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aturday, February 19, 2011

29 제 5 편 영원한 자유인 선로스님

29 5 편 영원한 自由人

1 선로宣老스님

송宋나라 때, 시인이며 대문장가로 이름이 날린 곽공보郭功甫라는 사람이 있었읍니다. 그는 역사적으로도 유명한 인물입니다. 이사람을 잉태할 때 그의 어머니가 이태백의 꿈을 꾸었다고 해서 세상 사람들은 모두 그를 이태백의 후신後身이라고 했는데, 뛰어난 ㅊ천재였다고 합니다.

곽공보의 불교스승은 귀종 선歸宗 宣선사인데 임제종의 스님이었읍니다. 어느날 귀종 선 선사가 곽공보에게 편지를 보내기를 핲으로 6년 동안 곽공보의 집에 와서 지냈으면 한다는 것이었읍니다. 곽공보는 스님께서 연세가 많긴 하지만 어째서 자기의 집에서 6년을 지내려 하시는지 알 수 없어 이상하게 생각하였읍니다. 그날 밤이었읍니다 안반에서 잠을 자다가, 믁득 부인이 큰 소리로 아이쿠, 여기는 시님께서 들어오실 곳이 아닙니다.”하고 소리치는 바람에 깨어났읍니다. 부인이 꿈에 큰스님께서 자기들이 자고 있는 방에 들어왔다고 하는 말을 듣고 곽공보는 낮에 온 편지 생각이 나서 불을 켜고 부인에게 편지를 보여 주었읍니다.

이튿날 새벽, 사람을 절에 보내 알아보니 어젯밤에 스님께서 가만히 않아 돌아가셨다고 했읍니다. 편지 내용과 꼭 맞았던 것입니다. 그러고 나서 곽공보의 부인이 사내아이를 낳았읍니다. 편지를 보낸 것이나 꿈 등으로 미루어 볼 때 귀종 선 선사가 곽공보의 집에 온 것이 분명했읍니다. 그래서 이름을 달리 지을 수가 없어, 귀종 선 선사의 선宣자를 따고, 늙을 로老를 넣어 선로宣老라고 했읍니다.

생후 일년 쯤 되어 아이가 말을 하기 시작하면서부터 누구를 보든 라고 하며 제자 취급을 하였읍니다. 그리고 법문을 하는데 스님의 생전과 조금도 다름이 없었읍니다. 그러니 아무도 어린애 취급을 할 수가 없어 모두다 큰스님으로 대접하고 큰절을 올렸읍니다. 아이의 엄마, 아버지도 큰절을 하였읍니다. 이것이 소문이 났읍니다.

당시 임제종의 정맥正脈을 이은 유명한 백운 단白雲端선사가 이 소문을 듣고 찾아왔읍니다. 세살 되는 어린애를 안고 마중을 나갔더니 이 아이가 선사를 보고 아하, 조카 오네라고 하는 것이었읍니다. 전생의 항렬로 치면 백운 단 선사가 귀종 선사의 조카 상좌가 되기 때문입니다. 이렇게 되니 사숙 님하고 어린아이에게 절을 안 할 수 없었읍니다. 백운단 선사 같은 큰스님이 넙죽 절을 하였던 것입니다. 백운 단 선사가 우리가 이별한 지 몇해나 됐는가?” 하고 물으니, 아이는 4년되지. 이 집에서 3년이요, 이 집에 오기 전에 백련장에서 서로 만나 아야기하지 않았던가라고 대답하는 것이었읍니다

이렇듯 조금도 틀림없는 사실을 말하자 백운 단 선사는 깊은 법담法談을 걸어 보았읍니다. 법담을 거니 병에 담긴물이 쏟아지듯 막힘없이 척척 받이 넘기는데, 생전과 조금도 다름이 없었읍니다. 그 법담은 장황하여 다 이야기 못하지만「전등록」같은 불교 선종 역사책에 자세히 나옵니다.이것이 유명한 귀종 선 선사의 전생담입니다.

그후 6년이 지나자 식구들을 모두 불러 놓고는 본래 네 집에 6년만 있으려 하였으니 이제 난 간다하고는 가만히 앉아 입적했읍니다. 이처럼 자유자재하게 봄을 바꾸는 것을 격생불망隔生不忘이라고 합니다. 아무리 전생, 후생으로 생을 바꾸어도 절대로 전생의 일을 잊어버리지 않는다는 것입니다.

2 원관圓觀스님

중국의 역사책인 「당서唐書」에 나오는 것으로, ‘이원방원관李原訪圓觀이라 하여 이원이라는 사람이 원관이라는 스님을 찾아간 이야기가 있읍니다.

당나라 안록산의 난리(755~765) 때 당 명황唐 明皇의 신하중에 이증李證이라는 사람이 있었는데, 이원은 그의 아들입니다. 이증은 당 명황이 안록산의 난리로 촉나라 성도로 도망갈 때 서울인 장안長安을 지키라는 왕명을 받고 안록산과 싸우다 순국했읍니다. 뒤에 국란이 평정되고 환도한 후, 나라에서 그 아들인 이원에게 벼슬을 주려했으나 그는 도를 닦겠다고 하며 거절을 하고는 자기의 큰 집을 절로 만들고 혜림사蕙林寺라 했읍니다.

그런데 그곳에 원관이라는 스님이 와서 살게 되었읍니다. 「고승전高僧傳」이나 「神僧傳」에는 원관으로 기록되어있고, 다른 곳에서는 더러 원택圓澤이라고 기록되기도 했읍니다. 보통 흔히 볼 수 있는 스님으로 마음 씀씀이가 퍽 좋았읍니다.

한번은 원관스님돠 이원 두사람이 아미산峨眉山의 천축사 구경을 갔읍니다. 구경하는 도중에 어느 지방의 길가에서 한 여인을 보고 원관스님이 내가 저 여자의 아들이 될 것입니다.태어난 지 사흘 후에 찾아오면 당신을 보고 웃을 테니 그러면 내가 확실한 줄 아시오. 그리고 열두 해가 지난 뒤 천축사天竺寺로 찾아오시오라고 말하는 것이었읍니다. 아미산으로 가다가 이렇게 말하고 그는 길가에 앉아 죽어버렸읍니다.

원관스님의 이야기가 너무 이상해서 이원이 스님의 말대로 수소문해서 여인의 집을 찾아가 보니 사흘 전에 아이를 낳았다는 것이었읍니다. 이원이 아이를 보자 그 아이는 이원을 보고 웃는 것이었읍니다. 이원은 이로써 그 아이가 원관스님의 환생인 줄 확실히 알고 혼자 집으로 돌아오니, 집안 사람들이 스님께서 가시면서 이번에가면 안 온다고 말씀하시고, 어느 곳의 누구 집에 태어날 것이라고 무두 말씀하셨다고 했읍니다.

그리고 12년이 지난 뒤 팔월 추석날 이원은 전당錢塘 천축사로 찾아갔읍니다. 갈홍천葛洪川이라는 개울이 있는 곳에 이르자 달이 환히 밝은데 저쪽을 보니 웬 조그만 아이가 소를 타고 노래를 하며 오고 있었읍니다. 그리고는 가까이 다가 오더니 이 선생은 참으로 신용있는 사람이요. 그러나 가까이는 오지 마시오라고 말하는 것이었읍니다.

약속을 어기지 않고 찾아왔으니 신용있는 사람이라고 하면서도 세속 욕심이 꽉 차 마음이 탁하니 가까이 오면 안 된다는 것이었읍니다. 이원이 바로 처다보지도 봇하고 멈칫멈칫하며 서 있는데 아이는 저만큼 떨어져 소를 타고 돌아가면서 노래를 하는 것이었읍니다.

삼생돌 위 옛 주인이여

三生石上舊情魂 삼생석상 구정혼

달구경 풍월함을 말하지 마라.

常月吟風莫要論 상월음풍막요론

부끄럽다 정든 사람이 번곳에서 찾아오니

慙愧情 人遠相訪 참괴정인원상방

이 몸은 비록 다르나 자성은 항상 같다.

此身雖異成長存 차신수이성잔존

전생 내생 일이 아득하여 알 수 없는데

身前身後事茫茫 신전신후사망망

인연을 말하고자 하니 창자가 끊어질 것 같다

欲話因緣恐斷腸 욕화인연공단장

오나라 월나라 산천은 이미 다 보고

吳越山川尋己遍 오월산천심기편

도리어, 배를 돌려 구당으로 간다

却廻煙掉上瞿塘 각회연도상구당

이렇게 누래를 부르며 가는 것을ㄹ 보고 이원은 그제서 스님이 도를 통한 큰스님인 줄 알고, 더 가까이 하여 볍문을 들어 공부하지 못한 것을 후회하며 돌아가서 열심히 수행 했읍니다.

뒤에 나라에서 이원에게 간이대부라는 높은 벼슬을 주었으나 이원은 이를 거절하고 팔십여 세까지 살았읍니다.이것이 이원방원관이야기의 내용으로, 이 이야기도 영겁불망에 해당하는 것입니다. 전생의 일을 조금도 잊어버리지않고 그대로 기억하고 있으며 자유자재한 것입니다.

노래가운데 삼생돌 위에 옛주인 이란 누구를 가르키느냐 하면 천태지의 선사의 스승인 혜사慧思스님을 말합니다.혜사스님(515~577)은 만년에 대소산大蘇山에서 남악형산南嶽衡山으로 처소를 옮기고 형산의 천주봉天柱峰 봉우리 밑에 있는 복암사라는 절에 주석住錫하시면서 제자들을 가르치고 있었읍니다.

한번은 내가 전생에도 이 복암사에서 대중을 교육사켰는데 그 전생 일이 그리워서 이곳으로 왔다고 말씀하셨읍니다. 그러면서 대중을 거느리고 나가더니 아주 경치가 뛰어난 한 곳에 이르러 이곳은 예날 절터야. 지금은 오래되어 아무 자취도 없지만 내가 전생에 토굴을 짓고 공부하던 곳이야. 근처를 파 보자고 하는 것이었읍니다.

시키는대로 그 주변을 파 보니 과연 기왓장과 각종 기물이 나왔읍니다. 또 큰 바위가 있는 곳에 이르러 이곳은 내가 앉아서 공부하던 곳이야. 죽어 이 바위 밑으로 떨어져 시체가 그대로 묻혔지라고 말씀하셨읍니다.또 땅을 파보니 해골이 나왔읍니다. 이것이 혜사스님의 삼생담三生談입니다. 금생에는 복암사, 전생에는 토굴터, 그 전생은 바위 위이므로 삼생석인 것입니다.

혜사스님은 그 도력이나 신통이 자재한 유명한 스님으로, 그런 분이 분명히 증거를 들어 확인한 것이니 거짓이라고 할 수는 없읍니다. 그래서 삼생의 해골이 나온 그 자리에 삼생탑을 세웠읍니다. 이것이 유명한 남악 혜사님의 三生塔으로, 유명한 명소가 되어 많은 사람들이 찾아가는 곳이 되었읍니다.

앞에서 원관스님이 말한 삼생석위에 옛주인이란 바로 혜사스님을 가리킨 것입니다. 곧 혜사 스님이 돌아가셨다가 나중에 당나라에 태어나서 원관이라는 스님으로 숨어 살았던 것입니다. 다른사람이 보면 모든 생활이 범승凡僧과 같았지만 실제 생활은 자유자재한 것이었읍니다. 그에게는 대자유가 있었던 것입니다.. 3 불도 징 시님 계속...

Thursday, February 17, 2011

28 1200 년을 계속하는 4차원의 신앙 籠山行

일본 비예산比叡山은 천태종 본산으로 여기에 연역사延曆寺라는 절이 있읍니다. 천태종이 전교傳敎대사에 의해 그곳에서 개종한 지는 약 1,200년이 되었는데, 1,200년을 계속 내려 오면서 12년을 단위로 농산행籠山行이라는 수행을 합니다. 그 당시 전국적으로 가장 영리하고 가장 신심있는 사람을 골라서 12년 동안 비예산의 정토원淨土院이라는 절에 앉혀두고 공부를 시켰던 것입니다. 이렇게 하는 것을 농산행이라고 합니다. 12년 만기가 되기 전에는 절대로 밖으로 나올 수가 없읍니다.이런 공부 방법이 1,200년 동안 한번도 끊이지 않고 계속되어 왔읍니다. 12년이 지나면 다른 사람이 들어가서 대를 있고 또 12년이 지나면 다른 사람이 들어가기를 100명째 계속 해온 것입니다.

들어가는 첫째 조건은 대승계를 받는 것인데 그 때의 계는 부처님에게서 직접 받아야 한다고 합니다. 어떻게 부처님에게서 받는냐 하면 기도를 간절히 하면 부처님께서 나타나, 계를 주신다는 것임니다. 다시 말하면 “서상瑞相” ‘상서로운 징조 서조瑞兆 본다’는 것입니다

농산을 할 때는 반드시 기도를 하여 부처님으로부터 직접 계를 받아야 합니다.

어떤 방법으로 기도하느냐 하면 하루에 삼천배씩 절을 합니다. 이 때 삼천 불명경이란 것이 있어서 이것을 펴 두고 부처님 명호를 한번씩 부르면서 절을 하는데, 오체투지五體投地[1]로 아주 정성껏 해야 하며 절을 한번 하고는 가루 향을 한번씩 사루고 다시 절을 해야 합니다. 아주 천천히 하루종일 스물네 시간 동안 절만 하는 것입니다.

요즈음 백련암에서 삼천배 절을 시켜보면 어떤 사람은 제트기가 날아가듯

빨리 하여서 세시간이나 네시간만에 끝내는 사람도 있읍니다. 그러나 농산행을 할 때는 이렇게 아주 시간을 많이 들여 천천히 절을 하되 부처님께서 직접 나타나서 계를 주기 전에는 그칠 수가 없읍니다. 삼천배를 마치고 나서는 또 쉬는 것이 아니라, 가사 장삼도 벗지 봇하며 앉고 눕지도 못하고, 변소 갈 때 이외에는 언제나 장좌長坐, 곧 그대로 앉아 지내며 누워서 자지도 못합니다.

2년이든 3년이든 부처님이 나타나서 계를 줄 때까지는 그치지 않고 삼천배를 하면서 온 정성을 다 바쳐 기도하며 고행을 해야 하는 것입니다. 사람에 따라서는 몇달만에 부처님이 나타나는 수도 있고, 어떤 사람은 3년이 걸리기도 합니다. 1,200년의 세월이 흐르는 동안, 농산에 들어가서 부처님의 서상을 못 본 채 12년 동안 농산한 사람은 한 사람도 없었읍니다. 모두 다 부처님으로부터 직접 계를 받을 수 있었읍니다, 몇 해 전에도 12년 동안 농산을 하여 성취한 사람에 대한 기사가 신문에 났읍니다. 그는 지극하고 지극한 정성으로 기도를 드리니 무처님이 나타나서 계를 설하더라고 했읍니다.

농산행을 할 때는 그 먼저 농산행을 한 사람이 스승이 됩니다. 그것은 실제 부처님에게서 계를 받았는지 확인하기 위해서인데, 자신들이 직접 체험했으니 다른 사람은 그들에게 거짓말을 할 수가 없는 것입니다. 이런 방법으로 1,200년 동안 농산행을 계속하여 이어내려왔으니, 농산행을 하는 사람은 누구나 부처님을 친견하고 부처님에게서 직접 계를 받는 것입니다.

이 사실은 한두 사람이 개인적으로 아는 것이 아니고 일본의 모든 불교 단체와 불교도가 다 아는 일입니다.

이 사실만으로도 부처님이 돌아가셨으니 그만 이라고는 할 수는 없읍니다. 자신이 못 본다고 그러한 사실이 없다고는 할 수 없는 것입니다. 마치 눈 감은 봉사가, 누군가가 “해가 참 밝고 좋다”고 하는 소리를 듣고 자신의 눈앞이 캄캄하다고 해서 그를 미친놈이라고 욕 할 수 없는 것과 같읍니다. 누구나 진리의 눈을 뜨면 모든 것을 다 볼 수 있읍니다.

천태 지자天台 智者선사가 혜사스님을 찾아가서 공부를 하고 바로 깨쳤읍니다. 그러고 나서 영산회상[2]이 엄연부산儼然不散 함을 자기눈으로 보았읍니다. 이 말은 곧 영축산에서 부처님이 상주하여 수많은 대중을 거느리고 법을 설하는 것을 보았다는 말입니다.

부처님이 돌아가신 지 수천년인데 지금도 영축산에서 법문을 설한다는 말은 도저히 믿기 어려울 것입니다. 그러나 부처님이 세상에 나느니 죽느니 하는 것은 꿈속에 사는 눈 먼 중생들이 하는 말이요, 참으로 꿈을 깨어 눈이 뜨이게 되고 귀가 열리면 부처님이 항상 계시면서 법을 설함을 보고 들을 것입니다. 부처님은 천 백억의 몸으로 나투어 시방세계十方世界에 다니시며 중생을 구하십니다.

그래서 설사 꿈을 깨지 못한 사람이라도 지극한 정성으로 부처님을 보려하면 누구든지 다 볼 수 있는 것이니, 보지 못하는 것은 다만 그 사람의 정성이 부족한 탓입니다. 우주 전체의 중생들이 정성만 지극하면 한 날 한시에 다같이 볼 수 있읍니다. 그러므로 부처님께 정성을 들여 병을 고친 사람, 큰 액난을 면한 사람, 죽을 것을 살아난 사람등 그밖에 여러가지 기적이 수없이 많지 않습니까 ?

부처님께서 항상 하시는 말씀이 있읍니다

모든 신통력 갖추고 具足神通力 .구족신통력

널리 지혜 망편 닦아 廣修智方便. 광수지방편.

시방 모든 국토에 十方諸國土 시방제국토

어느 곳에든 현신 않는 곳 없다

無札不現身 무찰불현신

.달아 뜨면 천 개, 만개 강에 달이 비치듯이 千江有水 千江月,천강우수 천강월 부처님은 시방세계 어느 곳 어느나라 할 것 없이 헌신하지 않는 곳이 없읍니다. 만약 무처님이 아주 돌아가 없어졌으면 모든 기적들은 절대로 있을 수 없을 것입니다. 그러나 현재에도 많은 사람들이 부처님께 정성을 들여 그 정성의 정도에 따라 가피를 입고 있지 않습니까? 이런 것들은 모두 꿈속의 중생들이 대하는 부처님이어서 잠간 동안입니다. 그러나 꿈을 깨어 법法의 눈을 밝게 뜨면 부처님을 항상 안 볼래야 안 볼 수 없는 것이니 부지런히 공부해서 속히 마음의 눈을 뜰 것입니다.

흔히 염기염멸念記念滅하는 것 곧 생각이 일어났다가 생각이 없어지는 것을 생사生死라고 합니다. 끊임없이 생각이 일어났다가 없어졌다 하는데, 이러한 생멸하는 생각이 완정히 없어지는 것을 해탈이라고 합니다. 염기염멸하는 그 생각이 없으면 생사도 없읍니다. 이것이 철저하여, 8아라야식의 근본무명, 무시무명無始無明까지 모두 끊어지며 미래겁이 다하도록 자유자재할 수 있는 것입니다. 그렇게 되면 완전한 해탈을 얻을 수 있읍니다.

불교를 참으로 잘 믿으려면, 불교의 근분 목표가 어디에 있는지 알고 믿어야 합니다. 눈 먼 망아지가 요령소리만 듣고 따라가다가는 똥구덩이에 빠지고 흙구덩이에 처박히고 덫에도 걸리고, 심지어는 죽기까지도 하는 것입니다. 불교의 근본 목표는 생사해탈生死解脫에 있읍니다.

해탈이란 일시적인 자유가 아니라 영원한 자유입니다. 영원한 자유라 함은 생전사후生前死後를 통해서 또 과거, 현재, 미래의 三世를 통해서 영원히 자유로운 것입니다. 결코 전설이나 神話가 아닙니다.

실제로 永遠한 自由가 없다면 굳이 부처님을 믿고 信仰생활을 할 필요가 없을 것입니다.

욕심대로 살다가 죽으면 그만이라면 아무도 고생하면서 修行하지 않을 것입니다.

그러나 永遠한自由, 영원한 解脫이 있기 때문에 모든 것을 희생하고 苦行의 문턱에 들어서는 것입니다. 天子보다더 높은이라도 죽고나면 아무 소용이 없읍니다. 그렇기 때문에 죽어도 그만이 아닌 영원한 자유를 구하기 위해 天子도 내버리고 참 眞理에 도달하려고 하는 것입니다. 5편 永遠한 自由人 계속


Tuesday, February 15, 2011

27 3장 신심神心이 성지 聖地 다

27 3장 신심信心이 성지聖地다

1 관음보살과 문수보살

어떤 것이 부처입니까 ?

금사탄 여울가의 마씨 부인이로다.

如何是佛 여하시불

金沙灘頭馬郞婦 금사탄두마랑부

이것은 임제종의 3세인 풍혈스님의 법문입니다. 어떤 스님이 풍혈슨님에게 묻기를 어떤 것이 부처님입니까?”하니 금사탄개울가에 미씨 부인이다하였읍니다.

이말이 떨어지는 곳 낙처落處, , 근본 뜻은 각자가 공부를 하여 확철히 깨쳐서 참으로 자성을 밝혀야 알지 그 전에는 모르는 것이니 부지런히 공부할 밖에 다른 길이 없읍니다.다만 금사탄두마랑부라는 말의 출처가 어떤 것인가 하는 것은 이야기 할 수 있읍니다.

지금의 중국 협서성에 금사탄이라는 유명한 강이 있읍니다. 당나라 貞元 785~804 , 어디서 어떻게 왔는지도 무르는 천하일색의 여자가 이 강가에 살고 있었는데, 사방에서 돈 있는 사람, 벼슬 높은 사람을 비롯하여 온갖 사람들이 그 여자에게 청혼하였읍니다. 그 여자는 내 몸은 하나인데 청혼하는 이가 여러사람이니 내 조건을 들어주는 사람에게 시집가겠읍니다하며 법화경 보문품을 외라는 조건을 걸었읍니다.

그 이튿날 보니 스무명이 법화경 보문품을 하릇밤 사이에 다 외어 달려왔읍니다. 그래서 이번에는 금강경을 외우라고 했읍니다. 그 다음날 새벽에 보니 또 십여명이나 되어, 이번에는 :법화경을 다 외어오라고 했읍니다. “법화경은 좀 많은데도 사람들은 그래도 이 미인에게 장가들 욕심으로 죽자 하고 외웠읍니다.

마씨 집 아들 곧 마랑馬郞이 사흘 만에 다 외고 달려왔읍니다. “참 빨리 외셨읍니다. 한번 외어보십시오하니 줄줄줄 다 외는 것이었읍니다. “내가 참으로 천하에 좋은 낭군을 찾아다니는 중인데 당신 같이 좋은 낭군을 만났으니 이젠 한이 없읍니다. 당신에게 시집가겠읍니다.”

이렇게 결정되어 혼인날을 받고 성례成禮를 했읍니다. 결혼식이 끝나고 신부가 방으로 들어가자, 잠시 후, 축하객들이 채 헤어지기도 전에, 신부가 아이구 배야, 아이구 머리야 ! “ 하더니 갑자기 데굴데굴 구르다가 덜컥 죽어버리고 만 것입니다. 마랑은 이 처녀에게 장가 들기 위해 밤잠도 안 자고 법화경을 외고 또 외었는데 신부가 죽어버리고 만 것입니다. 그런데 금방 죽은 여인의 사체가 썩더니 진물이 줄줄 흐르는 것이었읍니다. 천하일색, 그 아름답던 사림의 몸이 금방 오물이 되어 흘러내리니 참으로 흉하지 않겠읍니까. 아무리 만승천자萬乘天子가 좋다해도 죽어서 썩으면 그만이듯이, 아무리 미인이라도 죽어서 썩으니 그만입니다.

마랑은 부랴부랴 관을 짜서 여자의 시신을 산에 묻아버렸읍니다. 그래도 죽기 전의 그 처녀가 마랑의 눈앞에 어른거렸읍니다. 자신이 박복하다고 한탄하며 지나던 어느날 스님 한 분이 마랑을 찾았읍니다.

일전에 이곳에서 처녀 한 사람이 죽지 않았읍니까. 그 묘소가 어디 있읍니까?”

묘소로 안내하니 스님이 갖고 있던 석장으로 묘를 탁 치는데, 묘가 둘로 갈라지면서 그속에 소복하게 쌓여있는 누런 황금뼈가 보였읍니다. 불과 며칠 전에 죽은 사람인데 석장으로 추켜드니 금쇄골金鎖骨입니다. 뼈 마디 마디가 고리가 되어서 머리부분을 드니 발 뒤끝까지 끌려 올라왔읍니다. 그때 스님이 말했읍니다.

이것을 알겠느냐?”

모르겠읍니다.”

그 처녀가 바로 관세음보살이야, 이곳 협서성 사람들이 하도 심신이 없어서 너회들을 제도하기 위해 관세음보살님이 처녀몸으로 나투어 온 것이야. 이 금쇄줄을 봐!”

마랑은 법화경을 사흘 만에 다 웰 만큼 영리한 사람이여서 곧 그 뜻을 알았읍니다.

참으로 참으로 내가 관세음보살을 친견했구나!’

이렇게 관세음보살이 좋은 법문을 해주었으니 너회들은 부지런히 수행 하거라 !”

이렇게 말하고 그 스님은 허공으로 날아가 버렸읍니다.

이것이 유명한 금사탄두마랑부이니, 금사탄 개울가의 마씨부인이라는 뜻으로,

널리알려진 중국의 고사입니다.

문제는, “과연 그럴 수 있을가?, 관세음보살이 화현하다니, 도저히 믿을 수 없다고 의심이 가는 것을, 이해가 안된다고 하여, 그것을 거짓말이라고 단정한다면 산채로 지옥에 떨어진다는 말입니다. 관세음보살이 世人에게 나타난 사례는 아주 흔합니다.

그중에서도 가장 유명한 곳이 보타락가 산 寶陀落迦 山입니다.’보타란 인도말로 희다는 뜻이고 낙가이란밀로서 보타락가는 흰꽃이란 뜻입니다.관음도량觀音道場은 백화도량百華道場이라고도 합니다. 보타락가 산에 조음동潮音洞이라는 곳이 있읍니다.나는 가보지 못하였지만 사진으로는 여러번 보았읍니다. 그곳에서는 누구든지 정성껏 기도하면 수시로 관세음보살이 나타납니다.

그래서 중국에는 성지聖地와 명소가 많지만 돈이 많이 생기는 곳은 보타락가 산입니다. 온 천하 신도들이 관세음보살을 친견하려고 많이 오기 때문입니다. 수백, 수천 명의 사람이 모여 향을 꽂고 정성껏 기도를 하면,그 가운데 관세음보살이 나타나서 때로는 봅문도하고 여러 동작을 하는 것을 보게 됩니다. 그런 것을 보면 신심이 솟아나서, 신도들이 돈을 막 쏟아 놓고 갑니다. 그래서 해방 전까지만 해도 보타락가 산 절 한 곳에서만도 대중스님이 사천여명 살았읍니다. 그리고 신도들이 자꾸 와서 관세음보살을 친견한 후에는 돈을 쏟아 놓고 갑니다.

그런데 제일 문제되는 것은 사신공양捨身供養입니다. 관세음보살 친견에 너무 감격하여 이 몸을 관세음보살께 바치겠다고 높은 절벽에서 떨어져 몸을 공양하는 것입니다. 그래서 사신공양을 못하도록 관세음보살이 자주나타나는 주변에는 이리저리 막이서 사람이 죽지 못하도록 조치를 했읍니다. 그래도 가끔 사신공양 사건이 일어났읍니다. 이것이 유명한 보타락가 산의 관세음 현신現身입니다.

관세음보살은 보타락가 산에만나타나는 것이 마니고 금사탄에도 퍽 자주 나타났다는 것입니다. ‘금사탄두마랑부라는 이 이야기는 보통 사람이 말한 것이 아니고 선종의 가장 큰 종파인 임제종의 제3세 적손인 풍혈스님이 하신 말씀입니다. 그러나 풍혈스님이 말씀하신 그 법분의 근본 뜻은,앞에서도 말했듯이, 공부를 하여 확철히 깨치기 전에는 모르는 것으로, 나는 다만 그 연유가 어찌 된 것인가를 말한 것입니다

이것보다 더 유명하며 기적적인 법문이 선가에 있읍니다. 前三三 後三三이라는 것입니다. 이 법문은 유명한 영암록 백측碧巖錄 百則에도 들어 있읍니다. 이것은 뭄수보살이 말씀하신 이야기입니다.

무착 문희無着 文喜선사가 문수보살을 친견하려고 중국의 오대산에 갔다가 금강굴 앞에서 웬 영감 한분을 만났읍니다. 그 영감을 따라가니 아주 좋은 절이 있어서 그절에 들어가 영감과 마주 앉아서는 이런저런 이야기를 나누었읍니다.

그 영감이 물었읍니다.

남방 불법은 어떻게 행하는가 南方佛法 如何住持 ? “ 남방불법 여하주지

말세 중생이 계행이나 지키고 중노릇 합니다.

末法比丘 小奉戒律말법비구 소봉계율

절에는 몇사람이나 모였는고 多少衆?” 다소중

삼백 혹은 오백 명 모여 삽니다 .或三百 或五百.”혹삼백 혹오백

무착스님도 한마디 묻고 싶었읍니다.

여기는 불법이 어떠합니까 此間如何住持 ?” 차간여하주지 “‘범인과 성인이 같이 살고,용과 뱀이 섞여 살지

凡聖同居 龍蛇混雜.”범용동거 용사혼잡

그럼 숫자는 얼마나 됩니까 多小衆 ? “

앞으로도 삼,, 뒤로도 삼,삼이지 前三三 後三三.”

;용과 뱀이 섞여 살고 범인과 성인이 같이 산다는 말은 보통으로 들으면 그저그런 것 같지만 그 뜻이 깊은 곳에 있읍니다.겉말만 따라가다가는 큰일납니다. 무착 선사는 그 말뜻이 무엇인지도 모른 채 노인과 작별하고 나와보니 절은 무슨 절, 아무 것도 없읍니다. 그래서 그것에 대해 게송을 읊었읍니다.

시방세계 두루 성스러운 절 廓周沙界聖伽籃 곽주사계성가람

눈에 가득히 문수와 말을 나누나 滿目文殊接話談 만목문수접화담

당사는 무슨 뜻을 열었는지 모르고 言下不知開何印 언하부지개하인

그 후에 또 문수보살을 친견하여 법문 들은 것이 있읍니다.

불교 선문에서 흔히 알고 있는 내용입니다.

누구나 잠깐동안 고요히 앉으면 若人靜坐一須臾 악인정좌일수유

강가 모래같이 많은 칠보탑을 만드는 것보다 낫도다 勝造恒沙七寶塔 승조항사칠보탑

보배탑은 끝내 무너져 티끌이 되거니와 寶塔畢境碎微塵 보탑필경쇄미진

한생각 깨끗한 마음은 부처를 이루는도다 一念淨心成正覺 일념정심성정각

이 게송을 아는 사람은 많지만, 어다서 나오는 것인지 그출처를 모르는 사람이 많을 것입니다. 이것은 무착 문회 선사가 오대산에가서 문수보살을 친견하고 문수보살이 ;직접; 무착 스님에게 설한 법문입니다. 그러니 관세음보살뿐 아니고 문수보살 같은 그런 대보살들도 32응신만이 아니라 삼백, 삼천, 또 몇천억 화신을 나눌 수 있는 것입니다.

누구든지 불법을 성취하여 대해탈부사의 경계를 얻을 것 같으면 문수보살도 될 수 있고, 관세음보살도 될 수 있고, 보현보살도 될 수 있으며, 32응신이 아니고 백, 천 화신을 나타내어 자유자재하게 일체 중생을 제도할 수 있는 것입니다.

문수보살을 보는 가장 유명한 성지가 중국의 오대산인데 그곳에 가서 실제로 친견한 기록도 많이 있읍니다. 우리나라 역사에서도 보면 신라시대 자장스님이 중국에 갔을 때 오대산에서 문수보살을 친견하고 법문을 들었다고 합니다. 그 뒤 스님은 귀국하여 불교를 위해 여러가지를 하시다가 나중에 태백산 장암사에서 돌아가셨는데, 그 때 돌아 가시기 얼마 전에 문수보살이 직접 스님을 찾아왔지만 그만 사자들의 실수로 친견 못했다고 합니다.

실제로 문수 보살이 사자를 타고 나타나는가 하면, 노인으로 또는 동자童子가되어 나타나는 수도 있고 여러가지로 몸을 나투어 비유로서 중생을 교화합니다.그래서 누구든지 신심이 있고 오대산에가서 가도를 많이 하는 사람이면 문수보살을 직접 친견할 수 있읍니다. 그렇다면 우리가 오대산에 가야문수보살을 친견하고 낙가산에 가야만 관세음보살을 친견할 수 있는가? 아님니다. 그렇지 않습니다. 부처님께서 항상 하신 말씀이 있읍니다.

중생을 제도하기 위해 爲度衆生故 위도중생고

방편으로 열반을 나타내지만 方便現涅槃 방편현해탈

내가 실제 죽는 것 아니고 而實不滅道 이실불별도

항상 여기서 법을 설한다 常住此說法 상주차설법

상주차설법常住此說法아라 함은 항상 여기 게시면서 설법하시는 것을 말합니다. ‘여기란 시방세계로서 처처가 여기입니다. 꼭 영축산만 여기가 아님니다. 보타산이 어느 곳인가? 사람사람의 신심이 보타산입니다. 철저한 신심으로 기도를 하면 어디든지 나타납니다.

관세음보살이 나타나는 곳이 보타산입니다. 문수보살이 나타나는 곳이 오대산입니다. 오대산이 따로 없고 보타산이 따로 없으니.사람마다 그 신심에 있읍니다. 신심! 오직 신심으로 공부도 기도도 하면, 누구든지 살아서 관음도 문수도 볼수 있으며 산 부처님도 볼 수 있읍니다.

2 농산행 계속

Saturday, February 12, 2011

25 영원한 자유 2장 자유로 가는 길

25 영원한 자유 2장 자유로 가는 길

1 큰 신심

그러면 자기개발, 우리가 가지고 있는 무한한 능력의 개발이라는 큰 과제를 두고서, 우리는 어떠한 결심을 해야 되는가? 우리가 어떤 결심을 해야만 자기능력을 완전히 개발하여 불보살이 되고 조사가 되고 그리고 선지식이 되어 미래겁이 다하도록 일체 중생을 위해서 살 수 있는가? 법을 위해서 몸을 잊어버려야만 위법망구爲法忘軀 대고를 성취할 수 있읍니다. 모든 행동의 근본이 되는 몸까지도 잊어야만 비로서 대도를 성취할 수 있읍니다.

가장 좋은 보기로 부처님을 들 수 있읍니다. 대도를 위해서 왕자를 버리고 천추만세에 일체중생을 위해서 얼마나 큰 공을 이루웠읍니다까? 근대에 와서는 오직 진리를 위해서 모든 것을 다 버린 사람, 법을 위해서 몸을 버린 사람으로 청나라 태종 순치황제를 보기로 들 수 있읍니다. 만주족이 만주에서 일어나 십팔년동안을 싸워 중국을 통일하여 대청제국을 건설하였는데, 그 세력 판도는 남 , 북만주 , 내 외몽고 서장, 안남에 이르러서 중국역사에서는 말할 것도 없고 세계 역사에서 가장 큰 제국을 건설했읍니다. 그런 순치 황제가 대천제국 창업주의 영광을 버리고 출가를 했읍니다. 본디부터 불교에 관심이 있었던 그는 부귀영화란 일시적인 것이며, 또 대청제국의 황제 노릇도 영원에서 영원으로 계속되는 무한한 사간에 비하면 눈깜짝할 사이의 일이며 아이들의 장난일 뿐이라고 깊이 통찰했읍니다. 그래서 황제는 굳은 각오로 곤룡포를 벗어던지고 야반도주를 했읍니다. 그리하여 자기모습을 감추고 금산사에 가서 나뭇군이 되어 머슴살이로 스님을 시봉하면서 공부를 했읍니다.

그때 출가시를 썼읍니다.

나는 본래 인도의 수도승인데 我本西方一衲子 아본서방일납자

무슨 인연으로 타락해서 제왕이 되였는가. 緣何流落帝王家 연하류낙제왕가

천자 되는 것을 타락 중에섣도 가장 큰 타락이라고 보니 이것이야말로 참되게 수도하는 근본 태도가 되는 것입니다.

요즘 보면 동네 이장만 되어도 만금천자라도 된 것 같이 행세하는 사람들이 많습니다. 부처님을 믿고 부처님을 따른다면 부처님의 각오와 결심을 가져야 하는데, 그 반대로 가는 사람이 많습니다. 참으로 자기를 잊고 무상대도를 성취해서 일체중생을 위해 이 대도를 위하서 큰 결심을 하는 사람은 거의 없읍니다.

불교를 믿는다고 하는 사람들이 장사꾼이나 날품팔이하는 사람과도 같읍니다. 일반 학생들에게 공부하는 목적이 어디 있느냐고 물으면 어느 회사의 직원이 되는 것이라는 식으로 답하곤 하는데, 이런 장사꾼 같은 싱리를 가지고는 절대로 무상대도를 성취할 수 없읍니다. 혹 사람의 마음도 모르는 체 넘겨짚거나 너무 무시한다고 항의할 사람이 있을지도 모르겠읍니다. 그러나 진실로 그런 사람이 있으면 내가 그 사람 보고 뼈가 부서지도록 절하렵니다. 그런 사람은 참으로 귀하기 때문입니다.불교를 믿는데는 만승천자도, 곤용포도 내버리는 그런 큰 선심이 있어야 합니다.

2 큰 의심

지금까지 아야기했듯이 불교의 근본은 자기개발에 있읍니다. 초월적인 신은 부정합니다. 부처도 믿지 말고 조사도 믿지 말며, 석가도 필요없고 조사도 필요없다는 말은 불교의 근본을 나타내는 말이라고 할 수 있읍니다. 오직 자기 자신이 부처님이고 절대자임을 알아야합니다. 곧 자기 자신이 부처님이고 절대자임을 알아야합니다. 곧 자기자신이 영원한 생명과 무한한 능력을 가진 사람임을 알아야 합니다.

그러면 어떻게 해야만 자기개발을 완전히 할 수 있는가? 부처님께서 설하신 팔만대장경이 있으니 그 문자만 많이 독송하면 무심삼매無心三昧를 얻을 수 있는가? 아닙니다.

널리 배워서 아는 것이 많으면 마음이 점점 어두워진다.

廣學多知광학다지 神識轉暗신식전암고 부처님께서 말씀하셨읍니다.

옛 사람들도 말하기를 도의 길은 날로 멀어가고 학문의 길은 날로 더해간다.

爲道日損 위도일손 學爲日益 학위일익

고 했읍니다 참으로 깨치는 길은 한 생각 덜어서 자꾸자꾸 덜어 나아가야 하고 학문을 하려면 자꾸자꾸 배워 나아가야 됩니다. 道와 학學은 정반대의 처지에 서 있읍니다.

듣고 보고 하는 것은 무심삼매를 성취하는 데에서는 설비상雪砒霜 과 같은 극약이나 마찬가지입니다. 우리의 근본 목표인 대도大道를 성취하여 성불하는데에서 이론과 문자는 장애이 되지 이로움을 주지 못합니다. “모든 지식과 언설을 다 버리고 오직 마음을 한 곳에 모으라고 부처님께서 말씀하셨읍니다. 부처님은 보리수 아래에서 깨달음으로써 성불하였지 이론과 문자를 배워서 성불하였다는 소리는 없읍니다

부처님이 무엇을 깨달았느냐 하면 중도中道를 깨달았읍니다.깨달음을 얻을려면 선정禪定을 닦아서, , 참선을 해서 무심삼매를 성취해야 됩니다. 무심삼매를 거쳐 진여삼매에 들어가야 하는데, 하물며 망상이 죽 끓듯하는 데에서 어떻게 진여삼매를 성취하여 중도를 중득한 부처님의 경계를 상상 이라도 할 수 있겠읍니까? 그럼 교敎라는 팔만대장경은 무엇인가? 그것은 약방문입니다. 약처방이란 말입니다. 그것에 의지해서 그대로 약을 지어 먹어야 병이 낫습니다. 밥 이야기를 천날이고 만날이고 해봐야 배부르지 않듯이, 약처방만을 천날 만날 외워봐야 병은 낫지 않습니다. 약을 직접 먹는 것이 실천하는 것이므로 선정을 닦는 좌선을 해야 됩니다. 부처님께서 평생 가르친 것이 이 좌선입니다. 지금도 저렇게 좌선을 하시며 앉아 있지 않습니까.

1 아난존자

옛날 스님네는 어떻게 공부해서 어떻게 무심삼매를 성취하여 道를 이루웠는가를 알아볼 필요가 있읍니다.

부처님께서 돌아가신 뒤 그 제자들이 부처님이 법문하신 것을 모아놓은 것이 경經입니다. 그 무렵에는 녹음기도 없고 속기速記하는 사람도 없었지만, 부처님을 삼십여 년 동안 모시고 다니며 시봉했던 아난 존자는 부처님 말씀을 잘 기억하고 있었읍니다. 그 총명함은 고금을 막론하고 견줄 데가 없으니 한번 들으면 영원토록 잊지 않았읍니다. 그래서 부처님 법문法門을 결집結集하는데, 대중 모두가 아난이 주동이 되어야 한다고 했읍니다. 그런데 가장 웃사람인 상수제자上首弟子인 가섭 존자가 소집 단계에 가서 그에 반대하였읍니다.

아난은 부처님 말씀은 잘 기억하고 있지만 살제 진리는 께치지 못했으므로 참석할 자격아 없다.”

가섭존자는 아난 존자가 아무리 부처님 말씀을 잘 기억하지만, 다시말하여, 팔만대장경이 모두 자기 뱃속에 있지만 아직 자기 마음을 깨치지 못한 봉사이므로 이 결정에 참여할 자격이 없으니 아주 나가라고 하였읍니다. 이에 아난 존자가 애걸복걸하며 말했읍니다. 부처님께서 돌아가시면서 나의 대법大法을 가섭에게 전했으니 그를 의지해서 공부하라고 하셨는데 이제 가섭 사형이 나를 쫓아내면 누구를 의지해서 공부하겠느냐는 것입니다. 그러나 가섭존자는 절대 안 된다고 했읍니다. 여기는 불법을 깨친 사자獅子만 사는 사자굴인데 깨치지 못한 여우가 어떻게 살 수 있느냐고 하면서 쫓아내 버렸읍니다

할 수 없이 울며 쫓겨난 아난존자는 비야라성城으로 갔읍니다. 그곳에 가니 국왕이며 대신등을 바롯한 많은 신도들이 큰스님 오셨다고 오체투지五體投地를 하고 법문을 청하므로, 아난 존자는 가섭 존자에게서 쫓겨난 것은 다 잊어버리고 잘난체하며 법문을 했읍니다. 이때 그 부근에 발기라고 하는 비구가 있었는데 아난이 그곳에 온 뒤로 많은 산도들이 모여 법석을 떠니 시끄러워 도저히 공부가 안 되었읍니다. 그래서 발기 비구-출가하여 구족계를 받은 남자중 비구승, 비구니 여승 -가 게송을 하나 지었읍니다.

좌선하고 방일하지 말아라 坐禪莫放逸 좌선막방일

아무리 지껄인들 무슨 소용있는가. 多設何所利 다설하소리

입 디물고 참선하라는 말입니다. 아난 존자가 그 계송을 듣고 정신이 번쩍 났읍니다. 이제 참으로 공부해야 겠다고 참회하고는 다른 곳으로 가서 불철주야로 앉아서 정진했읍니다. 졸릴 듯하면 일어나 다니고 다리가 아프면 앉았다 하면서 자꾸 선정을 익혔읍니다. 며칠이 되었는지도 모르게 그렇게 여러 날 공부했읍니다. 그러다가 나중에는 어찌나 고달픈지 도저히 참을 수 없어서 잠깐 누워 쉬어야 겠다고 생각하고 목침木枕을 베려고 턱 드러눕다가 확철히 깨달았읍니다. 참으로 무심삼매無心三昧를 성취한 것입니다. 목침을 집어던지고 밤새도록 걸어서 가섭 존자에게 갔읍니다. 가섭 존자가 몇가지 시험을 해보니 확철히 깨친 것이 확실하므로 결집하는 사자굴에 참가할 자격을 주었읍니다.

경에보면 여시아문如是我聞 - 나는 이와 같이 들었다는 뜻. 부처님의 가르침에 따라 제자 아난阿難이 불경을 편찬할 때 모든 경전의 첫머리에 붙인 말-”이라는 말이 있는데 이것은 아난의 말입니다.

결국 부처님의 십대 제자 가운데 다문제일多聞第一은 아난 존자이지만, 근본 법은 부처님께서 가섭에게 전했고 가섭은 다시 아난에게 전했읍니다. 곧 부처님은 시조始祖이시고, 아난 존자밑으로 상나화수 존자로 이어지고, 이렇게 해서 정법正法은 二十八代 달마대사가 중국에 옴으로써 동토凍土에 전해졌읍니다. 이 선종이 중국에 소개되어 육조스님 뒤로는 천하를 풍미해서 모든 불교를 지배하게 되었는데, 육조스님은 오조 홍인 대사밑의 제일 큰제자로서 일자무식이었읍니다. 당시 홍인스님의 제자로 신수神秀 라는, 불교뿐만 아니라 유교와 도교 등에서도 아무도 따라갈 수 없을 정도의 대지식가가 있엇지만 이 신수스님은 도를 바로 깨치지 못했으므로, 법은 일자무식인 육조스님에게 가고 말았읍니다.

Wednesday, February 9, 2011

24 영원한자유 3 태고스님

24 영원한자유 3 태고스님

지금까지 중국의 스님 이야기를 했는데, 우리나라 선문 가운데에 太古스님이 계십니다. 태고스님은 공부한 지 20여년 만인, 나이 마흔에 오매일여가 되고 그 뒤 확철히 깨쳤읍니다. 깨치고 보니 당시 고려의 큰스님네들이 자기 마음에 들지 않았읍니다. 자기를 인가해 줄 스님도 없고, 자기 공부를 인가해 줄 스님도 없고, 그래서 중국으로 가서 그곳에서 임계정맥을 바로 이어 가지고 돌아왔읍니다

점점 오매일여한 때에 이르렀어도 다만 화두하는 마음을 여의지 않음이 중요하다.

漸到寤寐一如時 只要話頭心不離 잠도오매일여시 지요화두심불리.”

이 한 마디에 스님의 공부가 다 들어 있읍니다.

공부를 하여 오매일여를 한 경계, 잠이 아무리 들어도 일여한 8지 이상의 보살 경계, 거기에서도 말했듯이 몽중일여도 안 된 거기에서 화두를 알았다고 하고 내 말 한번 들어보라 하는, 잘봇된 견해를 갖는다면 이것이 가장 큰 병입니다.. 이 병은 스스로 열심히 공부해서 고치려 하지 않으면 고쳐지지 않습니다. 다 죽어가는 사람에게 좋은 약을 가지고 와서, “이 약만 먹으면 산다 하며 아무리 먹으라 해도 안벅고 죽는다면 억지로 먹여서 살려낼 재주 없읍니다. 배가 고파 다 죽어가는 사람에게 만반진수滿盤珍羞를 차려와서 이것만 잡수시면 삽니다. 해도 안 먹고 죽으니 부처님도 어찌 해볼 재주가 없읍니다. 아난이 부처님을 30년이나 모셨지만 아난이 자기 공부 안 하는 것은 부처님도 어쩌지 못했읍니다. 내가 항상 말하는 것입니다만 누구든지 아무리 크게 깨치고 아무리 도를 성취했닥고 해도 그

깨친 경계가 동정일여動靜一如, 몽중일여夢中一如, 수면일여熟眠一如하여야만 실제로 바로 깨쳤다고 할 수 있읍니다. 동정일여도 안 되고, 몽정일여도 안 된 그런 깨침은 실제 생사에는 아무소용도 없읍니다.

참선은 실제로 참선해야 하고 깨침은 실제로 깨쳐야 합니다 그래야 생사에 자재한 능력을 가질 수 있는 것입나다. 단지 생각으로만 깨쳤다고 하는 것은 생사에 자유롭지 못한 것으로, 깨침이 아니라 불교의 병이요 외도 입니다. 참선의 근본요령은 바로 여기에 있읍니다. 우리의 공부는 실제로 오매일여가 되여 영겁불망이 되도록 목숨을 던져 놓고 해야 하는 것입니다. 신명을 아끼지 않고, 목숨도 돌보지 않고 부지런히 노력해야 합니다.

부지런히 노력해야 한다고 하니까 어떤사람은 스님”, 저는 화두를 배운 지 십년이 지났읍니다만 공부가 안 됩니다. “ 라고 말하기도 합니다. 공부를 해도 안 된다는 것은 결국 공부를 않했단는 말입니다. 마치 서울에 꼭 가고 싶으면 자꾸 걸어가야 끝내는 서울에 도착하게 되듯이, 십년 이십년을 걸어가도 서울이 안 보인다는 말은 서울로 안 가고 가만히 앉아 있었다는 말과 같읍니다.

4 불등 순 선사佛燈 詢 禪師

불등 순스님이 있었읍니다. 그는 오조 법연 선사의 손제자孫弟子되는 분으로, 대혜 선사와는 사촌간 이였읍니다.불감 근佛鑑 懃 선사 밑에서약 삼년동안 공부하였는데 불감근스님께서 가만히 살펴보니, 이 스님이 근기는 괜찮은데 게을러서 공부를 하지 않는 것이었읍니다.

그래서 불감 근스님이 한번은 불등 순스님을 조용히 불러

네가 내 밑에서 얼마나 있었느냐?”라고 물으니, “삼년 있었읍니다. 그래서 삼년 동안 공부한 것을 내놓으라고 했읍니다. 이렇게 되니 불등 순스님은 큰일이 났읍니다. 삼년동안이나 얻어먹고 낮잠이나 자고 공부는 안 했으니 내놓을 것이 없었읍니다. 드디어 불감 근스님께서 공부에 대해 한마디 물어 보았으나 도무지 캄캄하여 대답을 못하고 있었읍니다. 그러자 불감 근스님은 이 도둑놈. 밥도둑놈아. 삼년 동안 내 밥만 축냈구나. 삼년을 공부했다면 어찌 이것을 대답 못해? 밥만 축낸 밥도둑놈. 이런놈은 하루 만 명을 때려 죽여도 인과도 없어하고는 마구 패는 것이었읍니다.

불등 순선사는 가만 있다가는 아주 맞아 죽을 것 같았읍니다. 그래서 안 맞아 죽으려고 도망을 쳤읍니다. 비는 주룩주룩 내리는데 도망가다가 처마 밑에 서서 가만히 생각해 보았읍니다. “코도 입도 몸뚱이도 불감 근 선사와 똑 같은데 왜 저 스님은 두들겨 패고, 나는 맞아야 하는가? 어째서 저 스님은 도를 성취했는데 나는 이루지 못하는가?”

이렇게 반성하며 다시 절로 들어가서는 자신이 스님에게 한 마디 대답도 못하고 밥도둑놈이라는 소리를 들으며 쫓겨났으니 바로 깨치게 될 때까지는 언제까지라도 자지않고 눕지도 않고 오직 서서만 지내겠다고 대중에게 선언했읍니다. 정진은 계속 되었읍니다 밤이되었는지 잊은 채 계속 정진하였읍니다. 불감스님이 이를 보고는 용맹심이 대단하다고 생각했읍니다. 사실 불등 순스님은 화두 하나만 갖고 생각하고 있을 뿐이었읍니다.

하루는 불감 근스님이 그를 불렀읍니다. 불등 순스님은 겁은났지만 부르는데 안 갈 수가 없어서 조마조마한 마음으로 스님앞에 앉았읍니다. 그러자 불감 근스님이 무슨 법문을 해 주는데, 그 법문을 듣는 순간 불등 순스님은 그만 확철히 깨쳤읍니다. 그리고 그자리에서 인가를 받았읍니다. 정진을 사작해서 도를 성취하기까지의 가간을 헤아여 보니 사십구일 동안이었읍니다. 사십구일 동안을 먹는 것도 잊어버리고 입는 것도, 자는 것도 잊어버리고 오직 서서 공부만 했던 것입니다. 불등스님은 실제로 용맹정진을 했고, 그리하여 깨쳐서 인가를 받은 것입니다.

불감 근스님 사형되는 분에 원오 극근 선사가 있었는데 이 소문을 듣고는 찾아왔읍니다. “그까짓 며칠동안 공부한 것 가지고 뭘 안다고 인가를 해줘, 사람을 죽여도 푼수가 있지, 내가 봐야겠으니 그놈오라고 해.”

이렇게 불등 순스님을 불러서는 산으로 데리고 갔읍니다. 산 모퉁이를 도니 절벽이 나오는데, 절벽 밑에는 폭포가 있고 폭포 밑에는 깊은 소沼가 있었읍니다. 그 옆을 지나가는데 원오스님이 그를 절벽 밑의 폭포 속으로 확 밀어넣더니 공부한 것을 묻는 것이었읍니다. 물길이 깊어 발이 땅에 닿지도 않고, 입으로 코로 마구 물이 쏟아져 들어오는 데다가 폭포소리가 요란하여 소리도 잘 들리지 않았읍니다. 이렇게 정신을 읺게 해 놓고는 법을 묻는 것이었읍니다. 그런데 불등 순스님은 마치 방안에 앉아서 대답하듯 묻는 말에 척척 대답을 했읍니다. 이것을 본 원오스님은 그놈 죽이기는 아깝구나, 끄집어 내줘라라고 말했읍니다.

Monday, February 7, 2011

23 제 4편 영원한 자유 오매일여

24 4편 영원한 자유 1장 오매일여

1 영겁불망 永劫不忘

우리가 도를 닦아 깨달음을 성취하기 전에는 영혼이 있어 윤회를 거듭합니다. 그와 동시에 무한한 고괴로울고가 따릅니다. 미래겁이 다하도록 나고 죽는 것이 계속되며 무한한 고가 항상 따라 다니는 이것이 이른바 생사고生死苦라는 것입니다.그렇다면 이 무한한 고를 어떻게 해야 벗어나며 해결 수가 있는가? 그러기 위하여서는 굳이 천당에 갈 필요도 없고 극락에 갈 필요도 없읍니다. 오직 사람마다 누구나 갖고 있는 능력, , 무한한 능력을 개발하여 활용하면 이 현실에서 대해탈의, 대자유의, 무애자재한 생활을 할 수 있는 것입니다. 이것이 불교의 근본 원리입니다.

불교에서는 영원한 생명과 무한한 능력을 불성佛性이니 법성法性이니 또는 여래장如來藏이니 진여眞如니 등등으로 말하고 있으며, 누구든지 이것을 평등하게 가지고 있다고 봅니다. 그리고 이것을 개발하면 곧 부처가 되므로 달리 부처를 구하지 말라고 합니다.

그러면 생사해탈生死解脫의 근본은 어디에 있는가? 일찌기 선문禪門에서 조사祖師 스님들은 말씀하셨읍니다.

산 법문 끝에서 바로 깨치면

다시는 미혹하지 않는다.

活句下 薦得 활구하 천득

永劫不忘 영겁불망

곧 불교의 근본 진리를 바로 깨치면 그 깨친 경계, 깨친 자체는 영원토록 잊어버리거나 없어지지 않는다는 것입니다. 일상생활에서 배운 기술이나 지식은 시간이 지나면 잊기도 합니다만, 도를 성취하여 깨친 이 경계는 영원토록 잊어버리지 않습니다. 금생에만 잊어버리지 않는 것이 아니고, 내생에도, 내내생에도 영원토록 잊어버리지 않습니다.동시에 생활의 모든 것을 조금도 틀림없이 모두 다 기억하는 것입니다. 이것이 불교에서 말하는 영겁불망永劫不忘 이라는 것입니다.

마조馬祖스님께서는 이에 대해 이렇게 말씀하셨읍니다.

한번 깨치면 영워히 깨쳐서 一悟永悟 일오영오

다시는 미혹하지 않는다. 不復更迷 불복경

그러므로 깨첬다가 매昧 새벽매했다 또 깨쳤다 하는 것이 아니고 한번 깨치면 금생, 내생, 여러 억천만 생을 내려가더라도 영원토록 어둠에 빠지지 않는다는 것입니다.

또 원오圓悟스님도 그에 대해 말씀하셨읍니다.

한번 깨치면 영원히 얻어서 一得永得 일득영득

천겁, 만겁을 두고 그와 똑같을 뿐 변동이 없다. 億千萬劫 亦只如如 억천만겁 역지여여

깨친 경계에 조금이라도 변동이 생기면 그것은 바로 깨친 것이 아니라는 말입니다.이렇게 되면 이에 따르는 그 신비하고 자유자재한 활동력인 신통묘력神通妙力은 말로 다 표현할 수 없으니, 참으로, 불가설 불가설不可說 不可說 입니다.

대자유에 이르는 길, , 영겁불망永劫不忘인 생사 해탈의 경계를 성취함에 있어서는 여러가지 방법이 있지만 그 중에서도 가장 빠른 것이 참선입니다. 참선은 화두話頭가 근본이며,화두를 부지런히 참구하여 바로 깨치면 영겁불망이 안 될래야 안 될 수가없읍니다. 영겁불망은 죽은 뒤에나 알 수 있는 것이라고 생각하기 쉬우나 그렇지 않습니다. 생전에도 얼마든지 알 수 있읍니다. 숙면일여熟眠一如하면, 곧 잠이 아무리 깊이 들어도 절대 매昧하지 않고 여여불변如如不變하게 되면, 그때부터는 영겁불망이 되는 것입니다.

그런데 숙면일여가 여래如來의 숙면일여가 되면 진여일여眞如一如가 되지만, 보살의 숙면일여는 8지 보살의 아라야阿羅耶 ; Alaya 위位에서입니다. 8아라야위에서의 숙면일여는 보통 우리가 말하는 나고 죽음에서, 곧 분단생사分段生死에서 자유자재합니다. 그러나 미세한 무의식이 생멸하는 변역생사變易生死가 남아 있어서 여래와 같은 진여위眞如位의 자재自在함은 못 됩니다. 그러므로 아라야위에서의 숙면일여는 바로 깨친 것이 아니며, 여래위, 진여위에서의 숙면일여가 되어야만 참다운 영겁불망이 되는 것입니다,

그러나 8지 이상의 아라야위에서의 수면일여만 되여도 죽음으로 인하여 다시 매하지는 않습니다. 영원토록 퇴진退進하지 않는 다는 말입니다. 아라야위에서의 불망不忘과 진여위眞如位에서의 불망은, 차이는 있지만, 다시 매하지 않는 불퇴전不退轉은 같읍니다.

오매일여도 여래위에서의 오매일여와 아라야위에서의 오매일여가 다르면서 또한 같은 것과 흡사합니다.숙면일여라고 하여 잠이 깊이 들어도 여여한 것이라고 하면 누구나 할 수 있는 것이 아니냐고 생각할 수 있지만, 그것은 결코 쉬운 일이 아님니다. 예로부터 대종사, 대조사치고 실제로 숙면일여한 데에서 깨치지 않은 사람은 한사람도 없읍니다.

누구나 깨치기 전에는 모든 것이 식심분별識心分別이므로 앞 못보는 영혼에 불과합니다. 봉사 영혼이 되어서 수업수생隨業受生하니 곧 업따라 다시 몸을 받게 되는 것입니다. 자신의 자유는 하나도 없읍니다. 김 가가 되고 싶어도 마음대로 안되고, 박 가가 되고 싶어도 마음대로 안 됩니다, 중처변추重處便墜로서 곧 자기가 업을 많이 지은 곳으로 떨어지니다. 그것은 어쩔 수 없는 이치입니다. 자기의 자유가 조금도 없는 것을 수업수생라고 합니다.

그러나 자유자재한 경계가 되면 수의왕생隨意往生하니 곧 자기가 마음먹은 대로 할 수 있읍니다. 동으로 가든 서로 가든,김 가가 되든 박 가가 되든 마음대로 하는 것입니다. 이것이 수의왕생으로, 불교의 이상이며 부처님 경전이나 옛 조사스님들이 말씀하신 것입니다.

수의왕생이 되려면 숙면일여가 된 데에서 자유자재한 경계를 성취해야 합니다. 그렇게 되기 전에는 아무리 아는 것이 많고, 부처님 이상 가는 것 같아도 그것으로 그치고 맙니다. 몸을 바꾸면 다시 캄캄하여 아무소용이 없습니다.

송나라 철종哲宗 원우 71092년 이었읍니다.소동파蘇東坡의 동생이 고안高安에 있을 때 동산洞山 선사와 수성 총 壽聖 聰선사와 같이 지냈읍니다. 그 동생이 하루 밤에 두 스님과 함께 성 밖에 나가서 오조 계 五祖 戒 선사를 영접하는 꿈을 꾸었는데, 그 이튿날에 형인 동파가 오는 것이었읍니다. 그때 동파의 나이가 마흔아홉이었는데 계戒 선사가 돌아가신 지 꼭 오십년이 되던 때였읍니다. 오 십년 전 그의 어머니가 동파를 잉태하였을 때 꿈에 한쪽 눈이 멀고 몸이 여윈 중이 찾아와서 자고 가자고 하였더라는 것입니다.

그가바로 계 선사였읍니다. 계 선사는 살아서 한쪽 눈이 멀고 몸이 여위었더랬읍니다. 동파 자신도 어려서 꿈을 꾸면 스님이 되어서 협우峽右에 있는 경우가 많았읍니다. 그런데 계 선사가 바로 협우 사람이었읍니다.

이 사실들로써 동파가 계 선사의 후신인 줄 천하가 다 잘 알게 되어서 동파도 자신을 계 화상戒 和尙 이라고 불렀읍니다.그리고 동파는 자주 동산洞山에게 편지를 해서 어떻게 하든지 전생과 같이 불법佛法을 깨닫게 하여 달라하였으나 전생과 같이는 되지 못하고 죽었읍니다. 오조 계五祖 戒 선사는 운문종의 유명한 선지식이었는데, 지혜는 많았지만 실지로 깊이 깨치지 못한 까닭에 이렇게 어두어져 버린 것 입니다.

실제로 옛낭의 고불고조古佛古祖는 오매일여가 기본이고, 영겁불망이 표준이 되어서 수도하고 법을 전했읍니다. 여기에 실례를 들어 이야기히겠읍니다.

2 대혜선사

앞에서 나온 오조 법연 선사의 제자에 원오 극근 圓悟 克勤 선사가 있고, 그 제자에 대혜종고大慧宗杲 선사가 있읍니다. 강원에서 배우는 서장書狀이라는 책이 대혜 종고 선사의 법문으로, 그는 임제의 정맥으로서 천하의 법황法王이라고 자처하고 있었읍니다. 이제 대혜스님이 어떻게 공부했고 어떻게 인가를 받았는가에 대해 이야기 하겠읍니다.

대혜스님은 스므살 남짓 되었을 때, 요즘 말로 한소식했다고 해서 사람들을 놀라게 했읍니다. 그런데 그 소식은 진짜 소식이 아니라 가짜 소식이었읍니다. 그래도 전생 원력이 크고, 또 숙세宿世의 선근善根이 깊은 분이어서 그 지혜가 수승했습니다. 그래서 가짜 소식을 진짜 소식으로 사용했던 것입니다. 이 가짜 소식을 가지고 천하를 돌아다니는데, 이 가짜 소식에 모두 속아 넘어 갔읍니다. 비유로 말하자면 대혜스님이 성취한 것은 엽전에 불과한데 세상사람들은 진금眞金처럼 여기고 바로 깨쳤다고 인가를 하여 대혜스님은 더욱 기고만장하여 날뛰고 다녔읍니다.

그무렵 천하 5대사라는 다섯 분의 선지식이 있었는데, 그 가운데 담당무준湛堂 無準 선사라는 분이 있었읍니다. 대해스님이 이 선사를 찾아가며 천하 사람이 나를 보고 참으로 깨쳤다고 하고 진금眞金이라고 하니 이 스님인들 별 수 있을까? 하고 생각했읍니다. 그러고는 병의 물을 쏟듯, 폭포수가 쏟아지듯 아는 체하는 말을 막 쏟아부었읍니다. 담당스님이 가만히 듣고 있다가 자네 좋은 것 얻었네, 그런데 그 좋은 보물 잠들어서도 있던가?” 하고 물어왔읍니다. 자신만만하게 횡행천하橫行天下하여 석가보다도, 달마보다도 낫다 하던 그 공부가 잠들어서는 없는 것입니다. 법력이 천하제일이라고 큰 소리 텅텅 쳤지만 잠이들면 캄캄해지고 마는 것입니다.

그래서 대혜스님은 담당스님에게 이렇게 말했읍니다.

스님, 천하 사람들이 모두 엽전인가 봅니다. 저를 엽전인 줄 모르고 금덩어리라고 하니 그 사람들이 모두 엽전 아닙니까? 스님께서 제가 엽전인줄 분명히 지적해 주시니 스님이야말로 진짜 금덩어리입니다. 사실 저도 속으로 의심을 하고 있었읍니다. 모든 것에 자유자재하지만 공부하다 깜박 졸기만 하면 그만 아무 것도 없는 것입니다. 그래서 제가 깨달은 이것이 실제인지 아닌지 의심하고 있었읍니다.”

이말을 들은 무준 선사는 크게 꾸짖었읍니다.

입으로 일체 만법에 무애자재하여도 잠들어 캄캄하면 어떻게 생사를 해결 할 수가 있느냐! 불법이란 근본적으로 생사 문제를 해결하는 것이야. 생사해탈을 얻는 것이 근본이야, 잠들면 캄캄한데 내생은 어떻게 하겟어.”

그러면서 담당스님은 대혜스님을 내쫓았읍니다. 대해스님의 근본 병통病痛을 찔렀던 것입니다.

, 옛날에 경순景淳선사라는 스님이 있었는데 자신의 법이 수승한 듯 여기고 있었읍니다. 그러다가 한번은 잘못하여 넘어진 뒤로 중풍이 걸렸는데, 그러고나니 자기가 알고 있었던 것과 법문했던 것을 모조리 잊어버리고 그만 캄캄한 벙어리가 되어 버렸읍니다. 모든 법을 아는 체했지만 실지로 바로 깨치지 못했기 때문에 한번 넘어지는 바람에 모든 것이 다 없어지게 된 것입니다.

그 때 도솔조兜率照 선사라는 이가 행각行脚을 다니다가 이 모습을 직접 눈으로 보고는 이렇게 한탄했읍니다. “한번 넘어져도 저렇게 되는데 하물며 내생이야 偶一失跌尙如此 況隔陰耶. 우일실질상여차 황격음야

이 생사 문제는 영겁불매가 되여 억천 만겁이 지나도록 절대불변하여 매昧하지 않아야 성취되는 것입니다. 그런데 한번넘어져도 캄캄하니 뭄을 바꾸면 두망할 것도 없는 것입니다. 천하에 자기가 제일인 것 같았던 대혜스님도 무준 선서가 그렇듯 자기 병통을 콱 찌르니 항복 안 할 수가 없었읍니다.그리하여 다시공부를 시작하여 죽음을 무릅쓰고 정진하고 있었는데 담당 무준 선사가 시름시름 병을 앓더니 곧 죽게 되었읍니다. 그래서 스님께서 돌아가시면 누구를 의지해야 하겠읍니까?”하고 물으니 경사京師의 원오 극근 선사를 소개해 주었읍니다.그 유언에 따라 그는 원오 극근 선사를 찾아갔읍니다. 찾아가서 무슨 말을 걸어 보려고 하나 원오스님은 절벽 같고, 자기 공부는 거미줄 정도도 안 되는 것이었읍니다. 만약 원오 극근 선사가 자기의 공부를 조금이라도 인정하는 기색이면 그를 땅 속에 파묻어 버리리라는 귿은 결심으로 찾아갔는데, 어떻게 해 복 도리가 없었읍니다. 그리하여 아하, 내가 천하가 넓고 큰 사람 있는 줄 몰랐구나 !” 라고 크게 참회하고 원오선사께 여쭈었읍니다.

스님, 제가 공연히 병을 가지고 공부인 줄 잘못 알고 우쭐했는데, 담당 무준 선사의 법문을 듣고 그 후로 공부를 하는데 아무리 해도 잠들면 공부가 안 되니 어찌 해야 됩니까?”

이놈아, 쓸데없는 망상 하지말고 공부 부지런히 해, 그 많은 망상 전체가 다 사라지고 난 뒤에, 그때 비로서 공부에 가까이 갈지 몰라.”

이렇게 꾸중을 듣고 다시 열심히 공부를 하였읍니다.그러다가한번은 원오스님의 법문을 듣다가 확철히 깨달았읍니다.기록에 보면 신오神悟라 하였는데. 신비롭게 깨쳤다는 말입니다.그때 보니 오매일여입니다. 비로서 꿈에도 경계가 일여하게 되었읍니다. 이리하여 원오스님에게 갔읍니다. 원오스님은 말 조차 들어보지 않고 쫓아냈읍니다. 말을 하려고만 하면,

아니야 아니야 不是 不是라는 말만 되풀이합니다. 그러다가 원오스님은 대혜스님에게 유구와 무구가 등칡이 나무를 의지함과 같다 有句無구 如藤倚樹 유규무구 여등의수는 화두를 물었읍니다.그래서 대해스님은 자기가 생각할 때는 환하게 알 것같아 대답을 했읍니다. 그러나 원오스님은 거둡 아니라고 하셨읍니다.

이놈아, 아니야, 네가 생각하는 그것이 아니야. 공부 더 부지런히 해! “

대해스님이 그말을 믿고 불석신명不惜身命하여, 곧 생명을 아끼지 아니하고 더욱 부지런히 공부하여 드디어 깨쳤읍니다. 이렇듯 대해스님은 원오스님에게 와서야 잠들어도 공부가 되는 데까지 성취했읍니다. 이렇게 확철히 깨쳐 마침내 원오스님에게서 인가를 받았읍니다. 동시에 임제의 바른 맥 임제정종臨濟正宗을 바로 깨쳤다고하여 원오스님이 임제정종기臨濟正宗記를 지어 주었읍니다. 이리하여 대혜스님은 임제정맥의 대법왕으로서 천하의 납자衲子들을 지도하고 천하 대중의 대조사가 되었던 것입니다. 이 모든 것이 대혜스님 어록에 남아 있읍니다.

잠이 깊이 들어서도 일여한 경계에서 원오스님은 또 말씀하셨읍니다

애석하다. 죽기는 죽었는데 살아나지 못했구나 可惜 死了不得活 가석 사료불득활.”

일체망상이 다 끊어지고 잠이 들어서도 공부가 여여한 그 때는 완전히 죽은 때입니다. 죽기는 죽었는데 거기서 살아나야 합니다. 그러면 어떻게 해야 살아나느냐?

화두를 참구 안 하는 아것이 큰 병이다 不疑言句 是爲大病 불의언구 시위대병

공부란 것이 잠이 깊이 들어서 일여한 거기에서도 모르는 것이고, 거기에서 참으로 크게 살아나야만 그것이 바로 깨친 것이고, 화두를 바로 안 것이며 동시에 그것이 마음의 눈을 바로 뜬 것입니다.

이처럼 바로 깨치려면 오매일여寤寐一如가 되어야 합니다.내가 항상 이 오매일여를 주장한다고 오매일여병에 들었다고 말하는 사람도 있지만 이 오매일여를 인정하지 않는 사람은 불법을 인정하지 않는 사람이고, 또 선禪을 모르는 사람입니다. 사람들이 오매일여를 반대하고 비방하게 되는 것입니다.” 대혜스님과 같은 대근기大根機도 오매일여가 되기전에는 그것을 믿을 수 없었읍니다. 그렇다고 부처님께서 오매일여를 말씀씀했으니 안 믿을 수도 없었읍니다. 그래서 속으로 부처님 말씀이 거짓말이 아닐까? “하는 생각도 들었지만 그러다가 자기가 완전히 오매일여가 되고 보니 부처님께서 말씀하신 그대로였읍니다.

그래서 대혜 선사는 아렇게 말했읍니다.

부처님께서 오매일여라 하신 말씀이 참말이요, 실제로구나

佛說寤寐一如 是眞言是實言 불설오매일여 시진언시실언.” 3 태고스님 계속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