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aturday, November 19, 2016

제2장 실상 중음, 업력의 환영이 나타나다 (그림으로 풀어낸 삶과 죽음의 안내서 티베트 사자의 서 파트마삼바바

제2장 실상 중음, 업력의 환영이 나타나다 첫 번째 경지의 청정한 빛에 깨달아 들어가지 못했어도 두 번째 경지의 청정한 빛을 능히 변별할 수 있으면, 생사의 속박에서 이내 해칼할 수 있다. 만약 또 다시 이해하지 못하면 실상 중음이 즉각 현현한다. 실상 중음에서는 업력의 환상이 비로소 현진한다. 그러면 즉각 필요한 가르침을 염송 해야 하는데 그 효과가 아쥬 커서 망자를 이롭고 즐겁게 하기 때문이다. 이때 망자는 마련된 제사 음식과 업이 없어졌음을 스스로 목도한다.그래서 자신을 돌이켜보니 옷을 걸치지 않은 나체인데다가 생전에 눕던방이 청소되었다는 것을 인지 한다. 동시에 친ㅈ척이나 벗들이 곡을 하면서 애도하는 소리를 듣고, 벗들이 자신의 이름을 부르는 걸 듣는다. 그들을 불러보지만 전혀 듣지 못해 마음이 괴롭고 실망스러워 떠나간다. 이때 접촉하는 소리와 색깔과 공포심을 불러일으키고 몸을 지치게 만든다 . 따라서 반드시 망자를 세 범째 경지인 중음의 실상에 깨달아 들게 해야 하는데 먼저 그 이름을 부른 후에 명석하고 정확하게 다음과같이 염송해야한다. “존귀하신 붓다의 후예여, 주의 깊게 삼가 들으면서 마음을 흐트러뜨리지 말라. 중음의 경계는 여섯가지로 구별할 수 있다. 첫 째는 胎에 처함을 칭하는 것이고, 둘 째는 꿈의 경계가 되고, 셋 째는 선정 상태이고, 넷 째는 임종 상태이고, 다섯째는 실상의 상태이고. 여섯째는 投生에 접하는 것이다. 존귀하신 붓다의 후예여, 그대는 반드시 임종 중음과 실상 중음과 투생 중음을 거쳐야 한다. 오늘 이전에 그대는 이미 임종 중음을 경험했다. 청정한 빛이 나타났지만, 막막해 하다가 알아차리지 못했다. 그래서 그대의 마음은 안정되지 못하고 유동하고 있다. 이제 실상 중음에 직면할 것이고, 아울러 투생 중음도 거칠 것이다. 마음을 흐트러뜨리지 말고 염송에 귀를 기울이면서 적시에 깨달아 증명하라. 존귀하신 붓다의 후예여, 이른바 죽음이 지금 그대에게 닥쳐왔다. 그대의 몸은 이미 사바 세계를 여의었다. 하지만 세상의 중생들은 죽음을 피하기 어려우니, 이는 그대도 마찬가지이다. 결코 텀욕울 부리거나 애착하지 말지니, 의지가 굳세지 못하면 생존에 집착한다. 설사 생존할 수 있게 되더라도 오래 살 수는 없으며, 생사에 流轉하면서 터럭만큼도 얻을 바가 없다. 따라서 티끌 세상에 미련을 두지말고 의지를 굳건히 해서 삼보를 공경해 지녀야한디. 존귀하신 붓다의 후예여, 실상 중음에서 어떤 공포의 경계가 나타나더라도 다음에 말하는 게송을 영원히 잊지 말아야 한다. 마음으로 그 뜻을 이해해서 결코 두려워하거나 위축되지 말고 중음을 인식하라. 근본의 비결이 바로 여기에 있다. ‘실상 중음이 지금 내 앞에 나타나고 있다.나는 이미 공포의 환상이 모두 스스로의 識이 반영되어 이루워진 것이고, 또한 중음에서는 자연스런 현상이란 걸 깨달아 알았노라. 이제는 두려운 생각이 다 없어졌다. 따라서 성취를 기약하는 중요한 시기이니, 모든 스스로의 識이 변화하여 나타난 안락과 분노의 불보살 존자들에 대해 다시는 두려워 하지 않겠다고 나는 결정 했노라.’ 존귀하신 붓다의 후예여, 그대는 반드시 게송의 문장을 명석하게 외우고, 마음으로 그 뜻을 이해하고, 용감하게 나아갈 뿐 물러서지 말아야 한다. 어떤 공포가 나타나든 결단코 중음의 실상을 인식할수 있어야 한다. 이 비밀의 법을 기억하고 잊지 말아야 한다. 존귀하신 붓다의 후예여, 몸과 마음이 분리하면 그대는 진실의 서광曙光을 접촉한 것이다. 미묘하고 미세한 빛살이 눈에 부셔서 마음이 두근거리는데, 흡사 봄날의 끝없는 경치景色에서 신기루가 그 속을 섬광처럼흘러가는 것과 같다. 그러나 놀라거나 두려워하는 마음을 갖지말고 진정할지니, 응당 그 빛이 자기 마음의 發光임을 알아야 한다.이때 실상이 본래 갖추고있는 소리가 광명으로부터 짧게 나오는데, 마치 천만 개의 뇌성병력이 일제히 울리는 것과 같다. 이 역시 자신이 발한 소리이니 절대로 놀라거나 두려워하지 말아야 한다. 그대가 현재 갖추고 있는 몸은 순수하게 습기習氣와 뜻에서 생겨난 신체이다. 이제는 피와 살로 이루어진 몸이 없어서 소리와 색깔과 빛이 다시는 그대를 해치지 못한다. 이와 같은 현상은 스스로의 識이 이룬 것이니, 그대는 응당 이것이 바로 중음임을 인식해야 한다. 존귀하신 붓다의 후예여, 그대가 스스로의 識에서 나온 환상임을 밝히지 못한다면, 그리고 생전에 선정을 익히고 예불 수행을 했더라도 이 대목의 염송한 법을 아직 듣지 못했다면, 현 시점에서 만나는 소리와 색깔과 빛이 두려움을 낳을 것이다. 만약에 본법의 요결要訣을 분명히 밝히지 못한다면, 소리와 색깔과 빛이 원래의 실상임을 인식하지 못해 결정코 생사의 바다 속을 유전하며 빠져나올 수 없으리라.” 그림으로 풀어낸 삶과 죽음의 안내서 The Tibetan Book of the Dead 파드마 삼밥 ;장훙수 풀어씀 ;장순용 옮김

Friday, November 18, 2016

그림으로 풀어낸 삶과 죽음의 안내서 The Tibetan Book of the DeaD 파트마삼바바 장훙스 풀어씀 장순용 옮김

 제1장 생명을 마칠 때 변화의 상태

임종 중음에서 직면하는 청정한 빛으로 인도하는 방법을 서술한다

법(法 : 진리)을 듣기는 했지만 아직 깨닫지 못한 자들이나, 

이미 깨달았지만 성숙하지 못한 자등이 있을 것이다

그러나 살아있을 때 수행의 차제(단계)를 배우고 다시 근본법에 들었다면,

단박에 근본의 청정한 빛을 직면할 것이다.

그리고 어떤 중음도 거치지 않고 이 위대한 수직으로 오르는 길을 통해서 

 즉각 無生의 法身(법신은 쉽게 말해서 진리의 몸이다. 이 법신은생겨난

적도 없고 소멸한 적도 없이 항상 그대로다)을 증득 하리라

망자가 살아있을 때 관정灌頂(물을 정수리에 붓는 의식)을 한 구루가

직접염송 한다면 가장 좋다. 그렇지 않으면 같은 수행을 하는 도반이나 

같은 종교의 가르침을 배운 뛰어난 大德(고승)이 염송하고,

이마저 불가능 하다면 분명하면서도 정확하게 암송할 수 있는 자가 몇번이나

반복해서 읽어야 한다. 이렇게 하면 망자는 예전에 들었던 기르침을 기억해서

단박에 근본의 청정한 빛에 깨달아 들어가는 동시에 생사의 속박에서 해탈한다.


망자가 내쉬는 숨이 멎었을 때 몸의 영열(靈熱: 생명의 기운)은 반드시 지혜가

머무는 중맥(中脈:중추신경)속으로 가라앉는다(肉團心).


 그때 능지(能知 :능히 아는 지혜)의 識은 즉각본래 갖추어져 있는 청정한 빛을

증험한다. 이때 이미 가라앉은 영열이 필연적으로 오른쪽과 왼쪽의 맥脈으로 

흘러 들어가자 마자 중음의 상태가 곧 현전한다.

이 가르침은 영열이 배꼽의 중맥을 지나 왼쪽의 맥으로 돌입하기 전에

시행되어야 한다. 영열이 유동하는 기간은 망자의 들숨이 잠시 머물러 

있을 동안이며 일반적으로는 밥한끼 먹는 시간이다.

숨이 멋으려 할 때 신식神識이 옮겨가는 게 가장 좋다.

 그러나 그렇게 하지 못했다면 망자를 향해 다음과 같이 훈시 해야 한다.


“존귀한 붓다의 후예여(,망자이름을 부른다) 이제 그대가 진실의 大道를 찾을 때가 왔다. 그대의 숨이 멎으려 하고 있으며, 구루는 그대에게 청정한 빛을 대면 시키려고 한다. 중음세계에서 그대가 직접 청정한 빛의 실상(다르마타)를 체험하도록 하는 것이다. 

일체의 모든 것은 완전히 虛空이다.만리에 구름한점없는 푸른하늘과 같다. 티 하나 없고 아무것도 걸치지 않은 그대의 神識은 마치 진짜 허공 같아서 전체가 투명하여 중심도 없고 변두리도 없다. 이 순간 그대는 청정한 빛을 이식해서 그 속에 머물러야 한다. 나도 동시에 그대를 도와 인도 하리라.”


망자가 내쉬는 숨이 아직 멎지 않았을 때 그의 귀에다 대고 몇 번이나 반복해서 암송한다. 망자의 마음에 깊이 새기기 위한 것이다. 내쉬는 숨이 멎으려 할 때는 임종하는 자를 오른쪽으로 눕게한다. 이 자세를 ‘사자가 누워서 잠자는 모습’이라고 한다. 그리고 목구멍 오른쪽과 왼쪽 동맥의 脈動을 눌러서 뛰지 않게한다. 혹시 임종하는 자가 잠에 빠지려 하거나 깊은 수면 상태에 들어가려하면 이를 막아야 한다. 그리고 목구멍 부위의 동맥은 가볍지만 확실하게 눌러준다.이렇게 하므로서 靈熱은 다시는 아래로 가라앉지 않고 중맥에 머물러 있다가 반드시 브라흐마의 구멍 

(범혈梵穴: 죽은자의 의식이 몸을 빠져나올 때 아홉구멍으로 나아는데, 그중에서 최상의 구멍이다. 겨기로 빠져나온 의식은 무색계에 태어나거나, 천식법에 의해 법신을 성취하거나 정토에 태어난다.) 을 통해 나간다.


청정한 빛을 대면하는 것도 이때부터 시작된다 이때 有情 중생은 法身의 無垢한 實相, 본성인 청정한 빛의 최초 섬광을중음에서 본다. 내쉬는 숨은 이미 끊어졌지만 들이쉬는 숨은 아직 끊어지지 않은 이 시간이 일반 사람에게는 識心이 이미 멸한 것으로 여겨지지만 실제로는 靈熱이 중맥에 머무는 시간이다.

머무는 시간이 오래갈지 잠시일지는 확실하지 않다. 그것은 망자가 선한가 악한가, 맥과 靈熱이 장한가 악한가에 달려있다. 망자가 생전에 신정의상태를 조금이라도 익혔다면, 강한 맥을 갖추고 영열도 머물러서 시간이 오래갈 것이다.

청정한 빛을 대면하기 시작할 때 앞서말한 훈시를 계속해서 염송해야한다. 망자 몸의 각 구멍에서 누르스름한 액체가 흘어나와 멈출 때 까지 계속해야 한다.

 생전에 악한 짓을 한 사람은 강한 맥이없고, 영열에 머물러 있는 시간은 손가라 한 번 튕길 사이일 때도 있고 밥 한끼 먹는 시간일 때도 있다. 밀교의 수행법에서 보편적으로 서술하는 바에 의하면, 이 머물러 있는 시간은 3일 반이고, 다른 密法에서는 대체로 4일 동안 이라고 서술하고 있다.

 그리고 이 기간 내내 청정한 빛의 인도는 중단되지 않아야 한다. 임종하는 자가 죽음의 징후를 스스로 살필 수 있을 때는 다름 사람의 도움 없이도 청정한 빛에 깨달아 갈 수있다. 그러나 임종하는 자가 그렇게 할 수 없을 때는 구루나 동문의 도반이 곁에 앉아서 장차 나타나는 죽음의 현상들을 차례로 상세히 말해주어야 한다.

 망자의 識에 활발히 각인시키기 위해서는 먼저 다음과 같은 비밀의 말을 거듭 당부해야 한다.


“지금 흙이 물로 변하는 징후가 이미 나타났다.” 

( 죽음의 징후는 주로 세가지다. ‘흙이 물로변한다’는 무거운 압력으로 누루는 몸의 느낌이다. ‘불이 불로변한다’는차갑고 축축한 느낌이 마치 물속으로 빠지는 것 같지만, 그러다가 갑자기 차갑고 축축함은 소실되면서 뜨거운 열의 느낌으로 변하는 것이다. ‘불이 바람으로 변한다’는 몸의 느낌이 마치 바람에 불려서 티끌이 되어버리는 것 같다. 매번 변화의 징후는 몸의 외부에도 똑같이 나타난다.

 예컨데 안면의 피부근육이 풀어진다거나, 귀가 들리지 않는 다거나,눈이보이지 않는다거나, 숨을 헐떡거린다거나, 지각을 잃는 것이다. 그래서 법을 염송하는 라마는 실제의 상황을 숙지하여 중음신에서 신체의 껍질을 이탈하면서 나타난 현상 하나하나를 스스로 능히 인식하여 착오가 없게 한다.)


그리고 사망의 징후가 끝나갈무렵 그의 귀에 대고 미세하고 은밀한 목소리로 망자가 한마음으로 결정 짓도록 촉구해야 한다.


“존귀한 붓다의 후예여(승려일 경우는 大德이라 칭한다.) 그대 마음을 흐트려 뜨리지 말아야 하다. 망자가 동문의 신도이거나 혹은 일반 사람인 경우에는 그의 이름을 부르면서 다음과 같이 은밀히 말한다.


“존귀한 붓다의 후예여,이른바 죽음이란 것이 이미 그대에게 다가왔으니, 마음속으로 응당 이렇게 결정해야 한다, ‘이제 과보가 다하여 목숨이 끝날 때이니, 나는 이 기회를 빌어 이렇게 결정해야 하리라. 한량없는 세계의 모든 有情 중생을 사랑하고 불쌍히 여기고 널리 이롭게 하기 위해 나태함 없이정진해서 기필고 유일 하면서도 원만한 佛道를 얻으리라.’

그리고 임종 직후에는 중음에서 청정한 빛의 법신이 중생을 두루이롭게 함을 실증해야 한다. 또 마음속으로 이미 그렇게 사유해서 청정한 빛의 법신을 깨달아 증명했다면 결정코 大手印 경지의 더할 나위없는 은혜를 얻으려고 다음과 같이 결심해야 한다.



‘설사 내가 청정한 빛을 실증할 수 없다고 해도 마음으로는 분명히 중음을 인식하고 아울러 중음의 실상을 뚜렸이 깨달았으리라. 바라노니 앞으로는 갖가지 몸을 나타내서 세계의 갖가지 유정 중생을 이롭게 할 것이며, 유전중생이 다하지 않으면 나의 염원도 다하지않으리라.’


이 염원을 마음에 지닌 채 떼어 놓지 말아야 하나니, 생전에 일상속에서 닦아 지닌 예불 수행 하나 하나도 반드시 잊지말고 기억해야 한다.”


이 경문을 염송할 때는 망자의 귀에 가까이 대고 분명하면서도 정확하게 하나 하나 깊이 망자의 識에 세김으로서 한 찰라도 염원을 여의지 않도록 해야한다. 내쉬는 숨이 끊어진 뒤에는 망자의 수면의 脈을 단단히 눌러주어야 한다. 

그리고 망자가 교리를 깊이 연구해서 

그 경지가 비교적 높은 밀교의 고승이라면 다음과 같이 고해야한다.


“동문이신 대덕이여, 그대는 근본의 청정한 빛을 올바로 경험하고 있으니, 

즉각 그 청정한 빛 속에 안주 해야합니다.”


망자가 동문의 도반이아니면 이렇게 은밀히 말해야 한다.

“존귀한 붓다의 후예여, 그리고 망자의 이름을 부른다 귀 기울여 들어라. 지실한 바탕인 청정한 빛이 찬란히 발산하면서 그대 앞에 나타났느니, 그대는 반드시 인식해야한다. 붓다 후예여, 그대에게 갖춰진 지혜는 실제로는 본래 空이라서 形質인 듯 色인듯 해도 똑같이 空幻에 속해서 털끝만큼의 體도 갖추지 않았다. 이 지혜가 바로 청정한 빛의 실상인 普賢의 법게이다. 그대의 지혜가 비록 空이라도 결코 體없는 공이라고 보지말라. 실제로 이 지혜는 장애가 없어서 광채가 완연한 活潑發(생기가 활발하게 일어나는 모슴을 형용하는 말.)한 경지로서 쾌적하고 안락하며,  淸淨識과

( 최초의 청정한 빛은 바로 실상으로서 환하게 밝은 법신이다. 만약 업력 때문에 변별해 인식하지 못하면 빛의 색깔이 어둡게 변하지만 그래도 의지할 수 있다 ) 

보현의 불성은 광명의 眞空으로서 빛의 體를 여의지 않은 채 생기지도 않았고 멸하지도 않으니, 바로 아미타불, 즉 無量光佛이다. 지금까지 증명 했듯이, 그대 지혜의 진공이 佛心이 아님이 없으며, 또한 바로 스스로 淸淨本識이 있는 것이니, 스스로 응당 불심에 영원히 안주해야 하리라.”


이 경문을 정확히 세 번에서 일곱 번까지 염송해서 망자로하여금 생전에 스승이 비밀리에 전해준 깊고깊은 불법을 상기할 수 있게 해야 한다.그다음 청정한 본래의 빛깔이 곧청정한 빛임을 알게 해서 識과 빛이 융화한 법신을 망자가 영원히 계합하면, 생사의 속박에서 반드시 해탈할 수 있으리라. 


 임종 중음의 제 2단계에 나타나는 청정한 빛  

지금까지의 念誦을 다 끝내고나면 청정한 빛의 현현을 인식할 수 있어서 생사의 속박에서 해탈 할 수 있다.

설사 만자가 막막해서 변별해 인식하지 못할지라도 아직은 제 2단계 청정한 빛에 깨달아 들어갈수 있다. 이 빛이 출현할 때는 망자의 숨이 끊어지고 나서 밥 한 끼 먹을 시간이 자나서이다.  

사람의 업력이 선한가 악한가에 따라서 靈熱은 아래로 흐르면서 오른쪽 맥을거치기도하고 왼쪽 맥을 거치기도하며, 스스로 梵穴로 나가기도하고 다른 구멍으로 나가기도 하면서 신체를 이탈 한다. 그리고 나면 心地가 환연히 밝아진다.

심지 

 靈熱의 識體가 몸을 이탈할 때 망자는 즉시 昏沈 상태에 들어간다 이때는 이미 본 천정한 빛이 혼침으로 대충 소멸해서 그 청정한 빛의 색깔이 어둡게 변한다. 예컨데 공을 땅바각에 쳐서 튀어오르게 하면, 처음엔 아주 높이 튀어 오르지만 두 번째 세 번째에는 점점 낮게 튀닥 마지막엔 땅에 붙어서 다시는 튀어오르지 않는데, 

식체가 몸을 디탈하는 것도 이와 마찬가지이다. 처음 이탈했을 땐 상승 했다가 점점 아래로 가라앉으며, 마지막엔 업력 때문에 胎에 의탁해 거듭 태어난다. 식체가 몸을 이탈 하자마자 망자는 스스로 묻는다.

“지금 죽었는가 아니면 아직 죽지않았는가 ?

하지만 너무나 크게 알지를 못한다. 동시에 가족이나 벗들을 살아있을 때와 마찬가지로 볼 수 있고, 통곡하고 애도하는 소리도 들을 수 있다.

 이때는 자신의 업력이 환영으로 빚어내는 두려운 현상이 아직 나타나지 않았고, 地府의 주재자에게 속한 귀신, 도깨비 같은 공포스러운 경계도 아직 생기지 않고있다. 

바로 이시기에 잘 인도 해야 한다.

경건하고 성실한 망자는 이미 성취했고, 

아직 성취하지 못한 자는 겨우 像을 관찰 할 수 있다.

전자에 속한 사람에겐 그 이름을 세 번 부른 뒤 청정한 빛을 깨닫게 하는 앞서 말한 가르침을 반복해서 은밀히 암송한다.

후자에 속한 사람에겐 생전에 받들고 수호하는 존자를 觀想하는 儀軌를 크게 읽어주면서 다음과 같이 고해야 한다.


  “고귀한 아무개여, 그대의 본존 수호신 아담을 관상하기 바란다. 그대의 신심을 미혹시키지 말고 정신을 집중해서 그대의 수호신을 진지하게 관상하라. 그대는 마음속으로 반드시 실체적 형상이없는 본존수호신을 마치 물에 거꾸로 비친 달 그림자 처럼 구체적 형상이 없다고 상상 하라.”


이렇게 망자의 마음에 깊이깊이 새겨준다. 만약 일반사람이라면 觀自在보살의 상을 관상하게 하라. 이렇게 염송하면 설사 망자로 하여금 중음을 증험시키지는 못해도 결정코 인식해서 털끝만큼의 의심도 없다. 망자가 생전에 가르침을 들은 적이 있어서 청정한 빛을 대면했어도 아직 익숙하지 못하기 때문에 자기 힘으로는 중음을 변별해 인식할 수 없다.


그렇다면 응당 스승이나 동문의 법다운 비밀의 말을 마음에 활발하게 새겨서 들어가도록 해야 한다. 어떤 망자는 업이 익숙하더라도 병으로 인한 갑작스런 죽음으로 心靈이 환영에 항거할 수 없기 때문에 이러한 훈계의 말이 지극히 필요하다. 또 생전에 익숙했을 지라도 宿願을 갚지 못하고 받은 은혜를 보답하지 못한 망자는 불쌍한 경계에 떨어지는데,


이들에게도 앞서말한 훈계가 적잖이 필요하다,

 첫번째 경지의 중음에서 시의에 맞게 깨달아 증명하는 것이 가장 上乘이다. 그러나 깨달아 마치지 못할 경우

반드시 두 번째 경지의 중음 기간 내에 명석한 염송에 의지할 수 있으면 망자는 근본 지혜를 회복하여 속박에서 해탈한다. 두 번째 경지의 중음에서 망자의 몸은 순수한 幻體이다

자신이 죽었는지 살았는지 알지 못하는데,

 심지(心地 :마음바탕) 는 이미 확연히 밝아진다. 앞서말한 훈계의 말을 암송하여 효과가 있으면 자식의 실상과 어머니의 실상이 즉시 화합해서 더 이상 업력의 지배를 받지않는다. 청정한 빛이 현현하자 업력이 흩어져 소멸하는데, 비유컨데 태양이 떠오르면 어둠이 단박에 없어지는 것과 같다

 禪定의 증명은 지식의 실상아고, 중음이 증명한 평형상태는 바로 어머니의 실상이다.


첫 번째 경지와 두 번째 경지의 중음에서 망자의 몸은 “의식으로 능히 아는 지혜” 아님이 없지만 , 그 미치고 있는 활동에는 오히려 법위가 있다. 이때 염송하여 효과가 있다면 소기의 목적에 도달할 수 있는데, 그 이유는 아직 업력이 현저하지 않아서 망자가 覺性을 여윈체 이리저리 표류하지 않기 때문이다.

그림으로 풀어낸 삶과 죽음의 안내서 The Tibetan Book of the DeaD

 제1권 임종 중음과 실상 중음 
공경의 예禮 
法身이신, 불가사의 한량없는 빛의 부다에게 큰절합니다. 
報身이신, 연꽃 존자, 안락 존자, 분노 존자에게 큰절합니다. 
應身이신,모든 생명을 보호하는 청정하고 거룩하신 파드마삼바바에게 큰절 합니다. 
우리 종교 三身과 구루에게 큰절합니다.  

인도하는 말 
여기서는 [중음에서 가르침을 듣는 것으로 해탈을 얻는 비밀의 법]을 펼쳐 보이고 있다. 
평범한 청신사(靑信士  구도자)들이 중음에 있을 때 
이 법을 들으면 단박에 마음에 자유 얻는다. 
이 비밀의 법은 세가지로 나누어 있으니, 
수행의 차제(次第:단계)와 제목과 같은 가르침과 마지막 결론이다. 
수행의 단계는 모든 생명 있는 것들의 해탈을 위한 근본이니, 
먼저 순서에 따라 실제로 단련해서 능숙하게 익혀야 한다.  

천식법 遷識法 
뛰어난 지혜를 가진 청신사가 수행의 차게를 배우고 익히면 
반드시 생사의 속박을 벗어날 수 있다. 
만약 속박을 벗어나지 못했다면, 임종 중음에 있을 때 생전에 천식遷識을 닦아 익힌 걸 
기억하는 것으로도 속박에서 벗어날 수 있다. 
평범한 청신사는 이 보리도菩提道를 닦는것으로도 능히 생사의 속박을 벗어날 수 있다. 
만약 벗어나지 못했다면, 
응당 실상 중음에 있는 동안 
이 [중음에서 가르침을 듣는 것으로 해탈을 얻는 비밀의법]을 
변함없는 마음으로 받아들여야 한다. 
따라서 망자는 우선 [죽을 때 나타나는 특징들을 낱낱이 관찰해서 스스로 구원하는 교법]에 의거하여 몸을 주도면밀하게 관찰해서 죽음의 특징을 점점 발견해 나가야 한다. 
관찰이 끝나면 반드시 천식을 실시해야 한다.
이 교법을 기억하는 것으로도 속박에서 벗어날 수 있다.  

염송(念誦: 일심으로 念 하면서 외우는 일)하는 비법을 알아야 한다 
신식( 神識: 신령한 識 흔히 사후에 영혼이 천국이나 지옥으로 말하는 데, 
불교에서는 사후 어느 곳을 가든지  識의 변천하는 것이라고 본다. 
이 식이 신령스럽기 때문에 ‘신식 神識’이라고 한다)의 옮겨감이 효율적으로 이루어 졌다면, 이 비밀의 법을 암송할 필요가 없다. 그러나 효과가 없다면, 망자의 유체遺體곁에서 이 비밀의 법을 염송해주어야 한다 읽어줄 때는 정확하고 분명하도록 힘써야 한다. 만약 유체가 없다면, 염송하는 스승은 망자가 생전에 쓰던 탁자나 의자를 차지한 채 그 속에서 진실한 법력을 천명해 주어야 한다. 그 다음엔 망자의 영혼울 불러서 그가 마치 곁에서 듣고 있는 것처럼 상상 하면서 염송한다. 이때 친족이나 벗은 통곡하거나 흐느끼지 말아야 한다. 사자의 영혼이 불리하기 때 문이다.유체가 그대로 있다면 응당 망자의 호흡이 끊어졌을 때 라마나, 생전의 망자의 스승, 망자가 생전에 가까운 친구 등이 귀에 닿지 않도록 대고서 염송한다. 

염송법의 실시
 능력이 된다면 광대한 공양을 아주 정성껏 마련해서 삼보 三寶에 공경히 바치고, 그럴 수 없다면 어떤 물건이든 一心으로 사유할 만한 것을 준비해서 광대하고 무한한 공양을 바치며 공경히 절을 해야한다. 그 다음에는 ‘모든’ 붓다와 보살들의 도움으로 이루워지길 간절히 기원하는 주문’을 일곱 번이나 스물한 번을 염송한다. 그다음에는 ‘중음에 있을 때 두려원 하지 않도록 도움을 청하는 주문’과 망자가 업에의해 타락하지 않도록 중음에서 건져내주길 청하는 주문’, 동시에 ‘여섯가지 중음의 경책하는 말’을 분명하면서도 정확한 억양으로 염송해야 한다. 마지막으로 이 [중음에서 가르침을 듣는것으로 해탈을 얻는 비밀의 법]을 때와 장소에 따라서 일곱번이나 스물한 번 영송해야 한다. 
이 경전은 첫째, 망자가 죽음의 순간에 일어나는 죽음의 특징들에 직면하도록 인도하고, 
둘째, 중음에서 망자로하여금 실상 實相을 직접 증명하고 체험하도록 인도하고, 
째, 망자가 중음상태에서다시 태어날 곳을 찾고 있을 때 
                                    태 胎의 문 門을 막게하는 방법으로 이루워져 있다. 



Tibetan The Book of Dead

그림으로 풀어낸 삶과 죽음의 안내서 티베트 사자의 서

THE TIBETAN BOOK OF THE DEAD

파드마삼바바 장훙수 풀어씀 장순용 옮김


피안의 여행자를 위한 완전하고 자비로운 여행지도

8세기 티베트 불교의 대성인 파드마삼바바가

죽음과 환생의 중간 지대인 바르도를 여행하고 돌아와

죽음의 과정과 사후의 세계의 모습을 상세히 기록한 전설의 경전 !

1200년만에 발굴되어 서구의 기독교적 영혼관에 큰 충격을 안겨주고

정신 심리학자 카를 융에게 깊은 영향을 미친 인류 최고의 지혜 !

THE TIBETAN BOOK OF THE DEAD

"죽음의 순간, 生을 직시하라! 께달음이 온다 ! "



*세계에 대한 가장 체계적이고 상세한 설명서 !

사람이 죽으면 어디로 갈까? 죽음 이후의 세계는어떤 모습일까 ?

'죽음'의 모든 비밀을 파헤치는 티베트의 최고의 경전 !

[이집트 사자의 서]와 더불어 죽음을 직시하는 지적이고 영적인 단 한권의 책 !

생과 사의 경계에서 광대한 깨달음의 세계가 펼쳐진다 !


*삶의 마지막에 가장 필요한 책 !

티베트에서는 사람이 죽은 뒤 49일간

 눈부신 빛이나 무서운 형상의 붓다를 만나는 시험을 거쳐

해탈과 윤회의 갈림길에 선다고 믿는다.

이때 스승이나 가족이 [티베트 사자의 서] 법문을 읽어주면

망자의 영은 이를 듣기만해도 해탈할 수 있다.


* 살아있는 모든 것에 죽음은 차별없이 찾아온다!

죽음은 삶의 동반자이자 그림자이고, 우리는 항상 죽음을 벗하며 살아간다.

살면서 죽음준비하고 인지하는 것이야말로

 삶의 매순간을 더욱 반짝이게하는 비밀의 열쇠다 !

죽음은 삶의 끝이아니라 완성이며,

새로운 삶의 시작점이자 깨달음의 도약대이다 !


  1. 중음에서 가르침을 듣는 것만으로도 해탈의 얻는 위대한 법,(부록)

이책의 원고말미에 正文으로13페이지에 걸친 계송이 이어져있다.

목판본에는 없는 것이지만,

  법을 암송하는 라마가 입으로 귀에다 전해주면서 응용해야 할 때는

결국 암송할 수 있어야 한다. 다음과 같이 번역해서 싣는다.


모든 부처와 보살들에게 경건히 청하는 게송

( 즉 모든 부처와 보살들에게 가피를 정하는 기원의 게송 )


彌留미류(病이 오래 낮지 아니함) 즈음에

모든 부처와 보살들의 가피를 경건히 청하는 경문은 다음과 같다.

 자기자신이나 그 권속들이 극진히 마련한 것을 삼보에 공양하고,

마음은 다시 광대한 공양을 관하여 이루고

 손으로는 묘한 향을 든채 정성껏 공경하면서 게송을 다음과 같이 노래한다.


"대자대비하고,누진통漏盡通을 갖추고, 지혜의 눈으로 관조하고,

사랑으로 유정중생을 돕고,

비원悲願을 버리지 않으시면서 시방에 항상 머무는 모든 부처와 보살이여,

방편으로 바치는 공양과 마음으로 관하는 공양을받아서 누리소서.

자비의 존자들 께서는 一切智를 갖추고,비원悲願을 갖추고,

성스러운 행을 갖추워서 유정중생을 수호함이 한량없고 가이없어

 불가사의不可思議 합니다.

자비존자 들이여, 유정중생 아무개 가 생에서 벗어나 죽음으로 들어가면서

이 티끌세상을 끊고 험난함에 직면하고 있읍니다. 친구도 없이 홀로가느라고

 지극히 외롭고 고통스러우며, 돕거나 보호해줄 자도 없고 의자할 곳도 없읍니다.

고향을 떠난 뒤 해는 저물고 갈길은 아득해서 마치 겹겹의 안개속으로 들어간 듯하고,  

마치 낭떠러지에서 추락한 듯하고, 마치 숲속으로 달려들어가는 듯합니다.

업의 힘이 추격해서 큰 광야에서 낙오한 듯 하고, 큰 바다에 표류한 듯합니다.

업의 바람이 휩쓸고 가면 몸은 멈추질 못합니다.

때로는 원한에 집착하기도하고,

때로는 악귀나 염라대왕의 사자를 만나서 바라보기만 해도 두려워 합니다.

 업의 감응으로 생사의 순환이 그치질 않는데,

힘이 다하여 엎어지고 자빠지면서 연민을 자아냅니다.

자비 존자들이여, 유정중생 아무개는 보호도 받지못하고 의지할 곳도 없읍니다.

자비와 연민을 간절히 기원하오니, 구원의 손길을 내려 지켜주소서.

자비의 은혜와 깊 사랑스런 자식을 보호하듯이 하시고,

그를 도와서 중음의 근심과 고통을 없애주소서.

 업의 바람을 막아 그치게 하시고,

악귀를 막아 여의게 함으로서 중음의 험난한 경계에서 안전하게 구출해주소서.

자비 존자들이여, 자비와 연민을 버리지 마시고, 

광대한 서원誓願을 버리지 마옵소서. 

그리하여 온갖 고통을 쫓지 않도록 그를 보호하고 그로 하여금 알게하소서.

 모든 부처와 보살들의 보편적인 은혜의 가파인 빛의 갈고리로 

거두워 줌으로서 멋대로 업이 감응한 고통의 갈래로 빠져들게 하지 마옵소서.

 경건하고 간절한 삼보의 은혜로 가피를 드리워서

 중음의 다함없는 고통을 여의도록 수호하여 주소서.

"법을 주재하는 자가 선창하고그의 인도로 대중들은 

그에 따라 염송 하는데, 지극히 경건한 정성으로 세 번 반복한다.


 2. 중음의 험난함에서 보호해주길 기원하는 게송문


시방 삼세의 모든 부처와 보살들이여.

보현普賢 여래, 안락 존자들, 분노 존자들이여, 바다처럼 모인 훌륭한 대중들이여,

스승과 모든하늘, 공행천모空行天母여, 자비를 내려 이 기원을 들어주소서.

스승과 天母들에게 공경히 예배하오니, 연민의 마음으로 우리를 인도해 주소서

환영과 망상을 깨닫지못해서 생사에 빠져들어가니,

광명에 기대어 도를 듣고, 사유하고, 닦기를 원하나이다.

판정을 하신 스승 께서는 앞에서 인도하시고,

모든 天母들께서는 뒤에서돕고 수호하셔서

오직 중음의 험난함을 여의도록 구원해 주시길 원하옵고,

오직 원만한 불과를 중득하길 원하나이다.

분노가 원인이 되여서 생사에 빠져들어갈 때,

대원경지가 찬란히 빛을 비추니 금강살타는 앞에서 인도하시고,

감의불모藍衣佛母는 뒤에서 돕고 수호하셔서

오직 中陰의 험난함을 여의도록 구원해주시길 원하옵고,

오직 원만한 佛果를 중득하길 원하나이다.

교만驕慢이 원인이 되어서 생사에 빠져들 때

평등성지가 찬란히 빛을 비추니 보성여래께서는 아래에서 인도하시고

혜안불모慧眼佛母는 뒤에서 돕고 수호하셔서

오직 中陰의 험난함을 여의토록 구원해 주시길 원하옵고

오직 원만한 佛果를 중득하길 원하나이다.

탐욕貪慾이 원인 되어서 生死에 빠져들어갈 때,

묘관찰지妙觀察智가 찬란히 빛을 비추니

미타여래彌陀如來께서앞에서 인도하시고 白衣佛母께서 뒤에서 돕고 수호하셔서,

오직 중음의 험난함을 여의도록 구원해 주길 원하옵고

오직원만한 불과를 중득하길 원하나이다.

질투가 원인이 되어서 생사에 빠져들어갈 때,

  성소작지가 찬란히 빛을 비추니 불공여래 께서는 앞에서 인도 하시고,

  고통을 구원하는 도모度母께서 뒤에서 돕고 수호 하셔서

오직 중음의 험난함을 여의토록 구원해 주길 원하옵고,

오직 원만한 불과를 증득하길 원하나이다.

 무명이 원인이 되어 생사에 빠져들어갈 때,

법게의 지혜광명智慧光明이 찬란히 빛을 비추니 

大日如來께서 앞에서 인도하시고,

금강허공불교金剛虛空佛母께서 뒤에서 돕고 수호하셔서

오직 중음의 험난함을 여의토록 구원해 주길 원하옵고,

오작 원만한 불과를 중득하길 원하나이다.

 환영과 앙상의 깊은 집착으로 중음에 빠져들어갈 때,

  광명에 기대어 공포를 없애기를 원하나이다.

분노 존자들이 앞에서 인도 하시고,

大忿怒佛母의 어머니께서 뒤에서 돕고 수호하셔서

오직 중음의 험난함을 여의도록 구원해주시길 원 하옵고,

오직 원만한 불과를 중득하길 원하나이다.

축적된 習氣가 원인이 되어서 생사에 빠져들 때, 

함께 태어난 지혜 광명이 찬란히 빛을 비추니 

용감한 지명께서 앞에서 인도 하시고,

公行天母께서 뒤에서 돕고 수호하셔서

오직 중음의 험난함을 여의토록 구원해 주길 원하옵고,

오직 원만한 불과를 중득하길 원하나이다.

오직 바라노니 空大가 일어나도 적이되지 말기를,

하여 오직 바라노니, 푸른빛의 불국토를 직접보게 되기를,

오직바라노니, 水大가 일어나도 적이되지 말기를, 하여

오직 바라노니, 힌빛의 불국토를 직접보게 되기를 오직 바라노니,

地大가 일어나도 적이되지 말기를,

하여 오직바라노니, 노란빛의 불국토를 직접보게 되기를,

오직 바라노니, 火大가 일어나도 적이되지 말기를,

하여 오직 바라노니, 붉은 빛의 불국토를 직접보게 되기를,

오직바라노니, 風大가 일어나도, 적이되지 말기를,

하여 오직 바라노니,초록빛의 불국토를 직접보게 되기를,

오직 바라노니, 무지개 빛이 일어나도 적이되지 말기를. 하여

오직 바라노니, 일체의 불국토를 직접보게 되기를 

오직 바라노니,

중음의 모든 음성이 오로자 자신의 음성이란 걸 실답게 명료히 알기를 

오직 바라노니, 

중의 모든음성이 오로지 자신의 광염이란 실 답게 명료히 알기를 

오직 바라노니, 

중음의 모든 광염이 오로지 자신의 광염이란 걸 실답게 명료히 알기를, 

오직 바라노니,

삼신의 진실한 자성을 중음의 경계안에서 실답게 가려내 증명하기를 

 여섯가지


중음의 경책 게송문 (즉 여섯가지 중음 경계의 금보적인 경책게송) 


태에처한 중음 경계의 징후가 현전하니, 

정지하고 수행할 뿐 게으름은 버려야 한다.

마음은 실상에 머물고, 도를 듣고, 사유하고, 닦아서,

색과 마음의 자성을, 깨달아서 三身을 증명하고,

한 번 사람 몸을 받으면, 

찰라라도 게으르지말고 이번 생을 허비하지 말라.

꿈속 중음 경계의 징후가 현전하니,

 시체처럼 긴잠인 무명을 버려야하고 바라노니, 

본연의 경계에 식이 머무소서.

꿈의 사성은 신령스럽게 변화하는 청정한 빛이니,

나태하고 용렬한 축생의 종류를 본받지 말고 

꿈을 관하면서도 선정에 들어 있는 것,

이 둘을 쌍으로 닦는 것이야 말로 고귀하다.

선정 중음 경계의 징후가 현전하니,

집착과 애욕과 열등한 뜻을 버려야 하며 

오직 정각의 광명과 계합하길 염원하고,

오직 무생법인에 증명해 들어가길 원합니다.

피와 살로된 몸은 이때 반드시 버리면서,

이 몸이 아주 허망한 환영임을 명료히 알게 하소서.

  실상 중음 경계의 징후가 현전하니

일체현상의 공포를 반드시 없애야 하며

어떤 환영의 모습이든 스스로의 식이 변한 것이고

중음의 형상은 실답지않는 환영일 뿐이며,

위깅일발의 순간이 바로 이때이지만,

안락 존자든 분노 존자든 식의 환영인데 무얼 두려워하랴.

투생중음 경계의 징후가 현전하니,

한마음으로 염원을 갖추워 굳건히 지니면서 잃지 말라.

착한 업이 계속 이어져서 짬이없이 정진하고,

오직 태를 막아서 잘못을 깨달아 들어가지 않게하고

노력과 수희隨喜로 그때를 위하게 하고,

쌍신을 관상하여 애착과 미움을 끊게 하소서.


임종이 다가왔는데 어찌 아직도 망설이는가?

무익無益한 짓을 하면서 한갓 이번 생을 저버리고 있으니,

시기를 놓친다면 어찌 지혜롭다고 말하겠는가?

마치 보배산에 들어갔다가 헛되히 돌아와 탄식하는 것과 같으니,

이미 불법이 그대에게 필요하다는 걸 알았다면,

저 교법을 어찌 닦고 익히지 않을 수 있겠는가!

게송을 맺으면서 대성취하신 스승께서는 일찍이 가르쳐 보였으니,

스승께서 전해주신 교법을 잘기억해 지니지 않으면

스스로를 해치는 것과 다름없으니 배우는 자는 경계해야 하며

기본적인 게송이 경문은 중요하니 반드시 알아야 한다.


중음의 공포에서 벗어나도록 보호를 염원하는 게송


나는 이제 업보가 다한 시기에 이르렀다.

생전의 권속은 나에게 소용이 없으며, 

외로운 혼자 몸으로 중음을 배회 할 뿐이니, 

안락 존자와 분노 존자 들이여, 

불상히 여겨서, 무명의 어둠을 남김없이 없애주소서.

사랑하는 사람들과 헤어지고 홀로 된 몸으로 배회할때,

보이는 환영의 모습은 자신의 식이 변하여 나타난 것이니,

오직 바라노니, 모든 부처님이시여,

자비로운 은혜의 가파와 위엄의 힘으로 공포를 해결해 없애주소서

다섯가지 지혜의 빛이 찬란히 비출 때는 바라노니,

공포를 없애서 자신의 體를 깨닫게 하시고

안락 존자와 분노 존자들이 나타나실 때는,

중음의 환상을 깨달아 두려움이 없게 하소서.

악업의 힘이 무거워서 온갖 고통을 맛볼 때,

안락 존자와 분노 존자 들이여, 재난과 고통을 없애 주시고,

실상의 소리가 천 개의 천둥처럼 우르릉 거릴 때 바라노니,

모두 대승법의 소리로 바꾸워 지게 하소서.

업의 장애가 몸을 구속해서 믿고 의지할 곳이 없을 때,

안락 존자와 분노 존자들이여, 저를 돕고 수호하시고,

업의 장애로 맷힌 습기 때문에 온갖고통을 받을 때,

청정한 빛의 等持가 내 앞에 나타나 임하게 하소서.

투생 中陰에서 천식遷識으로 가서 태어날 때,

천마의 사악한 빛이 내 앞에 임하지 않도록 하시고,

어떤 즐거운국토든 염원대로 가서 태어났을 때 바라노니,

업에서 비롯한 환영의 공포를 주소서.

황야에서 사나운 짐승이 무섭게 으르렁 거릴 때

그 소리가 육자 대명의 진언으로 비뀌게 하시고,

비와 눈이 몰아치고 바람과 안개가 미친듯이 밀려올 때,

반드시 天眼에 의자한 智慧의 빛으로 홀로 비추게 하소서.

중음에서 공통의 업을 가진 모든 유정 중생들이,

저마다 시기함이 없이 훌룡한 국토에 가서 태어나게 하시고,

아귀의 배고픔과 목마름, 그리고 지옥의 추위와 더위, 바라노니,

이러한 苦楚를 벗어날 수 있게 하소서.

미래의 부모가 방안에 있는 환영의 모습을,

안락 존자와 분노존자의 쌍신과 똑같이 보게 하시고,

곳에 따라 전생할 때마다 유정 중생을 이롭게 해서,

온갖 相好를 갖춘 원만한 몸을 얻도록 하소서

오직 바라노니, 轉生 할 때는 남자 몸을 얻어서,

나를 보고 나에 대해 듣는 자마다 다 해탈케 하시고,

악엉을 차단하고 없애서 다시는 쫓겨다니지 않게하며,

어떤 복의 과보이든 그 복이 배로 늘어나게 하소서.

오직 바라노니,어느 곳에든지 전생 할 때 마다,

안락 존자와 분노 존자들을 만나게 하시고,

나면서부터 말할 수 있고 나면서 부터 걸을 수 있어서,

숙명통宿命通의 지혜로 전생을 잘 기억하게 하소서.

상근기이든 중근기이든 하근기이든 보리도菩提道의 단계를,

  보고,듣고,사유해서 그 정수까지 깊어지도록 하시고.

어느곳에 태어나든 크나큰 상서로움을 갖춤으로서,

일체유정 중생들이 골고루 이익과 즐거움을 얻도록 하소서.

안락 존자와 분노 존자와 분노 존자들의 장엄한 묘한 몸과妙身

권속들의 수명이 끝이없는 국토와 나아가

모든 존자와 성스러운 부처의 명호에 이르기 까지 ,

나와 중생들이 똑같이 중득하기를 기원하나이다.

안락 존자와 분노 존자, 그리고 보현 부처의 빛으로서,

원만하고 청정한 실상법신의 은혜로운 파동으로서

무릇 온갖 염원하는 바를 성취하지 않음이 없게 하소서.


 책을 쓰고난 뒤의 회항


이 책의 원고 끝머리에 편집자인 어느 라마가 회항한 게송이 있어서 소개한다.

 비밀의 뜻이라면 세상 사람은 스스로를 낮추고 경문만을 우뚝 높혀서

누구나 추앙 할 수 있도록 해야 하는 데, 이 라마도 그 뜻을 성실히 지켜서

자신의 이름을 싣지않았다.

"이제 나는 순수함이 충만한 의도로 교법을 편집하였다. 

 오직 바라노니,이 성인에 의해 어느 세상에서나 도움도 보호도 받지 못하고 

 태어나는몸들의 어머니도 똑같이 불도를 중득 하소서,

묘하고 상서로운 빛이 인도를 두루 비추고 아울러

이 책도 똑같이 상서로움을 이루기를 바라오며

복과 선을 갖추어서 나의 염원도 원만하길 바랍니다."


[옮긴이의 말]

젊은 시절, 윤회전생에 대해 의문을 품은 적이있다.

無我가 근본 진리라면, 도대체 '나' 가 없는데 무엇이 윤회전생한다는 말인가?

 또 절에서 49재를 지낸다는 말을 듣고 왜 49일인지 궁금하게 여겼던 적도 있었다.

도중에 그것이 죽음의 과정이란 말을 듣기는 했지만,

그 상세한 내용에 대해서는 알지 못했다. 

이렇게 상식적이지만 본질적인 의문을 품은

사람들은 이 책 [티베트 사자의 서]를 보면 의문이 풀릴 것이다.

[티베트 사자의 서]에서는 실체가 없는 우리의 식이 윤회의 주제이고,

 죽음의 과정은

그 식이 임종 순간부터 49일동안 체험하는 경계란 사실을 알려주고 있다.

 또 [티베트 사자의 서]는 죽음의 과정만 아니라

해탈의 길 까지 제시하고 있는데

그 내용은 대승불교의 근본 진리와 정확히 부합하고 있다.

죽음은 기피해야 할 그 무언가가 아니라 냉정히 이해하고 받아들여야 할 현상이다.

죽음에 대한 이해야 말로 오히려 

우리의 삶을 올바로 이끌어주는 길잡이가 될 수 있기 때문이다.

[티베트 사자의 서]를 보면 죽음의 과정 속에서

우리가 겪게되는 온갖 경계를 알 수 있는데,

  이것만으로도 생전의 삶에서 몸, 입, 뜻의 삼업이 청정해야하고

탐욕, 성냄, 어리석음의 삼독을 멀리해야 한다는 사실을 뼈져리게 깨달을 수 있다.

요즘 Well Being이란 말이 유행하면서 Well Dying에 대한 관심도 급격히 고조되고 있다. 특히 사회가 고령화되면서 죽음의 과정을 제대로 인도하는 문제는 더욱 중시되고 있다.  

불교계에서도 예로부터 망자에대한 제의 祭儀 를 집행하고 있다. 

하지만 개인적으로는 이 [티베트 사자의 서]의 가르침을 깨닫고 체득해서 

실제적으로 망자를 인도하는 법사가 나오기를 바란다. 

어느 종교를 막론하고 죽음의 과정을 이토록 상세하게 묘사하면서 

망자를 해탈로 인도하는 경전은 전후 무후하다고 할 수 있기 때문이다.

나아가 [티베트 사자의서]의 가르침대로 망자를 인도해서

엘다잉의 문화가 정착된다면,

불교의 사회적 공헌은 더 이상 클 수 없을 정도로 지대 할 것이다.

2008 11월 장순용