Friday, April 8, 2011

달마가 서쪽에서 온 까닭은 ? 고승법어집

고승법어집 달마가 서쪽에서 온 까닭은 ?祖師西來意

탄허呑虛 탁성鐸聲 대종사大宗師

탄허呑虛스님의 행장行狀

탄허스님은 1913 1 15일 전북 김제 만경에서 김율제金栗齋선생의 차남을 출생하였다. 본관은 경주 김씨이며 속명은 김탁, 법명은 탄허呑虛이다. 6세부터 14세까지 부친으로부터 한문학 전과정을 수학 하였고 15~22세까지 기호학파畿湖學派의 토정土亭선생 후예인 이극종선생의 문하에서 유학 잋 도교학을 수학하였다.

1934 9 5일 오대산 상원사 방한암스님과 우주 및 인생의 근본 이치에 대한 빈번한 서신 문답을 하다가 출가, 한암漢岩선사를 은사로 득도得道하다

스님은 3년간 묵언默言을 하시면서 참선 정진하였고 15년간 한암스님을 모시고 불교내전佛敎內典 및 선학禪學일체를 수학하다.

1953~1963년까지 한암스님의 유촉을 받아 역경작업에 전념하시는 한편 월정사조실과 오대산 수도원 원장으로 계셨다.

1964~1971년까지 동국대학교 대학선원 원장과 대한불교조계종 중앙 역경 연수원 초대원장을 역임하다.

1972~1983년 화엄학 연구소 소장으로 계시면서 신화엄경합론新華嚴經合論 전17권을 비롯한 수만은 저서와 역서를 남기셨다

1983년 스님은 오대산 월정사 방산굴에서 중생계의 그 숱한 법열과 고뇌의 실상을 보내시고 열반의 저 세계로 가시려 하였다.

그 때 스님의 제자가 스님께 물었다.

스님! 여여如如하십니까?”

그럼 여여如如하지, 멍청이

다시 대규大圭스님이 묻기를

스님, 사람이 세상에 머무는 것은 인연법인데 지금 스님께선 세상인연을 다하신 것 같습니다. 저회들에게 좋은 말씀을 내려주십시요했더니

일체 말이 없어,”라 하시고 이어 유시酉時냐,”고 물으시자, 시자가 예 유시酉時입니다.”라고 답하니 스님께서 곧 열반에 드셨다. 때는 1983 6 5 18 15분이었다.

스님의 세수世壽는 71세요, 법람은 49세였다.

삶과 죽음

이 세상에 사람으로 태어난 자者에게 가장 중요한 것은 무엇일까? 그것은 두말할 것 없이 삶과 죽음일 것이다. 즉 생사生死믄제야말로 그 무엇보다 기필코 풀어야 할 중심문제이다. 인간의 생사문제를 해결하기위하여 종교가 있다고 해도 지나친 말은 아니다.

우리 불교에서는 생사문제를 쉽게 말해서 이렇게 해결한다. 즉 마음에 생사가 없다고 부연하면 마음이란 그것이 나온 곳이 없기 때문에 죽는 것 또한 없다. 본래 마음이 나온 곳이 없기 때문에 죽는 것 또한 없다. 본래 마음이 나온 곳이 없음을 확연히 갈파한 것은 도통「道通」했다고 알한다. 우리 자신의 어디든지 찾아보라. 마음이 나온「生」곳이 있는지, 따라서 나온 곳이 없으므로 죽는 곳도 없다.

그러니까 도道가 철저히 깊은 사람은 이 조그만 몸뚱아리를 가지고도 얼마든지 살 수가 있다. 그렇지만 어린 중생들이 죽음을 두려워하며 천년 만년 살고 싶어하지, 도인道人-성인聖人은 굳이 오래 살려 하지 않는다. 죽는 것을 헌옷 벗는 것이나 한가지로 생각하고 있으므로 굳이 때묻은 옷을 오래 입으려고 하지 않는다. 오래 오래 살고 싶다는 것은 오직 중생들의 우견愚見일 따름이다.

도를 통한 사람은 몸뚱아리를 그림자로 밖에 보지 않는다. 다시 말해면 우리의 삶은 간밤에 꿈꾸고 다닌 것이나 같이 생각한다고 할까. 간밤에 꿈꾸고 다닌 사람이 꿈을 깨고나면 꿈속에선 무언가 분명히 있었긴 있었으나 헛것이듯 그렇게 삶을 본다. 이와같은 것이여서 이 육신을 굳이 오래 가지고 있으려 하지 않는다. 벗으려고 들면 향 한대 피워놓고 향 타기 전에 마음대로 갈죽을수도있다.

일반적으로 중생에겐 나서 멸함이있고생주이멸生住異滅. 몸뚱이엔 나고 죽음생노병사生老病死이 있으며, 일년엔 봄-여름-가을 겨울 춘하추동春夏秋冬이 세계엔 일었다가 없어짐성주괴공成住壞空이 있으나 앞서 말한대로 도인道人에겐 생사가 붙지 않는다. 흑자는 그 도인도 죽는데 어찌 생사가 없느냐고 반문할지 모르지만 그것은 걸을 보고 하는 소리일 따름니다. 옷 벗는 것 보고 죽는다고 할 수는 없을 것이다.

세상 사람들은 이을 자기으로 안다. 그러니까 죽는다. 그러면 도인이나 성인은 무엇을 자기 몸으로 생각하는 것일까? 몸 밖에 몸, 육신 밖에 육체를 지배하는 정신, 좀 어렵게 말하면 시공時空이 끊어진 자리, 그걸 자기 몸으로 안다. 시공時空이 끊어진 자리란 죽으나 사나 똑같은 자리,이 몸을 벗으나 안 벗으나 똑같은 자리,우주 생기기 전의 시공時空이 끊어진 자리. 생사가 붙지 않는 자리란 뜻이다.

부처란 바로 이자리를 가르쳐 주기 위해서 온 것이다. 덥고 춥고 괴로운 경험을 꿈속에서 했을 것이다. 꿈을 만든 이 육신이 일점도 안되는 공간에 누워 10분도 안되는 시간의 꿈속에서 몇백년을 산다. 그러고 보면 우주의 주체가「나我」라는 것을 알 것이다. 곧 내가 우주를 만드는 것이다. 우주 속에서 내가 나온 것이 아니다. 세간世間의 어리석은 이들은 꿈만 꿈인 줄 안다. 현실 이것도 꿈인 줄 모르고, 다시 말하거니와 성인이 도통했다는 것은 이 현실을 간밤의 꿈으로 보아버린 걸 말한다.

우리는 간밤의 꿈만 꿈을로 보고, 현실을 현실로 보니까 몇백년 부귀영화를 누리며 살고 싶다며 아둥바둥 집착하게 되는 것이다. 성인의 눈엔 현실이 꿈, 즉 환상이니까 집착이 없다. 그러니까 천당 지옥도 자기 마음대로 한다.

이 정도로 말해 놓고나서 우리의 삶이 영원하다면 영원하고 찰나로보면 찰나일 수 있다고 말하면 좀 수긍이 될지 모르겠다. 요컨데, 우주 창조주 즉 하나님이라는건 우주 생기기 전의 몀목面目을 타파한 걸 하나님이라고 한다. 그러므로 하나님이란 하늘 어느 한구석에 담요를 깔고 앉아 있는 어떤 실재인물이 아니란 말도 이해가 될 것이다.

, 그럼 우리는 어떻게 우리의 삶을 살아가야 할까? 내말의 초점은 여기에 있다. 한반도에 태어난 사람이면 3천만, 5천만의 잘못을 나의 잘못으로 즉 나 하나의잘못은 3천만, 5천만명에게 영향을 미친다고 생각하고 나중에 무슨 문제에 부딪치더라도 당황하지 않는 준비를 갗추며 살 일이다.

선禪이란 무엇인가?

선이란 인도 고대말인 범어’Dhyana’에서 따온 말인데 우리말 로는 「생각하여 닦는다」.사유수思惟修 또는 「고요히 생각한다」정려靜慮 는 뜻이다 고요히 생각한다는 것을 정定과 혜慧의 등지等持라고 말한다. 이와같이 선禪이 고요히 생각하고 생각하여 닦는다는 뜻이므로 이런 공부는 불교인만 하는 것이 아니라 모든 사람이 하는 성질의 것이라고 본다.

그런데 불교의 선禪은 좀 깊은 뜻을 갖고 있다. 고요히 생각한다고 하는데 무엇을 어떻게 생각하고 닦느냐에 특징이 있는 것이다. 우리들의 마음을 분류하면 네 가지를 말 할 수 있는데 욱단심肉團心, 연려심緣慮心, 집기심集起心, 견실심堅實心,이다. 육단심은 우리의 육체적 생각에서 우러나는 마음이고, 연려심은 보고 듣는데서 분별하여 내는 미음이고, 집기심은 소위 제 7식과 제 8식이다.

이것은 망상을 내는 깊은 속 마음이다. 견실심은 본성으로서 이것이 부처님 마음자리이다. 참선은 보처님 마음자리의 근본이 되고 불교의 핵심이 된다. 부처님의 요법도 필경 이 선禪의 겅지를 깨우처 주려는데 근본이 있는 것이다. 그래서 부처님의 8 4천 법문과 교리는 보처님 말씀이고, 선禪은 부처님의 마음이라고 하는 것이다. 이 선禪이 추구하는 부처님 마음자리를 깨치면 생사가 없고 일체에 뛰어난 대해탈인이 되며, 완전한 진리의 지혜와 덕성을 갖춘 큰 성인이라고 일 컫게 되는 것이니 그 까닭은 우주 만유의 근원의 실상진라를 주체적으로 파악하였기 때문이다.

부처님 당시 선법禪法은 어떻게 깨달아 들어깄는가를 예를 들어보자.

부처님 당시 한 오도가 와서 물었다.’ 말이있는 세간법도 묻지않고 말이 이를 수 없는 것도 묻지 않습니다. 이에 대하여 말씀하여 주십시오.’

이때 부처님께서는 아무 말이 없이 잠잠히 있었다. 이에 외도가 일어나서 절하면서 『세존께서 대자대비로 저의 미흑한 마음을 열어 주시어 저로 하여금 도에 들게 하셨읍니다. 참으로 감사합니다.』 부처님 옆에서 이를 지텨보던 아난존자가 이상히 생각했다. 부처님은 한 말씀도 안하셨는데 무엇을 알고 무엇이 고마운가 생각되었다. 그래서 부처님께 「부처님께서는 한 말씀도 안 하셨는데, 지금 외도는 알아들었다고 하니 무엇을 알아들었다는 것입니까?」 하고 물었다.

부처님 께서는 아렇게 말씀하셨다.

이 세상에 하루에 천리가는 준마는 채찍 그림자만 보아도 바람처럼 뛰어가자만 둔한 말은 궁둥이에서 피가나도록 때려도 가지 않느니라.’

다시 말하면 영리한 사람은 말로 이르기 전에 다 알아차린다는 말씀이며,지금 외도가 그렇다는 뜻이다 브초님 당시에는 수행인이 근기 수승해서 여러말 하지 않아도 이렇게 알아 버렸다. 원래 도는 분별이 붙으면 외도라 하고, 분별심이 끊어져야 비로소 도道에 든다고 한다. 부처님께서는 이와같이 항상 산법을 드러내 주셨으니 이것은 눈 밝은 사람만이 아는 것이다. 이 도리를 모르는 사람에게 여러 말이 있게 되고 여러 벙법이 있게 된다. 선禪의 방법은 후대에 와서 이렇게 해서 발달된 것이다.

선禪의 목적과 방법

선禪은 근본자성을 요달하여 생사를 끊는다. 우리들은 아무리 힘이 있고, 건강하고 권세가 있다 하더라도 죽음을 면하지 못한다. 그것은 마음에 나고, 머믈고, 변하고, 없어지는 이런 번뇌망상煩惱妄想에 휘들려 있기 때문이다. 그래서 생노병사生老病死도 생기다. 선禪은 마음 속의 生滅을 없애는 것이 첫째의 목적이며 생멸生滅없는 본성本性을 크게 희롱하는 것이 근본 목적이 된다. 마음의 생멸生滅을 잡아 없애려 하면 더 일어난다. 오히려 이 나我라는 상想이 어디서 나왔느냐?------고 관觀하게 되면 필경 나라는 놈이 없는 줄을 알게 된다. 그때에 그만 그만 생멸生滅상이 사라지게 된다.

앞서 본 바와 같이 부처님 당시에는 모든 근기가 수승하여 선禪의 방법론이 조직화 되지 않았었다. 그럴 필요가 없었던 것이다. 그러나 그 중에서 닦아가야 할 사람을 위해서는 세가지 기본 방법이 있었다. 이것이 관법觀法이다. 세가지 관법이란 정관靜觀, 환관幻觀, 적관寂觀인데 천태선사는 공空, 가假, 中 삼관이라 하였다.

정관靜觀이란 한 생각이 일어나는 데서 고요히 관하기를 「이 한 생각이 어디서 일어났는가」하는 것이다. 일어나는 자리가 없는 것을 보면, 고요해 지니, 고요한 것이 극치에 이르면 마침내 밝아진다.

환관幻觀이란 밖의 경계를 보는 공부인데 보고 듣는 그 모두를 헛것이라고 보는 것이다. 꿈은 실實이 아니라고 앎으로 우리는 꿈에 집착하지 않는다.우주 만상이 환임을 보게되면 집착에서 여의고 자성이 밝아온다. 거기서 온갖 착한 일을 행하는 것이다.

적관寂觀이란 정관靜觀과 환관幻觀이 한 덩어라가 된 것이다 안으로 일어나는 것도 없고, 밖으로 모든 물상이 다 빈 것이다. 객관이 한덩어리가 되어 닦는 방법인 것이다.

부처님 때로부터 천여년이 지나니 사람들 근기가 약해져서 여러가지 분별심과 나쁜 지건을 일으키므로 깨달아 들어가는 법에도 많은 방법을 더해갔다. 참선법이 가장 체계화 조직화된 것은 중국 당나라 때인 대혜大慧스님당시라고 보겠다. 대혜스님은 참선에 가장 착실한 방법으로 화두를 보라고 가르쳤다. 화두는 온갖 분별과 知見이 끊긴 알맹이 법이다. 조사들은 이 화두를 뚫어내고 깨친 것이다,

화두를 보는 간화선看話禪 밖에 화두를 보지 않고 참선하는 묵조선默照禪도 있다. 교리쪽으로 들어가는 관법은 묵조선과 일맥 상통한다.

참선은 반드시 화두를 보는 간화선이라야만 한다고 고집할 것은 없다고 본다 교법에 의한 관법으로도 깊은 도리를 깨칠 수 있으며, 묵조선법으로도 깨친 조사가 실로 많다. 그것은 중생의 근기가 각각 다르기 때문이다. 화두란 무엇인가? 계속

Wednesday, April 6, 2011

책은 성공으로 가는 보물지도.

책은 성공으로 가는 보물지도 !!!

동아시아 최고의 갑부 리카싱도 자신의 성공을 '책의 힘' 이라고 말하고 있다.리카상을 중국 광동 성 동북부에 있는 차우저우에서 초등학교 교사인 리윈장의 아들로 태여났다. 리윈장은 대대로 유학자의 집안이었다. 유학자 집안에서 태여난 리카싱은 서너 살부터 한시를 외우고 책을 읽는 습관을 들였다. 이 습관이 그를 책벌레로 만들었다.지금도 리카싱은 매일 잠자리에 들기전에 30분 이상 책을 읽는 것을 불문율로 여기고 있다.

주로 읽는 책은 역사, 경제, 철학과 관련된 책들이며,소설이나 무협지같은 흥미 위주의 책은 읽지 않는다. 책과 잡지에서 얻은 아이디어가 사업성공의 핵심요소가 된 적도 있다. 사업초창기에 리카싱은 플라스틱 조화 사업으로 세계시장을 공략했다.

1960년대 세계 조화 시장의 대부분을 장악하면서 조화 대왕이라는 별명까지 얻었다.그런데 리커싱이 외국 플라스틱 조화 사업에 진출 한것은 잡지를 통해 해외에 중산층이 성장하고 있다는 사실을 알게 되였고 증산층을 공략하기 위한 상품으로 플라스틱 조화가 좋겠다는 아이디어를 얻은 덕분 이였다.

1979 홍콩의 영국계 대기업인 허치슨왐포아를 인수한 것도 책을 읽으먄서 쌓은 선견지명 없이는 불가능했던 일이었다. 리커싱은 허치슨왐포아를 중심 으로 자신의 비지니스를 유럽,호주 등지로 확장시켰다. 경제의 그로벌화를 미리 내다본 것이다.이처럼 책은 리커싱에게 세상의 흐름을 읽는 도구가 되였다.

리커싱은 자신의 아들들에게도 책벌레 습관을 길러 주려고 노력했다. 매주 일요일이면 집근처의 바닷가에서 두 아들과 함께 수영을 했는데, 그때마다 리카싱은 책을 가지고 가 수영이 끝난 후 아이들에게 책을 읽어줬다. 바닷가 강의는 주로 중국 고전 이였다.

그는 고전을 읽어주면서 한 구절 한 구절 해석을 해주기도 하고, 문제를 내고 답을 맞히는 시간도 가졌다. 리커싱은 자신이 아버지에게 받았던 교육을 아들들에게 그대로 전해주고 싶어했다.

둘째아들은 "아버지는 어떻게 비지니스를 해야하는지 가르처주지 않았다.다만 어떻게 사람과 관계를 맺어야 하는지 기르쳤다. 아버지의 가르침의 기준은 공자 와 맹자의 가르침 이였다."고 회상했다.덕분에 기커싱의 책 읽기 습관은 아들들에게도 그대로 이어지고있다.

현재 창장구룹과 허치슨왐포아의 부회장으로 있는 큰 아들은 매일 열 시간 이상 회사일을 하면서도 집에 들어와서 자신의 전공인 건축 설계와 관련된 책을 즐겨읽는 다고 한다.리커싱은 일반적인 경영자들과는 달리 술을 입에 대지못한다. 또한 스스로 남을 접대하는데 능숙하지 못하다고 말한다. 그러나 상대방을 접대하고 사업 파트너와 어울리는 데 쓰는 시간을 최소화하는 대신 공부하고 분석하고 판단하는 힘을 키워왔던 것이 그가 말하는 사업 성공의 핵심이다.

2008-12-16 자료제공-미래에셋 미디어

Saturday, April 2, 2011

노인과 자부심

노인과 자부싱

노인이 가장 견디기 어려운 것은 소외감이다.

노인의 모순은 스스로 노인 이기를 거부하는 것이다.

노인이 조심할 것은 입은닫고 지갑은 여는 것이다.

그러나 노인이 가장 부끄러워야 할 일은 자기관리의 소홀함이다.

소홀한 탓으로 주위 사람에게 부담과 괴로움을 준다.

고전 시가나 설화에 알려진 노인의 이미지는그런 부정적인 것과는 다르다.

가장 오래된 서정시인 '공무도하가' 에 등장한 노인은 백수광부이다.

머리털이 하얗게 세고 산발을 한 미친 노인 이 술병을 들고 물에 빠져 죽는다.

향가 '헌화가'의 작가는 견우노옹이다. 암소를 끌고가던 노인이 천 길 절벽에 핀

철죽꽃을 꺾어 수로 부인에게 바치는 노래이다.

'태평광기'에 수록된 월하노인은 달빛 아래서 책을 읽고 있었다.

인간세게의 부부 인연을 맺아주는 저승의 노인이다.

설총의 '화왕계' 에 나오는 백두옹은 군자의 도리를 직언하여 화왕의 마음을

돌려놓은 충직한 장부였다.

노인은 주로 죽음, 덕망, 지혜, 의로움이나 초현실의 신비를 지닌 존재였다.

성경의 잠언에는 백발은 영화의 면류관이라고 했다.

공자는 60세를 귀로 들어서 모든이치를 알 수 있는 이순이라고 했고

70세를 마음이 시키는 대로 해도 법도를 어기는 일이 없는 나이라고했다.

백악관만 48년 동안 출입해온 헬렌 토마스는 올해 89세의 당당한 할머니 기자이다.

나이는 숫자에 불과 하가고 하지만 나이를 책임과 자부심을 느끼게한다.

노인의 나이는 인생의 경륜과 추억이 담긴 그릇의 크기를 말한다.

무엇보다도 관용과 사랑의 깊리를 재는 수치이기를 바란다.

사회학자 브린튼은 '노인을 대접하지 않는 사회는 이미 희망을 잃어버린 사회' 라고했다

노인이 아름다운 것은 그자부심이 노인을 대접하는 사회를 만들어 가고 있기 때문이다.

여론마당에서

Wednesday, March 30, 2011

우리민족의 화두

우리 民族의 화두 조선민족은 하나고 둘이아니다.

序言

조선민족은 하나고 둘이 아니다. 더구나 셋도 아니고 넷도 아니다, 조선사람은 삼천만이나 조선민족은 다만하나다. 아득하고 오래기 반만 년 전 송화강반 백두산 아래 성스러운 천리千里 천평千坪신시神市의 때로부터 가까이 설흔 여섯 해 동안, 뜻 아니한 왜노의 잔인한 압박과 구속밑에서 강제로 동조동근同祖同根의 굴레를 뒤집어 씌우고 창씨와 개명까지 당했던 을유년 팔월 십삼일 어제까지---조선 민족은 다만 하나요 둘이 아니다.

또다시 앞으로 조선민족은 억 천 만 년 백 겁을 감돌아 한밝의 밝은 광명을 동방으로부터 세계에 부어내리고 삼천만 겨레가 삼억만 민족이 되고 삼억만 민족이 십억 창생이 되는 때까지 조선민족은 다만 하나고 둘이 아니다.

민족은 조상을 같이한다. 맥박에 뛰노는 핏줄이 본능으로 엉키니 하나요, 둘이 될 수 없다. 말이 같고 풍속이 같으니 하나요, 둘이 될 수 없다.

멀리 바다를 건너 동경, 하와이, 뉴욕, 런던에 외로운 그림자를 짝하여 달빛 아래 초연히 거닐어보라. 만 가지 향수가 그대의 머리를 스치리라. 삼각산이 보이는 한강물이 그리워 지리라. 모란봉이 떠오르고 대동강이 생각나리라.

다행히 남만격설지성南蠻鴃舌之聲 떠드는외국사람 틈에 고향친구를 만나 방아타령이나 아리랑타령 한곡조를 들어보라. 그대의 눈에 까닭 모를 더운 눈물이 주루루 흐르리라.

이것이 조국애요, 민족애다.

조선민족은 다만 하나요, 둘이 아니다. 조선민족은 운명을 같이할 약속을 갖는다.

한 번 나라가 거꾸러지매 그 민족의 고단한 신세---어찌 했더냐. 한 번 나라가 일어나매 그 민족의 가막힌 광명이 어떠했더냐/

신라가 일어나매 그대들의 광명이 어떠했더냐. 김유신 장군은 소정방의 무릎을 굽히게 했고, 태종 김 춘추는 삼한을 통합하여 경주 서울 안에만 십삼만 팔천구백삼천육백호에 일천 삼백 육십 방이 바득판같이 벌어지고,주위는 오십오정에 고래등 같은 용마름과 화초무늬 아름당운 담은 비늘처럼 연해서 백성의 집에는 초가 한 채가 없었고,화락한 풍류와 즐거운 노래소리는 길에 그칠 사이가 없었다 한다.

고구려가 일어나매, 그대들의 광명이 어떠했더냐.을지문덕장군은 거만한 수나라 양제의 백만 대병을 청천강에 깨뜨려버렸고, 우리의 안시성주 양 만춘은 당나라 천자 이 세민이 천만 대병을 거느려 거들럭 거리고 노략질하러 들어오는 것을 백우선 한 화살로 눈일을 쏘아 애꾸눈이가 되게했다.

고려의 운수가 미약하여 몽고 흘필열屹必列의 침략을 받았을 때, 조선 여자는 호궁胡宮의 계집이 되고, 조선 민족은 옷까지 바꾸고 이름까지 갈았다.

이몽고대李蒙古大니 백안첩목아伯顔帖木兒니 하는 따위는 왜놈들이 최근에 우리 민족에게 준 굴욕과 수치, 그것보다 무엇이 나을 것이 있으랴!

광무, 융희에 대한제국이 오 적五賊, 칠 적七賊 열두놈의 손에 거꾸러졌을 때 어둡고 나약한 파멸은 그들의 죄요 허물이라, 우리 민족이 알 바 아니거니와, 을사년간에 왜노에게 외교권을 빼앗긴 조선민족은 절름바리에 곱추 병신이 되었고, 경술합방---하늘이무너지고 오장육부가 다쏟아지는 듯한 민족의 설음과 통곡은 누가있어 능히 우리를 위로하고 보증해 주었으랴!

이대로 사십년이란 길고 긴 춘추에 우리는 기름과 피를 왜노에게 다 빼았겠던 것이다. 문전옥답은 신작로로 다들어가고, 똑똑한 자식들은 사상범이라 해서 감옥소의 귀신이 되었다.

이 지독하고 끔찍끔찍한 현실은 민족의 뼈속까지 사무처서 뜻없는 초수목동樵豎牧童, 망국한을 모르는 술장수 어미의 입초수와 노래가락에까지 오르내렸던 것이다.

민족은 위정자를 감시해야한다. 민족은 뭉처야한다.절대로 배타주의가 아니다. 살기위하여 자립을 꾀하여 한맘 한뜻으로 뭉처야한다. 조선민족은 하나요 둘이 아니다.

이천여 년 전 한나라 무제 유철劉徹이 위만衛滿을 쫓느라고 조선을 침략하여 낙랑樂浪, 현토玄兎, 임둔臨屯, 진번眞蕃, 네 고을을 두었을 때 조선민족은 별안간 대낯에 강도놈이 들어와 염치없이 먹을 것 다먹고 자빠진거나 똑같은 만고에 없는 변을 당했다.

평안도와 황해도, 강원도와 함경도 지방이었다. 마치 요사이 소위 해방되었다는 조선에 남북을 금그어 갈라놓은 북위 삼십팔도 문제보다 지나친 자였다.

이로 인하여 민족의 연락은 끊어지고, 이로 인하여 경제의 파탄이 일어났고, 이로 인하여 자주사회와 민족의 연립은 파괴되고, 찢어지고, 좀먹어 버리게 되었다. 얼마 안 돼서 본토의 민족들은 힘을 다하여 한뭉치가 되어 한 민족을 몰아냈나니, 이것은 다만 너와 내가 따로 없다는 다같은 깃발아래 대동단결--- 그들을 전멸케 한 민족의 항전이요 투쟁이었다.

민족을 떠나서 내가 없고 나를 떠나서 민족이 없다. 민족은 곧 나의 모체요, 나는 곧 민족의 한 분자인 것이다.

우리는 민족의 자랑을 가져야한다. 조선민족은 내 민족이요 남의 민족이 아니다.

신라의 김유신은 제 민족을 안 사람이요, 고구려의 을지문덕은 민족애 곧 조국을 안 사람이다.

지난번 러시아의 스타린은 나치스 독일의 육박이 바야흐로 위급했을 때 만국의 노동계급의 해방을 위해서라는 맹세대신, ‘최후의 목슴이 붙어있을 때까지 이름을 동포와 조국과 노동자 농민의 정부 때문에 바친다라는 선언을 부르짓게 했다.

이것은 소비에트로도 여태까지 집어치웠던 민족을 다시부르는 강한 소리다.

우리는 임진왜란 때 단신으로 기막힌 항전을 계속한 바다의 영웅 이 순신李 舜臣장군을 잊어서는 안 된다. 병자호란에 청나라에 잡혀가서 죽어도 청제에게 절을 아니한 삼 학사를 잊어서는 아니된다. 을사조약에 목을 찌른 민영환閔 泳煥을 잊어서는 아니된다.

대마도에서 굶어 죽은 최 익현崔 益鉉도 알아두자. 할빈 역머리에 이등박문을 쏘아 죽인 安 重根님께 고요히 묵도를 올리자. 삼천리 강산을 뒤흔들어 놀은 白手의 항전 삼일 운동의 기억이 새롭구나--- 귀여운 도련님과 아가씨의 광주학생사건도 눈물겨웁다.

이것은 모두 다 민족의 항전이요 투쟁이다.

조선민족은 하나요 둘이 아니디.

解放後 西紀 一九四五 十月 三十一日 釣水樓에서 박 종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