 이닌가 ?

「아, 그렇습니다.

「너는 내가 정승이 된줄 모르나 ?

「알기는 벌써 알았읍니다.

「그럼 왜 찾아오지 않았나?

「아, 형님은 형님복에 정승이되어 잘 먹고 잘 지내지마는, 나는 형님덕에 잘 지낼 것이 있읍니까 ? 그래서 배를 하나 모아가지고, 오는사람 가는 사람 건네주고 있읍니다.

하고는 형이 가자고해도 따라가지 않았는데, 형님은 형님복에 잘 살지만 이렇게 넓은 산과 물을 벗삼아 오가는 사람을 거네주며 자연스럽게 사는것이 형님의 三公地位보다 낫다고 여긴 것이다.

배휴는 전생에 많은 수행을 쌓고나온 사람이고, 동생 배탁이도 말하는 것을 보면 세상영욕에 초월해서 부귀영화를 초개처럼 아는 참으로 고매하고 세상사는 멋을 아는사람이다.

정말 한 고비 넘긴 사람이다.

화업경華嚴經 십지품十地品은 십지보살十地菩薩이 처음 큰 원력을 발해서 마음을 청정케 하는 법문이다.

십지보살이 대원을 발해서 이 마음을 얻는데,

첫째는 남을 이롭게 하는 마음이다. 석가여래釋迦如來도 중생을 위해서 나섰다

둘째는 유연하고 부드러운 마음이니, 부드럽고 착하고 화해야 한다. 마음이 화하면 사회가 화하고 사회가 화하면 국가가 화화니, 화한 가운데 무엇이든지 이룩된다.

셋째는 남을 수순하여 주는 마음이니, 남의 뜻을 따라줄 것도 있고 안 들어줄 것도 있는 데 대강 들어줄만한 것은 들어 주는 것이 좋다.

넷째는 적정심寂靜心이니, 내 마음이 고요해야 한다. 일을 하고 바쁘게 설치고 해도, 마음은 고요하고 태연부동해서 고요하고 고요한 경지에 들어가야 한다.

다섯째는 조복심調伏心이니, 나쁜마음이 생기든지 남을 속인다든지 하는 마음을 항복받고 꺽어버리는 것을 말한다.

여섯째는 적멸심寂滅心이니, 이것도 고요한 것이다.

일곱째는 겸화심謙和心이니, 겸손하고 하심下心하는 것이다. 벼도 익을 수록 고개를 숙이고, 도가 높을수록 겸손하고, 사람도 훌륭할수록 하심下心이 되어야 한다.

여덟째는 윤택심潤澤心이니 마음이 초초하고 속에서 불이일게 하지말고 윤택스럽게 해서 남까지 윤택하게 하여야 한다.

아홉째는 부동심不動心이니 하늘에 별이 많지만 하늘 중심에 정반성定盤星이라는 별은 동하지 않는다. 내가不動心에 이르러야 남의 초조한 마음을 없애준다.

열째는 불탁심不濁心이니 물도 탁하면 밑이 안 보인다. 물이 탁하지 않아야 물밑이 환하게 들여다 보인다. 처음 십지네 들어가는 보살들이 이러한 열 사지 큰 원력의 마음을 가지고 있는 것이다.

암리천침 暗裡穿針 어두은 가운데 바늘을 꿰고

이중출기耳中出氣 귀안에서 기운이 나온다.

스님께서 손을들어 그 기운이 바로 허공으로 올라가듯이 표시하시며

「이러한 기운이 나와, 이러한 기운이 나와.」하며

할 일할하고 법좌에서 내려오시다.

봄소리

우리가 알려고 하는 이 자리는 공간과 시간을 초월하여 일체 상대적인 것이 떨어진 자리다.

시절은 춘삼월 호시절이라 우주에 춘광이 도래하여 시냇물은 잔잔히 흘러가고 꽃은 웃고 새는 우짓는데, 선창禪窓에 일주청향 一炷凊香의 노연爐烟은 우리집의 묘한 풍광이요 곧 다함없는 진리이다. 봄이오니 새우는 소리도 봄에우는 소리가 다르다.

겨울에는 추워서 근근히 움추리는 소리로 우는데 봄에는 아주 활발한 활짝 핀 울음소리다. 물은 잔잔히 흘러가고 산꽃은 웃고 들새는 노래하는 여기에 법문이 있다. 법문은 법사의 입으로만 하는 것이 아니라 삼라만상이 모드 법문을 하고 있는 것이다.

성전미어전 聲前眉語傳 말하기전에 눈섭말을 전하고

묵연안미소 墨硯眼微笑 묵연히 눈으로 미소짓네

목격目擊에 존자道存이라, 눈이 마주치는 곳에 도가 있기 때문이다.

여러분이 가만히 참선하고 있는 것이 극락세계소식이요 이것이 안락처요 이것이 불경계佛境界에 들어가는 것이다.

탐심貪心 진심瞋心 모든 망상을 다 쉬고 모든 생각이 붙으려고 해도 붙을수가 없는 그경지 천진난만한 동심에 들어가야 한다.

우리가 마음이 항상 편해야하고 몸은 바쁘더라도 마음은 태연부동해야 한다. 마음이 바쁘면 몸도 바쁘게 되니 몸은 바쁘더라도 마음은 태연해서 안락처를 얻어야 한다. 지그히 고요한 데 들어가면 편안한 것이 들어와서 몸도 편안하고 마음도 편안해진다.

그런데 속에 분별망상의 도적이 들어있으니 항상불안한데 그것을 없애고 가라앉히고 쉬어야 몸과 마음이 편안해 짐다.

지극히 고요한데 들어가면 편안할 뿐만 아니라 내 몸과 마음이 百千日月보다도 더 밝아지고 백천 바닷물보다 더 맑아지는 이러한 경지가 들어온다. 지극히 고요한 경지에 들어가면 맑아지고, 맑아지면 밝아지고, 밝아지면 통한다. 이 자리가 사람마다 다 있는 것인데, 자기가 잘못해서 가슴이 답답하고 머리가 아픈것이다.

마음이 바르면 모든일에 편안하고 즐겁다. 마음이 바르지 못하면 자연히 불안이 생기고 몸과 마음이 불안해 지는데, 마음이 바르고 맑으면 항상 편안하고 즐거워지는 것이다. 이것은 내 말이 아니고 부처님 말씀이다. 또 바르지 못하면 위태옵고 근심이 있다. 몸을 바르게 해야한다. 몸을 아무리 바르게 앉고 서드라도 마음이 바르지 못하면 바른게 아니다. 몸이 바르고 말을 바르게 해야 한다.

공부하는 사람은 지혜智慧가 있어서, 무슨 말을 들으면 그 말이 어디에 떨어지는지 그 말의 낙처落處를 안다. 그말을 무엇때문에 끄집어 냈는지 말을 다 안들어도 안다.

정신수련을 하면 모든면에 통찰력이 빨라지기 때문에 좋은 것이다.

금을 캐면 금 속에 은도들어잇고 철과 연도들어있는데, 잡철을 다 빼고 24금이 되면 세계통용하는 보배가 된다.

보검을 만드는데도 쇠를 불에넣어 달구어서 자꾸두드려 쇠똥을 모두빼내고 쇠의 정수만 남아 두드려도 아무런잡철이 나오지 않을 때까지 두드려서 다시달구어 최후에 물에 건져낼 때에 온도가 덥지도 차지도 않는 거기에 건져내는 그것이 묘가 있는 것이다.

우리가 불교를 믿어서 마음도 바로하고 그 마음속에 아무잡된 생각이 없으면 순금이 되고 보검이 되는것과 같은 것이다.

바른 뜻을 가지고 자비를 베프는데, 자비는 즐거움을 주고 괴로움을 없애주는 것을 말한다. 이것이 보살의 행하는 곳이다. 보살이라고 하는것은 요달하여 본다了見는 뜻이다. 그렇게해서 욕되는 것을 참는데 머물러서, 부드럽고 화하고 착하고 순한 마음을 지닌다.

아무리 중생들이 수행을 잘하고 인욕을 잘해도 부처님의 과거인행 당시와 비교할 수가없다. 누가와서 너의 눈을 빼주면 내가 꼭 쓸데가 있으니 좀 빼달라고 조르니 쑥 빼주었다. 그러나 눈은 쓰지도 않고 발로 땅에다 문질러버렷다. 그러니 얼마나 괘씸하겠는가. 그래도 태연부동해서 동하지 않으셨으니 부동지不動地에 이르러 그렇게 되기가 참 어려운 일이다.

마음이 졸폭하지말고 또한 놀라지도 말아야 되는데, 산에 풀밭길을 가다가 꿩이 푸드득하고 날아가면 깜짝놀란다. 길을 가더라도 마음을 모아 집중하는 공부가 있으면 푸드득 할때 꿩인줄 알아서 놀라지 않는다.

우리가 알려고 하는 이 자리는 마음을 두어서 구하지도 못하고 무심으로서 얻지도 못한다. 무심은 마음이 없는 것이 아니라 망상妄想없는 그것이 무심이다.

언어言語로 짓지도 못하고 말로서 어떻다고 말할 수도 없고, 문자로 이 자리를 어떻다고 형용할 수도 없고 적묵寂默으로 통할 수도 없는 자리다.

사홍서원四弘誓願은 네 가지 큰 서원인데

가 없는 중생을 서원코 건지리다

다함없는 번뇌를 서원코 끊으리다

무량한 법문을 서원코 배우리다

위 없는 불도를 서원코 이루리다

이것는 네가지 큰 서원인데 흔히 요새 말하는 서원이고, 禪家의 사홍서원은 어떤가 하면

배가 고프면 요긴히 밥을 먹고

추우면 옷을 더 입고

몸이 고단하면 발을 쭉 펴고 누워자고

더우면 시원한 바람을 사랑한다.

이것이 선가의 네 가지 큰 서원인데 우리일상생활을 제처놓고 무엇을 하겠는가. 일상생활이 그대로 불법이고 도다. 눈만 끔적하고 소리한번 지르는 여기에 도가 있고, 밥하고 옷만들고 농사짓고 장사하는데 도가있고, 밥먹고 대 소변보는데 모두 도가 있다. 도를 모르니까 도를 찾지 그곳에 다 있는 것이다. 계속

Wednesday, July 27, 2011

참선수련 경봉스님 말씀

좌선의坐禪儀

선禪의 원리原理 鏡峰大禪師 말씀

무릇 禪이란 마음 가운데 명상을 쉬고 진성眞性을 나타내는 공부이며 ,몸 가운데 화기火氣를 내려가게 하고 수기水氣를 흐르게 하는 방법이니, 망상을 쉬면 물기운이 흐르고 물기운이 흐르면 망상이 가라앉아 몸과 마음의 한결같으며 정신과 기운이 상쾌하여진다. 그러나 만약 망상을 쉬지 못하면 불기운이 항상 위로 솟아서 온 몸의 물기운을 태우고 정신적 광명을 덮는다.

왜 그런가 하면 사람의 몸을 운신運身하는 것이 마치 저 기계와 같아서 물ㆍ불의 가운이 아니고는 손가락 하나도 도저히 움직이지 못하니 사람의 육근기관六根機關은 모두 상부에 해당되는 두뇌에 있으므로 ●보는것● 듣는것●생각하는것 등이 육근을 통하게 되니 자연히 두뇌로 집중되어 온 몸의물기운을 졸이고 태우는 것이 마치 등불을 켜면 기름이 닳는 것과 같은 이치이다.

그러므로 노심초사勞心焦思하며 무엇을 오래 생각한다든지 또는 눈으로 무엇을 세밀하게 오래 본다든지 소리를 높여 무슨 말을 힘써 한다든지 하면 반드시 얼굴이 볽어지고 입속에 침이타서 입안이 바싹 마르지 않는가. 이것이 곧 불기운이 위로 오르는 현상이니 당연한 일에 육근기관을 쓰는 것도 부득히 해서 조절해 가며 써야 하거늘 하물며 쓸데없는 망상을 끓어 두뇌의 등불을 밤낮으로 켜면 되겠는가.

그러므로 좌선은 모든 망상을 제거하고 진여眞如의 본성本性을 나타내며 일체의 불기운을 내리고 청정한 물기운울 조화調和시켜 주는 것이다.

좌선坐禪의 방법方法

좌선의 방법은 지극히 간단하고 편리하여 아무라도 실행할 수 있는 것이다

一 좌복을 펴고 반가부좌半跏趺坐로 편안히 앉은 뒤에 머리와 허리를 곧게하여앉은 자세를 바르게 한다.

一 온 몸의 힘을 아랫배 丹田에 모아서 일심주착一念住着도 없이 다만 단전에 기운이 머물러 있는 것임 어림대중하되 방심放心이 되면 단전의 그 기운이 풀어지니 곧 다시 챙겨서 기운이 머므르게 하기를 잊으면 안된다.

一 호흡을 고르게 하되 들어마시는 숨을 조금 길고 강하게 하며 내쉬는 숨은 조금 짧고 가는게 한다.

一 눈은항상 반쯤 여는 것이 수마睡魔를 제거하는데 필요하나 정신이 상쾌하여 눈을 감아도 잠이 침범할 염려가 없으면 감고도 한다.,

一 입은 항상 다물고 한다. 공부를 오래하여 수슨화강水昇火降이 잘되면 앍고 윤활한 침이 혀끝과 이빨사이로 계속하여 나오는데 그 침을 입에 가득 모아 삼킨다.

一 정신은 항상 적적寂寂한 가운데 성성惺惺하고 성성한 가운데 적적해야 한다. 만약 혼침昏沈에 잠기거든 다시 새롭게 정신을 차리고 망상에 흐르거든 바른 생각으로 돌이켜서 화두話頭를 역력히 들면 혼침상란과 안상이 잦아진다.

一 처음으로 좌선을 익히는 이들은 대개 다리가 아프고 망상이 일어나 괴로와 하는데 다리가 아프면 다리를 잠깐 바꾸어 앉고 망상이 일어나면 모두 헛된 줄 생각하며 스스로 잦아지니 그런것에 마음을 움직이면 안된다.

一 처음으로 좌선을 하면 얼굴과 몸에 개미가 기어다니는 것처럼 가려워지는 수가 있는데 이는 혈맥이 관통되는 증거이니 긁고 만지지 말 것이다.

一 좌선울 하다가 절대로 이상하고 신기스런 자취를 구하지 말며, 민일 그러한 경계境界가나타나더라도 요망스러운 일로 생각하여 신경 쓰지 말고 심상하게 보아 넘길 일이다.

이상과같이 오래 오래 정진을 계속하면 필경에는 물아物我의 구분區分을 잊고 시간과 공간과 처소處所를 잊고 오직 원숙무별圓寂無別한 진경眞境에 그쳐서 무상無上의 심락心樂을 누리게 될 것아며 화두으ㅢ 의심덩어리를 타파할 때에는 자기의 본래 청진한 면목面目의 본성本性을 각오覺悟하는 것이다.

단전주丹田住의 필요성必要性

무릇 좌선이라 함은 마음을 일경一境에 住하여 일체사념一切思念을 제거함이 예로부터 각각 그 주장과 방편方便을 따라 혹은 코끝에 혹은 미간眉間에 혹은 이마위에 혹은 기식氣息에 혹은 月輪에 혹은 불상에 혹은 아자阿字에 혹은 묵조默照에 혹은 丹田에 혹은 제심制心에 혹은 수상水想등과 이밖에도 그 住하는 법이 실로 헤아릴 수 멊이 많으나 마음을 머리나 바깥경계에 住하면 사념이 동하고 기운이 올라 안정이 안되니 마음을 단전에 住하면 사념이 동하지 않고 기운도 잘 내려서 안정을 쉽게 얻는다.

그래서 원라천부遠羅天釜에 이르기를

『나의 기해단전氣海丹田은 조주무자趙州無子이며 본래면목本來面目이며 유심정토唯心淨土이며 자신미타自身彌陀이며 본분가향本分家鄕이다』 라고 丹田住를 찬양하였고

야선한화夜船閑話에 이르기를【 몸을 바로하여 단정히 앉아 타오르는 心火를 거두어 단전에 住하면 답답하던 가슴이 시원하여지고 계교사량計較思量이 한점도 없이 사라지니 이것이 진관眞觀이요 청정관淸淨觀이다.】하였으며,

또 좌선용심기坐禪用心記와 번역명의집飜譯明義集에 이르기를

【만일 정신이 산란하거든 丹田에 住하라】하였고, 또 만암법어卍庵法語에 이르기를

【 단정히 앉아 숨을 고르는 것이 좌선의 요술要術이니 조식調息의 방법은 몸을 좌정坐定한 뒤에 心氣를 깋해단전氣海丹田에 기름이라. 이것을 오래하면 元氣가 자연히 충실하여 아랫배가 표주박이나 공처럼 둥굴어진다.】하였으며, 이 밖에 선문구결禪門口訣과 영평광록永平廣錄 등에도 단전주丹田住를 많이 역설하였으니 이를 미루어 보자면 단전주가 좌선을 하는데 얼마나 요긴한 것인가를 알 수 있는 것이다.

도한 단전주丹田住는 좌선에만 요긴할 뿐 아니라 위생상으로도 지극히 요긴한 법이니 마음을 단전에 住하고 옥지玉池에서 나오는 침을 많이 삼키면 水火가 잘 조화가 되어 몸에 병고가 감소되고 얼국이 윤택해지며 원기가 충실해지고 건강에 지나니, 야선한화夜船閑話에 이르기를

【 心地가 아랫배에 가득 차있으면 혈액순환이 잘 되고 모든 기관의 기능이 황성해지며 두뇌가 명석하고 정신이 상쾌하며 삿된 기운이 감히 침입하지 못하는 건강체가 된다.】하였고,

천태선사天台禪師의 수습지관좌선법요修習止觀坐禪法要에 이르기를 【 마음을 단전에 住하여 흩어지지 않도록 잘 수호守護하면 백 가지 병이 물러난다】하였으며,

또마하지관摩訶止觀에 이르기를 【 단전은 기운氣運의 바다로서 모든만병을 다 녹여 삼킨다】하였고,

만암법어卍庵法語에 이르기를 【 정기精氣가 항상 단전에 가득차 있으면 무위견고無爲堅固하여 不老長生한다 】하였으며, 이 밖에도 규봉수중의圭峰修證義와 印度苦典가운데에도 같은 말을 역설하였으니 이 단전주는 선정禪定으로든지 위생상으로 봐도 실로 일거양득이 아닐 수 없다.

단전주라 하니 단지 마음을 단전에 붙여 내관內觀하라는 것이 아니라 공안을 단전에 붙여 성성적적하게 제거提擧하라는 말이다. 단전이라는 말이 본래 仙家에서 쓰는 말인데 어째서 佛家에서 단전주를 찬양하는가 하고 의문을 가지는 이가 없지 않을 것이다.

단전이란 말은 선가仙家의 용어인 것은 사실이나 수습지관좌선법요 修習止觀坐禪法要에

【 배꼽 세치 아래를 우타나優陀那라 하여 여기 말로는 단전이라 하고 의가醫家에서는 관원關元이라 한다】라고 한 것을 보더라도 범어梵語중에서도 단전을 의미하는 명사가 있음을 증명한 것이니, 우타나優陀那는 본시 기식氣息을 의미하는 말이라 단전은 곧 기식의 바다라 하여 이와같이 역출譯出한 것이라 모든 전기傳記를 의지하여 보면 印度에서도 일찍부터

【 생기生氣는 우주의 중심이요 만유萬有의 생명이라】하여 생기生氣를 신격화하여 숭배하는 풍습니 유행 하였고, 인류의 지혜의 발달에 따라 이 생기生氣를 직접으로 단련시키는 조식법調息法이 있었으며 불가佛家에서도 일찍부터 이 조식법이 선정상禪定上 부동의 한 법칙이 된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